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알던 ‘혼’의 개념은 ‘혼식(混食)’, ‘혼숙(混宿)’ 등 'Mixed'의 개념이었다. 혼식은 섞어 먹는다는 뜻이고, 혼숙은 같이 잔다는 뜻이다. 혼식 운동은 쌀이 모자랄 때 보리쌀이나 다른 잡곡을 섞어 먹으라는 운동이었다. ‘혼숙’은 남녀가 섞여 잔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 단어다.
동네 먹자골목에 얼마 전부터 “혼밥, 혼술 환영
이상한 일이다. 간식도 많이 먹지 않는다. 요샌 과일도 잘 입에 대질 않는다. 음식이라곤 하루 세 끼 챙겨 먹는 식사가 전부다. 모임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술자리가 많지도 않다. 매일 걸으려 노력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가까운 산에 오른다. 그런데 이놈의 뱃살은 변하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중년들이 하는 이런 흔한 고민에 전문의들은 당연하다 말
1999년 말에 퇴직 후 영어 번역 일을 시작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 원서를 번역하는 업무였다. 학위 논문에 원서 내용을 인용해야 하는데 원서를 해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필자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어와 실무에 밝으니 필자 만한 전문가가 따로 없었다. 매수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므로 밤낮없이 집에서 번역에 매달렸고 수입은 오
고금석 연극연출가
허망한 소싯적 꿈~
나의 원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문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던 것이고 1학년 때부터 경제원론이니 법학통론, 정치외교사 등을 두루 청강하였다. 5개 국어를 마스터할 계획도 세우고 첫 방학부터 중국어, 프랑스어 학원을 찾았다. 당시 독일문화원에는 독일 문학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대학생 모임이 있
수십 년 건축설계를 하면서 언제나 잠에 늘 허기졌다. 학창 시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설계과제 때문에 수시로 밤을 새웠다. 건축 작품전을 준비할 때는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써클 룸에서 먹고 자면서 전시 준비를 했다. 건축설계사무실 도제 생활을 할 때도 야근과 철야를 반복했다. 건축설계 사무실을 개업하고 나서는 밤을 새는 날이 더 많았다. 지금처럼 컴퓨
◇잠 못 자면 고전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면 다음 날 고전하게 되어 있다. 하루 종일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눈은 퀭해서 남들이 먼저 알아본다. 일의 능률이 떨어질 뿐 아니라 피곤해서 별 일 아닌데도 쉽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잠은 잘 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밤에 잠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는 늦잠으로 보충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움직이는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
SSDD가 뭐야?
호주 영화 ‘드림 캐쳐’에 자주 나오는 용어이다. ‘Same Shit Different Day’를 줄인 단어이다. 매일 같은 똥만 싼다는 뜻으로, 매일의 삶이 똑 같아서 지루하다는 뜻이다. 인사 조로 "요즘 어떻게 지내?"하고 물으면 시들한 표정을 지으며 "SSDD"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신나는 일을 만들거나 안 해본 것 중
부부가
부부가 함께 세월을 쌓다 보면 때때로 다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이 지옥 같은 전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한다. 그래서 집안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나 경제문제가 아니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작은 일들은 남편이 하자는 대로 대부분 들어준다.
그런데도 남편이 술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참 많이도 했다. 술을
대학원 시절 3총사가 있었다. A는 국무총리의 장남이었고 B는 국내 굴지 제약회사 사장의 장남이었다. 필자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 보통 아버지를 둔 처지여서 격차가 컸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지지직 전기가 통하여 거의 매일 당구 치러 다녔다.
셋이 당구 치러 가면 진 사람이 게임비와 술값을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셋은 진 사람이 게임비와 술값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