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김준기(79)씨는 15세 차이 나는 아내와 1995년 재혼했다. 현재 결혼생활 22년,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다. 김준기씨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고단한 농촌계몽운동, 야학, 4-H연구회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와의 일상에 대해 묻자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진다.
재혼한 부부에게 ‘가족’이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감격에 젖은 백전노장은 손을 번쩍 들어 객석과 무대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정확히 27년 만의 커튼콜. 과천시민극장의 연극는 백발이 돼 돌아온 노배우의 재기와 시민들의 소망을 이루어준 ‘꿈의 무대’였다. 두려움을 떨치고 조명 앞에 당당하게 선 그들만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끊일 줄 몰랐다.
과천시민극장의 다섯 번째 연극
작년 12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떡국은 설이나 결혼식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명절마다 먹는 음식이 정해져 있어 그날이 되면 색다른 음식을 먹은 이야기가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언제라도 명절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제철 아닌 과일도 늘 맛볼 수 있다. 기다리는 기쁨을 빼앗긴 기분이다.
설날이 다가오면 장보기와 음식 장만하기가 김장을 하는 것만큼이나 커다
필자는 외국인이 한국어가 유창하면 질투가 깔린 선망을 하게 된다. 화가 나기도하고, 한 발 더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한국미와 한국의 진정한 가치를 논하는 한글문장이다. 그들의 한국어와 한글은 필자의 30년 이민생활의 시간을 한 칼에 무참하게 만들어버린다. 질투는 두뇌능력에 대한 열등감이고 노력부족에
장충단 공원길은 필자에겐 참으로 익숙한 거리이다. 필자가 결혼하고 장충동 주택가의 시댁에서 5년간 사는 동안 많은 시간을 이 공원에서 보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공원 깊숙한 벤치를 찾기도 했고 아이가 두세 살 무렵엔 포대기로 둘러업고 산책 나오기도 했다.
공원 한 바퀴 도는 동안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고 공원 안의 평화가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보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삶의 황금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와 황금기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히 쓸 만큼 모아놓고 쟁여놓은’ 돈일까? 그보다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은퇴 멘탈 갑, 즉 새로운 은퇴 마인드다. 과거 경력, 직장, 직책의 아우라를 들어내고, 자기의 진짜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
1977년 10월 24일 김포공항.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생이별을 앞둔 인파로 가득했다. 한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형제, 자매와 조카까지 모두 공항에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힘줘 잡은 두 손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곧 먼 이국의 땅으로 떠날 파독(派獨)광부들을 환송하는 자리. 그 자리에는 만삭의
아버지는 섣달그믐날 저녁에는 밤새도록 온 집안에 불을 밝혀놓아야 조상님들이 잘 찾아오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느새 해가 지면서 집안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
어머니는 며칠 전 동네 방앗간에서 뽑아다 놓아 꾸덕꾸덕해진 가래떡을 써셨다. 설날 아침에 끓일 떡국 떡을 준비하시느라 밤늦도록 떡국떡 써는 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곤 했다. 섣달그믐날
설날 음식을 위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명절 며칠 전부터 만나서 준비하는 것은 이젠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며느리를 맞이하고 첫 설날, 시어머니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음식을 해내고 싶은 마음과 그냥 편하게 보내자 하는 두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 외부에서 할 일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명절 음식은 대부분 백화점에서 사고 몇
모바일 웹진 와 함께 반려동물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유기동물 이야기 또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집을 잃어버린 후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사설 유기견 보호소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에 다녀왔다.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이하 행강집·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은 동물보호 비영리 민간단체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