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독거노인의 정서적 지원을 위해 개발된 AI 기반 돌봄 로봇 ‘효돌’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효돌은 AI 돌봄 솔루션 전문 기업 효돌에서 개발한 로봇으로, 7살 손주를 모티브로 한 친숙한 외관과 생성형 AI인 챗GPT 기반 대화 엔진을 탑재해 어르신과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효돌은 어르신들의 기상, 식사, 약 복용 시각 등을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기분과 건강 상태를 체크해 정서적 안정과 건강 관리를 돕는다.
최근 효돌의 성능과 혁신성은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지난 2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에서 헬스·웰빙 모바일 혁신 부문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글로모·GLOMO)를 수상한 것. GLOMO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주관하는 ICT 분야의 최고 권위상이다.
수출도 꾀하는 중이다. 효돌 측은 영어 버전에 이어 네덜란드어를 말하는 효돌이 헤이그대학교를 통해 현지 ‘입양’ 테스트가 시작됐다고 지난 5일 밝혔다. 3년 전, 국내 연구진의 소개로 네덜란드 헤이그대학교와 연이 닿았던 효돌은, 영어 버전으로 네덜란드 요양원에 시험 입양된 바 있다. 이후 학술적 교류가 넓어지면서 헤이그 대학 연구팀 2명이 직접 방한해 인턴십 과정을 통해 효돌에서 함께 네덜란드어 버전을 개발하게 됐다. 네덜란트어를 말하는 똑똑한 손주 효돌은 시범사업을 통해 현지 요양원 등에서 고령자들을 위로할 계획이다.
해외 학계에서도 효돌을 주목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ISG 2024(제론테크놀로지 세계대회) 세미나에서도 네덜란드 연구진에 의해 효돌 활용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효돌 김지희 대표는 “최초로 조선에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처럼 효돌이도 네덜란드에서 귀여운 손자로 잘 정착하기를 기원”며 “이번 개발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기술을 고도화 해 효돌의 세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라고 밝혔다.
AI 안부 전화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CLOVA CareCall)’이 전국 시군구 중 절반 이상에 도입돼 독거 어르신과 중장년 1인 가구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부산 해운대구의 첫 도입을 시작으로 3년 만의 성과다.
클로바 케어콜은 돌봄이 필요한 독거 어르신, 중장년 1인 가구에 AI가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다.
올해 8월 기준 클로바 케어콜은 서울, 경기, 부산, 대구, 광주, 전북, 강원, 충남 등 전국 128곳 시군구에 도입돼 독거노인을 효과적으로 살피고 있다.
사용자 수 역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준으로 지난해 8월 대비 2배 증가한 3만 명을 기록했다.
네이버의 초대규모 AI 기술을 적용해, 정서적 공감이 가능한 자연스러운 대화를 구현했으며 과거 대화를 활용하는 ‘기억하기’ 기능으로 연속성 있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위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화된 대화를 제공해 이용자의 응답률과 통화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AI 돌봄 관제 운영 파트너(에버영피플, 행복이룸)의 연결 전화 포함 시 전체 사용자의 96%가 클로바 케어콜에 응답하며 일상 안부를 나누고 있으며, 자체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평균 약 90%의 높은 사용자 만족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위기 상황의 독거노인을 구한 사례도 발굴되고 있다. 최근 순천시에서는 복지 담당자가 클로바 케어콜을 통해 발화에서 건강 이상 징후 발견 후 현장 방문을 빠르게 결정, 응급 간경화 환자를 구했다.
대구시에서도 건강 관련 부정 발화를 탐지해 독거 노인의 신속한 사후관리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클로바 케어콜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목적성 안부 대화’ 기능으로 재난 공지 안내 및 피해 사실 확인 등을 지원해 지자체 및 관계 기관의 업무 효율화를 돕고 있다.
지속된 폭염과 같은 재난 알림 및 피해 사실 확인 등을 담당하며, 취약 계층 주민을 돌보는 ‘AI 복지사’로의 사용성을 성공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관련 기능과 기술을 고도화해 ‘국내 대표 AI 안부 전화 서비스’의 입지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향후 초대규모 AI 기술을 기반으로 일상 영역 외에도 치매 예방 대화, 만성질환자 관리 등 목적성 대화 시나리오의 다각화도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요양기관의 약 88%는 개인사업자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전국에 촘촘하게 분포된 기관 운영자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 곧 요양 수급자와 보호자가 받는 서비스 질을 높이는 길이라 믿는다. ‘기술로 요양산업을 더 스마트하게’라는 비전을 외치는 이유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주간보호센터 3개와 방문요양센터 4개를 직접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파악한 요양기관 운영자의 업무 고충을 바탕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행정 업무의 완결성을 높여주는 ‘하이케어’, 이용자와 기관을 연결하는 ‘스마일시니어’, 기관・요양보호사・보호자를 잇는 ‘요보사랑’이 주요 서비스다. 하이케어 이용 기관은 전국에 약 1100개, 하이케어를 통해 관리되고 있는 어르신은 약 4만 명, 요양보호사는 약 14만 명, 요양 수가는 하루 약 260억 원에 이른다.
업무 효율 높이는 ‘하이케어’
한국시니어연구소는 통합 시스템이 없어 복잡한 기록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기관의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으로 ‘하이케어’를 만들었다. 현재로서는 건강보험공단에 요양 수가를 청구하는 시스템과 연결된 유일한 소프트웨어다.
공단의 수가 청구 시스템은 모바일로는 작업할 수 없어 컴퓨터와 공증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하이케어를 이용하면 이동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작업할 수 있다. 또한 매일 해야 하는 기록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몇 건의 기록지를 수정해야 한다’는 알림을 보내준다.
또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센터장들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AI를 도입해 문서 자동 생성 기능도 제공한다.
정보 격차 줄여주는 ‘스마일시니어’
스마일시니어는 요양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격차를 줄여준다. 소비자가 본격적으로 요양기관을 찾는 시점은 대체로 요양 등급을 받은 다음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요양기관이 가장 필요한 때는 오히려 등급을 받기 전이다. 요양 등급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받는다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요양 등급을 받지 않으면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양기관은 돌봄만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양 등급을 받기 전부터 이후까지 모든 과정을 돕는 것이 요양기관의 역할이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스마일시니어를 통해 하이케어를 사용하는 전국의 요양기관을 소비자와 연결해준다. 핵심은 ‘고민하지 말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양기관에 들러 상담하세요’다. 소비자가 상담 내용을 남기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관의 센터장에게 콜이 배정되는 것처럼 카카오톡 알림이 뜬다. 이후 해당 센터는 소비자에게 연락해 어려운 부분을 도와준다.
또는 기관 정보를 보고 소비자가 직접 센터에 문의할 수도 있다. 요양 등급을 받고 싶지만 정보 격차가 있는 소비자와 기꺼이 상담해줄 센터를 연결해주는 서비스인 셈. 추가 요금을 내고 ‘파트너’가 된 기관을 우선 매칭하고, 만약 파트너가 없는 지역에 소비자가 있다면 하이케어를 이용하는 기관으로 이어준다.
또한 등급 신청 시 필요한 서류를 수기로 작성 후 팩스로 보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작성해 신청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구인・구직 자동화 ‘요보사랑’
요양기관이 어려움을 겪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인력 찾기’다. 여전히 많은 센터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연락처로 전화를 돌려 수급자 요구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 맞는 사람이 없으면 지역 일자리센터에 팩스를 보내 요양보호사 리스트를 받아 다시 전화를 돌린다. 구인・구직에 걸리는 오랜 시간을 줄이고 자동화한 것이 ‘요보사랑’이다.
요보사랑에는 약 3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등록돼 있다. ‘가사 업무 제외’,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 우선’, ‘시간당 페이가 가장 높은 곳 우선’, ‘여성 수급자 선호’, ‘하루 3시간 가능’ 등 원하는 조건을 작성해둔다. 이후 센터에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원하는 조건을 요보사랑에 등록하면 적합한 요양보호사에게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보낸다. 기관이 추가 비용을 낸다면 요보사랑에 등록된 요양보호사뿐 아니라 전국 일자리센터, 워크넷, 구인・구직 카페 등의 구인처에 자동으로 공고가 올라가도록 연동해준다.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는 “요양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휴먼 터치가 굉장히 중요한 분야”라면서 “센터장의 업무 부담을 낮춰 보호자와 수급자에게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요양기관 종사자 약 13만 명이 가입돼 있는 ‘실무 카페’를 운영하며 법령 읽는 법부터 행정 업무에 대한 교육까지 업무를 구조화해 설명하고 있다. 스마일시니어 파트너인 센터에는 필요한 행정 업무와 보호자 상담 방법까지 전 과정에 걸친 별도의 교육을 제공한다. 이진열 대표는 “기관을 혁신해야 산업이 바뀐다”면서 “궁극적으로 보호자와 수급자의 돌봄 환경이 개선되도록, 기술로 요양기관을 더욱 스마트하게 바꿔가겠다”고 강조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일 때 초고령화사회로 분류한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중국도 고령화의 그늘 속에 접어들었고,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손꼽히던 베트남도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는 등 전 세계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고령화에 대비해 어떤 산업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7억 2700만 명(인구 비중 9%)에 달한다. UN은 ‘세계인구전망서’를 통해 2050년에는 약 15억 명(인구 비중 16%)까지 증가할 것으로 발표했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UN은 “고령화 인구가 많은 국가는 보편적 의료 및 장기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보장 및 연금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시 말해 고령층을 위한 제품·서비스·인프라 등에서 시니어 비즈니스로서의 사업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니어 비즈니스란 시니어를 대상으로 시니어들을 위한 상품 제조・판매, 의료・복지 시설을 세우는 따위의 산업을 뜻한다. 이는 1970년대 일본에서 고령자 시장을 ‘실버마켓’이라고 지칭한 것에서 파생되었으며, 건강・은행・관광・주택・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과거에는 그룹홈이나 요양시설 위주의 시니어 비즈니스가 주력이었다면, 최근에는 ‘건강한 노화’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2030년, 건강한 노화 10년’으로 선언하고, 네 가지 영역에서 불평등을 줄이기로 한 UN의 기조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커지는 미국 홈케어 시장
시니어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는 단언컨대 미국이다. 세계적인 리서치 기업 월드데이터랩(World Data Lab)에 따르면 미국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은 2025년 약 3조 5000억 달러(약 4849조 25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의 대표 시니어 비즈니스는 홈케어 시장이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신체적 수발이나 가사 지원 등 다양한 장기 요양 및 활동에 대한 지원 서비스로, 아마존이나 UPS 등 물류・운송 업체에서도 홈케어 시장에 진출할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니어들의 고독함을 완화해주는 서비스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회사 렌데버(Rendenver)는 실버타운과 요양원에 거주하는 고령층의 무료함・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현실을 활용한 여행 및 방문 등의 콘텐츠를 개발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 증진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시니어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돌봄 경제’(Caring Economy)를 내세우며 노인 및 장애인을 대상으로 가정과 지역사회 기반의 공공 건강보험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바이오 기술이 적용된 의료 및 건강관리 첨단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헬스테크 분야에 집중하는 중국
중국은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했다. 이에 시니어 비즈니스에 잠재력을 가진 독보적인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2021~2025 돌봄 산업을 위한 5개년 개발 실행 계획’을 발표하며, 노인 돌봄에 필요한 스마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헬스테크 분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애인 보조 및 노인 보조 로봇을 개발하는 상하이방방로봇회사(이하 방방로봇)는 2016년 설립 이후 현재 두 개의 ‘방방카’ 모델을 출시했다. 그중 하나는 외출 시 사용하는 보행 대행 차량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지능형 훈련 차량이다. 장애 노인을 위한 스마트 케어용 제품도 있다. 2019년 설립된 선전줘웨이과학기술회사는 용변과 목욕 시 사용하는 지능형 로봇이 주력 상품이다. 청두마이제캉과학기술회사는 손목시계, 침대 매트, 체중계, 호출기 등 다양한 스마트 제품을 통해 노인, 간호사, 자녀를 연결하는 스마트 케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바이두와 알리바바 등 대기업도 앞다투어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2021년 바이두헬스는 유명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제휴를 맺고 중년과 노인을 위한 예방 차원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공동 구축했다. 이는 바이두헬스 사용자의 수요를 기반으로 빅데이터와 AI 기술 검색을 통해, 온라인으로 노인의 건강관리는 물론 질병 예방을 돕는 시스템이다. 알리바바는 베이징과 허난 지역에 지능형 요양원을 잇달아 설립하고, 2022년 3월에는 도시・농촌 지역사회의 노인 돌봄 문제에 주력할 것을 선언했다.
일본, 수요자 맞춤형 다양한 서비스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후에도 꾸준히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고령사회에 일찍 접어든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규모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그룹홈 같은 요양시설에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성화하고자 노력하는 등 앞으로도 계속 시장 확장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는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반감을 가진 고령층이 많아 본인의 거주지에 그룹홈을 만들어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고령층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하락 캐스타’는 손가락을 넣는 대신 패드를 눌러 사용하는 가위로, 탄탄한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유카이공학은 요양원에 있는 노인과 대화를 통해 요구사항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정용 로봇 ‘보코 에모’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동 슈퍼 서비스 ‘도쿠시마루’, 넘어졌을 때만 부드러워지는 바닥과 매트 ‘코로야와’ 등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제품 서비스를 개발·제공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고령층을 무조건적인 복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인식 개선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보람 대표는 “‘고령층도 사회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대에 지속적으로 어필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식 개선 운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식품 수요 높은 태국
2005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태국은 2052년경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3년 태국의 노인 인구는 약 1300만 명으로 태국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노인 인구의 꾸준한 증가로 2027년 약 16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시니어 비즈니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태국 국가통계청(NSO)에서 발표한 노인 가정의 소비 성향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식료품 관련 지출이 평균적으로 19% 낮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소비 금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외식 대신 가정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조리 식품이나 포장 식품에 대한 식비 지출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평균수명 연장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건강식품 및 건강보조식품에 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헬스케어, 보건ㆍ의료에 중점 둔 싱가포르
싱가포르 역시 빠르게 고령 인구가 늘면서 시니어 비즈니스가 급성장하는 추세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인구 보고서를 발표하며 2030년에는 4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영향으로 디지털 솔루션이 활용되면서 새로운 헬스케어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원격의료, 노인 영양식 등 헬스케어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가 주목받는 이유는 노후에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최우선이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보람 대표는 “싱가포르는 원격의료와 비대면 의료에 많은 투자를 하며 헬스케어 분야를 시니어 비즈니스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며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원회의 마스터 플랜에 따라 2022년부터는 국민 건강관리에 디지털 헬스를 활용하는 ‘Healthier SG’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모든 의료 서비스와 건강 기록에 원스톱으로 접속할 수 있는 건강 포털 ‘HealthHub’로 제공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이 자신이 선택한 주치의를 등록하는 프로그램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국민의 평균 나이 32.5세로 가장 젊은 나라였던 베트남도 2019년 고령화 지수가 48.8%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09년 35.9%에서 10년 새 13%가량 늘어난 것으로, 다른 국가들처럼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산업계 역시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고령자 증가에 따라 실버 케어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그 가운데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업계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장례 서비스 경험을 활용해 주요 고객인 중장년층을 케어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목표가 읽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실버산업 규모는 2020년 72조 원에서 2030년 168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요양과 주거 등 실버 케어와 관련한 관심도가 높다. 2022년 기준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로 건강하고 오래 편안한 곳에서 나이 드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버 케어를 받는 고령층이 새로운 특성을 보유한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세대라는 점이 산업의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해 발간된 하나은행연구소의 ‘시니어 케어 시장의 확대와 금융회사의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기존의 고령층과 비교해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높으며, 노후 주거지역으로 의료시설 및 생활 편의시설 인프라, 교통 등의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 혹은 도심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성향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국내 시니어 케어 시장이 영세한 개인사업자 위주로 형성되면서 질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은 더딘 편”이라며 “시장 전 영역에 민간 기업 진출이 확대되면서 경쟁 구도가 점차 변화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시니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다양한 기업이 나선 가운데, 주요 상조업계가 동참해 눈길을 끈다.
토털 라이프 케어 브랜드로 탈바꿈
고령화 시대에 웰다잉 문화 확산으로 장례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상조업계는 크게 성장했다. 사망 인구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수는 35만 3000명이었으며, 연령별로는 80대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정부는 사망자 수가 2030년 41만 명, 2070년에는 7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장례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은 그들의 자녀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됐다. 현재 경제의 중심에 있는 인구이며, 이들의 기대수명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조업계에서는 주요 고객을 잡겠다는 심정으로 실버 케어 상품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상조업계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자본이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버산업은 수익적인 부분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고, 미래 먹거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상조업계 가운데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보람그룹이다. 올해 창립 34주년을 맞은 보람그룹은 상조를 비롯해 제조・웨딩・건설・IT・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토털 라이프 케어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는데, 특히 4069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먼저 보람그룹의 상조 계열사 보람상조리더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레이포지티브’와 업무협약을 맺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휴레이포지티브는 앱을 기반으로 혈당을 측정하고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는 건강과 관련된 플랫폼을 만들어 실버 케어에 집중할 예정이다. 추후에는 홀로 거주하는 노부모의 돌봄 시스템까지 갖춘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또한 보람그룹은 인천 서구 경서3구역에서 5성급 호텔 및 시니어 레지던스(실버타운・노인 복지주택) 사업을 추진한다. 총면적 약 11만 1346평 규모로 기존에 보람인천장례식장이 위치한 보유 부지 일대다. 주거・의료・취미시설 등 맞춤형 서비스를 총망라한다. 장례식장이 변화에 맞춰 탈바꿈하는 셈이다.
보람그룹 관계자는 실버 시장 진출에 대해 “주요 고객층인 시니어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람그룹의 고객만족 경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우리는 역발상으로 ‘무덤에서 요람까지’라고 표현한다. 고인에게 예우를 다하는 한편 고객을 중장년층으로 확대했고, 더 나아가 웨딩・여행사업 등을 통해 젊은 층까지 잡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과 휴먼 터치의 만남
또 다른 상조회사 프리드라이프는 지난해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기업 에임메드와 손잡고 시니어 전용 상조 상품 ‘늘 든든’을 출시했다. 에임메드는 전문화된 간병인 및 요양시설 매칭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실버 케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늘 든든 상품은 가입 후 10년간 14개 진료과목 전문 의료진 건강 상담, 전국 종합병원 진료 간편 예약, 요양병원 비교견적 및 장기요양 등급 컨설팅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학습지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그룹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2010년 상조 서비스 교원라이프를 시작했고, 10년 만에 업계 3위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2위까지 올라서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최근 ‘시니어 한 달 살기’ 전환 상품을 출시해 눈길을 끈다. 액티브 시니어의 니즈를 읽은 상품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3주간 여행하면서 외국어를 배우고 이색 문화 체험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상조업계뿐 아니라 KB라이프・신한라이프 등 생명보험업계도 실버 케어 시장에 합류했다. 생명보험업계는 시니어 레지던스를 준비하고 있는 보람그룹처럼 요양시설에 주목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형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초빙교수는 이 같은 경제 변화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실버 케어 시장의 수요는 늘어났는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알아본 상조・보험 등 다양한 업계에서 실버 케어 시장에 진출했다고 본다”면서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가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원하다 보니 그에 맞는 케어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된다”고 말했다.
김수형 교수는 실버 케어 시장에 진출한 상조업계의 특징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협업을 맺은 점을 꼽았다. 상조업계는 중장년층이라는 인맥 풀을,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시니어에게 도움 되는 기술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상조업계의 케어 서비스와 실버산업의 만남은 시너지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수형 교수는 “우리나라가 디지털・IT 강국이다 보니 실버 케어 시장에서는 그것에 기반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AI가 할 수 없는 휴먼 터치도 중요하다. 인간과 기술이 상생해서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앞으로도 시장이 발전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생명보험업계도 실버케어
KB라이프 KB라이프의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에서는 요양시설 서초・위례 빌리지와 노인 복지주택 평창카운티를 운영하는 등 생명보험업계 중에서도 요양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내년에는 강동과 은평, 광교 등 3곳에 요양시설을 추가로 개소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 올해 시니어 사업 전담 자회사 ‘신한라이프케어’가 출범했다. 2025년 경기도 하남시에 60~70명 수용 가능한 도심형 요양시설을 개소할 예정이다. 또한 2027년 개소를 목표로 서울시 은평구에 실버타운 건립도 추진 중이다.
삼성생명 보험업계 최초로 경도인지장애 및 치매 단계별 보장이 가능한 ‘삼성 치매보험’을 선보였다. 해당 특약에 가입하고 약관상 보장 개시일 이후에 경도인지장애 또는 최경증이상 치매 진단 시 최초 1회에 한해 돌봄 로봇을 제공한다. 또한 시니어 케어 사업 진출 계획을 밝혔는데, 삼성그룹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 ‘노블카운티’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미래에셋생명 시니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부 업체 대명스테이션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셋생명의 신탁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장례 이용을 원하면 고객이 맡긴 재산으로 대명아임레디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NH생명 디지털 요양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젠코카이 산하 젠코종합연구소와 MOU를 맺었다. 젠코카이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스마트 요양사다.
실버산업의 핵심에는 기술이 있다. 고령 인구를 대상으로 돌봄, 안전,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기술을 에이징테크 또는 실버테크라고 한다. AI(인공지능), 로봇, 모바일, IoT(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을 기반으로 하면서 젊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발전하고 있다.
7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00만 62명을 달성하며 전체 인구의 약 19.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었는데, 그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빠른 고령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에이징테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영선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장)는 “국내에서는 아직 노인에게 적용되는 테크라고 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내 복지용구를 떠올리고, 단순한 기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경제・기술적으로 고급 기술이 가능한 생태계가 형성됐다. 또한 2028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전체 노인의 56%가 되면서 내수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돈을 내고 지불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맞물리면서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돌봄 기술의 중요성
김영선 교수는 에이징테크의 3대 핵심 분야로 △고령자 자립생활 기술(AIP Tech) △고령자 돌봄 기술(Care Tech) △사람 중심의 고령자 기술 수용 서비스를 꼽았다. 고령자 자립생활 기술에는 주거・스마트홈, 시니어 영양, 디지털 헬스케어, 운동・재활, 이동, 정서 지원・감성 서비스 등이 있다. 고령자 돌봄 기술은 노인 돌봄 종사자의 신체적 부담 경감 및 미래 돌봄 종사자 부족을 대비하기 위한 기술이다. 사람 중심의 고령자 기술 수용 서비스는 고령자가 디지털 격차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고, 보다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말한다.
국내 에이징테크는 고령자 돌봄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돌봄 로봇이 대표적이며,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로 ‘효돌’을 들 수 있다. 효돌은 인공지능 노인 돌봄 로봇 ‘효돌AI’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2월 ‘ICT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글로벌 모바일(GLOMO) 어워드 2024’에서 ‘커넥티드 건강 웰빙을 위한 최우수 모바일 혁신상’ 부문을 수상했다. 챗GPT를 장착한 효돌은 식사와 수면, 복약 등을 챙겨주며, 어르신과 음성 대화 및 정서적 교감을 한다.
김영선 교수는 돌봄 기술이 중요한 이유로 돌봄 종사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040년 기준 요양 서비스 인력 부족 국가 1위로 꼽힌 바 있다. 김 교수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등 돌봄 종사자의 연령을 보면 50대 이상이 88%나 된다.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높아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돌봄 로봇을 활용하면 돌봄 종사자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경희대학교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 조사 결과, 돌봄 로봇을 사용해본 종사자는 돌봄 로봇의 약 복용 요일 알림 제공, 노인의 안전 기여, 약물 치료, 노인의 건강 상태 관찰 등에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고도화된 헬스케어 급부상
현재 에이징테크는 고령자 돌봄 기술에서 고령자 자립생활 기술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 조사 결과, 2022년 55세 이상 고령자는 가장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기술 1순위로 이승 보조기술(14.3%)을 꼽았다. 건강관리 지원기술(13.1%), 소셜 로봇(10.6%), 배회 감지기(8.1%), 센서 기반 낙상방지 기기(7.7%)가 그 뒤를 이었다. 2024년에는 건강관리 지원기술이 32.3%로 1순위에 등극했다. 이어 인공지능 기술 : 앱(11.4%), 이동 및 교통 지원기술(8.9%), 소통·사회참여 기술(8.2%), 인공지능 기술・기기(6.9%)로 나타났다. 1위부터 5위까지 순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령자의 건강관리 지원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스타트업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 2024’의 한국 참가 기업을 보면 헬스케어와 AI 관련 기업이 두각을 나타냈다. 웨어러블 로봇을 만드는 휴로틱스, 실버 케어를 위한 스마트미러를 개발한 딥메디, 후각을 이용해 치매를 진단하는 엔 등이 눈길을 끌었다.
김영선 교수는 “돌봄 로봇, 헬스케어, 스마트홈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전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전이 이뤄져야 하며,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기술이 개발된 후 실증을 해야 하고,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은 이들을 위해 교육·훈련 단계도 필요하다. 그래야 생태계 선순환이 이뤄진다”면서 에이징테크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망 스타트업-AI 에이전트]
디엔엑스, 휴대폰 센서로 원격 돌봄
디엔엑스(DNX)는 AI 에이전트 기업이다. AI 에이전트는 AI가 눈과 손이 달린 것처럼 고도화된 업무를 직접 수행해 ‘AI 비서’라고 하기도 한다. 디엔엑스는 8월 초 업데이트된 ‘AI순이’ 애플리케이션을 오픈할 예정이다. 사용자(고령자)의 실시간 정보를 제공해 보호자(자녀 또는 사회복지사)가 원격으로 돌볼 수 있는 서비스다. AI순이는 AI와 IoT(사물인터넷)가 모두 결합된 ‘터치 케어’(Touch Care) 기술에서 출발했다. 냉장고, 화장실 변기, 텔레비전 리모컨 등 평소 잘 사용하는 물건에 태그를 부착하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 정보가 자체 앱으로 전송된다.
디엔엑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가능하도록 기술을 업데이트했다. 한재근 대표는 “결국 무엇을 하는지 알려면 데이터가 중요하다. 휴대폰은 24시간 내내 센서 역할을 한다. 보편적인 인식과 달리 어르신들의 휴대폰 이용도는 높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도 휴대폰이라고 한다. 혹시 자식들한테 전화가 올까 봐서다”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실버 케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상, 외출, 귀가, 취침’이라고 강조했다. AI순이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을 넘어 상황을 인지하고 먼저 말을 건다. 실제로 ‘이제 TV 그만 보고 자라’, ‘물 많이 마셔야 한다’ 등의 메시지를 순이가 전달함으로써 정신・건강적으로 좋아졌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AI순이 앱에서는 실시간 방송을 진행해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 장을 마련했다. 퀴즈도 같이 풀고, 언어 공부도 같이 하는 식이다. 혼자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한다는 기분을 심어주어 적적함을 달래준다. 한 대표는 “시니어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실버산업에 몸담기 어렵다. 순이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며 고맙다고 말해주는 어르신들이 있어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유망 스타트업-디지털 헬스케어]
세븐포인트원, 1분 만에 치매 진단 AI
세븐포인트원은 치매에 주목했다. 이현준 대표는 VR 기술을 활용한 인지 개선 솔루션 ‘센텐츠’(SENTENTS)를 개발했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해 뇌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원리다. VR 콘텐츠가 다양하다. 극장・다방 등을 통해서는 젊은 시절 데이트하던 때가 떠오르며,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회상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경상북도 안동시 4개 경로당에서 100여 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어르신들의 우울감 수치가 67% 떨어지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매 진단 기술이 필요하다 느껴 2021년 치매 고위험군 스크리닝 솔루션 ‘알츠윈’(AlzWIN)을 개발했다. 중앙치매센터장을 지낸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팀이 2010년부터 연구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1분 동안 대화를 통해 AI는 언어 유창성과 의미 기억력을 측정・분석해 치매 고위험군을 판별해낸다. 실제로 경기도 스마트인지검사 시스템에 공식 선정돼 치매 고위험군을 7개월 만에 7000명 이상 발굴해 도내 치매안심센터로 연결했다. 세븐포인트원은 알츠윈으로 ‘CES 2023’에서 디지털 헬스 분야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이 대표는 “치매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고, 조기 진단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 서비스 수요자는 물론 의료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급자들도 고령화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라고 생각하며, 고품질 기술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망 스타트업-디지털 헬스케어]
딥메디, 스마트폰으로 혈압 측정
혈압을 커프스 없이 스마트폰으로도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광주과학기술원(GIST) 의생명공학과 박사 3명이 뭉쳐 창업한 회사 딥메디(Deepmedi)는 카메라에 손가락을 대면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확도가 98%에 이르며, 2022년 혈압분석 소프트웨어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이광진 딥메디 대표는 “진단은 하지 않는다. 기준 표를 통해 사용자가 고혈압인지 저혈압인지 알 수 있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안색’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소프트웨어 2등급 허가를 획득했다.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하면 맥파 신호를 측정하고 분석해 심박수, 심박변이도, 이상심박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스마트미러를 ‘CES 2024’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카메라를 통해서 피가 흐를 때마다 빛이 피부 속에 흡수됐다가 반사되는 것이 보인다. 그 반사되는 양을 통해 측정한다”고 원리를 설명했다.
또한 딥메디는 최근 NHN의 시니어 케어 전문 자회사 ‘와플렛’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실버 시장에 뛰어들었다. 와플렛 플랫폼에 소프트웨어 기술을 탑재한 것이다. 이밖에도 보험사, 노인복지관, 대기업 등에 기술을 제공했다. 이 대표는 ‘웰에이징’ 국가 R&D 사업도 하고 있다고 밝히며 “시니어들이 집 안에서 건강한 삶을 보내기를 원한다. 일상 속에서도 건강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며, 카메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버시 문제 해결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미스터마인드의 AI 돌봄 로봇은 54개 지자체와 29개 치매안심센터·보건소· 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약 8500명의 어르신을 만나고 있다. 미스터마인드는 어르신들이 실제 필요한 케어까지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며, 이제는 질병 예측도 가능한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017년 설립된 미스터마인드의 AI 돌봄 로봇은 외형이 다양하다. 인형이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서비스 도입을 원하는 지자체나 기관이 이용하고자 하는 캐릭터에 맞춰 제작한다. 예를 들면 진안군은 ‘빠망’, 대전시는 ‘꿈돌이’ 같은 지자체 캐릭터를 활용한다. 물론 미스터마인드의 대표 캐릭터도 있다. AI 돌봄 로봇 ‘초롱이’와 블루투스 스피커 ‘미니미’다.
돌봄도 ‘재미’있게
초롱이는 어르신들에게 애교도 부리지만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투정도 부린다.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늦은 저녁까지 말을 걸면 “이제 대화 안 한다”고 투정도 하며 자야 할 시간임을 알린다. 어르신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스터마인드 돌봄 로봇은 ‘돌봄’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콘텐츠는 ‘인지 카드’로 다양성을 더했다. 기본 다섯 가지 인지 카드에는 인지력 퀴즈 100문제, 수면 유도 음악 100곡, 말동무 기능 100여 가지, 옛날이야기 100편, 노래 200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개발한 인지 카드는 15종이 더 있다.
외로움을 돌보기 위해 능동 대화도 매일 50회 이상 실시한다. 어르신이 말을 걸지 않아도 자동으로 말을 거는 기능이다. 긴급재난, 생활안전, 어르신 정책 사업을 안내할 때는 ‘감성 대화’로 전달한다. 정보를 재가공해서 어르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르신 창밖을 보세요. 눈이 내려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빙판길이 생긴 것 같아요. 어르신 다치면 저도 슬퍼요. 조심하세요”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더불어 돌봄 로봇을 사용하는 과정 자체가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 방향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노래다. 어르신들은 좋아하는 노래 2~3곡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것이 인지 능력 유지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른 노래를 랜덤으로 재생하도록 바꾸었다. 다섯 곡을 재생하고 나면 “어르신 나 물 마시고 올게요”라며 노래를 멈춘다. 따라서 어르신이 200곡을 모두 들으려면 최소 20번은 돌봄 로봇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김동원 미스터마인드 대표는 “보통은 버튼을 반복해 누르거나 인지 카드를 바꿔 넣어야 하는 방식이 ‘불편하다’고 인식하지만 어르신에게는 아니다. 대화하고 싶으면 오른손, 놀이하고 싶으면 왼손을 누르고, 특정 놀이는 카드를 꼽는다는 방식이 어르신들에게는 직관적”이라고 설명했다.
돌봄 넘어 질병 예측까지
김동원 대표는 “질리지 않고 반복해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조했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 탑재되어도 초반에만 관심을 끌다가 방치되거나, 24시간 작동하는 인형의 전원을 꺼버리면 돌봄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반영되어서인지 미스터마인드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평균 32개월 동안 돌봄 로봇을 사용했다. 미스터마인드의 돌봄 로봇을 채택한 지자체의 68%는 로봇을 재구입했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돌봄 로봇의 재계약률은 98%에 이른다.
이렇게 어르신들이 돌봄 로봇을 통해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는 인지 카드도 TV 드라마처럼 매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또한 “임영웅을 만나고 싶다”는 등 어르신들의 요청을 받아 연예인 음성으로 대화하는 인지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하나의 돌봄 로봇을 오래 사용하면 좋은 점이 있다. 질병 예방이나 발견, 더 나아가 예측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스터마인드는 지난 5년간 AI 돌봄 로봇을 통해 어르신들이 실제 사용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된 이상 징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지난해 8월에는 특정 단어가 발화되는 점을 포착해 19개 지자체에 이를 알렸다.
자살 고위험군으로 진단된 사례는 보호자에게 알리고 자살방지센터와 연계해 관리하는 지자체도 나왔고, 보건소와 연계해 우울증과 치매를 발견한 곳도 있다. 이는 인공지능 돌봄 로봇으로 어르신 질병 진단을 받은 첫 사례로 꼽힌다.
김동원 대표는 “돌봄 로봇이 기술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돌봄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상 징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사회복지사, 간호사, 케어매니저 등이 현장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돌봄 융합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옥상훈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온라인 게임에서 통용되는 단어인 본캐와 부캐. ‘본캐’는 주로 사용하는 본래 캐릭터, ‘부캐’는 본캐 생성 이후 만든 부차 캐릭터를 말한다. 근래 유명인들이 기존과는 다른 활동명과 캐릭터로 대중의 인기를 끌며 ‘부캐 열풍’이 일기도 했다. AI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을 성공적으로 이끈 옥상훈(53)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그런 부캐가 있다. 바로 인스타그래머 ‘컵누들러’다. 아직 본캐만큼 왕성하진 않지만, 여러 가능성을 품고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캐를 일컬어 ‘히든캐’(숨겨진 캐릭터)라고도 부른다.
먼저 본캐 이야기부터 해보자. 본캐 타이틀은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얼핏 앞뒤 키워드만 떼어 보더라도 국내 굴지의 IT 기업인 네이버에서 특정 사업의 리더인 셈인데, 일단 본캐의 레벨도 심상찮게 느껴진다. 참고로 사스(SaaS)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네이버클라우드’다. 옥상훈 리더는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을 ‘BD’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도 본래 뜻과 그만의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흔히 업계에서 BD라고 하면 비즈니스 디벨로퍼(Business Developer)를 말합니다. 직역하면 사업 개발자인데, 대개 새로운 사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담당하죠. 그것도 맞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비즈니스 디자이너(Business Designer)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AI 생태계를 만들어 클라우드 사업을 키우고 파트너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같은 단어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본캐의 전환, 본업 모먼트 시작
옥상훈 리더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가 보면, 그때도 본캐와 부캐가 있었지 싶다. 한양대학교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물학이 전공임에도 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더랬다. 그러다 졸업할 즈음 IT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는데, 마침 관련 업계에서 개발자를 양산하던 분위기였다. 부캐도 쏠쏠히 키운 덕에 그는 IT 세계로 진입해 SI(System Integration)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부캐가 본캐로 전향된 것이다.
이후 본캐를 성장시키며 네이버와 인연을 맺었다. 2011년 입사 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관련 사업을 만들고 제휴 맺는 업무를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0여 년간 네이버 개발자센터 개편, 오픈 API 표준 제작,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 론칭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최근 그가 집중하는 사업은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이다. AI 기술을 적용해 어르신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억까지 해내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시작된 사업이에요. 당시 코로나 감염자에게 발열 여부 확인 전화를 사람이 일일이 했는데, 어느 순간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며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됐던 거죠. 처음에는 성남시와 협력해 전화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후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입하는 지자체가 더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자체 쪽에서 아이디어를 주시더군요. 발열 여부만이 아니라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로도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렇게 부산 해운대구랑 도모해 처음 케어콜을 선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초반 성적은 저조했다. 실제 사용자인 독거노인들이 보인 만족도는 50% 남짓이었다. 옥상훈 리더는 실패에 가까웠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나갔고, 생성형 AI와 하이퍼 클로바 기술 등을 적용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AI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나가며 발전을 이뤄온 것이다.
“아무래도 대상자가 어르신이다 보니 AI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셨죠. 때문에 최대한 AI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덕분인지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로 조사했을 때는 90% 정도의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놀라운 성장이죠. 그런데 이런 피드백이 있더라고요. AI가 말귀도 알아듣고 공감해주는 건 좋은데, 이전 대화를 기억 못 하니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였죠. 결국 2022년에 기억하기 기능을 탑재해 출시했어요. AI가 질환이나 병원 이력 같은 걸 기억해주는 덕분에, 이제는 케어로봇처럼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쪽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아직은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으로 대상자가 한정되지만, 장차 누구나 자기 편의에 맞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전망합니다.”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최고의 궁합
본업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에도 그의 시선은 호시탐탐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촬영 소품으로 기자가 준비한 컵라면. 비닐봉지라는 베일에 가려진 컵라면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제 본캐는 접고 부캐 이야기를 해보자고 운을 떼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웃음) 좀 꺼내봐도 될까요? 이야, 다 새로 나온 것들이네요.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골라오셨어요?”
옥상훈 리더는 신기한 듯 물었지만, 방법은 간단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400여 가지 컵라면 리뷰가 올라와 있는데, 첫 사진은 늘 위에서 찍은 컵라면 뚜껑이다. 메인 페이지만 봐도 그가 어떤 컵라면들을 먹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리뷰도 간단명료하다. 면발, 맵기, 염도 등을 5점 만점으로 표기하고, 총평도 한두 줄 정도로 짤막하게 남긴다.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리한 방식이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컵라면 종류가 워낙 많아 특정 제품의 리뷰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맞습니다. 저도 늘 새로운 컵라면을 사려고 하는데, 가끔은 ‘이걸 내가 먹어봤던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오죽하면 아예 내가 컵라면 검색 엔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뭐 마음만 먹고 아직 시도는 못 해봤습니다.”
지금의 컵라면 리뷰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시점도 클로바 케어콜이 탄생한 시기와 맞물린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바깥에서 타인과 식사하는 일이 어려워진 터였다. 혼자 먹는 식사이니 간편하면서도 기왕이면 요리다운 메뉴였으면 했다.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게 컵라면이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컵라면을 잘 안 먹었어요.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 나름의 철학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항상 이야기하는 건 ‘컵라면은 요리’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저 인스턴트식품 정도로 치부하지만 저는 하나의 요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궁극의 맛을 잘 응축해서 편리성을 극대화한 형태잖아요. 물만 부으면 끝나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면발 상태나 수프, 건더기 맛도 다양하고 훌륭해졌어요. 또 컵라면끼리 조합해서 먹어보는 것도 흥미롭죠. 가령 짜장과 짬뽕, 크림소스와 매운소스처럼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아요. 또 이건 저만의 팁인데 짜장컵라면에 콜라를 한 숟갈 정도 넣어보세요. 단맛이 확 우러나서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거 말고도 팁은 무궁무진해요.”
컵라면 이야기라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는 옥상훈 리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컵라면 먹는 일도 줄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부캐의 장점 중 하나는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 아닐까. 본캐처럼 책임이나 강박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이따금씩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족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함은 덤이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컵라면을 찾았을 때예요. 라임 향 나는 컵라면이나 침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특별 제작한 컵라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도 잊을 수 없네요. 그렇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찾아가는 게 참 흥미로워요. 편의점을 가더라도 컵라면 코너부터 둘러보고, 해외나 낯선 지역에 가도 컵라면부터 확인하죠.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게 편의점이고 컵라면인데,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또 그런 경험을 기록해가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나름 잘 정리해놓은 거라 라면 회사에서 제안이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아직 깜깜 무소식이네요.(웃음)”
본캐를 성장시키는 힘, ‘통찰력’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부캐를 키워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은퇴 이후쯤이 될 테다. 아직은 본업에서 할 일이 많고,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키우려면 더 오래 현업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늘 선도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분야다 보니, 그에 따른 고충도 있으리라. 실제 그와 동년배인 50대 직장인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MZ세대의 문화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때때로 버거움을 느끼지만 독서와 학습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편이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그가 본업에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분야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가령 클로바 케어콜의 경우에도 지자체로 치면 100곳, 사용자로 치면 2만 명 정도 되는데요. 더 다양한 범위로 확장해서 사업적 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실 기술이라는 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과 도구이지, 어떤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기술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면 꽤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옥상훈 리더는 IT나 신기술 관련한 책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책도 고루 섭렵 중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국 ‘통찰력’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끝으로 그에게 다소 엉뚱한 말을 던져봤다. ‘자신의 인생과 컵라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윽고 우문현답이 나왔다. 그간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든 컵라면이든 결국 ‘맛’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숙성되고, 그것이 우러나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죠. 정말 괜찮은 컵라면은 물을 붓기 전에도 그 가치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뜯기 쉬운 포장, 친절한 설명글, 풍부한 건더기 등. 역시나 먹어보면 맛도 진국이죠. 반면에 별로인 컵라면은 겉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정말 대충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생도 마찬가지 같아요. 스스로가 만든 인생의 가치를 정성스럽게 담아내고, 잘 표현해야 하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너무 맛없어서 못 먹고 버린 컵라면이 딱 두 개 있는데요. 제 인생도 잘 가꿔서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고, 좀 먹을 만한 컵라면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로벌 제약회사 한국에자이가 ‘시니어 서비스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3월 21일 심포지엄을 진행한다.
양재 더케이 호텔에서 오후 3시부터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급변하는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혁신적인 고령층 서비스 구축을 위해 관련 정책 및 서비스 담당자, 기술 R&D 연구자와 기업들 간의 교류의 장을 마련, 최신 동향을 공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는 기업 및 지자체, 기관의 전문가들이 함께한다.
뇌 건강(Brain Health)을 테마로 한 1부에서는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의 ‘시니어복지 디지털전화 사례중심의 트렌드’ 발표를 시작으로, 김형원 한국에자이 차장의 ‘스마트 뇌건강 관리 방안 제언’, 유호영 DKI 부장의 ‘스마트경로당을 통한 시니어 서비스 디지털헬스케어 전환’ 발표 및 패널 미팅이 이어진다.
2부에서는 스마트 케어(Smart Care)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2부에서는 김영주 바이오의료기기학과 교수가 ‘IOT 기반 스마트헬스케어’를 주제로 포문을 연다. 이어 박근정 앤씰 팀장의 ‘스마트 숙면 IOT 시스템관리’, 임은채 크리플 대표의 ‘스마트 테이블을 통한 시니어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 그리고 정승룡 SK텔레콤 부장의 ‘AI기반 시니어돌봄사업 추진 현황’ 발표를 끝으로 심포지엄을 마무리한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한국에자이는 올해 치매전단계인 경도인지저하 치료제 레켐비 허가를 앞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에자이와 함께하는 뇌건강학교’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데 이어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예고한 바 있다.
SK텔레콤·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AI기반 치매 인식개선 시범사업 시행하는 등 시니어의 뇌 건강 개선 및 관리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시니어에게 효율적이고도 시의적절한 의료체계 편입에 도움을 주는 ‘치매관리에코시스템’ 구축해나갈 예정이다.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 허송세월의 정의다. 새해를 허송세월로 지내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일들로 꽉 찬 한 해를 바랄 테다. 윤정구(64)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이를 위해선 체험하는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기회의 신’으로도 불린다. 인생의 기회는 경험의 시간을 사는 가운데 맞이하는 선물과도 같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갖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Kronos)라 한다. 윤정구 교수가 언급한 카이로스(Kairos)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령 똑같은 10년이라도 허송세월로 보내는 이에게는 마치 100년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바삐 사는 이에게는 1년처럼 짧게 여겨질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크로노스)은 10년이더라도, 상대적 시간(카이로스)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즉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인사조직 전략, 조직경영 개발 등을 연구해온 윤 교수는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때, 현재 노동 현장에서 적용하는 시간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바뀌는데, 여전히 시간 개념은 산업화 시대 생산 노동자에게 적용했던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나지 못한 거죠. 아직은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인데요. 가령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회사에 약속한 일을 끝내는 데 4일이 걸렸다고 쳐요. 주 5일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채우지 않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는 목표를 달성한 거잖아요. 그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어요. 시간으로 산정한 임금이 책정되는데, 근로자가 애써 생산성을 늘리는 혁신을 감행할 이유가 있나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재택근무 등 일터에서의 논쟁 대부분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죠.”
기술의 민주화 시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일자리 이슈 중 하나는 ‘정년 연장’이다. 윤 교수는 카이로스의 개념에서 볼 때 은퇴 기준점을 ‘나이’로 책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지적했다.
“양적인 시간으로 책정된 나이만 고려한 거예요. 개인의 경험이나 노력 등 질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카이로스 개념에서의 나이는 다를 수 있죠. 결국 회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자신의 인적 자원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창출하느냐가 관건이잖아요. 한때는 젊은 직원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생성형 AI나 로봇 등이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누구나 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코딩, 알고리즘 등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 자격증이 없어도 챗GPT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요. 이러한 기술의 민주화, 전문성의 민주화로 나이와 같은 태생적 요인이 인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었어요.”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일자리가 더욱 위협을 받으리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러한 시대 변화가 고령자에겐 기회라고 역설했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기회)처럼 말이다.
“그동안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왔다면, 이제는 조직의 공유된 목적을 위해 기술과 인간이 협업하는 관계로 설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이와 무관하게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대안적 방법들이 마련될 수 있죠. 이때의 기술은 고령자에게 오히려 득이 됩니다. 고령 인력이 지닌 체력이나 모빌리티(기동성·유동성)의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니까요. 즉 정년을 따질 것 없이 기술과 잘 협력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가능하리라 예상해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렸다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부양비(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날로 증가하며, 2075년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고령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주요국을 웃도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급증하는 노인 부양비를 감당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윤 교수는 고령 인력 활용이 단초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그 아이들이 경제활동 인구로 성장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고령자 중 아직 활용되지 않은 인력을 동원하는 겁니다. 최근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정년퇴임을 했는데 일을 안 하거나, 정년퇴임을 준비하는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 GDP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예측했어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GDP의 14.7%가 성장한다고 나와요. 비교된 20여 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을 만큼(일본 8.6%, 미국 7.2%, 영국 4.8% 등) 월등히 높은 수치죠. 우리가 매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경제성장률이 2% 미만이잖아요. 고령 인력의 활용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당분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령 인력은 조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리더의 위치에 놓인 이가 상당수다. 저서 ‘진성 리더십’을 펴내고 대한리더십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윤 교수는 중장년·고령 리더들이 거버넌스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버넌스가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고 있어요. 가령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회사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리더는 그런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이것들을 이용해서 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증명해보라는 식이죠. 즉 회사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다는 취지인데, 이렇게 말해도 직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말해 그건 진정성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속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우선하면서 겉으로만 그 직원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죠. 말뿐인 독려라는 걸 직원들도 느낄 텐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밖에요.”
리더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기 힘든 건 직원에 대한 신뢰가 영글지 않은 탓도 있겠다. 신뢰라는 건 상호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윤 교수는 서로 간의 ‘신뢰 자본’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A라는 사람이 내게 100만 원을 빌려달라 했을 때 그 돈을 못 받을 걸 전제로 손해를 감수하고 빌려준다면, 신뢰 자본 100만 원이 생긴 셈이에요. 반대로 A도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면 둘 사이의 신뢰 자본은 200만 원이 되죠. 그렇게 신뢰라는 건 서로가 상처받을 개연성에 대해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손해를 전혀 안 보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생길 방법이 없어요. 그런 신뢰의 결여 때문에 요즘 젊은 조직원 중에는 공정성 같은 덕목을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서로가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죠. 결국 그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조직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긍휼감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긍휼감은 공감이나 연민을 넘어서는 행동 지향의 도덕적 정서인데요. 긍휼감을 가진 리더는 조직원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 함께 풀어가려 하죠. 이런 태도를 보였을 때 조직원들도 리더에게 진정성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 빙산의 밑동을 복원하는 시간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 윤 교수의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건강한 조직과 리더십, 지속 가능한 기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특히 기업의 근간이 되는 조직원들의 고통을 눈여겨보고자 한다.
“조직에서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결과예요. 돌봄을 받지 못한 고통이 문제로 터져 나왔을 때, 많은 리더가 원인인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결과’만 봉합하려 하죠. 일단 그렇게 문제를 덮고 시작하기 때문에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고, 반복되는 거예요. 조직과 경영을 연구한 학자로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빙산의 형상에 비유해 설명을 이어갔다. 기업의 경우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즉 핵심 사업이나 수익을 키우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빙산의 윗동이 잘 성장하려면 이를 잘 지탱하는 수면 아래 밑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밑동에 비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조직원이다.
“눈에 보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밑동을 이루는 조직원들의 고충이나 아픔에 대해 인정하고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종교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이런 밑동을 간과한다고 생각해요. 정년퇴임 후에는 잃어버린 밑동을 어떻게 복원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워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