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6

치매 엄마와 함께 걷는 긴 여행

입력 2026-04-06 06:00

[북인북]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유진하우스 대표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도 함께 즐겨보세요.

대문을 열고 들어온 건 낯선 괴물이었다. 엄마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거친 말들이 정갈한 서까래 사이를 칼날처럼 파고들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평화롭던 혜화동 한옥에 가장 슬프고도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우리가 알던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착한 거짓말’이라는 방패를 든다.

-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14p

치매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낯설고 버겁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김영연 대표는 돌봄의 의미를 새롭게 배우고 있다. 어떤 날은 딸로서, 또 어떤 날은 동생이 되어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긴 여행에 동행하는 중이다.

▲김영연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김영연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서울 혜화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유진하우스’.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머무는 이 열린 공간에 김영연 대표는 50년 가까이 울산에서 살아온 어머니를 모셔 왔다. 치매 4등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돌봄자가 되기로 결심하면서다.

그러나 돌봄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기억을 잃어가며 과거로 돌아간 엄마는 고향 집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서려 했고, 이를 붙잡는 날들이 이어졌다. 때로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생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겉옷과 속옷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소변 실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엄마의 낯선 모습을 볼 때마다 김 대표는 ‘내가 알던 엄마가 맞나’라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김 대표는 조금씩 그런 엄마를 받아들이고 있다. ‘엄마에게 치매는 기억의 상실이 아니라 가장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는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엄마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마음을 재정의했다.

이 돌봄의 여정에서 김영연 대표는 혼자가 아니다. 딸 유진이와 엄마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혜화동의 이웃들이 함께한다. 책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는 치매 가족을 둔 돌봄자의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유진맘의 간병 노트’를 통해 실전 돌봄 팁도 전한다.

“혹시 당신도 사랑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길을 잃어가는 중이라면, 우리의 서툰 여행기가 앞날에 든든한 지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영연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영연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머니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엄마는 원래 울산에 계셨어요. 치매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엄마를 보러 자주 울산을 오가다가 지난해 아예 서울로 모셨습니다. 처음에는 혜화동 한옥에서 함께 지냈지만, 손님들에게 혹시 피해가 될까 싶어 지금은 인근에 집을 얻어 지내고 계세요.

엄마의 하루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제가 엄마를 모시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걷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셨지만 지금은 곧잘 걸어 다니십니다. 우리는 아침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성곽길을 따라 산책도 해요. 식사 후 엄마는 동네 사랑방 같은 옷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신 뒤 데이케어센터에 가십니다. 오후 6시쯤 집에 돌아오시면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죠.

어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외갓집 아홉 형제 가운데 둘째인 엄마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가장 총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가장 먼저 치매 판정을 받았으니, 가족들 모두 놀랐죠. 책에도 썼듯이 외가 식구들이 엄마를 늘 따뜻하게 챙겨주십니다. 예쁜 옷을 사 오고 음식도 보내주시죠. 저는 늘 외갓집 친척들을 ‘남을 살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저도 조금은 물려받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예요. 기억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엄마는 외갓집에 간다며 보따리를 싸서 나가려 합니다. 손님방에서 가방을 가져와 크게 당황한 적도 있어요.

딸 유진이와 함께 엄마의 외출을 몰래 뒤따라간 적도 있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에 혹시 알아보실까 봐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이죠. 어느 날은 혼자 성북동까지 걸어가 파출소의 도움으로 돌아온 적도 있고요. 늘 엄마가 밖에서 길을 잃거나 다치실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김영연 작가와 그의 어머니(주민욱 프리랜서)
▲김영연 작가와 그의 어머니(주민욱 프리랜서)

어머니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도 있겠죠?

저도 사람인지라 많이 참으려고 해도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특히 손님방에서 물건을 가져오려고 했을 때는 화를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소리치고 나면 왜 그랬지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 품성이 아직 멀었다”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어쩌면 엄마가 저에게 마지막 숙제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시간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결국 나를 넘어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대로 새롭게 발견한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기억이 과거로 돌아가다 보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엄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고, 그 기록들이 결국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같이 살면서 새롭게 발견한 건 엄마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누구에게나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또 엄마는 강아지나 아이를 보면 예쁘다고 웃고,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세요. 엄마의 몸속에는 소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엄마를 새롭게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돌봄 속에서 나를 돌보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운동으로 저 자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해 마라톤 대회만 100번 이상 나갔을 정도죠. 하지만 엄마와 함께 살면서 달리기를 꾸준히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찾은 운동이 국선도입니다. 단전호흡과 명상을 기반으로 한 우리 전통 심신 수련법입니다.

가족을 돌보려면 결국 돌보는 사람의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처음에는 엄마의 병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설명해야 할 고통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만 같았다. 치매는 게으름의 결과도, 삶에 대한 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피해 가는 병도, 성실하게 살았다고 비켜 가는 병도 아니었다. 치매는 삶의 성적표가 아니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피할 수 없는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마주하는 우리의 무지(無知)였다.

-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149p

‘함께 사는 돌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변에서 엄마를 요양 시설에 모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시설도 잘 되어 있고 전문가가 돌보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에도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엄마와 최대한 오래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엄마의 기억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때면 저는 엄마의 동생이 되기도 합니다. 가능한 한 가족의 품에서 시간을 보내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혜화동 이웃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요.

동네 옷 가게와 카페에는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엄마도 매일 그곳을 찾습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우리 엄마 잠깐 여기 계셔도 될까요?” 하고 부탁드리기도 하죠.

특히 심리학을 공부하신 한 이웃이 치매 돌봄에 대해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십니다. 성격도 살뜰하셔서 엄마에게는 또 다른 딸 같은 존재죠.

혜화동에서 살았기에 엄마와 이런 삶의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을 전한다면요.

요즘은 엄마를 더 잘 돌봐드리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고,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엄마를 더 회복시키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이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저 엄마가 제 곁에서 평안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엄마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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