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연계형 은퇴자 주거단지(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는 ‘노후에도 캠퍼스에서 배우며 사는 삶’이라는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모델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를 동시에 겪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고령층, 지역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CCRC에서 UBRC로, 배움이 있는 노후
은퇴자 주거단지(CCRC,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는 단지 내에서 건강 변화에 따라 주거 형태를 바꾸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노인주택단지를 말한다. 살던 곳에서 계속 나이 들며 살아가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오래전부터 개발해왔다.
하지만 폐쇄적 환경 속에서 세대 단절이 심화된다는 한계가 지적되면서 지역사회와의 교류, 교육 기능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단지가 필요했다. CCRC의 한계를 보완해 탄생한 모델이 UBRC다. 대학을 중심으로 배움과 세대 교류가 가능한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CCRC는 여가 중심형, 교육 중심형, 의료서비스 중심형으로 나뉘며, 이 가운데 교육 중심형 형태가 바로 대학연계형 CCRC, 즉 UBRC다. UBRC는 CCRC의 주거 형태와 돌봄 서비스를 모두 갖추고, 대학과 연계해 거주자에게 평생학습과 학위 프로그램 등 학문적 혜택을 제공한다.
이 개념은 2006년 조지메이슨대학의 앤드루 칼(Andrew Carle) 교수가 처음 제시했다. 그는 UBRC를 “대학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은퇴자에게 교육·문화·의료서비스를 결합 제공하는 커뮤니티”로 정의했다. 즉 대학의 자산은 지역의 인프라가 되고, 은퇴자는 학생이 되는 상생 구조라 할 수 있다.
UBRC의 설계와 운영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앤드루 칼 교수는 UBRC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캠퍼스와의 인접성이다. UBRC는 대학 강의실, 체육관, 공연장 등 주요 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캠퍼스에서 1마일(약 1.6㎞) 이내에 조성돼야 한다. 둘째,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이다. 거주자는 대학 강의를 수강하거나 캠퍼스 시설을 함께 이용하며, 학생들은 인턴십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노년층과 교류한다.
셋째, 연속적 돌봄 체계를 포함해야 한다. 독립생활형 주거에서부터 간호·치매 관리 서비스까지 거주자의 건강상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돌봄 인프라가 필요하다. 넷째, 대학과 운영 주체 간의 협력 구조다. 대학이 직접 단지를 소유할 필요는 없지만, 운영기관과 명문화된 재정·운영상 협약을 맺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과의 연계성이다. 입주자의 일정 비율은 동문이나 은퇴 교직원 등 대학과 연관된 인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학이 만드는 제3의 실버타운
한국형 UBRC 모델은 고령층의 지속적 학습, 사회 교류, 안정적 주거, 복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복합 주거 플랫폼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며, 국내에서도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들이 UBRC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동명대, 조선대, 신라대, 남서울대, 상지대 등이 UBR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부산 동명대학교는 서면 인근에 600가구 규모의 UBRC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반려동물학과·승마학과 같은 특화 학과도 신설하며 UBRC 입주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문화교양 프로그램을 비롯한 고령 친화 프로그램, 성인 학습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미래융합대학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조선대학교는 조선대병원 인근에 700여 세대의 은퇴자 주거시설을 계획, 시니어타운이 들어설 부지로 조선간호대학 유휴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 대학병원이 있는 강점을 살려 노인의학 전문 기능의 UBRC를 설립해 입주자 개인 주치의 제도와 프리미엄 레지던스 도입, 헬스 디자인센터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선대는 지난해 동명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조선대에 UBRC가 건립될 경우 동명대 UBRC 입주자와 매년 일정 시간 순환해 거주하는 방식으로 교류를 추진한다. 또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기획, 스마트팜 설치 등 입주자를 위한 자립 수입 시설을 통한 생활 기반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신라대학교는 1000세대 규모의 ‘액티브 시니어 캠퍼스’ 건립을 추진, 운영을 위한 기초 계획을 수립 중이다. 대학 66만 1157㎡(20만 평) 부지에 노인 주거 공간, 실버 케어, 생활체육시설 등을 짓고 시니어에 특화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배움이 이어지는 노후
UBRC의 가장 큰 의의는 ‘배움이 멈추지 않는 노후’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은퇴자는 대학 강좌를 수강하며 젊은 세대와 교류하고,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감을 완화할 수 있다.
대학은 유휴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재정 다변화와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대학병원이나 협력 의료기관과 연계한 건강관리, 캠퍼스 내 문화·체육시설 이용 등은 고령자의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돌봄·의료·문화 서비스 수요 증가로 인한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한편 건국대학교의 ‘더클래식500’은 고급 실버타운(유료 양로시설)으로 자리 잡았지만, 교육 연계와 세대 교류 측면에서는 UBRC의 핵심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국립 경북대학교 안동캠퍼스 역시 2020년경 UBRC를 검토했으나 재정 부담과 행정절차, 불확실한 수요 예측 등의 이유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상지대학교도 유휴 부지를 활용해 UBRC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이처럼 UBRC는 정부·지자체·대학·민간 개발사의 긴밀한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인 복합 모델이다. 대학 단독으로는 추진이 어렵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 품위 있는 노후를 원하는 고령 세대,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지자체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유망한 사업이다.
UBRC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용 구조, 지자체와의 협력, 규제 완화, 그리고 입주자를 위한 돌봄 서비스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UBRC는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대안이자, 학령인구 감소의 해법이며, 지방 소멸을 막는 정책적 핵심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대 간 간극을 메우고, 배움과 돌봄이 공존하는 상생의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 UBRC의 시작1980년대 대학 인근에 교수·동문이 함께 사는 은퇴 커뮤니티로 출발했다. 대표 사례인 라셀 빌리지(Lasell Village)는 라셀칼리지와 협약을 맺어 연간 200만 달러 수익을 창출한다. 입주민은 대학 강좌, 문화시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며 ‘배우며 사는 노후’를 실현한다. 교육·문화·의료가 결합된 UBRC의 원형 모델로 평가된다.
일본 - 시니어를 위한 대학 혁신
베이비부머 은퇴와 학령인구 감소로 일본 대학들은 ‘시니어 전형’을 도입했다. 와세다· 릿쿄(RSSC)·메이지 등 20여 곳이 60세 이상 입학자에게 시험 면제 및 등록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와세다대학교 오픈칼리지는 연간 1800개 강좌를 운영하며, 수강생의 70%가 60세 이상이다. 대학은 평생교육을 통해 지역 재생과 세대 교류의 장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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