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연휴는 오래전부터 관심의 초점이었다. 몇십 년 만에 나타난 개기일식이라도 되는 양 소문은 무성했고 언론은 떠들썩했다. 온갖 이유를 붙여 중간에 낀 2일을 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압력이 줄을 이었고 결국 그 소망은 실현되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무려 열흘이나 되는 기나긴 추석 명절을 시댁에서 보낼 수는 없다며 결혼을 연기했고, 예측대로 공항은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
테니스라는 운동을 즐기고 있다. 동네 가까운 곳에 테니스장이 있다 보니 접근성도 좋고 골프보다 돈도 적게 들고 언제나 나가면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점이 장점이다. 테니스는 혼자 할 수 없으니 동호회에 가입하여 회원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
같은 취미를 매개체로 하여 똑 같은 권리와 의무를 함께 지는 동호회원은 어떤 때는 가족보다 더 친밀하다. 운동
아산시 광덕산 자락으로 귀촌한 이웅기(66)씨는 시골을 홍보한다. ‘도시에 사는 시니어여, 시골로 가시라!’ 삭막한 회색 건물 숲에서 탈출하라는 얘기. 시골 자연 속에서 인생 후반을 흡족하게 누리라는 전갈. 도시라고 매력이 없으랴. 건강한 삶이 도시에선들 불가하랴. 그렇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도시보다 수준 높은 게 시골의 여건이란다.
아침 6시 40분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몸이 흔들린다. 바깥 풍경은 오랜만에 선명히 잘도 보인다. 세련되지 않지만 뭔가 여유롭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한국 예술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부산포 주모(酒母) 이행자(李幸子·71)씨를 만나러 가는 길. 옛 추억으로 젖어들기에 앞서 느릿느릿 기차 여행이 새삼 낭만적이다. 한껏 기대에 부
70년대에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은 70년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 건물은 쭉쭉 올라가고 전철은 사통발달 하더라도 생활방식은 아직도 한국은 70년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미국 친구를 보면 전형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에 살았었는데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 40여 년 간 살고 있다가 이번에 잠시 서울에 온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용한 여행이나 고요한 곳을 찾고 싶어진다. 요사이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것이 있다. ‘혼자 여행하며 얼마나 외로운지 반대로 얼마나 자유로운지 체험해보자’는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선망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정말 쉽지 않다. 천성이 게을러서 일수도 있고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남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初志一貫’은 필자가 초급장교(포대장) 시절에 부대훈(部隊訓)으로 삼아 액자에 넣어 병사들의 내무반에 걸어두었던 글귀였다.
왜 ‘초지일관’이었을까? 지휘자가 아닌 지휘관으로서 첫 발을 딛는 순간에 공인(公人)으로서의 필자의 자세를 가다듬고자 좌우명으로 삼아 늘 잊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부대를 지휘하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첫마음, 그 첫마음처럼 훈련과 교육에
여에스더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TV에도 많이 나오는 유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라서 까다롭고 위엄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전혀 위압감이 없고 소탈하고 발랄한 소녀 같다. 게다가 인품도 훌륭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 괜찮은 여성이다.
지금도 그런데 서울대 의대 시절에는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까? 그런 그녀를 목소리로 사로잡은 이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