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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상 고창군수가 말하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고창의 매력
- 역사와 전통, 자연이 어우러진 고창군을 즐겁게 설명하는 그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모든 요소를 가진 천혜의 환경 속에 여러 가지 특용작물 재배로 의욕적인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고창군은 이미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연과 사업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곳으로 소문나 있다. 유기상 군수의 목소리로 도시민들이 고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고창군의 특별한 매력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광범위한 고인돌 유적지가 알려주듯 고창군은 3000년 전 한반도에서 해양 문화, 대륙 문화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가히 한반도의 수도였다고 할 수 있죠. 산, 들, 강, 바다, 갯벌까지 자연의 모든 게 있는 곳이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기상 고창군수의 목소리에 배어든 자신감처럼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이다. ‘삼시세끼’, ‘1박2일’, ‘6시 내 고향’, ‘한국인의 밥상’ 등 시청률 높은 다양한 방송을 통해 산과 바다, 들녘이 공존하는 깨끗한 환경의 청정 지역으로 꾸준히 전국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 5월에는 고창의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고창에는 선운산 도립공원, 노래로도 익숙한 선운사, 운곡습지, 학원농장 청보리밭, 동호해수욕장, 구시포해수욕장, 석정온천 등 관광지가 많고, 고창읍성, 무장읍성 등 역사·문화유적지가 계속 이어진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하늘·땅·사람이 상생하는 고창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방 소도시 대부분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인구 감소 현상이다. 기존 인구는 고령화되고 젊은 인구는 대도시로 유출되다 보니,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서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그런 반면 은퇴한 시니어들과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귀농귀촌이 삶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현상 또한 그 이면에 있다. 도시민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을지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는 농업 소득 창출에 있는데, 그 부분에서 고창은 특별한 장점이 있다. “고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농토가 넓고, 다양한 소득 작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복분자, 수박, 멜론, 블루베리, 쌀, 인삼, 고구마, 땅콩, 고추, 김 등 고소득 작물이 많고, 이런 작물들을 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고창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로 구성되어 게르마늄 성분이 타 지역보다 11% 더 많고, 볏짚에 많이 들어 있는 고초균도 타 지역 토양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김길용 전남대학교 교수님의 연구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천 년을 가는 식초 만들다 유 군수는 고창에는 특산 고소득 작물이 많은 덕분에 부모님 대를 이어 농업에 도전하는 청년 농부들이 꽤 있다고 밝혔다. 그가 요즘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 있다. 바로 식초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등의 이슈로 발효식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진 상황. 그는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로 만든 식초는 기존 발사믹 식초보다 항산화 효과가 네 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마실거리 중 최고는 식초죠. 천 년을 갈 수 있는 식초는 사람을 살리는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창을 세계 4대 식초도시 중 하나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식초 원료가 되는 쌀과 보리 등 곡류와 복분자, 아로니아 등 베리류의 국내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복분자 가공산업의 발달로 시설 기반이 이미 조성되어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 인력 및 자체 연구소도 확보하고 있다. 식초 시장은 다른 발효식품과 달리 선도 지역이 없는 초기 산업 형태이기 때문에,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춘다면 고창식초가 세계적인 명품 식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에는 식초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발효식품 공유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발효식품 공유 플랫폼 구축 사업과 복분자식초를 활용한 면역력 제품 개발 사업, 식초 문화 확산을 위한 식초마을 구축 확대 등 식초산업이 미래 농생명 식품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치유 도시로서의 귀농귀촌 지역 최근 5년간 해마다 평균 1300세대, 1600명 이상 인구 유입 성과를 올리고 있는 고창군이 귀농귀촌인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우선 예비 귀농귀촌인을 위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2018년부터 30세대 규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50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입교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39명이 지원했더군요. 이후 서류심사 및 면접을 통해 30세대를 선정했습니다. 입교생들은 센터 내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에 거주하면서 3월부터 11월까지 공동 실습 하우스와 텃밭을 활용한 작물 재배, 선도 농가 현장 견학, 고창군의 문화유적지 답사 등 다양한 교육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귀농인을 위한 영농정착금 지원과 초보귀농인 서포트 사업도 있다. 영농정착금은 주민등록 주소 기준으로 도시 지역에서 12개월 이상 거주하다 고창으로 전입(3년 이내)해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만 6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 원을 3년에 걸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초보 귀농인 서포트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3년 이내, 만 60세 이하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귀농인에게 종자·비료·농약 등 농업에 필요한 경상비용으로 200만 원 이내의 지원금을 준다. 귀농창업 활성화 지원 사업은 좀 더 고참(?) 귀농인을 위한 사업이다. 이는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 만 65세 이하 귀농인 세대주로서 창업자 또는 창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필수 교육과 창업 컨설팅 완료 후 사업계획서 발표 및 심의 결과에 따라 창업실행비를 차등 지원한다. 고창에서 거주지 마련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해 시행하는 귀농귀촌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로 주택을 구입 또는 임차 후 수리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세대주에게 지붕·화장실·주방 개량 및 보일러 교체 등 주거 생활에 꼭 필요한 수리비를 3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최근 인구 통계적인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족과 이웃의 해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이러한 점에도 주목해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5세대 이상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표자를 선정, 건축 허가를 받은 후 사업을 신청하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5000만 원 이내의 사업비로 진입로 포장, 상하수도 관로 매설, 배수로 및 옹벽 설치 등 필요한 기반을 조성해준다. 귀농 인구 전국 1위 기록 이러한 배경과 노력 덕분일까.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창으로 전입한 귀농귀촌 총 인구는 1만2755세대, 1만7842명이다. 특히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에는 1363세대 1748명이 전입하여 전국 기초지자체 중 귀농 인구 1위를 했으며, 2019년에는 1104세대, 1370명이 전입하여 전국 5위(전라북도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의 성과 또한 출중했다. “지난해 27세대가 체류형 시설에 입주하여 8개월간 영농 관련 교육을 받고 총 20세대가 고창에 정착, 74%의 정착률을 기록해 체류형 시설을 운영 중인 전국 8개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해 교육을 수료한 후 고창에 정착한 20세대는 고창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도시에 사는 친구 및 지인들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고창으로 오라고 권유하는 등 고창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이러한 가시적 성과를 바탕으로 귀농귀촌인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고 귀농이나 귀촌을 해 농촌에서 소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고창군 자원봉사센터 및 각 읍면 귀농귀촌협의회 지회와 연계하여 각 마을 상황에 맞는 재능기부가 가능하다. 이런 재능기부를 통해 성취감 및 자존감 향상은 물론, 기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며 갈등도 해소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유 군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귀농귀촌은 어려운 일이다. 생활의 근거지를 변경하는 것은 큰 변화가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군수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귀농귀촌을 한 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농사를 짓는다면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서 비교 분석해보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 다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곳을 귀농귀촌지로 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주거지 및 농지 마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지역을 자주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보길 바랍니다. 먼저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도 들어보고, 행정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발품 팔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했을 때, 귀농귀촌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 삶의 가치를 위해 생활의 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오시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원정책이나 보조금만 기대하고 오시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자연과 하늘·땅·사람과 함께하는 고창에서 치유하며 사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고 내려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 2021-06-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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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귀농귀촌, 사전 준비 단단히 하자
- 베이비붐 세대 김시골(가명)씨는 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공단에서 32년을 일한 그도 노후가 걱정이긴 마찬가지다. 연금은 받겠지만 아직도 군대 간 아들 복학 후 몇 년을 더 AS해야 해야 하니 주름이 늘 수밖에 없다. 사실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이처럼 은퇴자들은 시골살이를 꿈꾸지만 귀농과 귀촌은 선뜻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2020년 진행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41.4%가 은퇴 후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019년보다 6.8% 증가한 수치다. 또한 지자체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해결책의 일환으로 귀농귀촌 인구 유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이 퇴직자들의 전유물이란 통념에서 벗어나 도농 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연금이나 금융소득의 수입원이 있는 은퇴자들은 귀농보다는 귀촌에 힘이 더 실려 있다. 때문에 지자체들은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귀농귀촌 정책 지원 확대에 발벗고 나섰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을 기획했다. 그 첫 번째로 경북 성주군 편을 담았다. 귀농귀촌으로 가는 길 [경북 성주군 편] 샛노란 성주참외로 부자농촌 대명사 등극 경상북도 성주군의 4월은 온통 노랗다. 성주의 들판을 뒤덮은 수만 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참외 때문이다. 전국 최고의 단일 품종 최대의 부자농촌 대명사가 됐다. 성주군은 지난 한 해 동안 성주참외 농사로 억대 매출을 올린 농가가 1230가구로 조사됐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참외 최대 생산지 성주군을 귀농귀촌 최대 수혜지로 찾았다. 성주군의 4200여 농가에서 생산되는 연간 15만 톤 안팎의 참외는 전국 유통 물량의 70%를 차지한다. 성주참외 맛의 비밀은 자연환경에 있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토양에 영남 내륙 분지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갖췄다. 분지는 태풍·눈·비·바람을 막아줘 참외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전국에서 가장 긴 일조 시간도 한몫해 성주참외를 더 단단하게, 더 달게 한다. 이 지역의 참외 재배 역사는 6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1990년대부터다. 참외는 여러 모로 우리나라에 특화된 채소다. 멜론의 변종인 참외는 해외에서는 Korean Melon, 즉 ‘한국 멜론’으로 불린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90%가 수분으로 이뤄진 시원함과 특유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인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오복꿀, 바른꿀 등 ‘꿀 시리즈’로 알려진 참외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러한 참외를 생산하는 땅이 가장 집중된 곳이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성주군은 그야말로 참외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참외에는 ‘성주참외’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주군에서 참외 하나로 벌어들이는 조수입(비용 포함 수입)이 연 5000억 원 이상이라니,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 농작물로 계속 언급되는 이유다. 최고의 참외 전문가들과 함께 품질 유지 물론 성주군에서도 성주참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년에 성주참외 50년을 기념하고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성주군에는 전국 224명, 경상북도에 46명 있는 농업 마이스터가 6명 있다. 이들은 모두 참외 재배 분야 마이스터다. 또한 참외명인 1명, 참외명장 2명을 두어 우수 기술을 계속적으로 컨설팅하며 성주참외의 위상과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명장들의 손길 덕분인지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 따르면 성주참외에는 베타카로틴이 딸기에 비해 3배, 감귤에 비해 2배 함유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성주참외를 위한 새로운 로고와 캐릭터, 포장재 등을 개발했으며, 전국 최초로 농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100억 원을 투자하는 비상품화농산물자원센터를 2023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이 센터를 통해 상품화되지 못한 참외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하여 다양한 재가공을 통해 한우 사료 및 기타 가공품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성주참외는 코로나19 확산과 소비 침체 와중에도 해외 수출 415톤을 기록했다. 해외 시장 진출은 K 시리즈로 대변되는 해외 문화 수출 기획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1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억들 인구 4만3000여 명의 성주군은 성공적인 참외 산지 외에도 다양한 문화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주군은 1800년 전 고대 가야 연맹국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곳이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경상도에서 개간된 농토가 가장 넓었던 자리였으니 농업 지역으로서 일찌감치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또한 태종, 단종, 세조의 태실이 자리할 정도로 명당의 평가를 받았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있었다. 성주군은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도심 공원형 복합문화공간 ‘성주역사테마공원’을 만들었다. 2020년 10월 말에 준공된 성주역사테마공원에는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로 위상을 떨쳤던 성주목의 옛 모습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 연못인 쌍도정도 있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성곽과 문루를 비춰 고즈넉한 야간 명소로 각광받는 중이다. 해발 1433m의 가야산을 품은 가야산국립공원도 성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특히 정견모주길은 가야산국립공원 속에 숨어 있는 진주로 불리는데,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그늘이 계속되는 숲길과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가득하다.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군의 역사를 활용한 또 하나의 대표 관광지다. 참외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것과 맞물리는 묘한 인연이랄까. 삼국시대의 한 축이었던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거대한 규모의 고분들이 집결되어 있으며, 가야부터 신라까지 이르는 다양한 토기와 마구류 등이 출토되어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든 중요한 유적지다. 성주군의 문화 명소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성밖숲은 2017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2018~21년에는 대한민국 생태테마관광지로 선정되었다. 이곳에는 500년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신비롭고 기이한 형상을 지닌 52그루의 왕버들이 모여 산다. 매년 7~8월이면 맥문동이 피어 성밖숲을 시원한 자줏빛으로 물들이며 짙푸른 왕버들과 보색(補色) 대비를 연출하기에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적인 전통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개민속마을로 가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하회마을·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 7대 민속마을 중 하나이며, 경북도지정문화재 9채와 6채의 재실을 포함한 총 75채의 초가집·기와집이 돌담길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주의 명소 무흘구곡과 성주호 둘레길의 드라이브 코스는 하나의 길 안에 있다. 아라월드 입구에 들어서자 만나는 성주호 둘레길은 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이다. 이 길은 숲으로 호수로 구불구불 이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동차로 59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다가 30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서남쪽으로 우회전하면 성주호를 끼고 돌게 된다. 이 길은 매년 봄이면 벚꽃 터널로 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드라이브 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주댐을 지나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의 입구를 지나면 무흘구곡을 만날 수 있다.
- 2021-05-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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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취향대로 즐기는 4색 캠핑 라이프
- 코로나19 시대의 여가 활동으로 ‘캠핑’(Campi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5인 이상 집결 금지 같은 사회적 조항으로 사람들은 친구, 연인, 가족 등 소수정예로 팀을 꾸리거나, 홀로 자연으로 들어가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캠핑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 트레킹, 사이클, 카약, 낚시, 서핑 등의 아웃도어 활동을 결합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같은 캠핑도 전혀 다른 캠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너에서는 때와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캠핑 ‘4대 주자’ 자전거캠핑, 오토캠핑, 차박캠핑, 백패킹의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자전거캠핑 | 걸어서 가기에는 먼 곳을 무동력으로 가고 싶을 때 자전거의 몸체에 짐받이 가방과 패니어백, 혹은 자전거 몸체에 연결한 트레일러에 아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산악 임도, 해안, 자전거길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바이크캠핑, 투어링캠핑이라고도 부른다. 오지와 같이 한적하면서도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 자동차로 가기에는 가깝고 도보로 가기에는 애매한 주변 여행지를 찾아가는 데 자전거는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다. 자전거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전거’다. 즐겁고 쾌적한 자전거캠핑을 위해서는 자전거캠핑에 적합한 자전거를 준비해야 한다. 생활형 자전거, 산악자전거(MTB), 로드자전거, 하이브리드, 미니벨로, 전기자전거 중에서 캠핑 장소와 주로 형태, 이동 거리에 따라 크게 산악자전거, 로드자전거, 투어링 전용 자전거, 산악과 로드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전거 다음으로 중요한 장비가 ‘복장’이다. 1박 이상 장거리 자전거캠핑을 할 때는 장시간 자전거 주행을 해야 하므로 기능과 안전을 고려한 라이딩용 복장을 추천한다. ‘쫄쫄이바지’로 통하는 ‘자전거 패드바지’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구김이 없고 건조가 잘되며, 자전거 안장과 밀착되는 부위에 두꺼운 패드가 붙어 있어 엉덩이 통증을 상당히 줄여준다. ‘저지’로 불리는 자전거 상의는 등 뒤에 주머니가 있어 휴대폰 등의 수납이 가능하다. 자전거캠핑은 온전히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이동하는 만큼 수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챙겨야 하는 장비라면 자전거용 멀티툴, 휴대용 펌프, 예비용 튜브, 체인 커넥터 같은 갑작스러운 고장에 대비한 미캐닉 장비다. 이외에 헬멧, 선글라스, 바람막이, 장갑, 버프, 모자, 두건, 팔토시, 랜턴, 비상식량, 스마트폰 충전기, 구급약품, 비상식량, 텐트, 침낭, 매트리스, 캠핑용 조리도구,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등이 있다. 오토캠핑 | 자연 속에서 집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을 때 차량에 각종 야영 장비를 싣고 떠나 캠핑장과 유원지 등 지정된 사이트에서 취사와 숙박을 하는 캠핑이다. 차량을 이용해 움직이므로 장비 수용에 제한이 없고, 차량 바로 옆에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으므로 캠핑 장비를 힘들게 옮기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캠핑 초보자라면 오토캠핑을 통해 캠핑에 재미를 붙이는 편이 좋다. 만약 캠핑에 필요한 장비가 없다면 캠핑 업체에서 텐트, 침낭, 취사도구 일체를 제공하는 ‘글램핑’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오토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가볍고 견고한 텐트, 계절에 맞는 침낭,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를 차단해줄 매트리스, 햇빛을 가리고 비와 바람을 막아줄 타프,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체온을 지켜줄 기능성 의류, 만약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구급약품이 있으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그릴, 키친테이블, 아이스박스도 있으면 유용하다. 최근 들어 캠핑카,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한 오토캠핑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매번 따로 수고롭게 텐트를 치고 접지 않아도 차량 안에서 편리하게 취사와 숙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4000만~1억 원을 호가하는 만만치 않은 캠핑카 가격이 단점이겠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비용은 1000만~2000만 원 정도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카라반 전문 커뮤니티 ‘더 카라반’(thecaravan.co.kr)에서 확인하자. 캠핑카를 대여할 경우 보름 전 사전 예약을 통해 대여 업체 차고지를 방문하거나 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한다. 렌털료는 1박 2일 기준 국산차 35만~50만 원, 수입차 45만~80만 원이다. 대여 조건은 만 26세 이상, 운전 경력이 최소 1년 이상 운전자. 대인, 대물, 자손 종합보험은 기본으로 가입돼 있으나 자차보험은 빠져 있다. 안전운행수칙 교육 업체에서 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캠핑장 정보는 한국관광공사의 ‘고캠핑’(gocamping.or.kr)을 추천한다. 차박캠핑 | 드라이브하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싶을 때 오로지 자가용 한 대에서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캠핑카,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확보가 어려운 캠핑장 등이 차박캠핑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번거롭게 텐트를 치고 접을 일도 없다. 또 캠핑카처럼 부피가 크지 않아 기동성도 좋다. 산, 들, 바닷가 등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머물면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오토캠핑처럼 취사도구를 이용해 제대로 조리해 먹기보다는 가볍게 때우거나 현지 맛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차박캠핑이 반드시 SUV 차량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량 뒷자리인 2열 시트 등받이를 접었을 때 트렁크와 이어지는 면이 수평으로 평평한 상태라면 경차, 소형승용차로도 차박캠핑을 즐길 수 있다. 평평한 바닥에 누웠을 때 본인 키보다 살짝 넉넉한 공간이면 된다. 필요에 따라 자동차 후미에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를 연결해 공간을 확장하기도 하는데 비용은 20만~50만 원 전후다. 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루프톱 텐트는 수백만 원 상당이다. 차박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쿠션감 있는 자충매트리스, 침낭 혹은 집에 있는 가벼운 이불, 외부에서 들어오는 한기를 막아줄 은박매트, USB로 연결 가능한 차량용 전기매트,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구급약품, 계절에 따라 모기장과 핫팩, 그리고 취사할 경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아이스박스 등이 있다. 필요하다면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 루프톱 텐트, 타프도 구비한다. 차박캠핑의 장점으로 기동성을 꼽을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차를 세우고 야영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 사유지, 해안 방파제에서는 야영할 수 없다. 휴게소나 주차장에서 차박캠핑을 하더라도 불을 사용해 취사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차박캠핑 성지로는 당진 왜목마을, 충주 목계솔밭, 강릉 순긋해변과 안반데기, 홍천 모곡밤벌유원지, 여주 달맞이광장, 부산 오랑대공원, 태안 몽산포해수욕장, 부안 모항해수욕장이 있다. 백패킹 | 두 발로 정처 없이 걷다가 하룻밤 쉬고 싶을 때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넣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산, 숲, 트레일, 해안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백패킹의 가장 큰 매력은 인적 드문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기에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BPL(BackPacking Light)이 관건. 이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장비와 식량을 꾸려야 한다. 장거리 트레킹의 경우 배낭 무게는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배낭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추리니 자연스럽게 백패킹 이후 나오는 쓰레기 또한 줄어든다. 내가 머문 자연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바로 LNT(Leave No Trace)다. 백패킹 문화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백패킹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편이지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은 백패커라면 가져야 할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백패킹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트레킹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 야영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에 따라 다소 달라지지만 크게 운행 장비, 주거 장비, 취사 장비로 나눌 수 있다. 트레킹 중심의 백패킹이라면 무게가 중요하다. 오래 걸으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편한 트레킹화와 배낭을 기본으로 스틱, 헤드램프, 랜턴, 텐트, 침낭, 매트리스, 모자, 취사도구, 식량 등이 필요하다. 야영 위주 백패킹의 경우 이동 거리가 짧기에 소화 가능한 캠핑 장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백패킹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킹화와 배낭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우선 트레킹화는 평소 신는 신발보다 한두 치수 크게 신을 것을 권한다. 등산용 양말이 두껍기도 하고 피로로 인해 발이 붓기 때문에 너무 딱 맞으면 산행을 지속할 수 없다. 배낭은 여름철이라면 50~60L급, 겨울철에는 80~90L급 배낭에 수납한다. 역시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에서는 야영할 수 없으며, 자연휴양림 혹은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다. 현대차 ‘포레스트’, 자동차를 넘어 움직이는 집으로서의 가치 현대자동차 소형 트럭 포터Ⅱ를 기반으로 한 캠핑카 ‘포레스트’가 최근 핫한 캠핑카로 떠오르고 있다. ‘포레스트’는 어디에서도 캠핑할 수 있는 편안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춰 ‘움직이는 집’이라는 콘셉트로 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캠핑카다. 국내 캠핑카 등록 대수는 2014년부터 5년간 약 5배 증가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여가 활동 수요와 캠핑카 개조 규제 완화로 캠핑카가 늘고 있다. 정부는 연간 6000대 차량이 캠핑카로 개조되면서 1300억 원 규모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포레스트는 스마트룸, 스마트베드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전동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룸을 사용하면 차량 뒷부분이 800㎜ 연장되고, 확장된 부분은 침실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베드 기능으로 침실을 두 층으로 나눌 수도 있다. 포레스트는 2열 승객석에 상황별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가변 캠핑 시트를 탑재해 내부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가변 시트는 주행 중에는 시트, 캠핑 시에는 소파, 잘 때는 침대 용도로 쓸 수 있다. 또한 캠핑지에서 샤워실,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겪는 사생활 침해 등 불편을 고려해 독립형 샤워부스, 실내 좌변기를 선택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다. 차량 내 각 창문에 커튼이 설치됐다. 또한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주는 태양전지 패널도 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대용량 배터리 및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캠핑 중 배터리 방전에 대한 걱정을 줄였다. 이밖에 현대차는 포레스트 내에 냉난방기, 냉장고, 싱크대, 전자레인지 같은 각종 편의사양을 제공해 고객들이 집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캠핑카 기능은 포레스트의 직관적인 터치식 통합 컨트롤러로 제어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 2021-04-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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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다
-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하늘길이 닫혔고, 각자 꿈꾼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은 새로운 여행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방구석에서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매일 지나는 동네에서 숨겨진 명소를 찾는 재미를 발견했다. ‘이런 것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관광이 되고, 산업으로 성장했다. 여행이 달라졌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정보 기업 부킹홀딩스가 최근 전 세계 28개국 2만여 명의 여행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21년부터는 총 9가지의 여행 방식이 대중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온라인 여행 ▲기술을 접목한 여행 ▲근거리 여행 ▲안전한 여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에 발 도장을 찍는 대신 익숙한 장소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기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현실감 최강’ 대세는 몰입형 콘텐츠 코로나19 이후 주목받고 있는 여행 방식은 ‘랜선 여행’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통해 즐기는 여행으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새롭게 떠오른 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의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콘텐츠다. 크리에이터가 특정 주제를 설정하고 이에 맞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기하는 롤플레잉 ASMR 영상은 유튜브에서 꾸준히 관심을 끄는 콘텐츠 중 하나다. 이어폰을 착용한 뒤 눈을 감는 순간, 원하는 곳 어디로든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 ‘공항 ASMR’, ‘비행기 ASMR’은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고 실제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승무원의 말소리부터 탑승 안내 방송, 공항 특유의 시끌벅적한 느낌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오랜 ‘집콕’으로 유튜브가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진짜 여행지를 구경하고 싶다면 각국 관광청 홈페이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두바이 관광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의 관광지를 360도 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으로 홍보하는 몰입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호주 관광청의 ‘8D로 체험하는 호주’ 영상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에스페란스 해변에서 돌고래가 뛰노는 소리,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페어리펭귄이 이동하는 소리, 킴벌리의 호라이존탈 폭포 소리 등 현장에서나 들을 법한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소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세계의 문화 예술을 실감나게 접하는 방법도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처’는 구글과 제휴한 주요 박물관 2000여 곳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상현실(VR)과 거리 뷰 기능을 통해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과 도서관을 360도로 산책하듯이 둘러보고, ‘아트 카메라’ 시스템으로 작품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다. 앱을 다운받으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아트 프로젝터’ 기능을 누르면 카메라 화면 속에 3차원 예술 작품이 나타나 서 있는 곳을 박물관으로 만든다. 랜선 여행의 진화는 어디까지? 실시간 현지 투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여행 분위기를 내는 것을 넘어 이제는 집 안에서 ‘진짜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여행사와 숙박업소 등 관련 산업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대면·비접촉 여행 관련 각종 상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집에서도 패키지 관광이 부럽지 않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상품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이리얼트립은 최근 해외에 거주 중인 여행 가이드들이 실시간으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랜선 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실제 여행사 프로그램처럼 이용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생동감 넘치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 소도시 세고비아의 골목을 둘러보는 여행부터 홍콩 야경 투어, 로마 시내 워킹 투어 등 콘셉트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투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투어에 참가한 이용자들은 “실제로 가이드와 함께 걷는 기분이다”, “집에서 ‘치맥’하며 바르셀로나를 둘러보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등 만족스러운 후기를 남겼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 체험’을 선보였다. 각국의 호스트들이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이용자들에게 각국의 문화·예술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승려와 함께하는 명상, 현직 멕시코 셰프의 타코 수업, 고고학자와 이탈리아 와인 역사 배우기 등 원하는 체험을 선택하면 현지인과 생생하게 교류할 수 있다. 가격은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대개 2~4만 원대다. 한편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항공(JAL)은 최근 대면 형태로 실시하던 비행기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전환하고, 인쇄업체 톳판인쇄사는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일본 유명 문화재를 온라인으로 견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최대 여행사 JTB도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투어 서비스를 도입했다. 나만 아는 여행지, 숨은 명소를 찾아서! 콧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구석 여행에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파가 바글바글한 ‘핫플레이스’를 갈 수도 없는 노릇. 이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숨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국내여행 의향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기존 유명 관광지보다 숨겨진 여행지나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여행할 것’이라는 응답이 1순위로 높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지난해 ‘언택트 관광지 100선’을 내놓았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개별 여행 및 가족 단위 테마 관광지 ▲야외 관광지 ▲자체 입장객수를 제한하는 관광지 등 거리두기 기준을 충족하는 여행지를 모아놓은 목록이다. 여행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곳의 여행지를 천천히 살펴보면, 생소한 관광 명소가 눈에 띄면서 우리나라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차박’도 새롭게 부상한 언택트 여행 문화다. 차에서 관광과 숙박을 모두 해결하는 차박은 거리두기에 최적화된 여행이다. 차로만 방문이 가능한 이색 명소를 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카페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의 추천에 따르면, 차박의 대표 명소는 충북 충주 목계솔밭이다. 광활한 대지에 화장실과 개수대 등 편의시설을 모두 갖춰 그야말로 차박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충주 수주팔봉 캠핑장과 삼탄유원지, 양평 광탄유원지, 여주 신륵사 등이 차박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숨은 여행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뉴노멀 시대의 또 다른 트렌드는 동네 걷기 여행. 동네 걷기 여행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는 카카오TV의 웹 예능 ‘밤을 걷는 밤’이다. 밤을 걷는 밤은 가수 유희열이 서울의 밤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익숙한 거리에서도 색다른 매력을 찾아내 보는 묘미가 있다. 때로는 정해진 방향 없이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우연히 멋진 풍경을 만나면 멈춰서 감상도 한다. 부담 없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듯한 편안한 콘셉트 때문인지 2020년 12월 기준 누적 조회수가 560만 회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언제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까. 아직은 미지수다. 이렇게 애쓰며(?) 노는 게 마스크 없이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배낭을 챙기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수 있다.
- 2021-02-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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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나도 지원 가능할까?
- 한국국학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 17개 지자체의 지원으로 추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에 함께할 13기 신규 이야기할머니를 모집한다. 1월 18일부터 2월 22일까지, 만 56~74세 대한민국 국적 여성이라면 응시 가능하다. 우대사항으로 ‘고정된 직업이 없는 이’에게 가산점을 부여해, 제2직업을 꿈꾸는 시니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사업에 관심 있는 이들이 궁금해 할 점들을 질의응답 형태로 알아봤다. 자료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Q. 이야기할머니 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A. 이야기할머니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한국국학진흥원이 제공하는 교재 속 이야기를 한 주에 한 편씩 외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들려주는 활동을 한다. 동화구연과는 달리 과장된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고, 옛날 할머니가 손주에게 했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다. Q. 선발은 지역별 인원이 정해져 있나? A. 지자체별로 선발인원이 정해져 있다. 단, 지원자가 없거나 적임자가 없는 기초지자체는 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Q. ‘응시자격’에서 ‘고정된 직업이 없는 분’은 무슨 뜻인가? A. 자원봉사자로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에 전념하도록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고, 본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을 우대하여 선발한다는 의미다. Q. 서류심사 불합격 기준은 무엇인가? A. 다음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불합격 처리된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주민등록초본, 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하시지 않은 경우 △사진을 미첨부한 경우 △지정된 지원서 양식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반드시 단면 출력 작성) △서명이 누락된 경우(개인정보이용동의서) △마감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경우 Q. 관련 경력 증명서류는 별도로 제출해야 하나? A.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선발 공고문에 명기된 서류(응시지원서, 자기소개서, 개인정보이용동의서, 주민등록초본)만 제출하면 된다. 이 외에 제출하는 서류는 전형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Q. 면접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이뤄지나? A. 서울, 원주,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제주에서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 장소는 지원서에 기재된 주소지를 기준으로 확정된다. 공지된 면접일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변경이 불가하며, 정해진 면접시작 20분 이후에 도착하면 면접을 볼 수 없다. 가령 10시 면접일 때 10시 20분 도착은 면접 가능, 10시 21분 이후 도착은 면접 불가. Q. 신규교육은 어떤 것인가? A. 이야기할머니로서 기본소양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다. 합격을 하면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에 방문해 2박 3일간 기본소양 교육을 받는다. 교통편과 숙식은 제공된다. Q. 월례교육은 어떤 것인가? A. 신규교육 후 매월 1차례 진행되는 구연 실습교육으로 지정된 이야기를 암기하여 직접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가정 아래 진행하는 교육이다. 월례교육 장소는 기본적으로 면접을 봤던 지역에서 월 1회씩 총 6회로 진행되며 중식은 제공되지 않는다. 제주지역은 광주·부산·서울 중 한곳을 선택하여 월례교육을 받아야 한다. Q. 교육 및 실습 시 수당이 지급되나? A. 월례교육 1회당 3만 원(연간 6회), 현장활동 실습 수당 1회당 4만 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Q. 교육만 수료하면 활동할 수 있나? A. 월례교육 과정에서 이야기 구연 실습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월례교육 6회 중 3회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며, 평가 받은 점수가 기준 점수(70점) 이상인 경우에만 수료할 수 있다. 활동 전 사전교육을 받은 후 유아교육기관에 파견돼 활동을 하게 된다.
- 2021-01-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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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티모르의 성장에 여생을 바치겠다”
- 민간·공공기관 퇴직자로 구성된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이하 NIPA 자문단)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사업으로, 개도국 정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공 분야의 기술 및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의 자문을 통해 파견국의 경제,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퇴직 후 자신의 경력을 나눈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자긍심까지 느낀다는 그들. NIPA 자문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해양수산부 근무 30년, 스스로를 ‘뼛속까지 공무원’이라 칭하는 채진규(72) 씨. 수산 관련 국제협력 업무를 보며 해양장관회의 유치, 자동선박위치정보시스템 구축 등에 힘썼고, 해양수산공무원 교육을 담당하면서 개도국의 수산 인력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주관하기도 했다. 2007년 만 60세 나이로 퇴직한 후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뼛속까지 배인 경험’ 덕분에 포항시의 해양수산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미지의 세계로 눈을 돌려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의 개도국 자문관 파견에 지원하게 됐고, 2014년부터 동티모르 수산청에서 수산자문관으로 3년간 일하며 수산양식훈련센터 건립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잘 마치고 귀국했는데, 한편으론 수산양식인력 훈련만으로는 발전을 꾀하기 힘들 거라는 우려와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러던 차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NIPA)의 NIPA 자문단으로 동티모르 수산청에서 다시 근무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죠. 그길로 바로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채 씨가 NIPA 자문단이 되어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때 그에겐 3년 치의 원대한 목표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성사하지는 못했다. 신규 지원자의 파견 기회 확대를 위해 2019년부터 정책이 바뀌어 NIPA, KOICA, NRF 파견자 활동 기간이 통합 3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KOICA 활동을 통해 그쪽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놨죠. 1년 차에 수산물 유통센터 부지 확보를 시작으로 2년 차, 3년 차에 따른 목표가 있었어요. 아쉽게 기간이 줄어 1차년도의 목표달성 후 귀국했습니다.” 한국 공무원 시절 경험이 노하우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채 씨가 이룬 성과는 적지 않다. KOICA 활동 때부터 추진했던 수산훈련센터 건립 마무리를 비롯해, 딜리공항 내 홍보 TV 설치 및 투자유치 홍보 콘텐츠 방영, 딜리해변 수산물유통센터 건립을 위한 공공부지 확보 행정절차 진행(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등 현역 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물론 한국과 동티모르의 업무 환경 차이는 있었지만, 공무원 시절의 경험이 값지게 쓰였어요. 동티모르는 한국에 비해 정부 예산이나 민간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죠. 국내 해양수산부에서도 수산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담당했던 터라 관련 업무 흐름을 빨리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어요.” NIPA 자문단 활동 이후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던 채 씨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동티모르에 다시 가겠노라고. 비록 NIPA의 지원은 종료되었으나, 동티모르 수산청의 그를 향한 신뢰는 여전하고, 공공이익 추구를 통해 인생의 보람을 찾는다는 목표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삶의 목표를 금전보다는 보람에서 찾고자 했죠. 앞으로도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모토가 될 것입니다. 가족과 협의해 무보수 봉사를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퇴직 후의 연금 일부를 동티모르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물론 국내 봉사도 의미 있지만, 개도국에서 느끼는 보람이 남다르고 더 큽니다. 그러한 기대가 저를 다시 동티모르로 이끈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NIPA 자문단 재파견은 불가능해졌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계획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입니다.” 노후의 행복, 자문단 활동으로 찾아보길 채 씨는 올해 초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WHF(World Harmony Foundation)과 접촉해, 현재 동 재단의 투자자들이 동티모르에 10억 달러 내외의 자본을 투자하는 건을 정부기관과 협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산 분야뿐 아니라 관광, 에너지, 수자원 등 다방면의 투자유치를 꾀해 동티모르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소속은 달라졌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하나하나 사업을 추진해가며 본래의 목표를 달성해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다시 NIPA 자문단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한달음에 지원할 그다. 무엇보다 NIPA 자문단으로서 느꼈던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채 씨는 자신처럼 한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온 시니어라면 NIPA 자문단에 도전해보길 권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자기 분야에 자신이 있다면 NIPA의 도움을 받아 자문단이 되어보십시오. 분명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보람을 인생 2막에 찾으실 겁니다. 노후에 비싼 경비 들여가며 해외 관광 가는 대신, 개도국봉사활동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삶의 목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평생을 투자해 쌓은 귀한 노하우를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는 행복을 꼭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 채진규 자문단원 ㆍ파견 국가 동티모르 ㆍ파견 기간 2018년 6월 22일~2019년 6월 21일 ㆍ파견 분야 무역투자 ㆍ파견 직종 무역투자 일반 ㆍ파견 기관 수산청 ㆍ자문 내용 수산물유통센터 설립 및 투자유치 홍보 자문
- 2020-10-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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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가 나의 모든 걸 흔들어놓았다
-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떠도는 여행만큼 즐거운 게 다시 있을까. 생활의 굴레에서 해방된 자유로움. 모처럼 내숭이 없는 마음으로 풍경과 풍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 도취할 수밖에 없는 우연한 이벤트들과의 만남. 다채로운 비일상적 낭만의 향유와 감성 충전이 가능한 게 여행이다. 그러기에 흔히들 지친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즐긴다. ‘스리랑카주의자’ 고선정(48)은 좀 다르다. 그는 여행으로 삶을 통째 뒤집었다. 종전의 관습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으니 반전이자 반역(?)이다. 신간들을 살펴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특이한 제목을 단 여행서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라는 책.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좋아하기를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쓴 책임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스리랑카에 관한 한 고수임을 알리고, 풀만 먹기로 작정한 채식주의자처럼 스리랑카를 메뉴로 섭취해 삶과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도를 덩달아 밝힌 셈이다. 평소 제목에서 갖는 호감만으로 책을 충동 구매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의 네이밍은 꽤 근사하다. 부실한 내용을 담은 채 오직 호객을 위한 기술적 작명에 그쳤을 경우엔 노련한 독자들의 한숨을 자아내겠지만 ‘조금 특별한 여행기’임을 자처하는 이 책의 내용은 비교적 충실하다. 저자 고선정은 3년여 간 스리랑카를 집중적으로 드나들며 체험한 명소와 유적,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추억을 기반으로 책을 써나갔다. 자료와 정보의 수집에도 공을 들인 기색이 완연하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책엔 스리랑카의 역사와 종교, 문화와 환경 등등에 관한 인문적 정보들이 빼곡하다. 재미있는 건 여행 중에 만난 스리랑카 사람들이 보여준 정겹고 미더운 모습을 담은 에피소드들. 이는 건조한 문체와 평면적 묘사로 일관해 다소 밋밋한 맛을 풍기는 이 책에 고소하게 뿌려진 양념에 속한다.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겐 요긴한 가이드북이 될 테다. 매체의 서평 담당자들이 딱히 이 책을 지목했다는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저자의 인생이 확 변했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서 드디어 인생의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뒤 나는 25년간 수능학원 강사로 살아왔다.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휴일이나 명절에도 쉬지 못한 채 정말 바쁘게 살았다. 벗어나야지, 달아나야지 하면서도 얽매인 세월이었다. 항상 경제적인 측면을 중시하며 기관차처럼 달려온 날들이었거든. 책 출간을 계기로 이 지루한 단순반복에서 탈출, 인생 2막을 새로 시작하게 됐다.” 학원 강사에서 여행 작가로 변신한 셈이구나. “요즘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글쓰기는 오랜 꿈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꾸깃꾸깃해진 꿈이었다. 그 낡아가는 꿈을 스리랑카 여행을 계기로 복원할 수 있었지. 이제부터라도 좋은 글,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일일지라도 열정을 불태워보겠다는 생각이다.” 심각한 글쓰기는 방울방울 피를 뿜는 고행에 가깝다. 학원 강사보다 지겨울 수 있는 게 문학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실로 힘든 일이라는 걸 왜 모르겠나? 스리랑카 이야기를 쓰며 많이 울었다. 어떻게 글을 끌어내야 할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를 몰라 그지없이 막막하더군. 그러나 도전하고 싶었다. 내가 원래 좀 강한 캐릭터다. 몹시 힘든 상황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근성은 좀 있거든. ‘뭐 해보는 거지, 뭐든 하다하다 안 되더라도 죽기보다 더 하겠어?’ 이게 나의 방식이다. 어려운 일에 질겁하기보다 일단 세차게 부닥치고 보는 성향이라는 거.(웃음)” 시련을 기어이 이겨내는 타입?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기에? 당신은 25년간 강사 생활을 계속했다. 안심으로 안주한 날들이지 않았을까? “사실 유난히 힘든 일을 겪지는 않았다. 게다가 완벽주의자라서 매사 엄청 노력했으며 덕분에 잘나가는 강사로 살았다. 경제적 기반도 다졌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들며 나를 돌아보자 허탈하더군. 긴긴 세월, 집과 학원만을 오가며 나를 너무도 조이고 누르며 살았다는 걸 깨닫고서였다.”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이 있겠나? 애환이 없는 인생이 가능하겠느냐는 얘기다. “나는 일종의 패배감마저 느껴야 했다. 단조로운 생활을 계속한 결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한 인간, 미성숙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심했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경직된 삶이었지. 인간관계도 좁았고, 친구를 만나더라도 대화조차 풀려나가질 않더라고. 유치한 인생이었다.” 결국 빡빡하게 조여둔 나사를 여행으로 풀었나? “마흔이 다 돼 처음 나선 해외여행으로 해방감이라는 걸 맛봤다. 여행이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걸 알았다. 이후 남미나 유럽 등 20여 개 국가를 여행했고, 이 와중에서 강사 생활을 청산했다.” 이상과 본성을 되찾게 해준 나라 첫 번째 해외 여행길에서 고선정은 ‘눈물을 콸콸 흘렸다’고 한다. 낯선 거리를 아무런 목적 없이 쏘다니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북받쳐서. 그가 감옥과도 같은 직장생활을 하거나 얼토당토 없는 쇼를 하며 살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지나온 날들이 족쇄에 갇힌 허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에 당황하고, 아울러 여행의 기쁨에 전율했던 모양이다.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자문하며 여행이라는 신세계에다 자신을 방목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설명하기 어려운 추상화와도 같은 삶과 시간에 마침내 구체적 맥락이 잡혀나가는 계기였을지도. 이후 그는 자유로운 인간 유형의 한 가지 존재 방식인 여행자의 자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세상의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만난 게 스리랑카였다. “여행길의 비행기에서 우연히 본 잡지 속 스리랑카 풍경 사진 한 장. 그게 나를 스리랑카로 달려가게 했다. 다분히 충동적인 끌림이었지만 치명적인 매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스리랑카의 그 어떤 매력에? “첫 여행에서 여덟 개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묘하게도 도시마다 색깔이 다르더라. 바다 경관도 실로 절경이었다. 10회 이상의 여행으로 아예 살다시피 하며 체험한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물의 나라’였다. 이마저 불충분한 설명에 불과하다. 뭐라 딱 집어 예찬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모든 게 좋았다.” 풍경은 물론 분위기까지 당신의 성향과 잘 맞았다? “그렇다. 내면으로 스리랑카가 흘러들어 나의 모든 것을 흔들어놓았다. 여행을 통해 물처럼 흐르고 싶다는 것, 공기처럼 가볍게 떠돌고 싶다는 것, 이게 내가 원하는 목적이었는데 스리랑카는 적격이었다. 나의 이상과 본성을 되찾게 하는 여행지였으니까.” 스리랑카는 인도 남동부에 있는 작은 섬나라. 개발도상국이지만 사망률과 문맹률은 낮으며 명차 실론티의 산지이기도. 자연 풍광이 빼어나 ‘인도양의 진주’라 부른다.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2019년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스리랑카를 선정, 논란을 야기했다. ‘론리 플래닉’은 고대로부터 상속된 불교와 힌두교 유적들,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 등을 근거로 스리랑카 여행을 권장했지만 종교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였다. 2019년 4월엔 수도 콜롬보에서 테러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위험 상황에 아랑곳없이 고선정은 스리랑카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막상 가보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위험지구는 영리하게 미리 피해야 하고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인간이다. 어릴 적 별명이 ‘애늙은이’였다.(웃음)” ‘론리 플래닛’의 스리랑카 예찬에 영국 외무부는 우려를 표했더군. 관광지에서 성희롱이 난무하는 나라라며. “나도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스리랑카식 택시) 기사에게 불편한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달리는 툭툭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그러나 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불편한 상황을 용납하거나 당할 나도 아니다.” 인간의 바람기와 장난기는 모든 곳에 공기처럼 감돌지도. 이게 여행자의 피로감을 가중하기도 한다. “여행이 오직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단독 여행자에게 외롭고 두려운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불시에 찾아들지 않던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명하게 움직여야 하겠지. ‘여행하다 비명횡사는 하지 말자!’ 이건 나의 수칙이다. 항상 서툰 방심이나 일탈을 극구 삼가며 여정을 추진했다.” 약간의 일탈과 모험은 여행의 풍미를 돋우지 않나? 서머싯 몸은 ‘경찰이 보지 않을 때 슬쩍 딴짓을 하는 데에 인생의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규율에 속박돼 살지 말자는 얘기였다. “성격상 일탈은 나와 멀다. 나를 속박한 건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기가 너무도 힘들었거든. 그러나 스리랑카에서 달라졌다. 비로소 꽤나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했던 거다. 그러니 스리랑카를 좋아할 수밖에.” 어떤 에너지를 받았기에? “선량한 사람들, 가난하지만 밝고 따뜻한 사람들! 내가 만난 스리랑카인들이 그렇게 대부분 순박하고 친절했다. 그런 그들의 선의가 나를 풀어놓게 한 에너지로 작용했던 것 같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지? “돈을 중심에 두고 아웅다웅하는 자본주의에 덜 물든 덕분인 것 같다. 모두가 골고루 가난해 상대적 불행감이나 박탈감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나라다. 그들은 여행자를 가족처럼 진심으로 대했다. 가령,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환하는 저녁이면 미리 집 앞까지 나와 기다려주는 주인집 식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들 그런 식이었다. 내가 스리랑카에 심취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리랑카로 이주해 살기로 했다 스리랑카 여행 중에 사람들은 고선정에게 곧잘 묻곤 했단다. “아니, 당신은 왜 항상 웃는가?”라고. 고선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늘 웃는 인간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무심하고 차가운 세상의 이면을 스리랑카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로 열심히 뛰었던 한국에선 맛보지 못한 깊은 만족감을 이국에서 비로소 만끽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자 쪼그라들었던 자아가 돌연한 탄력을 받아 확장되었나? 그는 자신과의 불화 구조를 깨고 정체성을 찾았고 열린 감관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평범한 여행 서사에 불과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고선정의 행보는 한층 역동적이다. 한 권의 여행기로 스리랑카에 꽃을 바친 그는 자신을 위해서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아예 스리랑카로 이주해 살기로 결심했다는 게 아닌가. 이미 스리랑카에 터를 사들여 살아갈 집을 짓기 시작했다. “눈뜬 아침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스리랑카다. 나를 꿈꾸게 하고, 열정을 심어준 나라. 거기에서 군더더기는 다 내려놓고 즐겁게 살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건축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올 연말엔 스리랑카로 날아가 공사를 진척시킬 참이다.” 지구 저편으로 이주. 이는 그가 요번 생에 행한 가장 참신한 결단에 속하려나. 한 번뿐인 아까운 생을 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겠다는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으랴.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산다 한들 삶의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행복으로 도배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까. 어디서건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 하지 않던가. 여기에 대한 고선정의 생각은 이렇다. “밝고 투명하게!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그렇다. 물론 스리랑카에 산다고 1급수처럼 해맑게 살 순 없겠지. 그저 2급수 정도만 돼도 좋겠다. 이마저 열정이 아니고선 얻기 어려운 차원일 거 같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중에 고선정이 자주 동원한 단어가 ‘꿈’, ‘열정’, 그리고 ‘도전’이었다. 실천을 결여하면 허영에 불과할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에겐 필생의 지표일지도.
- 2020-10-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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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목싸목 떠나는 ‘나주식탐여행’
- 바람이 서늘해지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인가보다. 지인들과 서울 곰탕 맛집 정보를 공유하다 멀리 나주곰탕 이야기로 흘렀다. 꿀꺽 군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주곰탕, 돼지국밥처럼 향토색 강한 음식은 타지역에서 먹으면 왠지 그 맛이 안 난다. 곰탕 먹으러 나주에 갈 거라는 내 말에 지인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나주곰탕 포장 부탁해.” 말은 이래도 그들도 안다. 나주곰탕은 나주에서 먹어야 제맛인 것을. 3味로는 부족한 맛의 고장 나주가 호남 물류 중심지였던 호시절이 있다.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나주평야와 뱃길 교통이 편리한 영산강을 품은 지리적 여건 덕이었다. 100여 년 전 영산강 나루터에는 특산물과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사람이 몰려드는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 문화가 ‘나주 3味’라 불리는 ‘나주곰탕’,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로 이어졌다. 나주곰탕은 우시장에서 나오는 머리 고기와 뼈, 내장 등을 푹 고아낸 장터국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부터 조선시대 관아인 금성관 앞에 큰 장이 섰다는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과 구경꾼들이 밥에 고깃국을 말아 후루룩 먹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군납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나온 소 부산물로 국을 끓인 것이 나주곰탕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시초가 무엇이든 맛있는 곰탕을 지금 시대에도 맛볼 수 있으니, 식탐 많은 나 같은 여행자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주 사는 지인이 “나주에 오면 곰탕보다 홍어를 먹어야죠” 하며 홍어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이다. 나주 3味에 연탄돼지불고기까지 야무지게 맛볼 생각이었다. 나주 여행의 시작은 곰탕으로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나주행 KTX를 타면 아침 식사로 곰탕을 먹을 수 있다. 나주역에서 구도심의 나주곰탕거리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다. 많은 곰탕집 중에서 주로 가는 곳이 하얀집, 노안집, 남평할매집이다. 하얀집은 개업한 지 110년이나 되었고, 노안집과 남평할매집은 60년 정도 되었다. 동네 주민에게 최고 맛집을 물어도 똑 부러진 대답을 듣기 어렵다. “어느 집에서 먹어도 맛있어요. 다만,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서울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고, 나주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어요” 한다. 결국 직접 맛을 보고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주곰탕은 설렁탕과 달리 국물 색이 맑다. 나주곰탕과 설렁탕 모두 소뼈와 고기를 푹 고아내는 방식은 같지만, 나주곰탕은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밥은 말아져 나온다. 밥이 담긴 뚝배기에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몇 차례 토렴한다. 밥알에 짭조름한 간이 배고, 뚝배기가 뜨끈해지면 살코기, 달걀지단, 대파를 올려 손님상에 낸다. 곰탕 맛은 국물 빛깔처럼 맑고 개운하다. 다진 양념을 풀면 칼칼해진다.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기는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곰탕 맛을 북돋는 김치도 중요하다. 숟가락 위에 밥, 고기, 잘 익은 배추김치 또는 깍두기를 올려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다. 노안집의 배추김치는 감칠맛과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다. 사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김치 담글 때 여러 가지를 섞은 잡젓을 넣어요. 봄배추를 싹둑싹둑 썰어서 잘 익힌 김치가 최고 맛있지요. 봄에 또 오세요.” 곰탕 먹고 나주읍성 산책 곰탕거리 일대에는 고려시대 초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호남의 중심지였던 ‘나주목’의 사적지들이 모여 있다. 조선시대 객사이자 나주목의 중심 관청이었던 금성관, 나주 관아의 정문 정수루, 나주목을 다스렸던 목사들의 살림집 목사내아, 고려시대 때 세운 나주향교 등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왜구 방어를 위해 축조한 고려시대 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문과 성곽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1993년부터 나주읍성 사대문 복원 사업을 추진, 2018년 완공해 나주읍성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최근 나주향교 옆에 ‘39-17마중’이 들어서 구도심에 활기를 더한다. 39-17마중은 카페&와인바, 게스트하우스,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나주 의병장 난파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1939년에 어머니를 위해 지은 난파 고택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이 집을 한 젊은 부부가 매입해 ‘1939년의 근대문화를 2017년에 마중하다’라는 뜻을 지닌 39-17마중을 조성한 것이다. 부부의 눈에는 한·일·양의 건축 양식이 결합한 근대 건축물과 마당의 아름드리 금목서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고 한다. 영화 세트장 같은 난파 고택은 게스트하우스로, 마당의 큰 창고는 벽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카페로 탈바꿈해 손님을 맞는다. 향교 담장이 카페 창가에 앉아 나주산 농산물로 만든 음료를 마시노라면 진짜 나주 여행하는 것 같다. 홍어 튀김 먹을 줄 알아야 홍어 고수 “홍어앳국 드셨나봐요.” 택시기사가 딱 알아본다. 홍어앳국 첫 경험을 이야기하자 “제대로 만든 홍어앳국을 드셨네요. 홍어 숙성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손님이 드신 앳국이 가장 많이 삭힌 등급 같아요. 나주 사람들은 그 정도 삭힌 걸 좋아해요. 앳국에는 4~5월에 나는 여린 보리 순을 넣어야 제맛이 나죠”라며 거든다. 홍어앳국은 홍어 뼈 육수에 된장을 풀고, 삭힌 홍어 내장과 보리 순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홍어 애는 홍어 간이다. 생 홍어 애는 연두부처럼 부드럽고 고소해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삭힌 홍어 애를 넣은 홍어앳국은 암모니아 향이 매우 강하다. 알싸한 냄새에 막혔던 코가 뻥 뚫린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먹기 힘들지만 후각이 조금 마비되면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삭힌 홍어가 나주의 별미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고려시대 말 공민왕 때 왜구 침략을 피하고자 흑산도 사람들을 나주 영산포로 이주시킨 적이 있다. 흑산도 사람들이 생선을 잡아 배에 싣고 며칠 동안 나주로 건너오는 사이 생선들이 상하고 말았다. 그런데 상한 생선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고 맛있는 생선은 홍어뿐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영산포에 정착한 사람들이 홍어를 삭혀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산포는 곰탕거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영산포 선창가에 40여 개의 홍어 식당과 홍어 판매장이 자리해 있다. 거리에서부터 홍어 삭히는 냄새가 풍긴다. 홍어요리 전문점에서 홍어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삼합, 홍어튀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전 등이 한 상 차려진다. 삭힌 홍어는 열을 가할수록 향이 강해지므로 차가운 음식부터 나온다. 홍어무침, 홍어삼합, 홍어전, 홍어찜, 홍어앳국, 홍어튀김 순으로 먹어야 삭힌 홍어 맛에 차차 적응할 수 있다. 마지막에 등장한 홍어튀김은 홍어 고수라고 자부했던 내게 굴욕감을 안겼다. 한입 먹었을 뿐인데 입천장이 까져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심 가득한 나주 4味 연탄돼지불고기 영산포 선창가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구진포 장어거리가 있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던 곳이라 민물장어가 흔했다. 당시에는 장어 식당 열댓 채가 성업했다. 지금은 다섯 채 정도만 남아 장어거리의 명맥을 유지한다. 구진포 장어 원조집으로 알려진 신흥장어도 이제는 타지역 장어를 사용하지만, 오랜 내력의 깊은 손맛은 여전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나주 3味에 별미 하나를 추가한다면 송현불고기집의 연탄돼지불고기를 손꼽는다.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맛집이다. 8년 전 송현불고기집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길가 허름한 식당 안에 손님이 많아 놀랐고, 주인이 연탄불 앞에 앉아 석쇠 위 삼겹살을 쉴 새 없이 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고기 맛이 바뀌었을까봐 걱정했는데, 고기 표면에 기름이 번드르르하고, 달고 짭조름한 맛은 그대로다. 가위로 고기를 직접 잘라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맛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싼값에 배불리 한 끼 먹었으니 가성비와 가심비를 다 잡았다. ◇ 이색 명소 & 맛집 ◇ 나주목사내아(금학헌)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 최고 수장인 목사의 살림집이다. 건물 이름이 금학헌이다. 1825년에 건립된 ‘ㄷ’자형 전통한옥으로서 내아 1동과 행랑채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사 의복 무료체험과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성정을 베푼 목사들의 이름을 딴 온돌방에는 옛집에 걸맞은 전통가구와 침구가 갖춰져 있다. 나주시에서 운영해 숙박료가 저렴한 편이다. 나주시 금성관길 13-8, 09:00~18:00 관람료 무료, 061-332-6565 영산강 황포돛배와 영산포등대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농수산물을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가 사라졌다가 30여 년 만에 관광용으로 부활했다. 영산포 선착장을 출발해 다시면 회진리 천연염색문화관 앞 풍호나루터까지 약 5km 구간을 왕복 운항한다. 영산포등대는 내륙 하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등대다. 지금은 등대 기능을 상실했지만, 밤마다 불을 밝혀 옛 추억을 되살려준다. 나주시 등대길 80, 10:00~17:00 월요일 휴무, 영산포 선착장 매표소 061-332-1755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와 도래한옥마을 산포수목원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는 명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 수목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풍산 홍 씨 집성촌인 도래한옥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홍기응 가옥과 홍기헌 가옥,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유산 제4호로 선정된 도래마을옛집 등 조선시대 양반집이 많다. 나주시 산포면 산제리 산23-7, 09:00~17:00 입장료 무료, 061-336-6300
- 2020-09-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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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의 일몰
-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인해 느리게 살고 있는데 웬 청산도까지 가냐는 친구를 설득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곳’ 해남으로 달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의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 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 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천 리를 달려왔으니 시장기가 만만치 않았다. 입이 짧아 늘 음식 선택에 불만을 표시하는 친구의 입을 닫게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뒤에서 갈구어대야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된다고 믿는 그의 특징은, 얄밉게도 절대 자신이 식당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해남매일시장의 상인들에게 추천을 받아 찾아간 곳은 낙원식당. 노부부가 의논해가며 당일의 식단을 짜는데, 대표 음식은 간장게장이다. 반찬 하나하나를 설명하면서 손님들과 소통하는 부부의 모습이 정겨웠다. 소박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소홀치 않은 백반의 반찬들에 홀딱 반한 불평쟁이는 일행의 동의도 없이 다음 날의 간장게장까지 미리 예약을 했다. 식사 후, 시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완도의 야경은 멀리서 점멸하는 어선의 불빛들이 배경을 이루면서 입체감을 더했고, 한낮에 어수선했던 밤 부두에는 희미한 백열전구들이 말라가는 생선들을 지키고 있었다. 주막의 바다 감상 청산도는 해남에서 배로 들어간다. 청산도행 배에 차량을 싣고 승선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차량 운전자와 다른 승객들이 분리되어 매표하고 승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든 지금, 은퇴자의 조용한 평일 여행이 오히려 청산도의 잔잔함과 잘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배에 올랐다. 청산도는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1993년)의 촬영지다. 푸른 산 푸른 바다 황톳길이 어우러진 곳에서, 소리꾼과 의붓딸 송화가 진도아리랑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5분 30초짜리 롱 테이크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느림의 쉼터’인 청산도에는 차가 별로 없다. 차가 필요하지 않아서다. 차로 다니면 이 풍경과 바람, 소리들을 가슴과 귀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지에서 신흥리로 내려가 돌담마을을 걷다가 다시 아리랑을 부르며 몽돌해변으로 넘어가려면 목젖을 적시고 가야 한다. 촬영지에 있는 주막에서 바다를 감상하며 청산도 전통막걸리에 꽃파래해물전을 곁들이면 금세 불콰해지지만 오르는 취기는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달래준다. 약간 신맛이 나는 막걸리도 산뜻하게 깨서 이후 일정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길옆에 초분이 보였다. 시신을 이엉으로 덮어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일종의 풀무덤이다. 고기잡이 나간 사이 부모가 죽으면 바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에 어촌에서 생긴 일종의 이중 장례 풍습이라니, 고단했을 어촌의 삶이 와 닿는다. 최고의 전망, 범바위 초분을 지나 청산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범바위 전망대를 찾았다. 먼 옛날, 신선에게서 십장생에 들어갈 동물들을 소집하라는 명을 받은 범이 자신이 그 명단에 없다는 사실에 삐쳐서 사슴을 죽였다. 그래서 신선의 노여움을 샀고, 그 범이 바위로 변한 곳이 바로 범바위다. 자연 상태에서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방출된다는 이곳의 이름은 범(호랑이)+유(有)+다(多)라고 한다. 그 이름을 붙인 그 노력이 참 가상하다. 이곳 범바위 부근에는 자철석이 많아 자력 작용이 활발해 실제로 나침반들이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그야말로 ‘자기장을 뿜어내는 신비의 섬 청산도’인데 근육의 적절한 이완과 수축을 유도하고 뇌의 특정 회로를 제어해 행복한 마음이 들도록 만든단다. 나이가 들면서 일출보다 일몰을 즐기게 되었다. 일출은 새벽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몇 번 보니 감흥도 덜하다. 그런데 일몰은 아무 때나 친숙하게 볼 수 있지만 찬찬히 느끼면서 본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노을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한 청송해변을 찾았다. 해변 옆에 같이 앉았던 젊은이들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마자 사진 몇 장을 찍고 자리를 떴다. 안 보이던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나오는 일출보다 덜 반갑고 그래서 감탄사도 안 나온단다. 역시 젊은이다웠다. 노을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하늘이 햇볕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광학적인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출은 빛이 뻗어 나오는 형상인 반면 일몰은 빛이 수렴되는 형상이라 부드러운 느낌이란다. 그래서일까. 일몰은 일출 못지않게 빨갛지만 뜨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출은 해가 커다랗게 보이다가 작아지지만 계속 하늘 위에 떠 있다. 그러나 일몰은 그야말로 그냥 '꼴까닥' 넘어간다. 참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네가 가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리라. 꽃도 사람도 해가 질 때처럼만 곱게 가면 좋겠다. ‘느리게 걷기’는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을 떨치거나 일념에 빠져드는 행위다. 하지만 그 행위조차 개의치 않는 게 걷기의 궁극적 경지라고 한다. 그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청산도 바닷가를 느리게 걸으면서 그렇게 ‘코로나 갑갑 생활’을 잠시 잊었다.
- 2020-09-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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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자락이 숨겨놓은 보물, 함양
- 경남 함양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지리산 자락이 숨겨놓은 보물’. 별 기대 없이 찾아간 곳이었다. 이리저리 여행 코스를 검색해 봐도 딱히 눈길을 끌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논계 서원을 방문하고 함양에서 몇 군데 돌아볼 곳을 리스트업했다. 여행자 추천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추천해준 개평 마을로 운전 경로를 입력했다. 하회 마을 버금가는 기품 흐르는 ‘개평 마을’ 한옥 마을은 어디에 있는 곳을 방문해도 좋다. 최근에 지어져 콩기름 반짝이는 한옥만 아니라면 말이다.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하더니 옛말 그르지 않게 개평 마을은 고즈넉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여행객을 반겨줬다. 안동 하회 마을의 시끌벅적한 투어리스트들의 소음이 불편하다면 우클릭하여 함양의 개평 마을을 거닐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안동 하회 마을 버금가는 개평 마을에는 조선 성종 시대 대학자인 일두 정여창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드라마가 촬영된 곳이다. 3000여 평의 너른 대지에 12동의 건물이 배치된 남도지방의 대표적 고택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돼 있다. 흔히 안동이나 경주를 방문할 때 느껴지는 관광지의 익숙함이 싫어질 때가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수백 년 전의 삶들을 유추해보고 싶은데 관광지에서는 그런 생각이 정지된다. 그저 관광객 물결에 휩쓸려 돌아다니다 어느새 그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는 순간들이 언제부턴지 싫어졌다. 그런데 함양은 달랐다. 나에게 느리게 말을 거는 듯싶었다. 마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듯 말이다. 개평 마을 일두 정여창 고택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나지막한 담을 한참 바라보았다. 또 골목 어귀 길들을 구석구석 다니며 오랜 세월의 흔적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만족스러웠다. 안동 하회 마을 버금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향유하기에는 하회 마을보다 훨씬 더 풍성한 품이었다. 굽이굽이 모래 섞인 오도재 길, 불빛 받는 밤이면 반짝거려 개평 마을을 떠나 오도재를 넘어보기로 했다. 오도재는 이 지역에서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다. 말이 고개이지 정상에 있는 지리산 제일문이 위치한 높이가 750m가 넘는다 하니 작은 산이다. 이 산을 넘어 지리산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으면서 180도 굽이굽이 오도재 길이 만들어졌다. 오도재 길로 인해 경남 내륙에서 보다 안전하게 지리산을 갈 수 있게 되면서 이 길을 통과하는 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원래 이곳 토양은 모래가 많이 섞인 땅이라 지반이 매우 약해, 급경사로 길을 낼 경우 무너져 내릴 수 있어 경사를 최대한 완만하게 만들게 됐단다. 함양의 원래 토양인 모래와 흙이 섞인 마사토(자잘한 모래와 흙이 섞인 토양을 일컫는 일본식 조어)를 섞어 도로를 포장하면서 밤이면 불빛에 반짝이는 모래알들이 더욱 환하게 길을 밝힌다.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어 오도재의 낮과 밤을 렌즈에 담았고 그렇게 오도재 길은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비운의 천재, 최치원이 조성한 함양의 산소 탱크 ‘상림공원’ 함양에는 상림공원이 군 중심부에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상림공원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천령군(현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비만 오면 마을이 잠기고 논밭이 유실되는 것이 안타까워 함양을 흐르는 강에 둑을 쌓아 상림과 하림을 만들었다는데 현재 하림은 유실됐고 상림만 남아 함양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상림공원에는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해져서 하나가 된 연리목이 있다. 부부간의 금실이나 남녀 간의 깊고 애절한 사랑을 연리목 혹은 연리지로 비유한다. 상림공원 안에 있는 연리목은 수종이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 몸통이 결합돼 더욱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진다. 이 나무 앞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돈독해지고 남녀 간의 사랑도 이루어진다니 갈등과 불화에 시달리는 남녀라면 함양으로 가볼 일이다. 상암공원 연리목 앞에는 연리목을 설명하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게시판 설명에 따르면, 연리목은 워낙 상서롭고 귀한 나무로 여겨져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연리목에 대한 기록이 총 4번이 나온다는데 ◆신라 내물왕 7년 ◆고구려 양원왕 2년 ◆고려 광종 24년 ◆성종 6년이다. 서암정사 암반에 새겨진 석공들의 10년 불사 장마 끝자락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찾아간 서암정사는 함양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을 때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낮은 안개가 계곡을 굽이굽이 감싸며 올라간다. 이 집중 호우에 사찰을 찾는 이 누가 있으랴? 차에서 내려 쏟아지는 비를 피하며 요리조리 산길을 올랐다. 마침내 서암정사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았다. 여기가 어드메냐? 한국인가? 아니면 천상계 어디인가? 한국의 사찰 중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자연 암반에 새겨진 사천왕상을 옆으로 하고 위로 쭉 뻗은 돌계단을 밟아 오른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마치 천상계로 올라가는 입구를 걷는 듯하다. 서암정사는 조계종 해인사의 부속 사찰로 인접해 있는 벽송사의 암자였다. 창건주인 원응 스님이 벽송사에서 참선을 하던 중 서암정사의 자연 석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그 어느 지역보다 빨치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 벽송사는 당시 빨치산들의 야전 병원이었다고. 폐허가 된 사찰을 보듬고 재건하면서 인근 서암정사의 자연 석굴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석불 불사를 일으켜 전쟁으로 죽은 원혼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서암정사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1988년 암자까지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가 개설되자 이듬해부터 석굴 불사를 시작했다. 서암정사를 천년만년 도를 닦는 만년 도량으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석공 6명이 30년 동안 조각한 석굴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이 곳곳의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이국적인 사찰. 한여름 쏟아지는 장맛비 헤치고 올랐던 꿈같은 여행이었다. 장대비로 제대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한이 돼, 오는 가을 다시 한번 서암정사로 가볼 참이다. 서암정사의 가을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2020-09-07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