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신문사 골프 전문기자는 같은 학과 선배다. 둘이 함께 기자 시험 준비를 해서 며칠 차이를 두고 둘 다 기자가 됐다. 그러곤 시간이 한참 흘러 나는 기자를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 골퍼가 됐다. 그 선배는 한 우물을 파서 골프 전문기자가 됐고. 내가 프로 골퍼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이다. 나는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멋있는 골퍼란 어떤 골퍼인가요?” 숱한 골퍼와 라운드를 해봤을 그 선배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멋있는 골퍼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그렇군요”라며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 말이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는 어떤 골퍼일까요?” 그는 이번에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골프를 잘 치는 사람도 멋있지만 아무래도 골프 규칙을 잘 지키는 골퍼와 다시 라운드하고 싶지.” 그러고는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한 골퍼와는 꼭 다시 만나고 싶더라”라고 말을 더했다. 그때만 해도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고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한 사실에 우쭐하던 나는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시원한 샷을 날리고 좋은 점수를 내는 것을 골프에서 가장 큰 덕목으로 꼽던 나에게 그의 답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가 오랫동안 골프 전문기자로 취재를 하면서 나보다 실력이 출중한 골퍼를 한두 명 만났겠는가? 그런 그는 ‘누구는 파워가 압도적이어서 멋있다’라는 말 따위는 꺼내지도 않았다. 또 ‘누구는 쇼트 게임을 귀신같이 잘해서 다시 쳐보고 싶더라’라는 말도 입에 담지 않았고. 그 대신 원칙과 배려 같은 덕목을 최고로 꼽은 것이다. 그랬으니 골프는 스코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먹은 것이 체하지 않았겠는가?
그의 말을 가슴에 담은 뒤 내 골프는 조금 바뀌었다. 스코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냐고? 천만에, 그건 아니다. 점수와 상관없이 내게는 규칙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친선 라운드를 할 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골프장이 정한 로컬 룰 대신 일반 규칙(영국왕립골프협회가 정한 공식 규칙)을 기준으로 삼았다. 함께하는 골퍼들에게는 최대한 관대하게 규칙을 적용한 것은 물론이고. 심심풀이로 내기를 할 때라도 승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이기든 지든 대충 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부분만 지킨다고 다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과 동기들과 라운드한 뒤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기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를 들었다. 쉽게 말하면 “너 그런 식으로 골프 치지 마라”는 말이었다. ‘내가 동기들과 골프 칠 때도 내기를 해서 주머니를 턴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 자리에선 술 취한 친구가 한 주정이라고 넘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았다. 선배 말에 감화를 받고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한참 뒤에 들은 얘기라서 더 그랬다. 그래서 이튿날 그동안 한 번이라도 나와 라운드한 같은 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법 여럿이었다. 혹시 라운드하면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면 사과한다고. 또 혹시 나와 골프 쳐서 기분 상한 동기가 있느냐고도 물었다. 그런 적도 없고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꺼림칙했다. 혹시 나는 기억 못 하지만 당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다 짚이는 친구가 한 명 떠올랐다. 자기 고객과 동반 라운드를 할 때 나를 초대한 친구였다. 초대를 받고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명색이 프로 골퍼인데 네 회사 접대 골프에 부르는 거니 출장비는 주는 거냐?”고. 친구는 “친구 사이에 무슨 출장비냐?”며 “내기라도 할 테니 능력껏 가져가라”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나는 프로가 치는 블랙 티에서 치고 다른 이들은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했다. 핸디(속어로 핸디캡 차이를 줄인 말, 실력 차이를 감안해서 오가는 덤)도 넉넉하게 주고. 그런데 그날따라 샷이 너무 잘 됐다. 까다로운 코스였는데 치는 족족 가서 붙더니 버디를 대여섯 개나 잡아낸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고전하더니 모두 핸디캡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그렇게 소소한 수고비(?)를 챙기고 헤어졌다.
나로선 그날 함께한 사람들에게 승부가 주는 짜릿함을 느껴보라고 최선을 다한 것이었는데. 그 일이 떠오르자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안부와 함께 예전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혹시 그날 일로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그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아무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래도 나는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일까?”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만나고 싶은 골퍼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그동안 뱁새 김용준 프로 칼럼을 사랑해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