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예혼’이 번뜩인다

기사입력 2019-02-26 10:49 기사수정 2019-02-26 10:49

[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조선시대의 분청편병(粉靑扁甁), 애무 중인 한 쌍의 봉황 새가 그려져 있다. 15세기 말 작품.(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조선시대의 분청편병(粉靑扁甁), 애무 중인 한 쌍의 봉황 새가 그려져 있다. 15세기 말 작품.(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500년 전을 되돌아보게 하는 조선시대의 분청편병(粉靑扁甁)을 감상한다. 귀한 자기(瓷器)에 그려진 새[鳥] 한 쌍이 거리낌 없이 애무(愛撫)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우리 생활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새’가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몸체와 날개에서 육중함이 느껴지고 꼬리 부위도 단순하다. 범상치 않은 새인 것이다. 바로 상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봉황(鳳凰)이다. 신화에서 전해져 오는 봉황이라면 권위를 앞세워 ‘점잔’을 떨어야 할 터인데 ‘대낮에 애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설스럽지 않다.

문화는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분청자기를 만들어낸 15세기의 시대상을 돌아보면, 도덕 윤리를 강조하던 시기였다. 그런 15세기 조선시대의 분청자기에서 ‘스스럼없는’, ‘자유분방한’ 그림을 발견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 보물 5000년 전’에서 우리 분청자기를 처음 본 파리지앵들이 “한국에는 500년 전에 피카소(Pablo Picasso)가 있었다”며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애무하는 봉황새’를 보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비롭고 신성시하는 봉황을 ‘애무’의 오브제로 도자기에서 본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만약 숨 막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머, 즉 해학 넘치는 작품이 탄생했다면 얘기가 아주 다르다. 해학은 문화의 소금이며 후춧가루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는 옹기(甕器)와 달리 당대 선비 사회에서 유통되던 고가의 예작(藝作)이다. 문화 소비자의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선비들의 살아 있는 예혼(藝魂)이 번뜩이는 걸 볼 수 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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