자생한방병원은 지난 29일 대한골프협회와 의료후원 협약을 체결하고 국가대표 골프 선수들의 건강 관리에 나선다고 1일 밝혔다
자생한방병원에서 진행된 이번 협약식은 자생의료재단 박병모 이사장과 자생한방병원 이진호 병원장, 대한골프협회 박재형 전무이사 등 각 기관의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대한골프협회는 우리나라 골프를 대표하는 단체로, 국가대표와 신예선수들을 선발·육성하고 전국 규모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내 골프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우리 여자골프 대표팀은 지난해 세계 여자 아마추어 골프팀 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아태지역 최고 귄위의 '퀸 시리키트 컵(Queen Sirikit Cup)'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석권하며 대한민국 골프의 위상을 높이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자생한방병원은 대한골프협회 지정 의료기관으로서 협회 소속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코치와 트레이너 등의 척추·관절 건강 관리에 나선다. 협회는 영상 진단부터 추나요법, 침치료, 한약 처방을 포함한 한방통합치료까지 자생한방병원의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예정이다. 또한 선수들이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한의사의 출장 진료도 필요 시 진행될 계획이다.
실제 다수의 골프 선수들은 고된 훈련과 대회로 인해 만성적인 근골격계 통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골프의학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한국 프로골프투어 부상 현황 분석’에 따르면 한국프로골프(KPGA) 및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선수 439명 중 절반 이상이 골프로 인한 3주 이상의 근골격계 부상을 겪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PGA 선수들의 주요 부상 부위는 ‘등과 허리(28%)’, ‘손목(24%)’, ‘목(18%)’이었으며, KLPGA 선수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자생의료재단 박병모 이사장은 “골프는 한쪽으로만 몸을 회전시키는 편측운동인만큼 부상의 위험이 높아 평소 면밀한 건강 관리와 치료가 매주 중요하다"며 “대한민국 골프의 중심축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생한방병원의 치료에 힘입어 올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모 신문사 골프 전문기자는 같은 학과 선배다. 둘이 함께 기자 시험 준비를 해서 며칠 차이를 두고 둘 다 기자가 됐다. 그러곤 시간이 한참 흘러 나는 기자를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 골퍼가 됐다. 그 선배는 한 우물을 파서 골프 전문기자가 됐고. 내가 프로 골퍼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이다. 나는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멋있는 골퍼란 어떤 골퍼인가요?” 숱한 골퍼와 라운드를 해봤을 그 선배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멋있는 골퍼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그렇군요”라며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 말이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는 어떤 골퍼일까요?” 그는 이번에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골프를 잘 치는 사람도 멋있지만 아무래도 골프 규칙을 잘 지키는 골퍼와 다시 라운드하고 싶지.” 그러고는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한 골퍼와는 꼭 다시 만나고 싶더라”라고 말을 더했다. 그때만 해도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고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한 사실에 우쭐하던 나는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시원한 샷을 날리고 좋은 점수를 내는 것을 골프에서 가장 큰 덕목으로 꼽던 나에게 그의 답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가 오랫동안 골프 전문기자로 취재를 하면서 나보다 실력이 출중한 골퍼를 한두 명 만났겠는가? 그런 그는 ‘누구는 파워가 압도적이어서 멋있다’라는 말 따위는 꺼내지도 않았다. 또 ‘누구는 쇼트 게임을 귀신같이 잘해서 다시 쳐보고 싶더라’라는 말도 입에 담지 않았고. 그 대신 원칙과 배려 같은 덕목을 최고로 꼽은 것이다. 그랬으니 골프는 스코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먹은 것이 체하지 않았겠는가?
그의 말을 가슴에 담은 뒤 내 골프는 조금 바뀌었다. 스코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냐고? 천만에, 그건 아니다. 점수와 상관없이 내게는 규칙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친선 라운드를 할 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골프장이 정한 로컬 룰 대신 일반 규칙(영국왕립골프협회가 정한 공식 규칙)을 기준으로 삼았다. 함께하는 골퍼들에게는 최대한 관대하게 규칙을 적용한 것은 물론이고. 심심풀이로 내기를 할 때라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이기든 지든 대충 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부분만 지킨다고 다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과 동기들과 라운드한 뒤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기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를 들었다. 쉽게 말하면 “너 그런 식으로 골프 치지 마라”는 말이었다. ‘내가 동기들과 골프 칠 때도 내기를 해서 주머니를 턴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 자리에선 술 취한 친구가 한 주정이라고 넘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았다. 선배 말에 감화를 받고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한참 뒤에 들은 얘기라서 더 그랬다. 그래서 이튿날 그동안 한 번이라도 나와 라운드한 같은 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법 여럿이었다. 혹시 라운드하면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또 혹시 나와 골프 쳐서 기분 상한 동기가 있느냐고도 물었다. 그런 적도 없고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꺼림칙했다. 혹시 나는 기억 못 하지만 당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다 짚이는 친구가 한 명 떠올랐다. 자기 고객과 동반 라운드를 할 때 나를 초대한 친구였다. 초대를 받고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명색이 프로 골퍼인데 네 회사 접대 골프에 부르는 거니 출장비는 주는 거냐?”고. 친구는 “친구 사이에 무슨 출장비냐?”며 “내기라도 할 테니 능력껏 가져가라”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나는 프로가 치는 블랙 티에서 치고 다른 이들은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했다. 핸디(속어로 핸디캡 차이를 줄인 말, 실력 차이를 감안해서 오가는 덤)도 넉넉하게 주고. 그런데 그날따라 샷이 너무 잘 됐다. 까다로운 코스였는데 치는 족족 가서 붙더니 버디를 대여섯 개나 잡아낸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고전하더니 모두 핸디캡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그렇게 소소한 수고비(?)를 챙기고 헤어졌다.
나로선 그날 함께한 사람들에게 승부가 주는 짜릿함을 느껴보라고 최선을 다한 것이었는데. 그 일이 떠오르자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안부와 함께 예전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혹시 그날 일로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그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아무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래도 나는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일까?”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그동안 뱁새 김용준 프로 칼럼을 사랑해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비가 그치더니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그래도 태풍 뒤끝이라 바람은 말도 못 하게 세게 불었다. 아마추어 제자들과 라운드한 그날 뱁새 김용준 프로는 첫 네 홀에서 선방했다. 강풍에 순응하며 전부 파를 기록한 것이다. 이어서 맞이한 5번 홀은 파3로 215m였다. 맞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김 프로는 일단 3번 우드를 들고 티잉 구역으로 올라섰다. “드라이버를 잡아야 할까요?” 캐디를 바라보며 그가 혼잣말처럼 작게 물었다. “저기 저 큰 태극기가 다 펴질 정도로 바람이 세면 네 클럽 더 봐야 한대요.” 김 프로 얘기를 들었는지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얘기라서 그랬는지 성격이 밝은 캐디가 조언했다.
캐디가 가리킨 쪽에는 폭이 얼마나 큰지 가늠도 안 되는 초대형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대주주의 국적이 외국이라 한동안 우리 국민에게 미움을 산 회사가 물류센터에 세운 것이었다. 여태 본 것 중에 제일 큰 태극기를 내걸어서라도 기업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꾀를 낸 것이려니 하고 김 프로는 짐작했다. 아차 얘기가 딴 데로 샜다. 다시 맞바람 속 긴 파3로 돌아가자. ‘흠, 그렇다면 250m쯤 쳐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 김 프로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파3에서 드라이버를 잡는다는 것은 좀 그렇지?’ 어줍잖게 프로 골퍼로서 자존심을 세우는 듯했다. ‘3번 우드로도 250m를 칠 수 있다’는 데 그의 생각이 미쳤다. ‘그래, 강력한 우드 샷을 보여주자’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클럽을 휘두른다고 휘둘렀는데 볼은 페널티 구역으로 날아갔다. 너무 세게 치려다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크게 슬라이스를 낸 것이다. 벌타를 받고 110m 지점에 드롭했다. 강한 맞바람에 8번 아이언으로 세 타째 샷을 했다. 볼은 핀 왼쪽 뒤 프린지로 떨어졌다. 내리막 짧은 어프러치가 남아 여차하면 더블 파를 기록할 판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살피더니 느긋한 어프러치로 깔끔하게 핀에 붙였다. 그래도 더블 보기. 그는 후회했다. ‘이런 똥멍청이 같으니라고. 자존심이 스코어 카드에 기록되냐고? 스코어가 자존심이지.’
바람에 고전하며 그는 어느덧 17번 홀에 이르렀다. 185m짜리 파3였다. 블랙티(보통 프로 골퍼나 아마추어 중에서도 핸디캡이 아주 낮은 플레이어가 치는 티)가 화이트티와 같이 놓여 있었다. “흐흐, 코스 세팅이 아주 합리적이네요.” 김 프로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추어 제자들 입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앞 핀이라 175m 정도 보면 적당했다. “170m네요.” 거리측정기로 재본 제자가 말했다. 내리막을 감안한 숫자일 터. 물을 건너야 하고, 그린 앞에 키 높이 벙커가 있는 홀이라면? 경험상 내리막을 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여전히 강한 맞바람이었다. 몇 클럽을 더 볼 것인가? 아까 물에 빠뜨리고 더블 보기를 한 5번 파3 홀과 비슷한 강풍이었다. 그렇다면 네 클럽이나 더 길게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3번 우드로 쳐야 한다는 말인데?’ 김 프로는 또 망설였다. 그러다 마침내 우드를 잡아들었다.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시원하게 샷을 날려놓고도 김 프로 역시 볼이 날아가는 동안 조마조마했다. 혹시 너무 크게 친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웬걸. 볼은 기가 막히게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살짝 밀리더니 툭 떨어져서 핀에서 여남은 발짝쯤에 섰다.
“굿 샷”이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제자 차례다. 아마추어 중급자에게는 175m도 부담스러운데 맞바람까지 강하게 부니 여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차례인 제자가 드라이버를 잡았다. “파3에서 드라이버를 다 잡네요”라며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쓴 다음 스윙을 했다. “굿 샷” 하고 캐디가 소리쳤다. 결과가 제법 좋았다. 약간 밀렸지만 거리는 딱 맞아서 오른쪽 프린지에 멈췄다. 다음 제자 역시 드라이버를 잡았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휘둘렀다. 두 사람이나 서너 클럽 길게 잡은 것을 봤으니 확신을 가질 만했다. 볼은 시원하게 날아가 그린에 멈췄다. 김 프로 볼보다 예닐곱 발짝 더 오른쪽에. 마지막 제자는 그린 앞 페널티 구역에 빠졌다. 차마 풀 스윙을 하지 못한 탓이리라. 온 그린 시킨 제자가 파를 하면서 김 프로가 그 홀 상금을 독식하는 것을 막았다. 쩝.
몇 번으로 몇 미터를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몇 번으로든 그 몇 미터를 쳐내는 것이 중요하지. 스코어 카드에 점수를 기록할 때 티 샷이 몇 미터 나갔는지 혹은 세컨드 샷은 거리가 얼마 남았을 때 몇 번 클럽으로 쳤는지 기록하던가? 독자는 부디 자존심을 세우느라 클럽을 잘못 선택하지 말기 바란다. 상황에 맞는 클럽을 선택해서 한 타라도 줄이는 것이 진짜 자존심을 세우는 비결이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김 프로도 클럽별 거리만 생각하다 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하.
독자는 어떤 그립을 잡고 있는가? 위크 그립? 뉴추럴 그립? 스트롱 그립? 나는 위크 그립을 잡는 플레이어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백이면 백 뉴추럴 그립 아니면 스트롱 그립이다. 뉴추럴 그립을 잡는 플레이어에게 ‘왜 뉴추럴 그립을 택했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골프를 시작할 때 그립에는 세 종류가 있다(위크, 뉴추럴, 스트롱)고 듣고 깊게 따져보지 않은 채 뉴추럴 그립을 선택했다고. 이들에게 ‘왜 스트롱 그립을 잡지 않느냐’고 물으면 의외의 답을 듣는다. 바로 ‘스트롱’이라는 이름 탓에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하다는 뜻의 ‘위크’와 중립이란 뜻의 ‘뉴추럴’, 그리고 강하다는 뜻의 ‘스트롱’이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많은 사람은 가운데 것을 고른다. 같은 종류 물건인데 값이 싼 것과 비싼 것, 그리고 중간인 것이 있다면 십중팔구 중간 것을 고른다. 이 성향은 문화적 배경까지 더해져서 더 강해진다. 바로 중용(中庸) 때문이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할 때 그 중용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중용을 큰 미덕으로 삼았던 탓에, 뭔가를 선택할 때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스트롱 그립을 쓰는 플레이어가 적은 것은 그 이름뿐 아니라 별명 탓도 있다. 스트롱 그립은 일명 ‘훅 그립’이라고도 부른다. 훅은 왼쪽으로(오른손잡이 골퍼인 경우) 감기는 것을 말한다. 처음 들을 때 볼이 왼쪽으로 감긴다면 선뜻 그 그립을 선택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도 그랬다. 독학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별 생각 없이 뉴추럴 그립을 택했다. 어깨너머로 보며 익힐 때도 오랫동안 다른 그립으로 바꿔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숱한 시간을 슬라이스로 고생했다. 필드에서 제법 좋은 점수를 낼 수 있게 된 뒤에도 내 샷은 항상 슬라이스였다. 드라이버 샷은 비행접시처럼 휘었다. 흔히 슬라이스로 고생하는 골퍼에게 11시 방향을 보고 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내 경우엔 11시 방향으로 쳐도 오른쪽으로 가끔 아웃 오브 바운드(OB)가 날 정도로 오른쪽으로 많이 휘었다. 그래서 나는 10시 방향을 보고 드라이버 샷을 치곤 했다. 아이언 샷도 마찬가지였다. 치기만 하면 오른쪽으로 밀렸다. 그런데 어떻게 점수를 내고 급기야 프로 골퍼까지 됐냐고? 바로 일관성 덕분이다. 내 샷은 아주 일관되게 오른쪽으로만 휘었다. 열심히 휘둘러댄 덕에 힘이 붙어서 거리가 제법 났다. 그러니 늘 목표보다 한참 왼쪽을 겨누고 치면 원하는 곳에 볼을 갖다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선 내 샷은 페이드(살짝 오른쪽으로 휘는 샷)라고 자위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지독한 슬라이스로 고전했다. 말이 좋아서 일관성이지, 오른쪽으로 크게 휘는 샷으로 좁은 홀에 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내가 스트롱 그립 맛을 본 것은 프로 선발전을 통과하기 불과 얼마 전이었다. 하루는 당시 자주 겨루던 박창교(2014년 아난티클럽 챔피언) 선배에게 완패했다. 그날따라 박 챔프는 드라이버 샷을 반듯하게 날리면서 거리도 부쩍 멀리 보냈다. 당시 나보다 쇼트 게임이나 퍼팅 실력이 뛰어난 그였다. 그날은 비거리까지 나를 바싹 따라붙으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라운드가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박 챔프는 그립을 바꿔봤더니 효과가 너무 좋다고 비결을 털어놨다. 바로 스트롱 그립으로 바꿔 잡아봤다는 얘기였다. 그랬더니 슬라이스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더라는 것 아닌가? 그 뒤 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스트롱 그립을 잡아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드라이버 샷 슬라이스가 크게 줄었다. 그만큼 비거리도 늘었고. 아는 만큼 본다고 하던가? 그 뒤로 TV 골프 중계를 보면 선수들 그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스트롱 그립을 잡은 선수가 훨씬 많지 않은가? 왜 이걸 몰랐을까? 수년간 슬라이스로 말 못 할 고생을 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 뒤로 조금씩 스트롱 그립으로 고쳐가면서 적응했다. 그리고 지금은 스트롱 그립을 잡으라고 가르친다.
스트롱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 것이다. 셋업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볼 때 왼손 손마디가 두 개나 두 개 반 정도 보이면 적당하다. 세 개까지 보이면 너무 과한 것이다.
칼럼 제목은 ‘클로즈드 그립을 잡아라’인데 클로즈드 그립이 뭔지 얘기를 안 하고 끝낼 뻔했다. 클로즈드 그립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나는 스트롱 그립 대신 클로즈드 그립이라고 부른다. 클로즈드는 스트롱이라는 말이 주는 편견을 털어낸다. ‘클로즈드’(Closed)는 ‘닫았다’는 뜻이다. ‘열었다’는 뜻인 ‘오픈’(Opened)의 반대말이다. 나는 위크 그립은 오픈드 그립이라고 이름 지었다. 뉴추럴 그립은 그대로 뉴추럴이라고 부른다. 슬라이스로 애를 먹는다면 클로즈드 그립을 잡기를 권한다. 훅으로 고전하고 있다면 오픈드 그립을 잡으면 좋다. 클로즈드 그립이니 오픈드 그립이니 하는 것은 세계 최초로 뱁새 김용준 프로가 이름 붙인 것이라는 점도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 많은 경우에 이름이 실질을 지배한다. 골프에서 그립 이름도 그렇다.
독자는 골프 연습장에 가면 공을 몇 개나 치는가? 연습을 잘 안 한다고? 아이고, 이런. 그렇다면 돌려서 물을 수밖에 없다. 독자는 골프 연습을 할 때 한 시간에 공을 몇 개나 치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루가 아니고 한 시간에 말이다. 적어도 200~300개는 쳐야 연습답게 한 것 아니냐고? 그렇게 많이 치고 어디 쑤신 데도 없다면 강골이다. 아니면 어쩌다 한 번 연습하느라고 무리하는 것이거나. 한 시간에 100개 정도 치면 어떠냐고? 뱁새 김용준 프로는 이 개수가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 시간에 100개 안팎이고 1분에 1~2개 말이다. 진짜 그렇게 보냐고? 진짜다. 실전에서 잘 치고 싶다면 한 시간에 100개 안팎만 연습해도 충분하다. 아니 100개 안팎을 쳐야 한다. 무슨 얘기냐고? 바로 랜덤(Random) 연습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랜덤 연습이 뭐냐고? ‘랜덤’은 우리말로는 ‘무작위’다. ‘랜덤 연습’은 ‘무작위 연습’이다. 연습할 때 클럽 하나를 갖고 여러 번 치지 않는 방법을 말한다. 샷을 할 때마다 클럽을 바꾸는 것이 랜덤 연습이다. 한 클럽으로 치더라도 다른 샷을 하는 것도 랜덤 연습이고. 한 번은 페이드를 치고 다음번은 드로를 치는 식으로 말이다.
랜덤 연습의 뜻은 알겠는데, 진짜 효과가 있냐고? 그렇다. 랜덤 연습은 기초를 뗀 골퍼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연습 방법이다. 짧은 시간에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특히 연습장에서는 그럭저럭 잘 치는데 필드에 나가면 고전하는 중급자라면 랜덤 연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랜덤 연습인지 설명하겠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는 추임새를 넣어주기 바란다. 어~얼쑤!
연습 타석에 들어섰다. 볼을 치기 전에 스트레칭을 실컷 한다. 클럽을 번갈아 들고 빈 스윙도 충분히 하고. 첫 홀은 파4라고 가정한다. 첫 샷은 드라이버 티 샷이다. 가볍게 스윙해서 페어웨이에 떨구기로 작정한다. 실전에서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첫 샷은 부드럽게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목표도 꼭 정한다. 저 멀리 그물 끝에 있는 타깃을 맞히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연습 스윙을 한두 번 하고 셋업을 한다. 볼이 밀리기 십상이라면 목표보다 살짝 왼쪽을 본다. 웨글링을 한 번 하고 샷을 한다. 볼은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티 샷을 잘 했으면 다음은 아이언 샷이다. 150m쯤 남았다고 상상한다. 풀 스윙을 하면 6번으로 칠 수 있는 거리다. 그렇지만 첫 홀이니 넉넉하게 5번 아이언을 잡기로 한다. 목표를 정한다. 연습 스윙을 두 번 하고 셋업을 한다. 스윙을 한다. 이런, 부드럽게 치려다가 조금 두껍게 맞았다.
아이언으로 친 볼이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가정한다. 웨지를 든다. 서른 발짝쯤 되는 피칭 앤드 런(살짝 띄운 다음 굴러가게 하는 샷)을 하기로 한다. 볼을 떨어뜨릴 지점을 정한다. 바닥에 모여 있는 공 세 개를 목표로 잡는 식이다. 연습 스윙을 서너 번 하면서 헤드 무게를 느낀다. 셋업을 하고 스윙을 한다. 원하는 지점을 살짝 지나 떨어졌다. 볼을 정확히 맞히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스윙이 조금 강했나 보다. 거리가 멀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퍼팅을 남겼다고 가정한다. 첫 홀은 이렇게 파 아니면 보기를 한 것으로 친다.
다음 홀로 넘어간다. 다음 홀은 파5라고 친다. 전 홀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버 티 샷을 한다. 세컨드 샷은 같은 방식으로 우드를 잡는다. 연습 스윙을 한 다음 셋업을 하고 샷을 한다. 우드가 잘 맞았다면? 웨지 거리만 남았다고 본다. 혹시 우드 샷을 실수했다면? 짧은 아이언 거리가 남았다고 가정한다. 9번 아이언 따위를 연습한다. 애초부터 작전을 달리할 수도 있다. 우드가 서툰 골퍼라면 세컨드 샷 때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식이다. 하이브리드를 치고 짧은 아이언으로 파5를 풀어가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다음 홀은 파3라고 상상한다. 160m가 살짝 넘는 제법 긴 파3다. 아까와 마찬가지 루틴을 밟아 롱 아이언 샷을 한다. 역시 롱 아이언은 부담스럽다. 토핑이 난다. 그린에 한참 못 미쳤을 것 같다. 롱 아이언을 한 번 더 치고 싶어도 꾹 참는다. 실전에서는 연습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웨지를 골라 장거리 웨지 샷을 연습한다.
이런 식으로 18홀을 돌면 된다. 시간이 많이 남아 아쉽다면 한 바퀴 더 돈다. 전에 가본 골프장이나 갈 예정인 곳의 야디지(코스 안내도)를 손에 넣어 한 홀씩 넘기면서 해보면 더 실감 난다.
랜덤 연습을 할 때는 반드시 샷을 할 때마다 연습 스윙도 하고 웨글링도 하면서 실전과 흡사하게 루틴을 밟아야 한다. 같은 샷을 두 번 연속 치는 것은 금물이다. 랜덤 연습 효과가 반감된다.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연습이 바로 랜덤 연습이다. 물론 매번 랜덤 연습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랜덤 연습을 자주 섞어주면 효과가 있다. 나도 한 달 내내 랜덤 연습만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실전 감각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랜덤 연습을 해도 별무신통이면 뱁새 김 프로가 책임지냐고? 흠흠. 기초를 뗀 골퍼가 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 말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랜덤 연습을 했는데도 효과가 없거나, 랜덤 연습을 하기가 버겁다면 아직 기초를 더 다져야 하는 상황이다. 얼씨구. 은근슬쩍 빠져나가는 모양새라니.
최윤수 프로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골프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골프는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신한동해오픈 1라운드에서 손자뻘 선수와 플레이를 펼친 최윤수 프로가 이런 골프 매력을 다시 보여줬다.
지난 9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제37회 신한동해오픈이 막을 올렸다. 최윤수는 버디 1개와 보기 9개를 묶어 8오버파 79타를 치며 공동 133위를 기록했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지만 그는 이번 대회 출전으로 2018년 KPGA 선수권에서 작성했던 코리안투어 최고령 출전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1948년생으로 올해 73세인 그는 서른에 프로가 된 뒤 코리안투어에서 11승을 올린 전설적인 선수다. 시니어 무대인 챔피언스투어에선 26승, 만 60세 이상이 참가하는 그랜드시니어 부문에선 19승을 기록하고 있다.
최윤수는 이번 대회에 주최자인 신한금융그룹의 초청을 받고 고심 끝에 출전했다. 그는 “KPGA선수권대회도 3년 전에 마감해 나가야 하나 망설였다”며 “어렵게 결정을 하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아마추어 국가대표인 17세 송민혁과 함께 플레이해 더 화제가 됐다. 송민혁과 최윤수의 나이차는 55년으로, 2018년 제61회 KPGA선수권대회 최윤수-정태양의 51년10개월을 넘는 역대 KPGA 투어 최다 나이차 동반 라운드 기록이다. 송민혁은 “대선배님과 함께 해 영광이었다”며 “선배님의 조언에 제 플레이 스타일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최윤수는 손자뻘 후배의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잘 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체격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 공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 나와 100m 이상 차이가 난 것 같다”며 “이런 선수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골프가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고 감탄했다.
여태 안 쓰던 레슨을 쓰기로 한 걸 보니 칼럼 소재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통한 일이 벌어지는 골프 세상에 얘깃거리가 쉬이 바닥나겠는가? 오로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가 한 타라도 줄이는 데 보탬이 되기로 마음 먹고 방향을 튼 것이다. 물론 편집자와 숙의 끝에 정했다.
그래도 레슨을 칼럼에 담기로 하면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사회관계망(SNS)에 레슨 콘텐츠가 넘친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칼럼이라서 글로만 뜻을 전달해야 하는 한계도 있다. 그래도 늦깎이인 내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용기를 낸다.
자, 뱁새 김용준 프로의 골프 레슨 제1회를 시작한다. 독자는 ‘이완’(relaxation)과 ‘수축’(contraction)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물론 골프 스윙에서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안다고? 이미 상급자 반열에 오른 골퍼임에 틀림없다. 모른다고?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지금도 아쉽다. 이완과 수축이 뭐냐고? 뜸들이지 말고 얘기하라고?
‘이완과 수축을 잘해야 좋은 스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힘을 쓰기 전까지는 근육의 긴장을 최대한 풀고 있다가 힘을 쓸 때 긴장을 해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백스윙 때는 이완하고 다운스윙 때는 수축을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더 정확하게는 백스윙 때와 다운스윙 초기에는 이완을 하고 다운스윙 중간부터 수축을 하는 것이 맞다. 다운스윙 초기에도 이완을 해야 한다는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다운스윙을 시작하자마자 수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운스윙을 시작하고 조금 지나고 나서 수축을 해야 한다. 다운스윙을 시작하고 얼마나 지나서 수축을 해야 하냐고? 두 손이 백스윙 톱에서 50~60대 정도 내려올 때까지는 여전히 이완을 했다가 그 다음부터 수축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다.
이완과 수축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어도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골프 조언은 흔하다. 그립을 부드럽게 잡으라는 조언이 대표적이다. 그립을 꽉 잡으면 근육은 자연스럽게 수축한다. 백스윙을 천천히 하라는 조언도 마찬가지다. 백스윙을 빨리 하려다 보면 아무래도 그립을 꽉 잡게 된다.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백스윙 톱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운스윙하라는 조언도 이완과 수축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톱에서 잠깐이라도 멈추는 일은 급한 백스윙으론 어림 없다. 혹시 백스윙 때 살짝 수축(긴장)을 했어도 톱에서 멈추는 동안 다시 이완 되기도 하고. 여유 있는 템포로 스윙하라는 충고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스윙 템포는 백스윙에서 다운스윙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얼마냐로 정해진다(이 말은 조금 어려우니 나중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다). 여유 있는 템포는 다운스윙으로 전환하는 데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백스윙 때뿐 아니라 다운스윙 초기에도 이완을 하게 된다. 들어본 지 오래지만 노래 구절 ‘에~델 바이스’를 떠올리며 스윙하라고 가르치던 옛 방식도 같은 의미다. ‘에~델’ 할 동안 백스윙을 하면서 긴장하지 않고 있다가 ‘바이스’ 하는 대목에서 힘을 주라는 것이다.
혹시 독자는 스윙을 할 때 확 잡아 빼서 후려치는 스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프로 골퍼가 되기 전에는 그랬다. 실은 프로 골퍼가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정말 많이 고쳤다. 돌이켜보면 내 백스윙이 얼마나 빨랐는지 말도 못 할 정도였다. 그때는 오로지 공을 때릴 생각밖에 없었다. 백스윙을 하고 있는데 이미 마음은 다운스윙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디 이완이 됐겠는가? 그립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을 테고. 볼을 뒤로(목표 반대 방향으로) 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백스윙을 순식간에 하면서도 기가 막히게 치는 골퍼도 있다. 나와는 달리 그립을 부드럽게 쥐고 어깨도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런 스윙을 해내는 것일 테니 놀랍다. 대개 전문 교습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엄청나게 훈련한 엘리트 골퍼나 가능한 일이다. 나로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손으로 꼽는 장타자 중에 이렇게 치는(순식간에 백스윙하는) 선수가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TV 중계를 통해 독자 눈에도 익으니 겉으론 비슷한 동작인 줄 착각하게 된다. 그 스윙은 큰 차이가 있으니 감안해야 한다.
이완과 수축이라는 말을 나는 김민조 골프 트레이너가 연 세미나에서 처음 배웠다. 그는 힘을 쓰기 전까지 한없이 근육을 이완시켰다가 단숨에 수축해야 ‘폭발적’으로 힘을 쓸 수 있다고 알려줬다. 몸을 쓰는 원리에 대해서는 백지에 가까웠던 나는 그 세미나를 듣고 깨달은 것이 많았다. 그 뒤로는 연습을 하면서 늘 ‘이완’, ‘수축’을 뇌까리며 스윙을 한다. 실전에서도 스윙이 급해졌다고 느낄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이완’과 ‘수축’이다.
독자도 나를 따라 해보기를 권한다. 백스윙을 시작해서 다운스윙 초기까지 ‘이~완’이라고 속으로 말하는 것 말이다. 다운스윙 때는 ‘수축’이라고 안 하냐고? 머릿속으로만 한다. 직접 해보기 바란다. 힘을 쓸 때는 이를 악물기 때문에 입은 저절로 다물게 된다. 이렇게 하면 실력이 느냐고? 효과는 내가 장담한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 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
진즉 함께 나누고 싶었다. 미국 PGA 투어 챔피언스(시니어 투어)에서 뛰고 있는 더그 배런(Doug Barron)이 내게 일깨워준 그 교훈을. 무명(無名)임을 한탄하지 말라는 얘기 말이다. 재미있는 사연 같은데 왜 이제야 꺼내느냐고? 음, 여태 사진을 못 구했다. 더그 배런 사진을. 없는 것은 아닌데 쓸 만한 게 없다. 그냥 뱁새 김용준 프로처럼 평범하게 생겼다고 상상하면 된다. 정 궁금한 독자는 검색해보기를.
더그 배런을 처음 본 것은 2019년 8월에 열린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구즈 오픈’ 때다. 나는 그 대회 해설을 맡았다. 대회 마지막 날 서너 홀을 남기고 방송 카메라는 더그 배런과 프레드 커플스(Fred Couples)를 번갈아 비췄다. 그렇다. 그 백전노장 프레드 커플스 말이다. 마스터스를 포함해 PGA 투어에서만 15승을 올리고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도 13승을 올린. 더그 배런은 누구냐고? 알 수가 없었다. 그 대회도 월요 예선(먼데이)을 거쳐 출전한 철저한 무명 선수였다. 그런 더그 배런이 세 홀 남기고 한 타 차 선두로 나섰다. 이어지는 16번 홀은 원온(한 번에 그린에 올리는 것)을 할 수 있는 홀이었지만 파로 마쳤다. 이제 17홀과 18홀 두 홀만 남았다. 그러자 프레드 커플스가 드라이빙레인지로 이동했다. 연장전으로 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승 경험이 없는 더그 배런이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해서 연장전으로 가지 않을까’라고 나도 속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날 무려 아홉 타를 줄여놓고 기다리는 프레드 커플스의 얼굴도 오랜만에 살짝 달아올랐다.
17번 홀은 길고 그린 주변도 까다로운 파3. 아차 하면 보기를 할 수도 있었다. 1992년 프로 골퍼가 됐지만 아직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더그 배런이 그 티에 섰다. 그랬다. 그는 완벽한 무명이었다. PGA 투어는 물론이고 콘페리 투어(PGA 2부 투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PGA 투어 시절에는 시드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 번번이 시드를 잃고 큐스쿨을 다시 치렀다. 심지어 최근 7년간은 2부 투어 풀 시드도 얻지 못해 간간이 예선을 치르고서야 나갔다. 그런 그가 만 쉰 살에 PGA 투어 챔피언스에 얼굴을 내민 것은 불과 몇 주 전. 더그 배런이 그 대회 첫날 ‘꽁지머리’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와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칠 때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름 없는 선수가 하루 반짝 성적을 내고 이튿날 리더보드에서 사라지는 일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런데 더그 배런은 조금 달랐다. 이틀째도 선두로 마쳤다. 이틀째 중반 그는 대회 첫 보기를 기록하더니 갑자기 흔들렸다. 나는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그 시점에 낙뢰 탓에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공동 선두 히메네스는 샷이 막 살아나고 있었는데. 낙뢰는 폭우를 몰고 오더니 결국 그날은 경기를 재개하지 못했다. 더그 배런은 마지막 날 잔여 경기를 치르고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 놀랍게도 그는 잔여 경기 때 타수를 줄였다. 전날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지막 날 더그 배런과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선수는 스콧 매캐런과 스콧 파렐이었다. 각각 당시 PGA 투어 챔피언스 상금 랭킹 1위와 4위의 강자였다. 이 두 선수 틈에서 더그 배런은 주눅 든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의 드라이버 티 샷은 번번이 페어웨이를 지켰다. 12번 홀에서 프레드 커플스와 공동 선두가 된 것을 본 뒤로 그의 버디 퍼팅이 두 차례나 살짝 빗나갔다. ‘저러다 무너지는 건가’ 하고 나는 걱정을 했다. 어느 틈에 그를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제법 먼 거리 버디 퍼팅 하나를 홀에 떨구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들 보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스스로 확신을 갖는 몸짓이었다. 그렇게 선두에 선 채로 맞은 승부처 17번 홀. 200야드 남짓한 긴 파3에서 그의 아이언 샷은 아주 매끄러웠다. 볼은 한 번 튀고 조금 구르더니 홀에 네댓 발짝 떨어져 멈췄다. 이어진 퍼팅 스트로크가 아주 간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볼은 홀로 떨어졌다. 버디. 2위 커플스와 두 타 차 선두가 됐다. 마지막 홀 티 샷은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깊지 않은 러프에 떨어졌다. 같은 시간 커플스가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철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승부가 난 것이다. 마지막 홀을 파로 마친 배런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더그 배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다가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시니어 투어 데뷔한 지 단 두 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50세 25일’로 PGA 투어 챔피언스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175cm에 77kg으로 다른 시니어 투어 멤버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신체 조건을 딛고 우승을 일궈낸 것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그때까지 무려 27년 넘는 세월 동안 단 1승도 없이 버텨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어떻게 혹독한 외로움과 빈곤을 견뎌냈을까? 그가 직전까지 투어에서 평생 벌어들인 상금은 그 한 대회 우승 상금보다 적었다. 더그 배런은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도, 또 우승컵을 받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리고 올 시즌(2020~2021)에도 톱10에 여러 번 들면서 상금 랭킹 20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어엿하게 PGA 투어 챔피언스 붙박이 멤버가 된 것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있는 독자라면 더그 배런을 보고 힘을 얻기 바란다. 내가 그에게서 용기를 얻은 것처럼.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그런데도 말릴 수밖에. 필드에서 비공인구를 쓰는 것 말이다. 체통은 체통대로 떨어지고 실속마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비공인구를 쓰는 것이 골프 규칙에 어긋나서 말리냐고?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매사에 엄격한 잣대만 갖다 댈 정도로 인정 없지는 않다. 친선 경기를 할 때는 조금 관대하게 규칙을 적용하면 어떤가? 물론 부담스러운 내기를 할 때라면 더 엄격해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뭐가 문제여서 쓰지 말라고 하냐고?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골프공은 ‘규격’이 있다. 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정한 규격이다. 예전에는 두 단체가 정한 공인구 규격이 서로 달랐다. 조금씩 타협해가다가 1990년에야 비로소 규격을 통일했다.
두 협회가 정한 규격을 충족하기만 하면 모두 공인구냐고? 아니다. 규격을 충족하면 ‘규격을 충족하는 공’이다. 엥? 그럼 공인구는 뭐냐고? 공인구는 규격을 충족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공이다.
골프공 업체가 새 공을 출시하면 알아서 R&A나 USGA가 조사해 공인구 인증 마크를 달아주냐고? 천만에, 그렇지 않다. 공을 두 단체에 ‘각각’ 보내 공인구 인증을 받아야 한다. 비용도 든다. 처음 인증받을 때만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일정 기간마다 얼마씩 공인구 유지비를 낸다. 이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두 단체로부터 각각 모델별로 공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색상이 다르면 따로 인증을 받는다. 물론 테스트 비용과 공인구 유지 비용도 모델별로 또 색상별로 각각 두 단체에 내야 하고.
일이 이렇다 보니 중소 업체는 모든 모델을 공인구 인증받고 유지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규격을 충족하는 공을 내놓고도 공인구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모델만 인증받고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공은 ‘미공인구’라고 부른다. 비공인구와는 구분 지어서 말이다. 공인구 규격은 충족하지만 아직 공인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미공인구는 아마추어 대회(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에서는 사용을 허가한다. 골프 규칙에도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는 공’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공인구 인증 마크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프로 골프 대회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더 엄격하다.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더라도 공인구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쓰면? 바로 실격이다.
아이고 이런, 배경 설명이 너무 길었다. 웬만하면 비공인구는 쓰지 말자는 얘기를 한다고 하더니….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공인구는 일정한 크기와 무게를 지켜야 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크기는 42.67mm보다 커야 하고, 무게는 45.93g보다 가벼워야 한다. 작고 무거울수록 더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제한을 둔 것이다. 다른 기준도 있지만 복잡하다. 크기와 무게 두 가지가 대표 기준이라고 알아두면 충분하다.
비공인구는 보통 공인 규격보다 크기를 1mm 정도 줄이거나 무게를 1g 정도 살짝 늘린다. 크기도 줄이고 무게도 늘리는 ‘대담한’ 업체도 있다. 규격을 지키지 않고서 ‘고반발구’라 더 멀리 날아간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공으로 큰 내기가 걸린 경기를 하면 손해 볼 수도 있다. 아니 이 말대로라면 실제로 이득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항상 그렇다면 나도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실속마저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비공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품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비공인구를 만들 때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비거리가 덜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게 말이 되냐고? 된다. 연구개발과 품질 개선에 온 힘을 쏟는 업체가 비공인구를 내놓고 싶겠는가? 땀 흘려 출시한 볼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데. 비공인구를 출시하는 업체 상당수는 연구개발보다 ‘꾀’를 내서 몇몇 골퍼의 사랑을 받으려 한다. 그렇다 보니 품질은 뒷전인 경우가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골프공 속에 들어가는 코어는 주 재질이 고무다. 고무 재료를 금형(틀)에 넣고 충분한 시간을 성형해야 중심이 잘 잡힌 좋은 코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장인 정신이 부족한 업체라면? 코어를 날림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런 코어로 만든 공이라면? 크기가 작거나 무게가 무거워도 매끄럽게 비행하지 못한다. 당연히 비거리도 줄어들 테고. ‘맛 좀 봐라’라고 꺼내든 비밀병기 비공인구로 스타일만 구기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정하고 비공인구를 생산하는 업체를 스포츠용품 업체로 보지 않는다. 스포츠는 규칙을 지키면서 결과를 얻어내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비공인구 업체는 뭐냐고? ‘완구 업체’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는 볼을 내놓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공인구 인증을 받지 못하는 업체는 여전히 ‘스포츠용품 업체’다.
내가 40대 중반에 프로 골퍼가 된 것은 애독자라면 다 아는 얘기다. 처음 듣는다고? 그렇다면 아직 애독자가 되기엔 멀었다. 지난 칼럼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30대 후반에 골프를 시작한 나는 2015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에 합격했다.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자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턱걸이로 붙었다. 내가 속한 조에서 45명을 뽑는데 37등이었다. 그 정도면 준수한 것 아니냐고? 나는 공동 37위였다. 무려 여덟 명이나 나와 같은 점수를 기록했다. 37등부터 여덟 명을 손가락으로 꼽아보라. 44등까지 공동 순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두 명이 더 우리와 같은 타수를 기록했다면? 10명 중 한 명만 떨어지는 잔인한 연장 승부를 할 뻔했다. 춥고 강풍까지 겹친 늦가을 날씨에 이미 탈진한 나는 연장전 승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나는 프로 골퍼가 되고 난 다음 해 3부 투어에 도전했다. 내친걸음이었다. 지금은 3부 투어를 2부 투어에 통합했지만 그때는 3부 투어가 따로 있었다. 그때 속 모르는 이들은 나를 보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니 대단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아직도 현역이 아니라 이제야 현역”이라고 쑥스럽게 답했다.
그런 내 늦깎이 현역 생활은 딱 2년밖에 가지 못했다. 왜냐고? 갑자기 골프가 싫어졌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도 골프 얘기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겉으로 밝히는 이유는 내가 경기위원이 된 탓이다. KPGA 규정상 경기위원은 대회에 나갈 수 없다. 심판이 시합에 나가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만든 규정이다.
그런데 속사정은 다르다. 현역으로 뛴 그 두 해 동안 나는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뭐냐고? 바로 ‘상금 0원’이라는 기록이다. 그랬다. 나는 2년간 스무 번 남짓 시합에 나가고도 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친다.
그렇게 골프를 못 치는데 어떻게 프로 골퍼가 됐냐고? 그러게 말이다.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독자는 내가 얼마나 유명한 골프 지도자에게 골프를 배웠는지 아는가? 내 사부는 그동안 수많은 골퍼를 길러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독학 선생’이다. 맞다. 나는 순수 독학 골퍼다.
레크리에이션 골퍼인 선배 손에 끌려 클럽을 처음 잡았다. 그러곤 프로 골퍼가 될 때까지 누군가에게 골프를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어깨너머로 보거나 주워들은 것만으로 골프를 연마했다. 독학으로 프로 골퍼가 됐으니 대단한 것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TV로 중계하는 1부 투어가 아닌 2부나 3부 투어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2부 투어 지역 예선은 경쟁률이 9대1쯤 된다. 카트 두 대에 선수들이 타고 나가면 그중 한 명만 본선에 올라가는 셈이다. 어렵사리 본선에 가도 첫날 60등 안에 들어야만 상금을 받는다.
빈손으로 필드를 떠나는 선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내가 경기위원이 되고 나니 가족들이 반가워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물론 경기위원으로 근무하러) 돈을 벌어오니 말이다. 맨날 비용만 들이고 상금은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다가.
2부 투어 지역 예선을 통과하려면 언더파를 쳐야 하는데 보통 언더파론 안 된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나 2~3언더파가 커트라인이다. 그림 같은 날씨면 4언더파를 치고도 탈락하는 선수가 나온다. 진짜다. 그 정도 못 치냐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 잘 친 샷만 꼽으면 나도 정상급 선수 못지않다.
그런데 대회 때는 딱 한 번 쳐서 승부를 가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잘나가다가 나쁜 버릇이 나오는 게 내 한계였다. 언더파를 쳐도 떨어지는 판에 확 깎여서 아웃오브바운드(OB)가 나거나 뒤땅이라도 나면 어찌되겠는가? 예선 통과는 물 건너간다.
샷을 다듬는다고 다듬었는데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러니 재미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서야 대회 참가를 주저할 수밖에. 그 나쁜 버릇은 바로 ‘독학 선생’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프로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골프가 많이 늘었다. 프로 골퍼가 되고 나서도 조금 더 늘었고. 그런데도 잔뜩 긴장하면 옛날 버릇이 나온다. 중년이 되고 나서도 힘들거나 급하면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골프를 시작한다면 절대 ‘독학 선생’에게 골프를 배우지 않을 것이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2006년에 나는 왜 ‘독학 선생’을 택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내가 오만한 탓이다. 다른 일도 잘해 왔으니 골프도 얼마든지 혼자서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한 충고도 한 몫 보탰다. 바로 ‘독학으로도 잘 칠 수 있다’거나 ‘프로가 돈 벌려고 거짓으로 가르친다’는 조언 말이다. 그 충고를 한 사람들은 고수였냐고? 아니다. 처음 시작한 나보다 조금 나았을 뿐.
지금까지 샷을 연마하느라고 혼자 애쓴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제대로 배우면서 그 긴 시간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늦깎이가 놀랄 만한 성적을 냈다는 신화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미 잔뼈가 굵은 골퍼라도 마찬가지다. 당장 독학 선생을 과감하게 내치고 골프 지도자를 찾기 바란다. 내 꼴 나지 말고. 가슴이 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