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긍정과 감사를 말하다

기사입력 2020-03-26 09:05:54기사수정 2020-03-26 09:06
  • 인쇄하기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싱글벙글쇼’와 함께 33년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매일 오후 12시 20분이 되면 만나게 되는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 바로 ‘싱글벙글쇼’다. 국내 시사 풍자 라디오 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싱글벙글쇼’의 안주인으로서 33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혜영은 공동 진행자인 강석과 함께 오랜 세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들을 들려주고 웃음과 위로를 전하며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격동의 시대 한복판을 살아오면서 치른 김혜영의 삶과 깨달음이 위기의 시대인 지금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지, 그녀와의 반가운 인터뷰를 통해 탐색해봤다.


가히 역병의 시대다. 코로나19로 기존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세상이다. 일상에서는 언제 침입할지 모를 전염병이 걱정이고 경제 지표를 읽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경기 위축 현상이 불러올 혼돈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3년 동안 ‘싱글벙글쇼’를 진행하고 있는 김혜영 또한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서 힘을 보태주는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사람

처음 인사는 흉흉한 상황인 만큼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은 하고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죠. 요즘 줌바 댄스에 재미 붙였는데.(웃음) 그래도 자기관리는 계속하고 있어요. 여의도공원과 여의도 아파트 광장을 수시로 걷고 PT도 계속 받아요. 최근에 춤추는 걸 한번 해보자 해서 줌바 댄스를 시작했는데요. 몸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어쨌든 상황이 이리 돼서….”

비록 안타까움이 묻어났지만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그 밝고 반가운 목소리 그대로였다.

김혜영은 무엇보다도 액티브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답게 많은 걸 배웠고 배우는 중이다.

“필라테스, 우쿨렐레와 캘리그래피도 배우거든요. 라디오 녹음하는 날에는 스튜디오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요. 나이가 들면 허벅지 근육으로 살아야 하니까요. 건강하게 늙고 싶은 마음이에요. 오늘도 중요하지만 다음 일도 대비해야 하는데, 저희 같은 방송인은 몸 자체가 상품이잖아요? 다른 무엇보다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설 수밖에 없죠.”

그녀는 나이 들어 싫은 건 얼굴 주름뿐이고 나쁜 건 없다고 단언했다. 긍정의 에너지가 그녀 주위에 넘실거리고 있는 듯했다.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 아이들이 다 큰 것에 대한 여유가 있죠. 그리고 남편이 내게 시간을 주는 것도 고마워요.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너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내가 건강하고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행복하냐고요? 그렇죠.”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남편과의 오래된 약속

그러고 보니 김혜영의 남편 얘기가 궁금했다. 김혜영이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남편은 지금껏 미디어에 노출된 적이 없다.

“나로 인해서 TV와 잡지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게 남편이 결혼 전 내걸었던 조건이었어요. 저는 십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실물은 공개 안 해요. 남편은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마음의 변화가 없는 사람이에요. 변덕을 부리면 제가 부리지, 남편은 한결같아요. 그래서 아가씨들이 저 사는 모습 보면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그녀의 남편은 대쪽 같은 남자인 듯싶다. 그러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방송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쫑파티하고 밥 먹고 들어오는 것을 보곤 ‘너는 연예인이기 전에 가정주부니까 제 시간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 번 대판 싸우고 제가 깔끔하게 정리했죠.(웃음) 그다음부터는 그런 거에 대한 얘기가 없어요. 현재까지. 그리고 제가 문제를 일으킬 일을 안 하니까요.”


“사람이 너무 좋다”

김혜영은 요즘 동네 사람들과 다양한 취미활동과 함께 어른들을 모시는 사회공헌적 모임도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5월에 소장품을 팔고 공연도 하는 등 행사를 크게 연다. 그녀 또한 나누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된 걸까? 알고 보니 국제구호 NGO 단체인 월드채널에서 홍보대사로 일하며 10여 년 동안 매년 3000만 원씩 기부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학교도 지었다니 그녀의 봉사활동 또한 묵직하고 오래된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맺기를 힘들어한다. 그런데 그녀는 나이 들어가며 그 관계망이 오히려 더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저는 사람이 너무 좋아요. 그러니 말도 먼저 걸게 되죠. 그리고 방송인이 좋은 점은, 나는 상대를 몰라도 상대는 마음을 열어놓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가가면 더 많이 마음을 열게 되는 거죠.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쭈뼛거리는 게 없어요. 그냥 편해요. 제가 그렇게 대하니 상대도 편해지는 거고요.”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어머니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많은 것들

김혜영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녀가 뼛속 깊이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33년째 진행한 ‘싱글벙글쇼’에 대한 그녀의 생각 또한 그와 같았다.

많은 사람이 싱글벌글쇼를 푸근하게 들어줘서 종종 잊게 되지만, 사실 싱글벙글쇼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웃음을 밑바탕에 깐 시사 전달이 목적이다. 그러나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을 특유의 해학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게 ‘싱글벙글쇼’의 강점이자 김혜영이 해내야 할 미션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맞춰주는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너무 편하죠. 나이가 들어 고마운 게 그들이 나에게 맞춰주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만 그들을 안아주면 잘 따라오더라고요. 좋은 MC는 먼저 상대를 인정해주고 장점을 부각해주는 능력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에서 다양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연기자로서의 능력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능력을 ‘어머니 덕분’이라고 돌렸다.

“삶이 힘드셨던 분이었어요. 6남매를 키워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어떻게 하면 즐거워하실까’를 연구하곤 했어요. 그게 방송에 도움이 되었죠. 그리고 방송국에서 버는 돈을 어머니께 갖다 주는 게 제 기쁨이었죠.”


33년 동안 감사한 사람들

싱글벙글쇼는 원래는 강석이 하고 있었고 김혜영은 그의 상대역으로서 네 번째로 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당시 서세원이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에 게스트로 출연하던 중이었는데, MBC 라디오국 김건영 부장이 그녀의 가치를 알아봐 ‘싱글벙글쇼’에 들어가게 됐다. 그 후로 33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있게 될 줄 알았을까?

“김 부장님은 정년퇴직하셨죠. 생각해보니 저랑 같이 일한 사람들은 다 정년퇴직했어요. 양희은 언니도 저에게 ‘MBC 라디오국에서 제일 독한 년이 너야. 열두 번도 그만뒀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이 봄날 저녁식사에 초대하고픈 중요한 사람도 바로 싱글벙글쇼 식구였다.

“싱글벙글쇼 대본을 25년간 쓴 작가가 있어요. 박경덕 작가라고, 제가 힘들 때마다 그 품에 안겨서 많이 울었어요. 항상 ‘김 여사 참아, 견뎌내’라고 말해주며 25년 동안 많이 들어주고 토닥여줬죠. 고맙고 아련해요. 그리고 15년 된 김성 작가, 애기작가로는 이자원 씨가 있어요. 내 얘기를 가장 많이 들어준 사람들이에요.”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아직도 소녀처럼

김혜영은 철저한 방송인이다. 결혼식 당일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방송을 진행한 후 결혼식장에 갔을 정도다. 매일 라디오 방송을 하느라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제든 라디오를 그만두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획을 짠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달간은 절에 들어가 있으려고요. 그리고 애틀랜타에 가서 3개월 지낼 거예요. 지인이 있어서 거길 기점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어요. 제주에서도 1년 살고 싶어요. 제주도는 너무 매력적이거든요. 그래서 귤 따고 당근 뽑는 알바도 알아봤어요.”

제주도에서 지내게 되면 아르바이트 일당을 받아 샌드위치, 와인, 과일을 사고 아침 일찍 해변에 가서 해 떨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다 올 거라고 한다. 그렇게 일당 번 걸 다 쓰면 또 일을 할 거라고 한다. 낭만적인 상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참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딸이 그러더라고요. 걸어가도 시원찮은데 어떤 사람이 산에서 막 뛰어다니는 걸 보면 엄마 같은 사람 저기 또 있다고 그래요.(웃음)”

그녀는 방송인이 안 되었다면 연기자가 되려고 더욱 노력했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그녀의 연기 욕심을 증명하듯 그녀는 코미디언이면서도 드라마를 많이 한 편이다. 첫 정극 연기는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펼쳤다. 이후 ‘당신’이라는 드라마에도 출연했고, 신년 특집드라마 ‘우리들의 신부님’에서는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한지붕 세가족’. 평범한 부부의 아내 역할로 오랫동안 안방을 찾았다.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인생살이는 점수로 매겨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감사의 생활이 내재화된 사람, 그러나 그러한 외향적 성향은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만큼 상처도 쉽게 받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 자신을 지켜내고, 나이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는 긍정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다 받아들이고 다 인정해버리면 돼요. ‘누가 너보다 방송을 더 잘하네’ 하면 ‘오, 그래 잘하네’ 하고 인정해요. 그 순간부터 편해져요.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죠. 힘든데 그게 돼요. 그래서 엄마가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이렇게 긍정적인 성격을 물려주셨으니까요.”

나이가 더 들면 영화에 출연해 재밌는 아줌마 같은 감초 역할을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하는 김혜영은 어쩌면 삶에 노련해질 수 없는 사람이기에 그 젊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도리어 그녀는 자신의 강점인 긍정의 힘으로 삶을 수용하고 품에 안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오랜 시간 끝에 감사와 긍정을 내재화한 사람이 본 세상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상대를 이겨서 내가 더 잘났다고 여기는 건 자기 생각이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인생살이는 점수로 매겨지는 게 아니니까요.”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