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컬 <오! 캐롤>
- 뮤지컬 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제목만으로도 신나는 춤과 음악이 어우러져 경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날 좋아했던 노래와 향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 큰 기대가 되었다. ‘오 캐롤’ 하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팝가수 닐 세다카가 만든 이 곡의 이름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한다. 가수였던 ‘캐롤 킹’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 사랑을 고백했다는데 그녀 역시 ‘오! 닐’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재치 있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이면의 이야기는 몰랐어도 닐 세다카가 만든 ‘오 캐롤’과 ‘유 민 에브리 씽 투 미’나 누구라도 들으면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는 ‘원 웨이 티켓’ 등 신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설레었다. 은 작년 말부터 공연을 시작해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극장을 옮겨 디큐브시티 극장에서 하는 이번 공연은 5월 7일 마지막 무대에 올려졌다. 필자는 이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공연을 계속한 건 그만큼 관객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연진도 매우 화려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톱 뮤지컬 배우가 모두 등장하는 것 같다.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유명한 뮤지컬 배우 남경주씨와 김선경씨가 캐스팅되었다. 무대도 화려했지만 오랜 기간 공연한 작품이어선지 배우들의 액션이 매우 자연스럽고 유연했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파라다이스 리조트에서 만난 네 커플의 유쾌한 러브 스토리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결혼식 당일 신랑이 나타나지 않에 충격을 받은 ‘마지’와 그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가수지망생 ‘로이스’가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찾아온다.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한때 화려한 스타였던 ‘에스더’가 운영하는 위락시설로 오랜 시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쇼 MC '허비‘가 가슴앓이하며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곳엔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노래하는 바람둥이 ‘델’과 그의 팬이자 후원자인 ‘스텔라’도 있고 급사 일을 하는 어수룩하지만 멋진 곡을 만드는 작곡가 ‘게이브’도 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아픔을 지닌 ‘에스더’는 오랜 시간 묵묵히 그녀를 지켜온 ‘허비’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여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기로 한다. 리조트는 가수 ‘델’과 그의 후원자인 ‘스텔라’가 맡아 경영하게 되고 파혼을 맞았던 ‘마지’는 용서를 빌며 찾아온 ‘레오나르도’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친구를 위로하려고 왔던 ‘루이스’는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가 ‘게이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고백을 받아들여 연인 사이가 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네 커플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좌충우돌 즐거운 뮤지컬이다. 한정된 무대에 여러 장치를 바꿔가며 공간 활용을 다양하고 멋지게 한 연출이 돋보였고 이제까지 보았던 뮤지컬의 음악 팀이 무대 아래에 배치되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무대 위쪽에 차려진 점이 독특했는데 리조트의 클럽 장면이 자주 나와 연주자들이 무대 위쪽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아주 신나고 멋진 음악은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8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1960년대의 의상과 분장, 무대를 통해 시대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세련되게 보여준 을 보면서 마치 배우와 한 무대에 있는 듯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며 흥겨운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젊은 날 매우 즐겨 불렀던 ‘원 웨이 티켓’을 들으며 향수에도 젖어봤다. 뮤지컬이 끝났는데도 흥얼거리고 있는 필자를 보며 웃음도 났고 기분도 좋았다. 우리 관객을 위해 화려하고 흥겨운 무대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2017-05-16 11:24
-
- ‘쉼표합창단’, 뇌전증 인식개선 위한 싱글 앨범 발표
- 싱어송라이터 이한철과 함께 하는 나우(NOW)프로젝트가 뇌전증의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디지털 싱글 앨범 ‘쉼표합창단’을 5월 8일 발표한다. 나우프로젝트는 공동 음악 창작 과정을 통해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는 지역 사회 협업 프로젝트다. 2015년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가까이’라는 노래로 시작으로 올해는 뇌전증 인식 개선을 위한 뇌전증 어린이와 가족 합창단인 ‘쉼표합창단’을 모집했다. 디지털 싱글로 발표되는 노래 ‘Have A Good Time’은 이한철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총 다섯 가족으로 꾸려진 쉼표합창단원이 함께 했다. 이 곡은 일시적인 경련이나 발작이 나타나는 뇌전증의 증상을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표현했다. 이 시간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모두가 더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나우프로젝트 관계자는 “이한철 감독과 쉼표합창단이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연습해가는 과정 자체가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Have A Good Time’이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따뜻한 공감으로 바꾸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지털 싱글 앨범 ‘쉼표합창단’으로 발표되는 ‘Have A Good Time’은 5월 8일에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음원 발매를 기념해 5월 11일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공연도 진행한다.
- 2017-05-08 11:06
-
- '민들레트리오', 싱글 '외출하는 날' 공개
- 시니어 뮤지션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노년반격(老年反擊)’이 4월 22일 디지털 싱글 앨범 을 발표한다. 나우(NOW)프로젝트는 공동 음악 창작 과정을 통해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자는 지역사회 협업 프로젝트이다. 2015년 장애 인식 개선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시니어 뮤지션과 노래를 만들며 새로운 시니어 모델상을 제시하는 노년반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해 노년반격 시즌2에선 ‘실버그래스’와 ‘바야흐로’가 발굴됐었다. 지난 1월부터 지원자를 모집한 노년반격 시즌2는 심층면접을 통해 ‘민들레트리오’를 선발했다. 이유진(보컬, 리드기타), 이수정(보컬, 키보드), 반보영(보컬, 기타, 젬베, 멜로디언)으로 구성된 ‘민들레트리오’는 여성 3인조의 아마추어 포크 밴드이다. 노년반격의 총괄 감독인 가수 이한철과 민들레트리오가 공동 창작한 ‘외출하는 날’은 이한철이 쓴 멜로디에 민들레트리오의 이야기를 붙여 완성됐다.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어 꿈꾸던 일을 접어두어야 했던 순간들로부터 외출하는 내용의 노래인 ‘외출하는 날’은 유려한 멜로디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끄는 가사가 특징이다. 지난해부터 노년반격을 함께 주최해온 이한철은 “‘외출하는 날’ 노래의 내용처럼 이번 음원 발매와 더불어 민들레트리오의 활발한 음악적 외출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싱글 앨범은 4월 22일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이어 5월 11일에는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 2017-04-21 13:50
-
- 갑자기 가족에게 치매가 찾아온다면•••
- 치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가천대 길병원이 제작에 참여한 연극 이 개막했다. 은 치매에 걸린 아내와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의 이야기로 치매환자 가족의 갈등과 화합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번 연극은 단순 치매를 주제로 한 공연에서 벗어나 치매 관련 분야 전문가인 가천뇌건강센터 이현 교수가 참여해 전문성을 더했다. 유승봉 프로듀서는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우리 주변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이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베테랑 배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이 출연한다. 치매 아내를 둔 남편을 연기한 배우 이순재는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4월 4일 막을 올린 은 5월 28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공연 정보 공연명: 가천대 길병원과 함께하는 연극 공연장소: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러닝타임: 90분 연출: 이재성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 2017-04-06 09:15
-
-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음악에 빠지다" 뮤지컬 <오! 캐롤> 한진섭 연출가
- 뜨거운 호평 속에 지난 2월 막을 내린 뮤지컬 이 더욱 화려한 무대와 출연진으로 다시 돌아왔다. 국내 첫 라이선스 공연부터 앙코르 무대까지 수장을 맡은 한진섭 연출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초연 무대 연출 계기는? 작년 초 처음 SMG의 박영석 대표가 음악을 들려줬다. 바로 가슴이 뛰었다. 어린 시절 듣고 좋아했던 닐 세다카의 음악들로 만든 뮤지컬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됐다. 꿈 많던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에너지가 삽시간에 되살아나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작업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감흥을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아주 강렬하게! 또 젊은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쩌면 단순하고 더딘, 답답한 템포의 시기였지만 느린 만큼 낭만적이고 진솔했던 그때를 이해하고 즐겨보기를, 그래서 세대 간 소통해 보길 권하고 싶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 이 작품은 ‘거창한’ 작품이다. 거의 창작한 작품이란 얘기다. 라이선스로서 이 작품을 처음 대했지만 거의 90% 창작했다 할 수 있다. 국내연출을 경험했던지라 주크박스 뮤지컬을 다시 만들 기회가 생긴 것이 무척 소중했다. 곡은 외국에서 왔지만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 제작진, 크리에이티브 팀 모두가 뜻이 같았다. 한마음이 되었고 를 대적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했다. 우린 진정 이 작품이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 소통하는 가족극이 되길 희망했다. 뜨거운 호평 속에서 앙코르 공연을 올리게 된 소감, 앙코르 공연에서 보완한 부분 큰 사랑과 호응을 얻어 감사할 따름이다. 앙코르 땐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기회가 금방 찾아왔고, 부담감보다는 설렘으로 작업했다. 첫째, 드라마의 개연성과 풍요로움을 위해 몇몇 캐스트의 대사와 곡을 추가했다. 둘째, 디자인 면에선 쇼 장면 조명을 더 화려하게 연출했다. 음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음향 디자인을 새단장했다. 안무와 쇼 의상도 더 화려하게 보충했다. 초연에선 ‘게이브’ 역에 대한 소개가 2막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다소 갑작스럽기도 하고 부족한 면이 있어서 1막에 자기소개 개념의 경쾌한 곡을 앙상블의 춤과 함께 추가했다. 또, ‘마지’와 결혼하기로 했다가 일방적으로 파혼을 결심한 ‘레오나드’의 속마음을 ‘허비’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장면도 넣었다. 더불어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1막 끝에 마지와 레오나드의 분명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과, 2막 후반부의 ‘오! 캐롤’ 넘버 때의 반전 장면을 조명과 음악을 통해 보충했다. 남경주, 서범석, 전수경 최정원, 김선경 등 중견 배우들과의 호흡은? 20~30여 년을 함께 호흡해왔다.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아 연습 중 오가는 깊이 있는 대화 덕분에 작품이 풍성해졌다. 내가 자칫 놓치는 주관적 대목도 그들의 예리한 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튼튼한 골격은 이미 세워졌다. 한마디로 화려한 시너지의 잔치였다. 중장년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 또는 음악이 있다면? 귀에 익은 노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One Way Ticket To The Blues’가 그랬고, 에스더를 향한 허비의 사랑고백 노래였던 ‘You Mean Everything To Me’가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작품 제목으로 사용 된 ‘Oh! Carol’을 신나게 따라 부르며 모두들 좋아했다. 한편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King Of Clowns’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마 극에 몰두한 상태에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어 감동적이었으리라 판단한다. 어떤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초연이 시작 될 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태가 혼란스럽다. 그다지 경쾌한 뉴스가 없다. 화려함이 아닌 담백한 음식을 차려놓고 따뜻한 방에서 가족끼리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길 바라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노력한 중장년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그들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과 그들이 속한 사회가 평안하면 좋겠다. 우린 ‘모두가 행복해지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기에. △한진섭 연출가 뮤지컬 , , , , , 외 다수 연출. 제6회·11회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등 수상. △ 뮤지컬 디큐브아트센터, 일정 5월 7일까지
- 2017-04-04 15:15
-
- 3월의 추천 전시ㆍ도서ㆍ영화ㆍ공연
- ◇ 전시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일정 5월 28일까지 장소 디뮤지엄 자유, 반항, 순수, 열정 등 유스컬처(Youth Culture)의 다양한 감성을 선보이는 대규모 사진전이다. 래리 클락, 라이언 맥긴리, 고샤 루브킨스키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28명의 사진, 그래픽, 영상, 그라피티 작품 240여 점을 총망라한다. 일탈과 자유, 반항과 열정 등 청춘의 내면에 공존하는 다면적인 감정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유스컬처의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청춘의 불안이 기쁨과 환희로 승화됐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 Saimdang, Her Garden 일정 6월 11일까지 장소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최근 TV 프로그램, 드라마, 도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시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선시대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의 기획 전시다.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자기계발에 매진했던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의 면모와 생애를 재조명한다. ‘초충도’를 비롯한 그의 대표 수묵화를 통해 뛰어난 미의식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관 이래 처음으로 ‘묵란도’를 소개한다. 화폭에 자연의 이치를 담고자 했던 그녀의 예술정신이 농묵과 담묵의 절묘한 조화로 발휘됐다. ◇ 도서 두 번째 서른 살: 사랑을 이야기할 나이(마리 드 에느젤 저·베가북스) 프랑스 심리학자 마리 드 에느젤이 10여 년간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얻은 성(性)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저자는 시니어의 성생활에 대한 이상주의를 경계하면서 다양한 연구와 인터뷰, 대담 사례를 통해 사랑과 성을 추구하는 노년의 삶에 대해 피력한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히로세 유코 저·인디고) 50세가 되면서 달라진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저자의 산뜻한 시선과 경험이 담긴 에세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점들을 담담하고 편안한 어조로 풀어냈다. ◇ 영화 눈길 일제강점기 말,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났지만 위안부라는 비극을 함께 겪은 두 소녀의 가슴 시린 우정을 그렸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2월 3일 와디즈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오픈해 30분 만에 목표금액(4000만원)을 달성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영화 수익금 일부는 위안부 피해자 시민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개봉 3월 1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나정 출연 김영옥, 김향기, 김새론, 장영남 등 아빠는 나의 여신 가상의 동네 오가와에 있는 작은 술집 ‘사요코’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 아빠와 딸의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랜스젠더라는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일본 영화 특유의 따스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케이노스케 감독은 낡은 술집에 다녀가는 손님들의 인간미 넘치는 사연을 통해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유쾌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애틋한 가족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개봉 3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하라 케이노스케 출연 스도 리사, 후지모토 이즈미 등 ◇ 공연 유도소년 2014년 초연, 2015년 재연 당시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세운 흥행작이다. 유도선수 경찬이 고교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도·복싱·배드민턴 훈련을 거친 배우들이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펼친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3월 4일~5월 14일 연출 이재준 출연 허정민, 박정복, 신성민 등 혜은이 콘서트 '열정' 가수 혜은이가 데뷔 45주년을 맞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다. 팬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달간 공연을 이어간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제3 한강교’, ‘열정’ 등을 마음껏 들어볼 기회다. 장소 대학로 SH아트홀 일정 3월 3일~4월 2일 출연 혜은이 머더 포 투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코미디 뮤지컬 의 국내 라이선스 첫 무대다. 두 명의 배우가 13명의 인물을 연기하며, 형사와 용의자 간의 실랑이를 그린 2인극이다. 의문의 총격 살인사건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극으로 빠른 전개가 흡입력을 높인다. 장소 DCF대명문화공장2관 일정 3월 14일~5월 28일 연출 황재헌 출연 김승용, 안창용, 박인배 등 윤동주, 달을 쏘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창작가무극이다. 일제강점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순수한 애국심을 노래한다. 윤동주의 대표 시 8편이 독백 대사와 노래가사 속에 담겨 있다. 장소 예술의전당 일정 3월 21일~4월 2일 연출 권호성 출연 온주완, 박영수, 김도빈 등
- 2017-03-08 10:08
-
- [브라보가 만난 사람]연극 연출가 김정숙, 연극은 결국 사랑이다!
- 연극 연출가 김정숙(金貞淑·56)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녀를 존경해”, “멋있어”, “사랑해”. ‘김정숙’이란 이름이 거론되면 하나같이 천사를 만난 경험담(?)을 쏟아내곤 했다. 한 번쯤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회가 없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에서 끝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씨처럼. 만나보자. 예전 같으면 대한늬우스에 나올 만한 국위선양(?)도 하고 돌아왔다. 그럼 한번 소리 소문 좀 내볼까? 김정숙 연출가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하 모들)의 대표로 28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스물두 살에 극단 에저또에서 연극을 시작해 스물아홉에 극단 모들을 창단했다. “운명이죠.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고 나서 ‘저 무대에서 평생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단에 들어간 첫날, 연습실 바닥을 붙잡고 ‘아! 이제 도착했다. 여기서 절대로 떠나지 않겠어’라고 서원처럼 의식을 치르듯 속으로 말했죠.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후 단 한 번의 한눈도 팔지 않고 오로지 연극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연극을 뺀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24시간이 늘 아깝고 모자라다. 그런데도 인터뷰 날 자정 전에 책상에서 일어난 일을 제일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뿌듯해한다. “제가 몸 생각하지 않고 연극 생각만 하니까요. 어쩌다 12시가 넘어버리면 4시까지 잠을 못 자더라고요. 그런 날은 다음 날 스케줄에 무리가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진짜 그러지 말자 해요.” 그녀의 또 다른 이름 ‘극단 모시는 사람들’ 김정숙 연출가의 분신과도 같은 극단 모들은 창단 이후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연극을 굳이 몰라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 , , 등이 모들의 대표작. 특히 은 토종 창작 뮤지컬 중 최고라는 호평을 들으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뮤지컬로 성공적인 삶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브로드웨이 식의 뮤지컬을 꿈꾼 건 아니었어요. 나는 음악의 비중이 크고 내용에 영향을 주는 소리극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나타나서 편리하게 이용했던 것뿐이죠. 그런데 마치 우리가 브로드웨이를 지향해서 가야 할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내가 원했던 소리극의 형태가 아니어서 음악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닫혔어요.”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모들의 창작 뮤지컬을 보기 어렵다. 화려함 대신 소박한 사람 이야기, 고전 속 주변 인물들에 주목하는 연극이 주류를 이룬다. 행복한 연극을 아는 예쁜 사람 모들은 지난 2003년부터 과천시민회관 상주 공연단체로 입주해 있다. 시민극장을 열어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있고, 모들의 대표 연극인 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프로그램 ‘신나는예술여행’에 선정돼 전국 8개 교도소를 돌며 공연하고 있다. “저는 대학로나 대극장 공연에 연연해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시골학교나 교도소에 가서 평생 연극을 본 적 없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행복해요. 얼마나 기쁜지 제 마음에서 사랑의 샘이 퐁퐁퐁 솟는 거 같아요. 진짜로요(웃음). 내가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 내 보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최근 2~3년 동안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우리 고향 초등학교에 연극 보여주기’ 이런 걸 하고 싶어 해요. 공연하는 데 300만원이 들면 출신 동창회에 도움을 청하고, 3만원씩 100명이 내주시면 고향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고요. 화려하게 신문에 오르내리는 그런 일 말고 진짜 일을 하고 싶어요.” 에든버러를 넘어 케냐까지 한국 연극을 알리다 지난 8월, 김정숙 연출가는 모들 단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이하 에든버러 프린지)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세계 공연예술 축제의 백미인 에든버러축제는 공연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 축제기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7000여 단체, 3만여 명의 공연자와 관객이 몰려와 도시를 가득 메운다. 에든버러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 좋은 공연이건 나쁜 공연이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기회라 김정숙 연출가는 에든버러 프린지를 사랑한다. “2008년에 처음 에든버러 프린지에 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갔어요. 당시 단원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연극을 해왔는데 뭐했지? 내가 명예를 얻었나, 물질을 얻었나? 나는 연극 안에서 얼마나 행복하지? 하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세계 연극 속에서 우리를 한번 비춰보자. 놓아보자’라는 심정으로 그곳을 가게 됐어요. 처음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좋아해줬어요. 매진에 객석 점유율 80%를 넘었고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더니 사람들이 티켓 박스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때 ‘아!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확인을 서로 하게 됐죠.” 올해 모들은 어린이극 과 그리고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를 가지고 에든버러를 다시 찾았다.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 공연은 김정숙 연출가의 치밀한(?) 계산으로 진행됐다. “케냐에서 이 초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예술경영지원센터에 항공권을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두 곳은 가야 받을 수 있다더군요. 그래서 에든버러 프린지와 케냐 공연을 엮은 거죠. 그런데 공연만 가지고 가는 게 아까웠어요. 케냐는 처음이지만 에든버러는 벌써 세 번째였거든요. 그래서 후배가 연출한 과 를 에든버러에서 공연해보자 했습니다. 4월까지 필요한 서류를 내야 했는데 그때 는 정말 시놉시스와 사진 한 장밖에 없었어요.” 에든버러축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다. 전쟁이 끝나서 이런 페스티벌도 생겼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 바로 위안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진 한 장과 시놉시스밖에 없었지만 에든버러 프린지 극장측은 흔쾌히 모들에게 공연장 문을 열어주었다. “이전 축제에 참가했을 때 작품으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저희가 거리쇼라든지 홍보 면에서 기여를 많이 했어요. 극장에 우리가 바로 그 팀인데 를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줄 수 있냐고 물었죠. 바로 OK 하더군요. 그 한마디로 정말 에든버러에 가게 됐어요.” 딱 시놉시스 한 장이었다. 공연에 관한 정보가 적어 일반인 대상의 홍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관객이 를 찾아왔다. “가 위안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잖아요. 하와이와 뉴질랜드에서 이 공연을 보러 오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80 노구를 이끌고 2차 세계대전을 실제 겪으신 분들이 오신 거예요. 하와이에서 오신 분은 이곳에서 볼 첫 작품으로 를 선택했다고 했어요. 4월에 공연 예매를 미리 해놨다면서 수첩까지 꺼내 보여줬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정숙 연출가는 다섯 번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 중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인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것이 소중했다고 말한다. 모들 단원과 김정숙 연출가는 낮에는 , 저녁에는 를 무대에 올리고, 밤에는 다른 팀의 공연을 보러 열심히 뛰어다녔다. 케냐에서 기립박수 받은 에든버러에서의 한 달 일정을 마치고 케냐 나이로비로 떠났다. NGO의 천국 케냐에는 NGO 활동가와 선교사 자녀들이 다니는 70년 된 국제 학교 로슬린 아카데미(Rosslyn Academy)가 있다. 이곳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700여 명의 학생이 관객이었는데 이런 공연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물론 영어로 공연을 했지만 ‘어떻게 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지?’라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시점에 쿵, 짝을 맞추는 겁니다. 공연을 완벽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관객을 케냐에서 만났어요.” 게다가 학생들의 자율적인 행동이 몹시 감동스러웠다. “교정 한 곳에서 쿠키를 팔고 있었어요. 먼 나라에서 공연 팀이 왔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요. 그런 기획을 어린이들이 했다는 말이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전 세계 아이들이 모여 편견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학교였어요. 에든버러에서는 뛰어다니고 정신없었다면 케냐에서는 큰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관록이 묻어나는 시니어 배우들 모시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김정숙 연출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공연(11.25~26 과천시민회관 소공연장)을 준비 중이고 교정시설 공연도 다녀야 한다. 과천 시민과 함께하는 연극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시민극장에 시니어 층이 많다는 얘기에 시니어의 연극 참여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극장에 60대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요. 배우 중에 저와 어렸을 때 같이 연극하던 선배가 오셨어요. 연극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신 분인데 은퇴하고 나서야 돌아오신 거죠. 오디션 때 너무 멋있었어요. 인생이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이제 진짜 배우가 될 거 같아요. 시니어들은 인생을 다 겪으신 분들이라 어떤 이야기든 무대에서 제대로 표현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무대로 돌아온다면 100% 환영하고 지원할 겁니다. 잘하실 수 있도록 적극 도와드릴 거예요. 내년에 무대에 올릴 작품에는 등장인물과 같은 나이의 배우들을 참여시킬 계획입니다.” 시간이 흘러 연극 일을 안 하게 되면 무엇을 할 건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이 누룽지를 눌러 파는 누룽지 할머니가 되고 싶단다. 누룽지 한 컵에 1000원, 한 평짜리 가게를 얻어서 누룽지를 팔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마냥 철없고(?) 청순한 소녀 같다.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들을수록 맛있고 찰지다. 영락없는 이야기꾼. 아직은 우리 연극을 위해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극이 뭐냐고 물었다. 거침없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딱 하나인 거 같아요. 어쨌든 작업 안에서 마지막 선택은 항상 사랑이었어요. 일을 하다 보면 나한테 어떤 이득이 될까를 고민하잖아요. 가끔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랑을 선택했어요. 연극을 향한 사랑. ‘세상에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기는 것은 없다’는 사실, 제가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든버러축제(Edinburgh Festival)란? 에든버러축제는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작된 공연 축제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정신을 치유하려고 만들어진 이 축제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와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Edinburgh fringe Festival)로 나뉜다. 인터내셔널의 경우 100여 개의 공연을 전 세계에서 엄선하기 때문에 초청되는 것 자체가 영광. 프린지는 1947년 채택되지 못한 공연 팀이 축제가 열리는 주변에서 공연한 것이 지금의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로 정착됐다. 올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의 14개 공연 팀이 참여했다. 2011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축제에 극단 목화의 가 최초로 초청됐으며 ‘헤럴드 에인절스’ 상을 수상했다. 김정숙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 1982년 극단 에저또 입단 1984년 연출 데뷔 1989년 5월 극단 모시는 사람들 창단 주요 수상경력 -뮤지컬 스포츠조선 뮤지컬 희곡부문 대상, 1996 서울연극제 현대소나타상, 1996 백상예술상 대상, 작품상, 희곡상. 1996 희곡작가협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 2003 -연극 희곡협회 올해의 희곡작가상, 2003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연극상, 2011 대한민국 클린콘텐츠 국민운동본부 선정 클린콘텐츠상, 2015
- 2016-11-11 10:05
-
- [배국남의 뉴컬처 키워드] 대중음악계 강타하는 힙합 열풍
-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요즘 힙합 열풍이 대단하다. 힙합이 음악의 대세로 떠올라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대중들의 일상 대화에 다이믹 듀오, 도끼, 매드 크라운, 비와이, 보이비 등 힙합 뮤지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멜론 등 각종 음원차트 상위를 ‘데이 데이’, ‘포에버’, ‘호랑나비’ 등 힙합곡들이 차지한다. , , 등 힙합 관련 프로그램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KBS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힙합 스타와 힙합곡 패러디가 유행이다. 힙합 열풍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이지만 힙합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물론 “힙합이 노래냐?”라는 냉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욕설까지 포함된 랩 등 일부 힙합 가사를 두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며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방송에 나온 힙합 뮤지션들의 팔과 몸에 드러난 문신과 파격적인 패션 스타일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중·장년층도 많다. 하지만 중·장년층이 음악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태도는 자식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소통을 배가시키는 첩경이다. 압축적인 고도성장, 급변하는 사회, 고령인구 증가, 산업구조 변화, 전통적 가족 해체, 가족 구성원의 역할 변모, 젊은 세대의 미래지향적 태도와 장·노년층의 과거지향적 인식의 충돌 등 다양한 원인으로 세대 간의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여러 곳에서 표출되고 있는데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간극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서로의 문화와 콘텐츠 향유는 고사하고 이해조차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세대 간의 문화에 대한 무시와 폄하 행위까지 횡행한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에서 세대 갈등의 해결책으로 “세대 간에 서로의 창조적 자의식을 북돋우면서 포용력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며 열광하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문화와 생활,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힙합을 이해하는 것 역시 젊은이들의 문화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자 젊은 세대와의 소통의 기회를 확장하는 기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힙합을 통해 미국 젊은이들의 현실과 고뇌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 미국의 가난한 흑인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거리의 음악, 힙합은 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일상의 삶이나 욕망과 분노를 드러내는 랩, 레코드 스크래치, 브레이크 댄스 등이 가미된 음악과 문화를 지칭한다. 힙합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은 음악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라임을 이루는 말을 리듬에 맞춰 음악적으로 발성하는 랩이 한국 음악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한국 대중과 처음 만났다. 1990년대에는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지누션, 드렁큰 타이거가, 2000년대에는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등이 힙합 음악을 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한동안 힙합 음악은 일부 청소년과 젊은이들만이 환호하는 하위문화, 비주류 음악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와 힙합 뮤지션이 많이 늘어났고 , , 등 힙합 관련 방송 프로그램과 공연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힙합에 환호하는 대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힙합 신드롬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힙합에 환호하는 이유는 힙합이라는 음악이 갖는 매력 때문뿐만이 아니다. 저항과 분노, 욕망을 거침없이 표출하고 편견을 깨는 음악에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한 아이돌 음악과 발라드, 트로트는 사랑 아니면 이별을 소재로 하는 비슷한 가사와 멜로디가 많다. 이런 음악에 식상함과 진부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힙합은 기존 음악과 확연한 차별화를 보이며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의식, 저항, 분노를 풍자나 디스, 스웨그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한다. 또한 개인적인 감정과 입장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3포 세대, 흙수저,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어려운 현실 속 젊은이들은 이러한 힙합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과 의견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그래서 힙합을 이해하면 젊은이들의 음악과 문화는 물론 그들의 고통과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Coffee shop에서/ Part time job으로 나는 Two job/ 아침과 밤이 다른 나의 자화상이/ 또 나를 부르네/ 생활비는 내 손으로 벌어 써/ 두발로 딛는 서울 땅에서 …척하면 척인 나의 눈칫밥만 더 늘어나는 사이/ 현실 앞에서 누구도 대변해줄 수가 없지/ 이것도 피하지 못한 내 현실’ 에서 우승한 자이언트 핑크가 부른 ‘돈벌이’ 가사의 일부다. ‘어쩌다 내가 이 게임에 몸을 던졌나/ 가난이 죄고, 학벌이 깡패라는데 아/ 너 그렇게 과속하고 달려가면/ 개천의 용은 멸종위기 1급 동물/ 시작도 하기 전에 아연실색/ 쫓아가는 것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네/ 뒤처지기 싫어 꽉 어금니 깨물어도/ 노력과는 상관없어 뒤처지는 경쟁 구도…’ 힙합 뮤지션 MC메타가 지난 5월 방송된 에 소개한 ‘개천에서 용이 날까용?’ 랩 가사다. 우리는 이 두 곡의 힙합 가사를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 2016-11-08 17:47
-
- [브라보가 만난 사람] 이기수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의 110세 프로젝트
- 17대 고려대 총장, 사립대총장협의회장,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중국연변과학기술대·러시아모스크바국립대·미국조지워싱턴대 등 국내외 유수 대학의 명예교수 및 석좌교수를 역임한 이기수(李基秀·71)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의 경력은 법학자로서 얻을 수 있는 화려한 성공 사례들의 목록이다. 그런 그가 법학이 아닌 예술계의,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의 이사장이 된다고 했을 때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소 돌출적인 행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그 선택이야말로 확고한 기준을 갖고 이뤄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사장이 예술을 접하는 시니어로서의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평생 학자로 살면서 몸에 밴 버릇이자 의지일 것이다. 이기수 예원실그림문화재단 이사장은 요즘도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 그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 말,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를 신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유한합니다.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살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체험하는 거니까 책을 읽는 만큼 내 삶이 더 윤택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죠. 나는 법학을 공부했으니 법학에 대해선 조금 알지만, 그 밖의 경제와 인류, 문학과 예술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모든 것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가져와서 내 삶에 녹여 삶을 좀 더 향상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예술의 후원자가 되다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이사장은 그동안의 삶을 법 연구로 세운 대표적인 법학자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배영 이화여대 총장께서 가까이 지낸 사람들을 예원실그림문화재단에 초청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손인숙(예원실그림문화재단 관장) 작가가 만든 를 보고 ‘어떻게 저런 작품을 직접 만들 수가 있었을까. 저건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싶었죠. 그런 걸 오천 점 정도 만들었다니까, 신의 경지여야 할 수 있는 거로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작품에 매료되어 있는데 손 작가가 재단을 만들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가 갖고 있던 돈 삼십만원을 후원금으로 냈어요.” 이 이사장은 손 작가의 첫 후원자였다. 재단 통장에 첫 번째로 후원금을 넣은 첫 후원자로서 이 이사장은 손 작가의 요청으로 이사장까지 맡게 됐다. “한국의 예술이 파리를 침략했다”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작품 전시와 공연이 진행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부터 12월 말까지 130개의 작품을 전시 및 공연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파리에서 3개의 작품 전시 및 공연이 이뤄졌는데 각각 종묘제례, 공예 작품, 그리고 손 작가의 실그림 작품이다. 실그림 작품 전시는 우선 프랑스 국립박물관인 기메박물관에서 했고 이어서 니스 동양박물관에서 콜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8월까지 3개월 동안 8만 명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르몽드 지는 ‘한국의 예술이 파리를 침략했다’라는 카피를 내놓으며 두 번이나 지면에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예원실그림문화예술로 한국 예술의 위대함을 유럽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흡족해했다. “지난 9월에는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과 만났어요. 이분이 여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을 가서 프랑스 부모님 밑에서 프랑스 사람으로 자랐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으로 소개됐던 사실이죠. 그런데 손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서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다는 걸 자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원실그림문화재단에 와서 작품을 보고는 계속 감탄하시더군요. 전통과 모던의 조화라고요.” 이사장이 추구하는 ‘헌법에 입각한 예술론’ 이사장 역할까지 하면서 실그림을 알리는 데 열정적으로 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는 할 수 없고, 예술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총장을 끝내고 난 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결론은 나머지 인생을 대한민국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바치겠다는 거였죠.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까 또 고민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만든 헌법 소책자가 눈에 띄었어요. 헌법을 지키는 게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근거를 헌법에서 찾았고, 그 텍스트에 입각해 자신을 설명했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가 성립되려면 주권, 국민, 영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입니다. 이는 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죠. 그리고 해야 할 게 9조입니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제 남은 인생을 대한민국 헌법 가치 제고와 통일, 문화가치 창달에 투신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예원의 작품들을 보고 내 나머지 인생을 위한 이사장직을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던 거죠.” 실그림에 담긴 민족문화 창달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이라는 빨간색 소형 책자. 그는 기자에게 헌법 제9조와 69조를 읽어보라고 했다. “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고, 69조는 대통령 취임 선서문인데, 여기에도 대통령으로서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라고 적혀 있지요.” 현재에 만족하는 삶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 중 이 이사장은 1945년생이다. 이제 70이 넘어가는 시니어로서 젊을 때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정년을 했기 때문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웃음). 명예교수로서의 생활이 참 좋습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시간이 있어 국선도를 배우기 시작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주가였는데 이제는 반주 정도로 줄였어요,” 이 이사장은 최근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쓰면 손녀가 정리해주고 있다. 이 이사장으로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이고, 손녀에게는 할아버지의 삶을 체험하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쓰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가 이렇게 잘 기억이 나네’ 하고 마누라한테 얘기하니까 마누라가 ‘당신이 술을 안 먹으니 머리가 맑아져서 그런 거잖아’라고 하더라고(웃음).” 이 이사장의 경력은 대부분의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 자신은 잘살아왔다고 생각할까?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둘 다 시집 장가 잘 갔어요. 친손녀가 대학 3학년, 친손자가 대학 1학년, 외손주 중에 가장 큰 녀석이 대학 1학년이고 둘째가 고3, 셋째가 중3이죠. 제 처가 오십 될 적에 가족들 전부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이번에 칠순잔치 때 다시 모여 사진을 찍었어요.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찍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 또 있었다. 올해 3월 1일, 그의 제자들 중에서 마흔 번째 교수가 탄생한 것이다. “학문을 하는 학자 입장에서 제자가 마흔 명이나 4년제 대학 교수로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그는 확실히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실 총장 재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그때 사진보다 지금 사진이(웃음) 다들 좋다고 그래요. 그때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시간에 쫓겼고 저녁에도 두세 군데 들러 인사해야 하고 그랬으니까. 지금은 자유를 느껴요.”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사장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대답은 천생 학자다웠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로 돌아가고 싶죠. 공부할 때가 가장 좋았어요. 가장 행복했고. 논문만 쓰면 되니까(웃음).”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일과 함께 진행하는 작업이 또 있다. 30년 동안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 중 조교가 스물일곱 명, 교수가 마흔 명이 나왔다. 그 제자들이 그와의 인연을 원고로 만들고 있다. 이제 제자들과의 인연을 정리한 원고는 책이 되어 그의 삶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회고하는 증거로 남게 될 것이다. “2010년 12월 30일은 제가 만으로 예순다섯 살 되던 날이었어요. 정년퇴임 논문집을 만들어 롯데호텔에서 기증식을 가졌는데 그때 말했어요. 내 인생 20년은 준비기간이었고, 45년은 고대 법대, 독일 박사, 회사법·공정거래법·지식재산권법·국제거래법 갖고 먹고 살았는데 예순다섯 살부터 45년간은 다른 나라들에서의 인연과 대한민국의 가치를 제고하면서 살겠다고. 그럼 110세예요. 그런데 왜 하필 110세냐. 고려대가 1905년에 만들어졌는데 2055년이 고려대 150주년이에요. 그해가 마침 제가 110세 되는 해고. 그래서 고려대 150주년이 되는 5월 5일에 17대 고대 총장을 한 사람으로서 축사하는 게 마지막 내 꿈이에요.” 그는 호탕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사실 이 이사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가장 쓰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내용은 그의 섬세한 친화력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 당일 약속시간보다 좀 늦었다. 자식뻘 되는 기자인데 늦어도 괜찮다며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웃었다. 며느리에게도 이름을 불러주는 시아버지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110세까지 발굴에 나설 민족문화의 정수로서 마르지 않은 깊은 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깊은 연구와 후덕한 인품으로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내고 학계에서 우뚝 섰던 그가 요즘 부단히 자신에 관한 기록물을 만들면서 스스로 정한 가치에 열렬히 투신하고 있다. 이런 이사장은 과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 대답은 단순했으나 여운이 길었다. “저는 전주 이씨 경남 하동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산 사람이다’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 2016-11-01 10:37
-
- [지금 동경은] 전업주부 곤도 유키코의 화려한 제2 인생
- 영화감독 꿈꾸던 소녀 음악PD가 되다 인터뷰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작은 체구에 단단한 관록을 풍기면서 함박웃음으로 맞이해 준 ㈜콘코르디아(CONCORDIA)의 대표 겸 음악 프로듀서 곤도 유키코(近藤由紀子, 67)는 이시카와현(石川縣) 나나오시(七尾市) 출신. 육군비행학교를 나와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 때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에서 전투를 치르고, 오키나와에서 특공대로 소집돼 죽음의 출격을 앞둔 상황에서 1945년 8월 15일 패전을 맞이한 부친, 그리고 평범한 주부였던 모친 사이에서 유키코는 1949년 1월에 태어났다. 바로 이른바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단카이(團塊) 세대인 셈이다. “철들 무렵 늘 영화관에 있었다. 당시 나나오시에는 오락물 혹은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엄마 세대는 전쟁의 아픈 기억과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영화였는데, 엄마를 따라 서양 영화를 비롯해 일본 영화 등 모든 장르의 작품을 봤다. 그러다가 혼자서 ‘할머니를 찾으러 왔다’며 영화관에 들어가 작품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울러 영화와 관련된 음악도 열심히 들으면서 막연하게나마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웠다.” 청운의 뜻을 품고 와세다 대학으로 영화감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더 큰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자 유키코는 도쿄(東京)의 와세다(早稻田) 대학 제1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막 올라온 소녀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기만 했다. 이웃사촌처럼 터놓고 지냈던 나나오시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別世界)에 크고 작은 문화충격도 받았지만 영화 때문에 싹튼 꿈을 위해 뭐든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아는 친지도 없고 인맥도 없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로 처음부터 하나씩 쌓아 나가야 했다. 신기하게도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 주셨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소녀가 열심히 뭔가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예쁘게 봐 준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TV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학생 신분으로 일본 엔카(演歌)계의 최고봉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거물급 여배우 나카무라 타마오(中村玉緖) 등의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직접 옆에서 지켜보면서 영화계에 대한 동경심도 더욱 강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폐쇄적인 영화계 풍토에서는 여성의 입지가 정말 좁다는 현실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대학 나와 첫 직장은 ‘이와나미 홀’ 유키코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를 배운 다카노 에츠코(高野悅子, 1929년생. 영화운동가, 영화 프로듀서, 방송작가 및 연출가 등)가 운영하는 ‘이와나미(岩波) 홀’에 입사한다. 당시 이와나미 홀은 232석의 작은 극장이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을 비롯해 유명 사진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다카노는 ‘마음’과 ‘신념’으로 일했다. 진짜는 언젠가 반드시 세상의 빛을 받으며, 평가받을 것이라는 진지한 자세를 그때 배웠고, 이것이 나의 출발점이 됐다.” 이와나미 홀에서 2년간 근무 후 그녀는 일을 포기한다. 결혼으로 두 아이가 생겼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에만 집중해 모든 힘을 기울이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육아를 선택해 엄마의 길을 걷는다.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낌없는 사랑으로 육아를 마친 유키코는 49세 때 아티스트 프로듀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물론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꾸리는 틈틈이 시나리오 작가를 공부하고, 드라마 기획서도 쓰는 등 조금씩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가코 다카시(加古隆, 1947년생)가 음악을 담당했던 NHK 특별 다큐멘터리 에 감동하여 2000년 스페셜 콘서트를 기획해 도쿄, 오사카(大阪), 가나자와(金澤), 후쿠시마(福島) 등을 돌며 전석 매진의 흥행을 거두었다. 2003년에는 히비야(日比谷) 공원 야외음악당에서 개최한 에도(江戸) 400주년 기념 오프닝 이벤트 등도 꾸미는 등 늦깎이 프로듀서의 열정과 실력이 조금씩 평가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전쟁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의 레퀴엠으로 콘서트를 열어 21세까지 이어지지 못한 그들의 넋을 제대로 위로하는 진혼곡(鎭魂曲)을 들려주고서 21세기 평화와 생명의 시대로 힘차게 나아가자는 뜻을 담으려고 했다. 기획서를 쓰고 2년 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뜻을 함께하는 분들을 모았고 스폰서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그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눈물과 박수로 다시 한번 음악의 힘을 느꼈으며, 큰 보람과 함께 정말 값진 보물을 얻은 기분이었다.” 한국과 인연도 깊어 2015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의 젊은 성악가 2명이 함께 기념 공연을 펼친 바 있다. ‘한국판 폴 포츠’로 불리는 팝페라 가수 휘진(권휘진)과 일본인 테너 가수 고하시 고헤이(古橋鄕平)가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의 기요이(紀尾井) 홀에서 ‘같이 울리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듀엣으로 화합과 희망의 선율을 선보이는 감동적인 무대를 꾸몄다. 물론 곤도 유키코가 기획한 공연이었다. 그녀는 가수 휘진에 앞서 2004년 9월부터 R&B 남성듀오 ‘소리(SoRi)’, 그리고 2007년 솔로로 전향한 가수 케니(홍기현) 등을 일본에 데뷔시키는 등 꾸준히 실력 있는 한국 아티스트를 찾아내 적극 소개해 왔다. 휘진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힘으로 미래를 믿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피해 지역을 수차례 찾아가 자선 콘서트를 펼쳤듯이 케니도 2007년 9월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에게 바치는 곡 ‘눈물-세계 어디선가 이 순간’을 발표해 수익금의 일부를 캄보디아 빈민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 등에 기부했다. 부제 ‘흐르는 눈물을 미래의 아이들 빛으로 바꾸기 위해’가 붙은 이 노래는 곤도 유키코가 직접 노랫말을 썼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즘 세계의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일본은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 위에 패전을 맞이했고, 그 뒤를 이어 태어난 우리 단카이 세대는 평화 속에 살아올 수 있었던 걸 감사하면서 계속 평화를 지켜가야 하는 사명이 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 미래로 이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이 바로 내가 할 일이고,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로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 뜻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하는 자리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원점에서 소통을 다시 생각 2003년 54세의 나이로 자신의 뜻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음악·예술 기획사 콘코르디아(CONCORDIA)를 설립한 곤도 유키코는 평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음악·예술 문화는 평화의 사절이며, 사람들 마음을 비추는 밝은 빛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을 응시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음악과 예술을 통해 국경, 민족,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상호 소통과 연대감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길 바랄 뿐이다.” 2015년 5월 회사 창업 12주년을 맞이해 프로듀서 이름으로 결혼 전 이름인 후지하시 유키코(藤橋由紀子)를 내걸고 원점에서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을 선언한 그녀는 “신으로부터 목숨을 받아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인간의 도리이다. 또한 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을 통해 교류를 넓혀가면서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국경을 넘어 서로 돕고 힘을 합치는 것, 바로 이것이 소통이고 문화의 시작이다”며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 2016-09-01 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