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무엇인가요?” 일반적이지만 어쩐지 고민하게 되는 질문일 수 있다. 은퇴 후 나만의 시간이 갑자기 늘어났을 땐 더더욱 말이다. 그래도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선 늘 뭔가를 실토(?)하게 될 터. 아직 여가 시간에 즐길 거리를 탐색 중이라면,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취미 활동은 어떨까.
사회에서 오랜 시간 바삐 살아오다 어느 날 은퇴하면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길다. 가슴에 품고 있던 낭만을 펼치고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몇몇 선배들의 사례를 참고해 영감을 얻어보자.
그 시절 분위기 물씬, 푸른솔아코디언
아코디언은 들고 다니면서 멜로디와 화음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악기다. 건반이나 버튼을 통해 더욱 다채로운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베이스 연주법, 바람통과 몸의 호흡, 생소한 건반·버튼 위치 때문에 친해지려면 시간을 제법 투자해야 한다. 가운데 주름진 바람통을 이용해 공기 압력을 조절하고, 금속제 리드를 진동시켜 연주하는 방식이다. 따로 몸체에 마우스피스를 설치해 입으로 바람을 넣을 수도 있다.
아코디언은 1910년 이후 1980년대까지 학교나 교회에서 반주용 악기로 사용되던 풍금과 소리 내는 원리나 음색이 비슷하다. 소리 자체가 구슬픈 느낌이 나기 때문에 트로트와 잘 어울린다는 평이 있다. 트로트 곡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면 특유의 구성진 분위기를 살릴 수 있어서란다.
푸른솔아코디언 팀은 60~80대 어르신 5명이 모여 합주를 한다. 낙원악기상가 인근 음악학원을 다니던 수강생 중 마음 맞는 이들끼리 팀을 꾸렸다. ‘소나무처럼 늘 푸르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정성스레 이름을 붙였다. 팀원 모두 10년 가까이 아코디언에 푹 빠져 지냈다. 어느 해 여름에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12kg에 달하는 악기를 둘러메고 노래방을 찾을 정도였다. 까다로운 환경이었지만 매주 모여 연습하고 대화를 나누니 가족만큼 서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김태경 어르신은 아코디언이 ‘1인 오케스트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 대의 악기로 선율과 반주를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며, 다채로운 음색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다루기 쉽지 않은 터라, 합주는 더욱 협동 과정이 중요하다. 실제로 팀원들은 발을 까딱이거나 노래를 부르며 박자를 맞춘다. 그는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함께 호흡을 맞추고 공연하다 보면 보람이 있다”며 “처음부터 싫증 날 만큼 너무 과하게 열심히 하기보다, 하루에 10분이라도 꾸준히 연주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 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코디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한편 푸른솔아코디언 팀은 함께 합주를 즐길 동료를 모집 중이라고 한다. 좀 더 자세한 생활 문화 정보와 모집 요강이 궁금하다면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으로 문의하면 된다.
하늘하늘 우아한 곡선, 연제춤사랑
부산 연제춤사랑 무용단은 1997년 연제 어머님 무용단으로 출발했다. 현재 조덕화 회장을 비롯해 50~60대로 이루어진 17명의 단원이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여러 지역 축제나 경연 대회에 참가하고, 수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단다. 특히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춤 선을 선보이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부채춤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예술적 행위다. 1954년 김백봉 선생에 의해 창작됐다. 부채를 양손에 쥔 채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를 이루며 펴고 접고, 감고 펴 올리는 다양한 형태의 춤사위를 구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형이 시시각각 바뀌고 발은 바삐 움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고고하면서 반듯한 자세가 중요한 기법이자 원리라고 한다. 동시에 직선이 아닌 곡선을 바탕으로 태극선, 꽃봉오리 모양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야 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구성원이 전문가와 견줄 만큼의 실력이었던 건 아니다. 단원들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젊어서 해보지 못한 것을 늦게나마 이뤄볼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고 한다. 연제춤사랑의 부채춤 교육을 맡고 있는 이정희 강사에 따르면, 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부채를 다루는 방법부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맞추기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매주 2회 수·금요일 두 시간씩 기본무(한국무용의 기본이 되는 동작)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꾸준히 연습하면서 실수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단원들 사이는 굉장히 끈끈하다고. 코로나19가 기승일 때는 서로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만큼 애틋했단다. 모두 전통의상을 갖춰 입고 각자의 자리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임을 맞추다 보면 더욱 유대가 생기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한 단원은 “힘들 때도 있지만 머리와 몸을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면서 “단원 친구들과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식사하고 수다 떨면서 재밌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제춤사랑의 목표는 ‘지금처럼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다. 단원들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포함해 여러 축제 및 대회에서 다양한 춤을 선보이고, 연제춤사랑 무용단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정희 강사는 “단원들이 공연 때마다 많은 시민의 호응을 받으며 에너지를 얻는다”며 “이제는 ‘연제춤사랑’이라고 하면 부채춤 추는 무용단으로 소문나 있고, 전통문화를 전승한다는 보람과 지역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