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야생화 포토기행 ③] 민족의 성산 백두산 고산식물의 대표 '두메양귀비'

기사입력 2014-07-22 15:52 기사수정 2014-07-23 17:48

▲백두산 천지

학명은 Papaver radicatum var. pseudoradicatum (Kitag.) Kitag.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불리어온 백두산. 까마득한 옛날부터 국토와 민족과 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숭상 받아온 백두산은 식물학에 있어서도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한반도내 북방계 식물의 고향과도 같은 곳으로 막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타고 저 멀리 제주도까지 밀고 내려갔던 북방계 식물들이 후빙기 이후 기온이 상승하면서 점차 절멸해가고 있는 가운데 높이 2750m의 백두산은 한반도에 뿌리 내렸던 북방계 식물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발 2500m를 넘는 봉우리만 16개에 이르는 백두산에는 2300종이 넘는 식물들이 서식하는데, 특히 해발 2000m 안팎의 고산 지대에는 두메양귀비를 비롯해 두메자운, 바위구절초, 노랑만병초, 가솔송, 좀참꽃나무, 구름범의귀, 돌꽃 등 북방계 식물의 특성을 가진 300여 종의 야생화들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이렇듯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고향, 희귀 야생화 및 고산식물의 보고인 백두산은 그러나 5월 말에야 기온이 0도로 올라가 8월 중순이면 다시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6~8월 3개월 짧은 기간에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연히 백두산 꽃 탐사도 대략 6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단기간에만 가능합니다.

▲가솔송

▲구름범의귀

▲두메양귀비

▲두메양귀비-1

그런데 해발 30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인 만큼 여름철 수시로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악천후 때문에 천상의 화원이 펼쳐지는 산정 부근까지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두메양귀비는 이른바 백두산 고산지대 평원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고산식물의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백두산 중턱 수목한계선을 지나면 나타나는 고산 평원지대에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해 천지 주변 큰 바위와 자잘한 돌, 흙이 뒤섞인 벼랑 끝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무더기로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7월초 갑작스런 폭풍우로 산문이 폐쇄되는 바람에 이튿날 겨우 오른 백두산 천지 바로 아래서 만난 두메양귀비는 모처럼 활짝 벗겨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노랑 꽃잎을 살랑거리며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황홀경을 선사하더군요.    양귀비과의 두해살이 유독성 식물인 두메양귀비의 ‘두메’는 이른바 두메산골의 두메에서 따온 접두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이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라는 두메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야말로 심심산천에 피는 꽃, 백두산 정도는 되는 오지나 높은 산에 피는 꽃들에 붙는 단어입니다. 

두메자운, 두메양지꽃, 두메애기풀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두산의 모든 꽃들은 고산지대 특유의 강풍에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필사의 노력을 하는데, 두메양귀비의 경우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꽃잎을 돌리며 꽃술과 꽃가루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합니다.

“아~ 우리 동네 공원에서 본 꽃과 닮았네!” 누군가 두메양귀비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동네 화단에 심어진 꽃양귀비가 두메양귀비를 닮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섭한 말씀 마세요. 원조 양귀비더러 ‘꽃양귀비’를 닮았다고 하면 듣는 두메양귀비가 서운해 합니다” 하지만 꽃양귀비와 달리 정말 ‘아편’의 원료가 되는 유독성 식물이 바로 두메양귀비입니다. 

▲담자리꽃나무

▲두메자운

*Where is it?

현재 백두산 야생화 탐사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남과 북의 통로가 막혔으니 중국을 통해 가는 수 밖에 없다. 중국명 ‘장백산’으로 불리는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세 개. 북백두(북파), 서백두(서파), 남백두(남파) 등 세 개 코스를 이용해 정상의 천지까지 오른 뒤 주변 고원지에 펼쳐진 꽃밭을 살피면 된다. 다만 최근 북백두 부근 달문이나 서백두의 장백폭포, 소천지, 지하삼림 등 중요 탐방지에 대한 통제가 심해 야생화 탐사가 예전처럼 수월하지가 않다. 사진의 두메양귀비는 북백두의 천문봉 아래 주자창 부근 초원에서 담았다. 기상대에서 숙박한 뒤 새벽 천지가 열리는 것을 보고 내려와 아침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는 두메양귀비를 보았다.

전문위원/야생화 칼럼니스트│김인철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기사

  • [포토 에세이] 축제의 봄
    [포토 에세이] 축제의 봄
  • 목원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시니어모델과 융합 패션쇼 개최
    목원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시니어모델과 융합 패션쇼 개최
  • 축구 역사 담은 ‘월드컵 축구 100년 - 100번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
    축구 역사 담은 ‘월드컵 축구 100년 - 100번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
  • “글쓰기가 어렵다는 그대에게” 중년을 위한 조언
    “글쓰기가 어렵다는 그대에게” 중년을 위한 조언
  • [포토 에세이] 봄의 파문
    [포토 에세이] 봄의 파문

이어지는 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