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한 장 들고 떠나는 감성여행

기사입력 2020-09-23 09:33 기사수정 2020-09-23 09:33

[브라보! 음악에 치어스!!] PART6. 음악 감상실을 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백견이 불여일문’이다. LP 음반 속 옛 노래를 두 귀로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음악 감상실을 소개한다.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명동 ‘세시봉’, 충무로 ‘카네기’, 종로2가 화신백화점 3층의 ‘메트로’. 이름만 들어도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이곳은 과거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음악감상실이다. 음악을 향유할 방법이 많지 않았던 당시 청년들에게 음악감상실은 흥과 한을 표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어느덧 클릭 한 번만 하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0과 1로 가득한 오늘날에도 옛 감성을 재현한 공간들이 있다. LP 음반이 돌아가고 최신 가요 대신 올드 재즈가 흘러나오는 곳.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음악감상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아날로그를 고집한 이들 덕분에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해 있다.


백숙집 건물에 숨은 반전 매력 ‘리홀뮤직갤러리’

▲리홀뮤직갤러리
▲리홀뮤직갤러리

서울 성북동 누룽지 백숙집 건물. 벽에 붙은 LP 음반 표지를 따라가다 보면 희미하게 들려오는 재즈 선율이 이어서 길 안내를 한다. 소리의 근원지로 가 보니 양 벽을 빼곡하게 채운 LP 음반과 한가운데 놓인 1930~40년대 빈티지 스피커들이 그 위엄을 자랑한다. 위압감에 당황하기도 잠시, 고막을 가득 채우는 진공관 사운드에 홀려 착석한다.

리홀뮤직갤러리는 인쇄업체 경림코퍼레이션 리우식 대표가 2014년부터 운영해온 음악감상실로, 뮤지션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깃든 공간이다. 7만여 장이 넘는 LP 음반에, 진공관 스피커 등 음향 시스템 규모도 10억 원이 넘는다. 다루는 장르는 팝·재즈·클래식 세 가지다. 말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이곳의 입장료는 음료 포함 1만 원. 방문한 이들이 ‘만 원의 행복’으로 음악을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는 리 대표의 바람이 담긴 값이다.

▲리홀뮤직갤러리
▲리홀뮤직갤러리

이곳의 매력은 신청곡을 받으면 그 음악을 잘 표현해주는 스피커로 들려준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머라이어 캐리처럼 성량이 풍부한 가수의 노래는 ‘웨스턴 일렉트릭 15A혼’으로, 비트가 생명인 밴드 음악은 ‘알텍’으로 내보낸다. 재질이나 모양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한 곡을 듣더라도 그에 걸맞은 스피커로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알텍으로 들어야 해요. 마치 귀청소를 하는 기분이 들 거예요.”

음악 애호가들이 알음알음 모이는 곳인 만큼, 매달 첫째·셋째 주 화요일에는 올드팝 칼럼니스트 박길호 씨의 팝 강의가 진행된다. 주로 팝 가수의 일생과 철학을 돌아본다. 참여를 원할 경우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수강료는 1회 2만 원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31길 9

영업시간 매일 12:00~21:30 월요일 휴무


빛바랜 기억 되살리는 ‘수리수리협동조합’

▲수리수리청음실
▲수리수리청음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의 한 사무실. 투명한 외벽에 A4 용지 한 장당 한 글자씩 큼지막하게 ‘수리수리협동조합’이라 적어 붙여놓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래의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라는 팻말 속 글귀. 안으로 들어가자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승근 이사장이 직사각형 모양의 기계를 바쁘게 손보고 있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진공관 오디오라 했다.

2017년에 설립된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수리수리 수리실’과 ‘수리수리 청음실’로 구성돼 있다. 수리실은 ‘수리수리 얍’이 연상되는 이름에 걸맞게 고장 난 옛 음향기기를 마법처럼 고친다. 온라인 홈페이지나 전화로 상담을 한 뒤 기기를 가져오면 이 이사장이 직접 수리한다. 연식이 오래된 기기일수록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지 매달 100여 건의 문의가 이어진다.

“빈티지 오디오를 가진 사람들은 나랑 연배가 비슷해요. 60~70대가 많이 찾죠.”

▲수리수리청음실
▲수리수리청음실

청음실은 수리실 바로 위층에 있다. 젊은 시절 음악감상실을 자주 다녔던 이 이사장이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직접 제안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리어에서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게 풍긴다. 조용필과 강수지 앨범이 진열돼 있는 이곳에서는 국내 가요를 비롯해 추억의 음악을 무료로 들려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소장한 LP 음반을 가져와 턴테이블에 직접 올려보는 1일 DJ 체험(?)이 청음실만의 쏠쏠한 재미. 집에 턴테이블이 없어 LP 음반을 관상용으로 묵혀두고 있다면, 먼지만 가볍게 털어내고 세운상가로 데려가보자.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세운상가

영업시간 평일 10:00~18:0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DJ가 들려주는 클래식 퍼레이드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지도 앱에 현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색 동그라미 표시가 목적지와 가까워진다. 곧 대형 창고나 컨테이너를 연상케 하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단단한 철문을 열자 바그너의 ‘교향곡 C장조’ 1악장이 내부를 가득 울린다. 벽 쪽 통유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바그너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춘다.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는 16년간 자리를 지킨 파주 헤이리마을의 터줏대감이다. 이곳의 주인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1970~80년대에 라디오 DJ로 활약했던 황인용 전 아나운서다. 오랜 세월 청취자와 소통하며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던 그는 2004년 자신만의 음악감상실을 차렸다.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황인용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황우섭 작가)

카메라타를 라디오에 비유하면 클래식 채널이라 할 수 있다. 오직 클래식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황 전 아나운서가 직접 모은 2만여 장의 LP 음반도 대부분 클래식 앨범이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소리와 첼로의 웅장한 저음은 ‘웨스턴 일렉트릭’, ‘클랑필름’ 등 1920년대 미국과 유럽 극장에서 사용하던 스피커들과 만나 한층 더 풍성해진다.

공간은 3층 규모로 높고 널찍하며 2인석부터 6인석까지 완비돼 있어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찾는다. 두 명이 방문한 경우에는 대부분 스피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조용히 감상을 한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반 카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연주회가 열린다. 연주가 끝나면 전문가의 곡 해석이 이어져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도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카메라타는 이탈리아어로 ‘동호인 모임’을 뜻한다. 이름의 의미처럼 클래식 입문자 혹은 마니아들이 아지트로 삼기에 좋은 곳이다. 입장료는 1만 원. 차 한 잔과 머핀이 제공된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3

영업시간 평일 11:00~21:00 주말 및 공휴일 11:00~22:00


요즘 애들처럼 놀아볼까? ‘만평 바이닐 뮤직’

▲만평 바이닐 뮤직
▲만평 바이닐 뮤직

‘뉴트로’(New+Retro)가 유행하면서 젊은 세대들에서도 복고 콘셉트의 음악감상실이 인기다. 그중 ‘만평 바이닐 뮤직’은 2030세대의 집합소다. 이곳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간판이 작거나 없는 ‘요즘 감성’에 특화된 곳이기 때문.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목적지 근처에 가면 조용한 골목 에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는 건물이 보인다. 만평은 시티 팝을 틀어주는 몇 안 되는 바이닐 바다. 이곳을 다녀온 이는 “1980년대 버블경제 한가운데서 술 마시는 느낌이 난다”고 평한다. 이외에도 펑크, 디스코 등 비트 있는 음악을 주로 선보인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DJ의 공연이 열린다. 손님이 DJ에게 맥주를 건네고 선 채로 음악을 즐기는 등 동적인 분위기가 낯설 수 있지만,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절로 흥이 오를 것이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27 2층

영업시간 매일 19: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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