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나는 인생

기사입력 2020-01-23 10:30 기사수정 2020-01-23 10:30

[커버스토리 웰컴, 에이징] PART 4. 나이가 아닌 품격을 먹다

인간이 옷을 입고 타인들 앞에 섰을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바로 ‘우아하다’이다. 우아함을 뜻하는 한자 아(雅)에는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노력을 통해 갖춘 품격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에게 시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옷 입기는 품격의 나침반이다. 옷 연출을 통해 인생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매 순간, 스타일링을 통해 어제의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시간을 뛰어넘는 스타일링

일회성 패션 스타일링 수업을 청강하는 시니어가 많다. 이 시간을 통해 스타일링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배운다. 두상과 피부 톤, 헤어스타일, 체형에 맞는 실루엣, 적절한 색상, 질감과 어울리는 무늬를 고르는 법을 알게 된다. 문제는 많은 이가 강의를 듣기 때문에 개인맞춤형 컨설팅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타일리스트는 인체를 얼굴형과 골격, 상반신과 하반신 비율, 목 길이, 둔부 크기 등을 고려해 몇 가지로 나눈다. 그러나 이런 기준으로 나눈 체형은 인간의 다양한 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표준화 논리가 만들어낸 해묵은 기준이다. 스타일링은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스타일은 ‘개인 맞춤’이어야 한다. 즉 스타일은 인간을 읽는 코드다.

오랫동안 시니어를 위해 퍼스널 컬러 컨설팅을 해온 전문가를 만나 나도 진단을 받아봤다. 퍼스널 컬러란 개인의 모발과 체모와 피부 색을 고려해 가장 어울리는 색조를 찾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컨설턴트와 공인된 심리 테스트를 비롯해 많은 내담시간을 갖는다. 이때 피부 톤에만 맞추기보다는 대화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 어휘, 성향까지 점검한 후 그 사람의 이미지를 표현할 키워드를 이끌어낸다.

50대인 나는 깊은 컬러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다. 깊은 컬러란 원색에 검정을 약간 섞은 컬러로 땅속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보석의 색이다. 에메랄드의 진초록, 사파이어의 청색, 루비의 빨강, 자수정의 보라 같은 색이다. 나는 고급스럽게 어깨선이 딱 떨어지는 재킷과 품질 좋은 코트, 밀도 높고 무게감 있는 벨벳과 코듀로이 같은 소재들을 추천받았다. 시니어분들에게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링과 컬러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의 본색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개인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찾는다는 말의 뜻을 잘 모른다. 색의 밝기와 어두움을 뜻하는 명도, 색의 선명함을 뜻하는 채도.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톤(tone)이다. 톤 하나만 알면 밝음과 어두움, 깊음과 얕음, 강함과 약함, 진함과 옅음을 표현할 수 있다.

8가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따스한 느낌의 웜 톤, 차갑고 서늘한 느낌의 쿨 톤으로 나누어 인간의 색을 논한다. 하지만 이런 분류 자체가 엉터리다. 누구에게나 긍정의 따스함과 부정의 차가움이 있다. 컬러 진단으로 본색을 찾으면, 그 색과 즐겁게 놀아야 한다. 추천받은 스타일과 컬러가 자신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때까지. 이때 유행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기 스타일에 맞는 유행이면 기뻐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자.

시니어다운 옷차림은 없다

시니어에게 스타일링과 관련해 두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 시니어를 위한 스타일링 클래스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저 2주간에 걸쳐 자신의 옷 일기를 쓰면 된다. 그날의 옷차림 사진을 찍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입었는지 기록해보라. 옷을 입은 목적도 명기하자.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옷차림을 정리해 3개의 형용사로 묘사해보자. 이 과정을 통해 색상과 실루엣, 소재, 패턴 등이 정리 되고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 나도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은 후, 2주간 옷 일기를 써봤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옷차림과 컨설턴트에게 추천받은 컬러가 상당 부분 겹쳤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탁 쳤다.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일은 고집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책에서 인생 말년에 필요한 2가지 태도를 설명했다. 첫째, 내게 일어난 상황에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고 둘째,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은 어떤 인간의 생에도 있기에 슬그머니 물러나는 게 좋다고 했다. 최근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에 다녀온 적이 있다. 놀라웠다. 모든 분이 텔레비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 시니어 모델의 복제품 같았다. 자신의 본색을 찾아 스타일링을 한 이가 없었다. 그분들의 옷차림은 ‘갈망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억지로 연출한 것이었다. 노년이 되면 다를 줄 알았다. 굳이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의미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나이일 텐데, 아쉬웠다. 패션으로 품격을 창조하고 싶다면, 옷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원칙이 없는 패션 스타일링은 아무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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