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 어느날에 한때 잘 알고 지내던 25년 대학후배 녀석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전화를 하였다. 반가워하며 서로 수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후배가 "선배님 저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녀석 최근들어 바뻐서인지 연락이 뜸하다가 결혼연락하기 위해 주소 물어볼려 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짜고짜로 선배님 "저희 결혼식 주례를
가정의 달이 되면 기억에 떠오르는 한 평범한 가정이 있다.
박 선생은 50전 후의 여자였다. 서울 강남에서 다과와 음료수를 겸한 알뜰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떤 날 전혀 모르는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꼭 전해 달라는 편지 부탁을 받고 서울에 왔는데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편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복은 참 아름답다. 가지런히 역삼각형으로 내려오는 새하얀 동정 깃에 고운 빛의 저고리와 치마가 이루는 조화는 세계의 어느 나라 드레스에 비할 바 없이 멋지다. 예쁜 색상과 날렵한 선도 멋지지만 음식을 많이 먹어도 배가 감춰지는 치마의 풍성함도 좋다. 그러나 제대로 갖춰 입으면 행동하기에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 상용하는 옷이 되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으로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은 대부분 잃어버린 물건을 아깝게 생각하고 지금의 것보다 예전의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을 내가 직접 겪고 보니, 위 속담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진다.
주로 지하철로 출ㆍ퇴근하는 필자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5호선 전철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해 전철 안에
광복 이후 한국인을 설명하는 말은 ‘빠르게’다. 무조건 ‘빠르게’에만 집착한 우리는 너무 오래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놓치고 부수고 망가뜨렸다. 이제 우리는 걷기에 대해 물어봐야 할 때다. 신정일(辛正一·62) 우리땅걷기 이사장은 걷기를 하나의 문화로 정립하고 전파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동학을 복권시킨 황토현문화연구소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볼링그린공원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 동상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뉴욕시립대학교. 아침 10시 무렵이 되자 세련된 차림새의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들어간다. 주변에 밀집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직 인사들처럼 보이지만 평생교육원에 등교하는 학생이자 교수들
20일 남짓한 여행. 사소한 계기였다. 스스로 계획한 여행도 아니었고, 남들 다 가는 흔한 장소도 아니었다. 운명의 사람을 만났다거나, 생사를 넘나드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되는 이 기간의 여행이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장소가 바로 지구의 남쪽 끝, 인간의 발걸음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남극대륙이었기
100세 시대,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과도 같다. 이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았을 때는 누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20여 년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김철수(金哲秀·62) 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모의 치매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김 원장은 “나
허병두 숭문고 국어 교사
예순도 안 된 나이에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분들이 가득 계신 이러한 공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교사로서 보낸 지난 30여 년을 돌이켜 보는 것은 지금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둘 만하리라. 더구나 최근과 같이 교사라는
짜장면이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던 시절, 졸업식 날이면 학교 인근 중국집마다 짜장 볶는 내음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술을 새까맣게 범벅해가며 짜장면을 흡입했던 날들도 빙긋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의 향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70년 동안 3대에 걸쳐 추억이 고픈 이들에게 변함없는 짜장 맛을 선사하는 인천의 ‘신성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