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 책 제목이 도전적이다. 제목만 보니 내용이 궁금해진다. 책을 집어 들면서 기대를 했다. 이 책 속에는 이제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열어갈 의학적 비법이나 하다못해 생활비법 같은 것이라도 존재할 줄 알았다. 그런 책이 아니다.
사람이 글자 그대로 천수를 누린다면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150세를 말한다. 성경에는 몇백 세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동양의 삼천갑자 동박삭이는 무려 18만 년을 도망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은 오래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 더더욱 아니다. 저자가 스스로 120세까지 살기로 했다고 고백한 책이다.
저자 이승헌은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뇌 교육자, 평화운동가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120세까지 산다고 남들에게 말하니 그 반응이 세 가지로 돌아왔다고 한다.
“백이십 살? 그게 정말로 가능해요? 아직은 꿈에 불과하죠.”
“백이십 살? 아이고! 그건 나에게 지옥이에요!!”
“백이십 살? 맘먹는다고 그게 되나요? 천수를 누리다 가는 거죠.”
현재까지 최고로 오래 산 사람으로 기록된 이는 122세 프랑스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122세의 남궁 할머니가 투표권을 행사했다. 120세가 마냥 꿈의 나이는 아니다. 세계적인 IT기업 구글은 생명연장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인간수명 500세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자는 첫 번째로 나이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80세 인생이라고 보면 저자 나이(집필 당시 기준) 67세는 마무리 단계이지만 120세 인생에서 보면 남은 시간이 50년이 넘는다. 긴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었을 하고 살 것인가? 질문을 던지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두 번째로는 120세까지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운이 좋아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인생을 스스로 경영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니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 오래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틈만 나면 운동을 하고 체중을 관리한다. 자연스럽게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된다.
세 번째로는 계획을 세워 움직이니 뇌가 자극을 받아서 젊었을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120세를 선택하고 보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다. 노년을 긴 안목으로 설계할 여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인생 다 살았다고 축 처져 있는 무기력한 삶보다 희망을 품고 노력하며 능동적으로 사는 삶이 훨씬 건강하다.
저자는 호서대학교 설립자인 강석규 박사의 ‘어느 95세 노인의 고백’을 예로 든다. 강 박사는 열심히 살아 실력을 인정받고 존경을 받았지만 65세 은퇴 후 30여 년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덧없고 희망 없이 산 3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후회가 됐다는 얘기다. 우리도 120세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생산적인 활동에 종사하면서 밝고 건강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섭생과 운동으로부터 온다. 저자는 운동은 습관인데 젊어서부터 운동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않으면 늙어서 더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며 자신의 아버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94세에 돌아가셨는데 80세를 넘기면서 기력이 부쩍 쇠해지고 운동도 싫어하셔서 고작 좋은 음식 드리고, 팔다리 주물러드리는 것밖에 못해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건강할 때 운동법을 알았다면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셨을 거라고 후회한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집착을 버려야 평화로워진다고 한다. 부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노년은 고독하다. 고독을 즐기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60대 이후에는 포용과 관용을 베풀고 명상을 생활화하면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120세까지 살지 않으면 안 될 위대한 꿈을 품으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100세까지 살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나는 과연 몇 살까지 살게 될까!’ 궁금해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는다. 장수유전인자 뭐 이런 것은 필요 없다. 수명을 100세로 정하고 역동적으로 살다가 하늘의 뜻에 따라 순응하고 저세상으로 가면 된다. 건강관리 의사 유태우 박사는 자신의 수명을 98세로 예상했다. 앞으로 살 수 있는 나이를 스스로 정하고 목표를 정해 실천하면서 살면 이 또한 멋진 일 아닌가.
시골에 내려가 민박집이나 펜션을 운영하는 이가 많지만 뜻대로 순항하는 사례가 드물다. 이를 모르지 않았던 이정형(60, 희양산토담펜션 대표) 씨는 불운한 운명이 도래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심오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기어이 펜션을 짓겠다고 기세를 돋우는 남편 강인구(66) 씨를 보기 좋게 꺾을 묘한 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형 씨는 실패했다. 그녀가 아는 인구 씨는 좀 과장하자면 지구인 77억여 명 가운데 가장 끔찍한 옹고집쟁이. 결국은 남편이 이겼다. 정형 씨는 실의와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잉, 이게 웬일? 펜션 사업이 썩 순조롭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정형 씨가 반기를 든 건 펜션 문제에서만은 아니었다. 인구 씨가 귀농을 제안했을 때부터 열렬한 반대운동에 나섰으니까. “혼자 내려가시옵소서!” 처음엔 그리 심드렁히 답하는 걸로 기선 제압을 도모했다. 하지만 애당초 한 번 먹은 뜻을 쉬 굽힐 남편이 아니었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동종 옹고집들의 빛나는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투로, 인구 씨는 불퇴전의 고집을 부려 마침내 아내를 대동하고 귀농을 실현하는 혁혁한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포성이 지축을 흔드는 전쟁은 아닐망정, 나름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전략이 아니고선 승리할 수 없는 게 부부싸움이다. 인구 씨는 그간 축적한 투쟁 자산 혹은 고집의 막강 위세를 총동원해 성공, 어쩌면 가족사에 길이 남을 치적(?)을 세운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인구 씨 입장에선 누구에게나 지지받기 어려운 서푼짜리 생고집을 부린 게 아니었다. 어엿한 합리에 기반을 두고 귀농을 선창했으니까. 반평생 근무했던 주방기구회사에서 은퇴한 그는 ‘어서 오라!’ 속삭이는 시골의 유혹을 물리칠 길이 없었다. 은퇴자의 쓸쓸한 삶의 오후를 견디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저지방우유를 사들고 서울의 여기저기 공원이나 야산을 배회하다 해 저물면 털레털레 귀가하는 나날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늙은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한심했으며, 마침내 영혼까지를 다한 고뇌와 모색을 하다 고향으로의 귀농을 발상했던 것이다. 외로이 홀로 계신 고향집의 노모님도 모시고, 놀려둔 농토로 일감을 만들고, 아내와 둘이 전원의 낭만도 즐기고, 이래저래 귀농보다 더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노후 대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 여기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아내 정형 씨는 왜 귀농에 반기를 번쩍 들었나. 보나마나 생고생할 게 빤해서였다. 날마다 풀이나 뽑다가 손가락 관절염에 걸릴 테고,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허구한 날 올려다보자면 뒷목만 뻐근할 테고, 마트나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대신 죄 지은 것 없이 시골집에 얽매이는 옥살이를 해야 할 게 아닌가. 게다가 모기나 파리 따위 해충은 또 어떻고? 최악의 경우, 집 안으로 스며든 뱀이 소파에 똬리를 틀고 앉아 TV 시청을 하는 엽기적 정경을 목도할 수도 있는 게 시골생활이다. 이래저래 정형 씨는 귀농하자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오만정이 떨어졌던가보다.
“남편에겐 어머님을 모실 수 있는 낙향이자 귀농이라는 좋은 뜻에 의한 결심이었겠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길 수 없더라. 결국은 꾹 참고 져줬다. 이런 내가 시골생활 대비 차원에서 준비한 건 운전면허증을 따둔 거 하나였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답답할 때 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을 거라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펜션 사업 반대
정형 씨 내외가 여기 문경시 가은읍 산골로 귀농한 건 2016년 초. 내려오자마자 남편은 벼농사를 시작하더란다. 벼농사에 덤벼든 속도보다 더 신속하게 착수한 건 펜션 짓기였다. “우리 펜션이나 해보더라고!” 그렇게 툭 던져놓고 산 아래 논의 일부를 터로 다져 건축에 나섰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초고속 질주였다. 이쯤이면 인구 씨의 특기가 고집부리기 맞나? 그게 아니라, 가령 필요하다면 뒷산도 헤딩으로 부수고 나설 슈퍼 울트라급(級) 박력의 보유자라 봐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파랗게 질린 정형 씨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금 투쟁 전선에 나섰다.
“이번엔 사생결단을 하고 반대를 했다. 펜션은 무슨? 기어이 저지하고 말리라! 꽤나 독을 품었던 거다. 그러나 또 졌다. 원통하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웃음)”
펜션을 왜 반대했지? 잘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잘될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날고뛰더라도 자리 잡히기까진 고전할 게 분명해보였던 거다. 게다가 자금 사정도 변변치 않았거든. 건축비 외에 운영비도 많이 들어갈 텐데, 그러고 나면 밥은 뭐로 먹고? 근심과 불안이 아주 많았다.”
부군의 펜션 사업 착수가 충동적인 건 아니었겠지?
“나 몰래 충분히 구상해온 것 같았다. 건축의 초벌 설계까지 직접 해서 설계사무소에 맡긴 걸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펜션에 꽂혔다는 걸 알겠더라. 남편이 뭐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무슨 일을 해서든 가족들 밥은 굶기지 않을 남자다.”
봄에 펜션 건축을 시작해 여름에 오픈했다지? 일사천리로 진도를 뺐구나.
“양가 형제들이 많이 도와줘 일이 순조로웠다. 남편이 건축을 주도하는 사이에 나는 부지 곳곳에 꽃을 부지런히 심었다. 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전에 아파트에 살면서는 꽃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귀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라곤 개울에 나가 다슬기를 줍거나 꽃을 심는 방법밖엔 없었거든.”
드디어 펜션을 오픈한 뒤엔 어땠나? 손님이 얼마나 오던가?
“처음엔 지인들만 간간이 왔다. 그러다가 차츰 문경 지역을 여행하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말에 좀 들어오더라. 이듬해 3, 4월에도 비슷한 추세였다. 5, 6월엔 거의 찾는 이가 없어 객실이 늘 비었다. 그런데 7월 말쯤부터 2주 동안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방 여덟 개가 다 찼다. 아하, 이게 성수기라는 거구나! 여름 한철 장사로 1년을 먹고사는 게 펜션이라는 얘기가 실감으로 다가오더군. 이후 손님이 꾸준히 늘어 초기의 불안감에서 성큼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성장 속도로 자리가 잡혀나간 셈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기대보다 흡족하게 안도할 만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매우 따분한 날들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으나 정반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걸 보며 정형 씨는 비로소 재미와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의 격렬했던 반대 시위의 기억을 내심 멋쩍어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 비수기를 제외하고는 무자비한 불황에 진저리를 칠 일이 없었다는 게 아닌가. 펜션 개업 만 4년이 지난 현재, 해마다 점증한 손님의 수효로 이미 궤도에 올라섰다. 재방(再訪) 비율은 무려 90%. 한 번 찾아왔던 고객 대부분이 다시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탄탄한 단골층을 형성했으니 귀농 성공사례라 쳐도 무방하겠다.
고객들 위해 심은 배추 500포기
이와 같은 일련의 성취는 거저 굴러들어온 행운의 산물이 아니다. 비결이 무엇일까. 우선 정형 씨네 펜션이 들어앉은 자리의 경관부터가 빼어나다. 낮에는 물론 달빛 부서지는 오밤중에도 장엄한 암봉을 허옇게 드러내는 명산 희양산이 지척에 있어 상서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반딧불과 가재가 서식하는 맑은 개울이 펜션 앞을 흐르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물에 들어가 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넘실거리는 야산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적당한 적막감 역시 도시에 지친 나그네들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그러나 이 모든 수려한 자연 경관보다 펜션의 쾌조에 더욱 기여한 건 정형 씨 부부의 노력과 수완이다. 인간사의 인과(因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막막했다. 그저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객실 청소를 비롯한 미화 작업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내가 꽃을 많이 심었다. 부지가 넓은 편이라 꽃밭, 꽃길 외에 텃밭 공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유용했다. 거기에 온갖 야채를 심기 시작한 건 손님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그저 우리 집을 찾아준 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고객들에게 야채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내놓고 보니 그 소소한 선의의 표시가 고객의 환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는 걸 알겠더라. 누구나 필요한 만큼 야채를 채취해 가져가도록 했다. 아침이면 방방마다 옥수수나 감자를 쪄 돌리기도 했다. 얼마 전엔 배추 500포기를 심었다. 모두 손님들을 위한 물량이다.”
이 펜션은 작은 놀이동산 같은 구색을 갖추었다. 왜 이렇게 꾸몄지?
“영업을 시작하고 얼마쯤 지나 고객층의 경향에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자녀를 대동한 30, 40대 부부들이 주로 투숙했으니까. 그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과 시설을 보강했다. 작은 수영장을 만드는 식으로. 텃밭 체험에도 아이들은 신나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장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의 공간으로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도시의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해 한때나마 자연 속에 풀어놓고 싶은 젊은 부모들. 정형 씨는 그들의 니즈에 적극 부응했으며, 그게 펜션의 안정세를 북돋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면 줄수록, 마음을 쓰면 쓸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은 게 인간관계다. 그러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나가던 영업집들이 도중에 망가지는 게 그 욕심 때문이지 않던가.
“초심을 유지하게 위해 자제한다. 돈 냄새 풍기지 않는 영업집을 지향하면서. 우리 부부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일이 고되지만 그저 즐기자. 무리할 거 없다, 그냥 먹고사는 정도에서 만족하자!’ 지금 무난하다고 앞으로도 잘될 거라 방심하지도 않는다.”
어려운 점도 많을 테지?
“좋은 접객을 위해서는 친밀감을 자아내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했는데 내겐 그게 쉽지 않았다. 서비스가 지나쳐 오히려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도 많이 했다. 컴맹이었던 내가 뒤늦게 블로그를 배워 펜션 이야기를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진땀을 뺐다.”
시골에 내려와 펜션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펜션 사업이란 게 쉽지 않다. 이곳 주변의 펜션들 대부분이 부진하거나 사실상 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권장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수월했지만 투자비도 많이 들고 부대비용도 수시로 발생해 고난에 빠질 수 있다. 오직 돈벌이를 목적으로 뛰어들 경우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당신은 처음엔 귀농을 결사반대했다. 이젠 귀농에 호의적일까?
“내가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여유다. 도시에서와 달리 느긋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좀은 변했거든. 그러나 여자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시골이 도시보다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손발 걷어붙이고 진흙탕에도 뛰어들어야 하는 게 귀농생활이다.”
이왕지사 시작한 일,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한번 가보자. 정형 씨는 그런 심정으로 진력했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고 진지하게 관여했다. 정형 씨 내외가 그간 쏟은 땀의 총량이 몇 톤에 달할지는 저 고매한 희양산 바위봉이 알려나. 그런데 정형 씨의 펜션이 궤도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스스로 선의를 끌어내는 힘에 있는 게 아닐까.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기 이전에 나의 선의로 먼저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능력의 진실. 이는 단지 펜션 운영에만 적용될 공리이랴. 타인을 찍어 누르고서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미신마저 횡행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법일 수 있다. 그나저나 정형 씨는 아직도 단단히 벼르고 있단다. 남편의 고질적인 옹고집을 단 한 번이라도 와지끈 무너뜨리기 위해.
“어휴, 단 20분만 같이 있어도 혈압이 오른다. 선의도 통하지 않더라. 남편 성질이 불이거든. 늘 내가 패하고 마는 거다. 언젠가는 한 번쯤 이기고 말겠다는 결의를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하하.”
정형 씨가 주는 귀농 Tip
•무작정 내려왔다가 시행착오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미리 귀농·귀촌 교육을 받는 등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자.
•마을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하자. 그게 차라리 원주민들과 더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방법이다.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펜션을 구상한다면 무엇보다 위치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일단은 경관이 좋은 곳이어야 승산이 있다.
•인근의 귀촌·귀농인들과 긴밀히 사귀자. 단 한 사람하고라도 우정을 나눌 경우 시골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크게 덜 수 있다.
민간·공공기관 퇴직자로 구성된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이하 NIPA 자문단)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사업으로, 개도국 정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공 분야의 기술 및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의 자문을 통해 파견국의 경제,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퇴직 후 자신의 경력을 나눈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자긍심까지 느낀다는 그들. NIPA 자문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윤병남(71) 씨는 과거 20년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통신시스템 개발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10년간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국가정보화사업단장으로 일하다 2010년 퇴직했고, 2017년에는 경기대학교 컴퓨터학과 교수직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정보화전략으로 펼쳤던 주요 에피소드들을 글로 남기고자 했다. 그러던 중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운영하는NIPA 자문단에 참여했던 한 카이스트 교수에게 관련 이야기를 듣게 됐고, 그렇게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그 교수가 말하길 전자정부 구축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관심이 지대하고, 베트남국립대학교 내 정보화연구원에 연구·교육 환경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더군요. 또 이를 지속 발전시킬 교육수요원 육성과 박사과정 개설 소식도 들었죠. 그 교수가 내 이력을 알던 터라, 관련 사업에 적임자라며 추천했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두고 플랜을 짜 나갔죠.”
그렇게 윤 씨는 교수직을 은퇴한 그해 8월 NIPA 자문단이 되어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떠나기 전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 확장’이었다. 그리고 이를 성사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부터 다듬기로 했다.
“아무래도 해외 파견직으로 나가면 동료 없이 혼자 처리할 일이 많습니다.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 협력해서 풀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죠. 어느 분야든 이러한 활동을 원하는 분들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점검해보고 연락처 관리 등을 미리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베트남 청년의 꿈을 이뤄내다
NIPA 자문단이 된 그는 베트남국립대학교 정보기술연구원에서 전자정부연구시스템 구축과 기술자문, 정보화기술정책세미나 및 아키텍처 설계 교육과정 개발 등을 맡았다. 윤 씨는 국내에서의 풍부한 경험으로 전자정부 구축에 많은 예산과 인력,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예상했다. 포부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고, 강력한 입법화를 통한 실행체제 구축과 지속적인 예산 투입이 선행돼야 함도 잘 알고 있었다.
“베트남 정부의 현 수준은 한국 GDP의 10분의 1 수준이에요. 30년 전 한국 전자정부가 떠올랐습니다. 베트남의 정보화 수준과 예산 편성을 고려한, 미래 지향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보화 인적자원 확보 및 마인드 확산 관련 자문이 필요해 보였죠.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 베트남국립대학교에 전자정부연구소를 구축해 인적자원개발 활성화 작업을 진행해나갔습니다.”
윤 씨는 2년간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베트남 인재를 한국 내 대학원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추진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해당 학교에서 한국어능력자격증 등을 요청하는 바람에 진행이 불가능했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성사해낼 수 있었단다. 개인의 성과보다는 한 청년이 꿈을 이루도록 자신의 힘을 보탰다는 사실이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베트남 컴퓨터소프트 경진대회에서 3년간 우승권에 있었던 아주 유능한 인재였어요. 촉박한 일정이었기에 그 학생과 몇날 며칠을 밤새워가며 수많은 행정 서류 등을 준비했죠. 덕분에 공식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3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는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말이죠. 그 청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드디어 한국 유학 꿈이 이뤄졌다고, 당신이 없었다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라 말하는데, 무척 감격스럽더군요.”
대한민국 시니어의 경험을 세계로
윤 씨의 공을 높이 산 베트남국립대학교 학장은 그가 임기를 다하던 날 송별식에서 교수 임용장과 감사장을 수여하며 지속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 아직도 보람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학장의 바람처럼 다시 자문단으로 베트남에 가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포부를 물었다.
“전자정부연구소에 설치된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베트남국립대학을 대상으로 대학정보화 프로젝트를 수행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을 종이문서를 사용하지 않는 정보화 시범 장소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요.”
은퇴 직후와 비교해 NIPA 자문단 활동 이후 윤 씨의 목표는 더욱 확대된 듯 보였다. 아울러 그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국가정보화 서비스를 경험해보지 못한 개발도상국 관련자들을 위한 효과적인 자문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물론, 자문의 바탕이 되는 것은 지난날의 시행착오와 그가 쌓아온 경험들일 것이다. 윤 씨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성과도 낸 시니어라면 이러한 자문단 활동이 은퇴 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화라는 흐름 속에 우리가 쌓아온 경험을 개도국들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으면 해요. 이는 도움을 베푸는 차원을 넘어, 본인이나 국가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나아가 자신과 대한민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윤병남 자문단원
ㆍ파견 국가 베트남
ㆍ파견 기간 2017년 8월 14일~2019년 8월 13일
ㆍ파견 분야 정보통신
ㆍ파견 직종 ICT정책
ㆍ파견 기관 베트남국립대학교
ㆍ자문 내용 베트남 전자정부연구소 구축 기술 자문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는 과거 모 패션 대기업 중국 법인장을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1세대 중국통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통보된 퇴직 소식에 쓰라린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되려 적극적으로 제2의 인생 기회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중국어 교육 스타트업 기업 차이나다의 공동대표이자 SNS 시니어 패셔니스타, 그리고 안티에이징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 저자로 자리 잡았다. 그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묘미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환갑이 되던 해에, 앞으론 매년 한 살씩 더 먹는 게 아니라 한 살씩 빼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주위에 공언도 했습니다. 덕분에 올해 주민등록증 나이 65세인 저는 아직 55세 팔팔한 청춘입니다. 그리고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드디어 40대에 진입하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젊게 살기 위한 고된 그러나 즐거운 행군(?)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지성언 차이나다 대표는 일반인임에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출판계에서, SNS에서 그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유명한 시니어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돼 TV 광고를 찍을 정도로 성숙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그지만, 정작 자신은 옷을 그리 많이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의외다.
시니어 패셔니스타의 코디법
“제가 직접 작정을 하고 구매한 옷은 별로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패션 대기업의 중국 법인장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자사 브랜드 옷을 얻을 기회가 많았고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뒤로는 협찬도 꽤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옷은 많지만, 구매할 때부터 매칭을 고려하고 산 옷들은 별로 없어요.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매치해서 멋스러움을 창출할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지 대표는 단순히 옷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구두나 운동화, 양말 같은 소품으로 변화를 많이 주고, 팔찌 등의 액세서리로 살짝 에지를 더하는 방법을 애용한다. 그의 패션 포인트를 요약하면 ‘재킷은 기본에 충실하되 젊은 실루엣의 팬츠, 그리고 애교 있는 액세서리다.’ 그는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죠”라고 말하며 웃는다.
“재킷은 가능하면 다소 짧은 기장으로 상하 비율이 좋아 보이게 하고, 팬츠의 밑단 폭은 18cm 전후로 하고 기장은 복숭아뼈가 보일락 말락 하는 정도로 맞춰야 전체적으로 젊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상·하의가 다소 밋밋하면 과감한 신발로 액티브함을 더하기도 하고 재킷에 부토니에르를 꽂아 클래식함을 연출하기도 하죠.”
은퇴 후에는 ‘나눔’이 삶의 방향
패션 철학에 대한 단호하고 간략한 설명을 듣다 보니 지 대표의 경력이 다시금 떠올랐다. 과거의 경력과 함께, 그는 지금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이자 자신의 안티에이징 노하우를 소개한 책 ‘그레이트 그레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일로 제2의 인생을 채우는 지금의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래전부터 은퇴 후에는 ‘나눔’이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30년 넘게 중국 주재원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 경험과 노하우를 후학들과 나누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인생 2막의 큰 방향과 지금 하는 일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레이트 그레이’를 쓴 것도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경험, 특히 은퇴 후의 새로운 도전들과 그로부터 얻은 행복의 비결들을 여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다.
“책이 나온 후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제 강연을 들은 분들이 인생 2막 설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주실 때 더없이 행복함을 느낍니다. 말로만 듣던 ‘선한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할 때가 많습니다.”
그는 책을 낸 덕분에 방향을 다잡으며 삶에 대한 다짐도 한 번 더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책을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포기했을지 모르는, 책 속에서 언급한 소위 ‘멋있게 나이 드는 법’들은 독자들과의 약속이니만큼 계속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설령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도 저 자신은 알잖아요? 저부터 배신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위 마인드 에이지(Mind Age)를 매년 더 젊게 가지니,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피지컬을 갖추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패션 감각도 해가 갈수록 더 젊어졌다. 쉽지 않은 일들일 텐데, 얘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무척이나 즐겁게 나이 들어가고 있기에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뛰는 일은 도전만으로도 승리한 것
“일단 초긍마(초긍정 마인드) 스위치를 켜야겠지요.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크고 작은 재미 요소도 많아집니다. 그 재미 요소를 진짜 재미로 승화하려면 평소 습관이 중요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하잖아요? 일상의 작은 것에서 자주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그게 일상이 되고, 행복한 일상이 모여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게 되는 거죠.”
지 대표는 즐겁게 나이 드는 대단한 비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어쩌면 아는 사람한테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데, 모르는 사람들한텐 너무 어려운 게 재미있게 살면서 나이 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는 소확행이라는 단순하고 우직한 해법을 확고하게 믿기에 그게 가능한 사람인 듯했다.
“먼저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가슴이 뛰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가슴 뛰고 즐거운 일들을 리스트 업한 후에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하나씩 해보는 겁니다. 은퇴 후의 이런 도전들은 굳이 대단한 목표일 필요도 없습니다. 도전해보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그 도전은 성공한 것이고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부부관계의 해법은 ‘공감’과 ‘공간’의 조화
지 대표를 촬영하는 날, 아내도 함께했다. 그가 아내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부 사이는 곧잘 위기에 처한다. 그가 생각하는 중년 부부의 아킬레스건과 위기 대처 비법은 무엇일까?
“은퇴 후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중년 부부들이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비법은 부부가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친구처럼 잘 지내기 위해선 ‘공감’과 ‘공간’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고요.”
나이 들수록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줄고 공감 능력, 공감할 소재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는 부부끼리 할 수 있는 놀이나 취미를 일부러라도 갖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가 촬영 현장에 아내와 동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편이 하는 일에 아내도 참여하면 공감대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하면 좋은 운동 중 최고는 걷기입니다. 같이 걷는 동안 그냥 걷기만 하지는 않잖아요.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쉼 없이 주고받습니다. 부부가 걷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건강은 물론, 따로 소통의 시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공감 능력이 증가됩니다.”
아울러 지 대표는 중년 부부들에겐 ‘공감’, ‘함께하기’도 중요하지만 ‘공간’, ‘따로 하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년 부부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야 아내나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기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지요. 각자 하고 싶고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배우자가 원한다면 딴지(?) 걸지 말고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일정 부분 상대방만의 ‘공간’을 허락해야 친구처럼 잘 살 수 있습니다. 상대는 내 아내, 내 남편이기 훨씬 이전부터 독립된 한 인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래와 연결된 시니어가 돼라
얘기를 듣다 보니 그가 겉으로만 젊어지려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젊어지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SNS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한 생각에서였다.
“100세 시대죠. 아직도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다가올 미래와의 접속은 꼭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거든요.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추억만 먹으며 살기엔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요. 그러므로 SNS 같은 새로운 소통 도구들도 적극 활용하고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손주들과의 소통도 SNS로 해야 더 활발해지고 공감대도 넓어집니다.”
손주 얘기가 나오니 그에게서 슬그머니 웃음이 배어 나왔다. 시니어 패셔니스타에게도 손주는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존재인가보다. 그에게 손주의 존재는 지켜야 할 삶의 법칙을 다시금 되새기는 이유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목숨 다하는 날까지 멋진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애쓰다 떠난, 닮고 싶은 진짜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손주들아! 몇 년만 더 지나면 너희들은 훌쩍 클 것이고 할아버지는 오히려 작아지고 허리도 굽고 더 쭈글쭈글해지겠지. 그때 냄새 난다고, 말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걸음 늦다고 타박하기 없기다. 그냥 지금처럼 할아버지를 보면 빛의 속도로 활짝 웃으며 달려와서 와락 안겨주렴. 그리고 귀에 대고 조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해주렴.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은퇴설계는 생활비를 최소화하는 게 기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은퇴 후 고정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선 연금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 노년기에 기본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을 국민연금에서 찾아보자.
서울에 거주하는 부부의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평균 284만 원. 더 정확한 노후생활비는 부부의 최근 1년간 지출을 월별로 체크해보면 알 수 있다. 꼭 필요한 지출만 남기는 식으로 생활비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국민연금’이다. 기본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많은 가입자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납부하고 있는 국민연금. 이에 김대근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나 똑똑한 국민연금 활용법에 대해 물어봤다.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하는 건
“은퇴설계를 하려면 먼저 부부의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수령액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를 제대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1969년 이후에 태어났다면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고, 1965~1968년(64세), 1961~1964년(63세), 1957~1960년(62세), 1953~1956년(61세), 1952년 이전(60세) 출생자별로 수급개시연령이 다릅니다.”
◇전업주부라 해당되지 않는데
“결혼 후 소득이 없어진 배우자가 있다면 국민연금 임의가입을 고려해도 좋습니다. 월 납입 최소 금액이 9만 원인데, 10년 가입 시 매달 17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월 수령액은 납입금액과 가입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많이 내거나 오래 가입하면 당연히 연금 수령액이 늘어납니다. 참고로 은행이나 보험상품 중에 이 정도 금액이 나오는 연금은 없습니다.”
◇예전보다 조건이 안 좋다는데
“임의가입제도를 신청한다면 추납제도 가입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추납제도는 소득활동을 할 수 없어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한 ‘납부예외’와 ‘적용제외’ 기간이 있을 경우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해당 기간에 대한 연금보험료를 한 번에 낼 수 있는 제도인데, 연금을 복원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국민연금은 5년에 한 번씩 개정되는데, 추납제도는 연금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당시 기준을 적용해서 조건이 현재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현재 구직급여를 받는 중이면
“구직급여 수급자가 연금보험료 납부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최대 1년간 보험료의 75%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을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추가 산입하는 제도입니다.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실직자로 국민연금보험료를 1개월 이상 납부한 이력이 있는 가입자가 대상입니다. 다만 재산세 과세표준의 합이 6억 원을 초과하면 안 되고, 연간 종합소득이 1680만 원을 초과해도 안 됩니다.”
◇연금을 더 일찍 받을 수 있나
“국민연금을 더 빨리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기노령연금을 활용하면 됩니다. 본인의 연금수령개시 연령보다 최대 5년 미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많은 사람이 신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령시기를 1년 앞당길 때마다 받는 금액이 6%씩 줄어듭니다. 이를테면 조기노령연금을 58세부터 받았을 경우 손익분기점인 73세가 넘으면 누적 수령액이 63세부터 받았을 때보다 적어지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기노령연금의 수급조건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하고, 월 243만8679원 이상의 근로·사업·임대 소득이 있으면 안 됩니다.”
◇연금수령기간에 소득이 있으면
“소득이 있다면 노령연금이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소득이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 월평균 소득(243만8679원)을 넘으면 재직자 노령연금에 해당됩니다. 이 경우 초과소득 월액 범위에 따라 노령연금이 감액됩니다. 또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에는 근로소득공제 전 급여가 연 4060만 원이 넘으면 노령연금 수령액이 줄어듭니다. 따라서 소득이 있는 노령연금 수령자라면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하는 게 유리합니다.”
◇연금을 늦게 받으면 좋은 점은
“연기연금제도는 1회에 한해 연금수급권을 취득한 이후부터 최대
5년까지 연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 지급 연기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연기 비율은 50%, 60%, 70%, 80%, 90%, 100% 중 수급권자가 선택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연기한 연금을 다시 받을 때는 지급 연기를 신청한 금액에 대해 연기 기간 1년당 7.2%(월 0.6%)의 연금액을 더 올려서 지급받게 됩니다. 소득으로 인해 줄어든 노령연금을 받을 바에야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63세와 68세의 연기연금 개시연령을 비교하면 79세가 넘었을 때 68세부터 받은 쪽이 더 많은 노령연금을 수령하게 됩니다.”
☞김대근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선임연구원
국제재무분석사(CFA), 국제재무설계사(CFP), 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2007년 삼성생명보험, 2009년 삼성생명 FP센터, 2011년 미래에셋은퇴연구소, 2015년 NH농협은행 근무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책 산업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을 설계하며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내볼까?” 했던 말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우리 동네 책방들을 찾아 소개한다.
조은희.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왔다. 출판사에서만 일해온 지 올해로 37년째. 그림책 독자는 오직 유아뿐이던 시절부터 그림책 전문 출판사에서 책을 펴냈다.
2000년대 초반이 되자 국내 그림책 시장은 크게 도약했다. 특히 어른을 위한 그림책 시장까지 성장하면서 그녀는 우리나라 대표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한솔수북 대표가 됐다.
그렇게 출판인으로서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출판인의 삶을 살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말을 타고 전장에서 싸움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쉴 틈 없이 달리며 바쁘게 지냈던 그녀는 불현듯 이 매력덩어리 책들과 씨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몰아치는 걸 느꼈다.
‘은퇴하면 직업인으로서는 더 이상 책을 접하지 못하는 건가?’ 조은희 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출판인으로서의 경력 최대 임계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조은이책이다. 은퇴를 하더라도 여전히 책과 함께하고 싶었던 그녀는 책방 주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2017년 2년의 준비 끝에 마포구 성산동 다가구 주택 1층에 책방을 열었다.
마을 골목 입구 1층에 있는 책방을 찾아가봤다. 실내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전면 유리창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개방감을 강조한 공간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책들과 캐릭터 인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서점이 아니라 마치 예쁜 문구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책이 대형 쇼핑몰의 장식품이 되고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기 위한 핫 플레이스 장소가 되고 있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꿈을 길러주고 미적 감각을 키워주는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1~2년 후 출판사 일을 그만둘 생각이에요. 은퇴 후 책방 운영에 전념하며 인생 2막을 펼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전시 코너
조은이책은 크게 2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서점과 차별화되는 조은이책만의 섹션은 바로 그림책과 캐릭터 전시 공간이다. 작가와의 대화, 출간기념 사인회도 이 공간에서 열린다. 그림책 보러 왔다가 캐릭터 전시 공간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 캐릭터들은 조은희 씨가 20년간 모은 그림책 주인공들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웅장한 캐슬이 되기도, 광활한 마을이 되기도 하는 다양한 입체 책들은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아동 교육용으로 많이 제작되고 있다. 제작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책과 캐릭터가 전시된 공간은 그림책 전문 편집을 수십 년 넘게 해온 책방지기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조은희 대표가 일본, 유럽, 미국 등 유명 그림책 북 페어에 갈 때마다 하나둘씩 구입해 모아온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개인 컬렉션 공간은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아가들’의 방인 셈이다.
“20년 넘게 모아온 캐릭터와 입체 책은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집에서 저 혼자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고 감동을 받으면 기쁨이 두 배, 세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컬렉션 전시 공간 겸 그림책 코너를 가장 넓게 배치했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책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이곳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운영자의 취향과 감성이 듬뿍 담긴 사랑스런 공간이다.
뻔한 책 소개는 싫다
그때그때의 이슈에 따라 꾸려지는 기획도 색다르다. 신예 작가들의 신간을 묶어 소개하는 코너 ‘우리 시대의 빛 젊은 작가들’과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독서 여행을 권하는 코너 ‘책방보다 더 재미있는 여행지는 없다’는 최근 기획했다. 조은희 씨는 책방지기의 안목과 아이디어에 따라 고객들의 눈길이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노하우를 슬쩍 귀띔해준다.
바깥쪽으로는 에세이와 문학서,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들이 전시돼 있다. 이들 코너 외에도 ‘두근두근 국내 소설’, ‘고양이, 그 매력의 끝은 없다’ 등의 카피 아래 국내 소설과 고양이와 관련한 단행본 및 그림책을 소개해 냥이 집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나무 덩굴을 타고 지하세계로 떨어지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온갖 모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조은이책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예기치 못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잠시 정신줄을 놓게 된다.
동네 책방 감성 살린 기획
출판사 일을 오래 해온 대표가 운영하는 책방이라서 그런지 작가와의 인연을 활용한 다양한 이벤트가 풍성한 것도 매력이다. 작가와의 대화는 물론 출간기념 북토크와 사인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전국 동네서점연합과 독립영화 창작자들을 잇는 독립영화 상영회도 개최한다.
얼마 전 상영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지난해 작고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작품이다. 동네서점연합과 함께한 이 이벤트는 고객들이 영화도 보고 대화도 나누면서 색다른 경험을 공유하도록 해 큰 호응을 얻었다.
조은희 대표가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글쓰기 클래스는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마음가짐을 잘 녹여낸 프로그램이다. 그녀가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들어봤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작은 공동체를 통해 공유와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어요. 클래스 참가자들이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았다는 얘기를 하면 정말 기쁘더라고요.”
민화는 정통 회화를 모방해 생활공간을 장식할 목적이나 민속적 관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실용화다. 이러한 민화의 개념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민화란 조선시대 후기 서민층의 무명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말한다.
도자기, 족자, 병풍, 부적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 민화는 그린 이와 쓰임새를 생각하면 당연히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친숙한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자 어느 순간 민화는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리고 떨어져 있었던 만큼 지금은 낯설고 어려운 그림처럼 느껴지게 됐다. 이러한 장벽을 작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민화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그림이에요. 그리고 오방색을 기본으로 화려하게 표현해 색채가 강하죠.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엇보다도 민화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다.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됐기 때문에 저마다의 소망이나 목적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민화를 가르칠 때는 민화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가르칠 때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호랑이 그림에는 주술의 의미가 들어 있고, 씨가 많은 것들은 다산을 뜻한다는 식으로요.”
이 작가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기존의 민화와 똑같이 그리는 걸 지양한다. 대신 그림에 쓰일 소재들이 가진 뜻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대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저는 그림은 느낀 대로 편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인 표현 기법은 알려줘야 하죠.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이라도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심성이 고와지고 감수성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화실 갈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전통 미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열정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제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게 아니라 취미로 해서 즐겁게 오래할 수 있었다고 봐요. 요즘도 토요일마다 화실을 가는데, 그날이 제일 즐거워요. 그렇게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하죠. 체력을 위해 주말에는 등산을 하고 학교 출근해서 조회 시간 이전에 직원들과 40분 정도 산책을 해요. 강권하지 않는데도 다들 적극 참여합니다.”
그녀가 현재까지 만든 작품은 80~90점 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한 숫자다. 병풍도 소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리기 시작한 지 5년 정도는 기존 작품을 많이 재현했다. 그 후로는 창작에 매진했고, 지금은 재현과 창작의 균형을 맞추는 중이란다.
“요즘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을 이용한 마블링 기법으로 창작을 시도하고 있죠. 물론 민화의 기본은 유지하면서요. 정년퇴임할 즈음에는 개인전을 해볼까 합니다.”
제2인생 설계는 은퇴 10년 전부터
이 작가는 제2의 인생을 민화와 함께하려고 마음먹었다. 은퇴 후에도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센터 등을 통해 꾸준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큰 걸음의 시작이다. 돈을 벌기보다는 재능을 기부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직장에서나 정년을 맞이했지 인생은 계속되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줄 계획이다. 아울러 제2의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 설계는 최소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봐요. 할 수 있는 일, 친구 관계, 사회 기여, 재력, 시간 등을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야겠죠. 제가 처음에 민화를 그릴 때는 남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해요.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학교에서도 리더십이 잘 발휘되고, 교육청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부족한 거야 항상 많죠. 그러니 늘 공부하며 노력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민화 작업의 낯선 마블링 기법 시도도 그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선생님이 힘들어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하며 자신부터 바뀐 현실에 맞추려 노력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지금, 어쩌면 그녀가 민화라는 우리의 옛것을 통해 보여주는 활력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희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짭짤한 수익을 낸 투자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불안감까지 떨쳐내진 못한 듯하다. 오히려 안전 투자전략이 현명한 자산관리 방안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요즘처럼 체감 경기가 나쁘고, 기업 실적과 경기 지표도 안 좋은 상황에서 연일 코로나19 확산 뉴스가 나오는데 주가가 왜 오르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불안감이 더 크다. 이들은 은퇴 후 수입이 줄거나 없는 상태라 주식투자가 잘못돼 자산관리에 실패하면 여생이 풍족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김현섭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을 만나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와 맞설 수 있는 노후 자산관리 전략에 대해 물어봤다.
◇요즘 주식투자하면 돈 번다는데
“지금은 주식투자를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주식시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식 가격이 상당히 많이 올랐는데,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목돈을 투자하는 건 위험합니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니 소액으로 운용하거나 자제하길 권장합니다. 대신 주가연계증권(ELS)을 추천합니다. ELS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익률이 3~4%였는데, 지금은 5~6%대 수익이 나오고 있습니다.”
◇ELS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은퇴는 리스크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주가가 50% 하락해도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녹인(Knock-In) 50 ELS를 원화와 미국 달러로 투자하길 권합니다. ELS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투자지수에 연계돼 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입니다. 변동성이 큰 개별 주식의 가격과 연동된 종목형 ELS보다는 종합주가지수와 연계해 움직이는 지수형 ELS를 추천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종합주가지수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ELS 수익률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주위에선 부동산에 투자하라는데
“은퇴한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 분야는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물론 투자를 잘못해서 고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상가형 부동산 같은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금리가 낮아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좋았지만, 지금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따라서 직접 상가를 사는 것보다 금융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쪽을 권합니다. 대표적으로 분산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지분형 부동산을 추천합니다.”
◇지분형 부동산의 장점은 무엇인가
“금융을 통해 부동산 투자를 하면 개인 단독으로 할 수 없는 분산 투자가 가능합니다. 또 수백억 원짜리부터 수천억 원짜리 국내외 부동산에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량 임차인이 장기 책임 임대차로 된 빌딩을 매수할 경우 공실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임차인 관리도 필요 없고, 안정적인 배당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각 시까지 현금화가 어렵고, 매각 차손이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안전한 부동산 투자 방법은 없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확인해야 하는 대출형 부동산 펀드도 고려할 만합니다. 다만 주식시장과 관련이 없는 곳에 분산 투자하는 걸 권장합니다. 대부분 최소 가입 금액이 억 단위인 사모형 투자로 가입할 수 있지만, 공모형으로도 출시됩니다. 투자 상품을 고르는 기준은 LTV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LTV가 60%라면 감정가 대비 내 설정 비율인 60%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현재 연 4~5%대 수익률을 보고 투자할 수 있습니다.”
◇화폐 가치 하락이 신경 쓰이는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사상 최대로 풀린 돈에 대한 화폐 가치 평가절하에 대비하고 싶다면 골드바 신탁을 권합니다. 국제 금 가격과 미국 달러 환율이 반영돼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경기 하락과 인플레이션 대비에 긍정적인 투자입니다. KRX 금시장에 상장된 금 현물에 투자하면 됩니다. 조금씩 사 모았던 금이 1㎏을 넘으면 10%의 부가세와 골드바 제작 수수료를 내고 실물로 인출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브라질 국채는 비과세 혜택과 10%의 높은 표면이율이 매력적입니다. 현재 환율이 220~230원대로 하락해 신규 투자하기에 무리가 없는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현시점에서 투자할 경우 환율 변동이 없다는 가정 아래 연 6% 정도의 비과세 배당이 기대됩니다. 하지만 브라질 국가의 신용 상황과 헤알화 환율, 금리 변화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고위험 투자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채무 불이행 국가 부도 발생 시 원금 상환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김현섭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재무관리 전공. 1997년 대동은행, 1998년 국민은행 입행. 현재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동네 책방을 되살려낸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책 산업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을 설계하며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내볼까?” 했던 말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우리 동네 책방들을 찾아 소개한다.
블로그에 소개된 사진만 언뜻 보면 강원도 깊은 산속 같다. 어라? 주소를 보니 용인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약 45분), 양지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이용(10여 분)하니 금세 도착이다.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용담저수지 건너편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만 벗어나도 이렇게 깊은 숲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담는 집’의 주인장은 임후남 씨다. 오랫동안 잡지의 인터뷰어로 이름을 떨쳤던 기자 겸 작가다. 2008년부터 1인 출판사 ‘생각을 담는 집’을 운영하다 2018년 용인 원삼면에서 동네 책방을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카페에서 커피도 내리고 차도 우려낸다. 북스테이를 이용하는 투숙객들에게 조식을 근사하게 차려내는 호텔리어 역할까지 1인 5역을 해낸다.
어떻게 산속에서 책방을 열 생각을 했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됐는데 아무 일 안 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시골에서 매일 의미 없이 사는 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일도 하고 시골생활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북카페를 해보자”는 의견에 서로 동의했다.
결정을 한 뒤에는 사방팔방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고생했다. 열망이 강해서였는지 우리가 딱 원하는 공간을 찾게 됐다. 이 집은 원래의 건축주가 황토벽돌로 지은 4층 건물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사용하기에는 방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단절돼 핸드폰도 끄고 TV도 안 보고 책 읽으며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북스테이까지 운영하게 됐다.
마침 그 무렵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근교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거나 휴식을 취하는 트렌드가 생겨나면서 북캉스(책+바캉스) 혹은 북스테이(책+숙박)란 말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해 더 힘을 얻었다.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족의 행복도가 높아진 게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신간서적 소개를 담당할 만큼 책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많이 읽었다. 저쪽 서가에는 그동안 내가 읽어온 3000여 권의 책들이 있다. 북카페를 하면서 서재까지 갖게 된 셈이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손님들 중에 내 손때가 묻은 책들을 펼쳐 읽으면서 감개무량해하는 이도 많다. 어느 날은 책 속에 붙여놨던 포스트잇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지?
다양하다. 자녀와 함께 오는 젊은 부부가 많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맘껏 책을 고르고 구입한 후 산속 의자에 앉아 해거름을 보며 독서를 한다. 잠깐 책을 놓고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밤에는 반딧불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젊은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다.
최근에는 노부부가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 내가 ‘시골책방입니다’란 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는데 그 책을 보고 이곳이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책방지기 추천으로 문화 분야의 책 10여 권을 구입하고 방에 올라가시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재미있게 잘 읽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곤 또 10여 권을 구입했다. 이럴 때 제일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추천한 책을 읽고 인정하는 거니까…. 이런 게 동네책방의 매력 아닐까 싶다.
이 책방만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동네 책방을 찾는 분들은 정말 책을 좋아하고 문화 관련 모임에도 열성적이다. 그러다 보니 찾아오시는 분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 그분들이 만족할 만한 책을 추천한다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도전 같다. 그래서 책도 더 열심히 많이 읽는다. 신간을 추천하기도 하고 내 인생의 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동네 책방을 즐겨 찾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책방지기의 북큐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는 작가와의 대화다.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는 분이 많다. 시 창작교실, 에세이 창작반, 책과 함께하는 서점 음악회 등 소소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도 있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초청장도 보내고 홍보도 한다. 참, 얼마 전엔 모닥불 피워놓고 모닥불 시낭송회를 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생각보다 어린 자녀들이 더 집중하면서 참여하더라. 부모, 자녀들 모두 만족해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 나 이 말 꼭 하고 싶다. 나이 들어 할머니가 돼도 우리 책방에 오면 신간을 추천해줄 수 있는 그런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늙어서도 책을 놓지 않고 꾸준히 책과 함께 지내는 삶이 최고의 행복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동네 책방인 것 같다. 돋보기 쓴 할머니가 권해주는 신간… 뭔가 그림이 멋있지 않나?
주 소득처가 사라진 퇴직자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세금과 준조세 부담에서 벗어나는 길. 돈 들어올 데는 없는데 나갈 곳은 많으니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다. 그래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고정수입도 챙기고 세금도 줄일 수 있는 자산관리 방안을 소개한다.
“은퇴한 고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사라지거나 줄어든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절세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박신욱 신한은행 WM추진부 세무팀장은 ‘절세’에서 노후 대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세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노후 대비를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이 보인다는 것. 그는 먼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절세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절세를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먼저 자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들어가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현재 재산세 과세표준이 5억4000만 원을 넘지 않고 연소득이 3400만 원 이하이면 피부양자 자격이 됩니다. 또 재산세 과세표준이 5억4000만 원 초과~9억 원 이하이고 연소득 1000만 원을 넘지 않아도 자격이 부여됩니다. 이 조건을 맞추려면 비과세와 분리과세를 활용해 소득을 줄이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퇴직금을 예·적금에 넣으려는데
“퇴직금을 은행의 정기예금에 넣으면 금융소득으로 잡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조건에서 멀어집니다. 따라서 개인형퇴직연금(IRP) 상품에 넣어서 연금으로 수령하는 게 좋습니다. 세전 수령금액이 연간 12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분리과세로 처리되기 때문에 금융소득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1년 동안 퇴직연금에 넣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1800만 원입니다.”
◇연금 전환의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면 절세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금의 15~20%가 소득세로 확정되는데, 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설정한 기간 동안 세금을 나눠서 납부하게 됩니다. 이때 10년 동안은 퇴직소득세의 30%가 할인됩니다. 또 11년 차부터는 퇴직소득세 할인율이 40%로 확대됩니다. 금융소득이 많다고 생각되면 연금으로 전환해 소득을 줄이고 절세 혜택도 받는 게 좋습니다.”
◇IRP 활용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는지
“중요한 건 소득 발생을 최대한 줄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과세를 갖고 가면 됩니다. 비과세는 소득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퇴직금을 비과세 상품으로 인정하는 월납 거치식 보험상품에 넣는 방법도 바람직합니다. 이때 월납 10년 이상 장기로 가입하면 됩니다. 나중에 연금으로 활용하면 노후에 도움도 됩니다. 이외에 월납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판매)와 같은 상품도 분리과세되기 때문에 소득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금융소득 세금 줄이려면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넘어가면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00만 원이 넘지 않으면 은행에서 분리과세로 원천징수한 뒤 마무리합니다. 이 데이터는 국세청이 건강보험공단에 보내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금융소득을 2000만 원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주택을 활용한 고정수입 얻는다면
“퇴직 후 살던 주택을 월세로 내놓고 본인은 새로운 곳에 전세를 얻는 방법으로 고정수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부 합산 1주택이고, 기준시가 9억 원 이하이어야 연간 월세 2000만 원까지 분리과세가 됩니다. 매달 166만 원의 월세를 받아도 소득으로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2주택 이상이거나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보유한 경우 월세를 받으면 연간 총액과 상관없이 소득으로 잡혀 세금을 내야 합니다.”
◇2주택 보유자 어떻게 해야 하나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줘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조건이 됩니다.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하고 있다면 종합부동산세가 만만찮게 나옵니다. 퇴직 후 주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물론 종부세를 피하려는 목적보다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증여와 양도 뭐가 나을까
“일단 2주택 중과기간이 7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많이 내게 됩니다. 그리고 집을 매도한 후 자녀에게 현금으로 줄 경우에는 증여세까지 또 내야 합니다. 그러나 부담부증여 없이 주택을 증여하면 증여자의 양도소득세는 사라집니다. 이왕 줄 거면 증여로 물려주는 게 낫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1주택자가 되면 다시 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 조건을 맞추기가 수월해집니다.”
☞박신욱 신한은행 WM추진부 세무팀장
세무전문가, 재무설계사, 신용분석사, 미래설계센터 및 WM컨설팅센터 근무, 현재 WM추진부 근무 및 신한은행 고객 세무 세미나 강사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