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생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독후감을 쓴 필자의 블로그를 보고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고, 살면서 놀랄 일만 없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맞는 얘기 같아 필자 입장도 그렇다며 회신 댓글을 보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 형제들이나 자식들과 왕래가 많지는 않은 편이다.
‘Bossy’는 우두머리나 지도자를 뜻하는‘ Boss’의 형용사이다. 사전에 보면 ‘1.(구어) 두목 노릇하는 2.거드럭거리는 3.거만한’으로 되어 있다.
나쁜 뜻으로 보면 안 좋은 면이 있지만,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목소리를 내리 깔고 웃지도 않으며 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시니어들은 나름대로 얼마
스타벅스에서 30년 만의 재회를 기다렸다. 문이 열릴 때 혹시 상대를 못 알아볼까봐 출입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푸근한 인상의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망설이지 않고 우리 자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언니가 대학생이고 필자가 중학생일 때 이문동 주택에서 월세를 산 적이 있다. 우린 별채에 살고 주인은 안채에 살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20대 초반쯤 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사택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담 너머로 무심코 눈길을 돌리던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무 막대기로 얼기설기 엮은 짐승우리 같은 곳에 발가벗은 사람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이 오물을 벽에 칠한다는 치매 환자임을 알게 됐다. 가족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교과서에서도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민족의 뿌리와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 탁성에 파장 깊은 목소리는 빠르게 내달렸지만, 여성 방청객이 많았던어느 날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투박하고 투쟁적이었다고나 할까?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남자에게 다가가 시간을 드릴 테니 못다 한 뒷얘기를 해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
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한국영화에서 신성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뺄 수 있을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10.12~ 21)에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독보적 아이콘, 신성일의 회고전이 ‘한국영화 회고전’을 통해 선보였다. , , , 등 신성일이 주인공을 맡은 500여 편의 영화 중 8편을 엄선해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했다. 최근 폐암 3기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중인 신성일
1998년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변호사가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고 필자는 탄식했다.
‘여성들의 권익을 찾아주기 위해 평생 헌신하신 분에게 이런 병이 오다니… 누구보다 두뇌활동을 열심히 한 분도 피해갈 수 없는 질환이란 말인가….’
머리를 잘 안 쓰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필자는 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