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 아가씨의 다락방

기사입력 2015-08-07 08:51 기사수정 2021-08-13 14:52

▲일러스트 홍수미
▲일러스트 홍수미

#어느 시골 마을에 가난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아가씨는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꽃밭을 돌보고 작은 텃밭도 일구었습니다. 새들과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 바느질 솜씨가 빼어났기에, 마을 사람들의 낡은 옷도 고쳐 주고 새 옷도 만들어주며 살았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늘 평화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저녁이면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해가 다 저물도록 마을을 산책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왕자는 아가씨를 발견하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사랑에 빠져버린 왕자는 몇 날 며칠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아가씨에게 정중하게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크고 화려한 궁궐 안에는 온갖 최신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고, 먹을 것은 언제나 풍성했으며, 값비싸고 화려한 옷들과 장신구로 매일 아름답게 치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 안에는 늘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고 향긋한 꽃내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었고, 힘든 일도 하지 않았으며, 화가 나거나 골치 아픈 일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풍요로운 가운데, 왕자와 아가씨는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두 사람은 매일매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도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도록 두 사람의 사랑은 맹세처럼 굳기만 했습니다. 아침이면 나란히 깨어나 하루 종일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고, 해가 지면 총총한 별이 보이는 침실에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달콤하게 잠들곤 했습니다. 아가씨는 이런 생활을 당연히 행복하다고 믿었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멋진 왕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으니, 행복한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끔씩 어떤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행복을 수상쩍게 여기도록 만들기는 했습니다. 아가씨의 그리움은 궁궐 바깥에 있었고, 가난했던 시간에 있었으며, 초라하지만 자유롭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 있었습니다. 허름한 부엌의 퀘퀘한 향이 그리웠고, 누더기 옷을 꿰매던 녹슨 바늘과 낡은 실이 그리웠습니다. 노을이 번지던 고향의 저녁 산책길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그리웠습니다. 바람이 새어들며 덜컹거리던 작은 창도 그리웠습니다. 그 작은 창으로 보이던 별빛과 지금 궁궐의 화려한 창으로 보이는 별빛은 어쩌면 이리도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슬픔 많던 자신의 가여운 모습마저도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기도 싫었으며, 돌아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실컷 그리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가씨는 하녀들조차 쓰지 않는 성 꼭대기의 낡은 다락방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다락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고향이 그리우면 실컷 울기도 했습니다. 다락방에 있는 동안 아가씨는 왕자비가 아니었습니다. 하녀들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먼지도 많고 바닥은 삐걱거리고 초라했지만 아가씨는 그 낡은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롭고 반갑고 편안했습니다. 낡은 다락방은 아가씨가 자신의 영혼에게 주는 조건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왕자는 가끔씩 다락방으로 사라지는 아가씨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가씨가 슬프거나 지쳐 보이면 곧바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따뜻한 차를 가져오게 해 아가씨를 푹 쉬게 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며 아가씨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가 혼자 다락방에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를 다락방에 혼자 있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아가씨가 다락방에 있는 동안 왕자는 허전하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다락방의 아가씨는 너무나 초라하고 낯설어서 싫었습니다. 왕자비가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아가씨는 다락방에 있고 싶을 때마다 눈물을 훌쩍거렸습니다. 아가씨를 사랑하는 왕자는 궁리 끝에 아가씨를 위해 다락방을 수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꾼들을 시켜서 다락방을 넓히고 최고급 카펫도 깔고 화려한 조명을 달았습니다. 왕자와 함께 앉을 커다란 가죽 소파와 각종 장식품들도 들여놓았습니다. 아가씨가 다락방에 오면 언제라도 시중을 들 수 있도록 하녀들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아가씨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다락방에 있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요. 내가 늘 함께 있어 줄게요.” 그러나 다락방이 공사를 다 끝내고 화려한 모습으로 문을 열던 날, 아가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멋진 왕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으니,

행복한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끔씩 어떤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행복을 수상쩍게 여기도록

만들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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