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예가를 만나기가 그렇게 힘든 일이던가. 왜 꼭 그 예인(藝人)을 만나고자 했던가? 돌아보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 아릿함이 밀려온다. 청광 윤광조(晴光 尹光照· 1946~ ) 도예의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싶은 열망에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으로, 경북 안강의 자옥산 자락으로 몇 차례 도요지를 찾아갔으나 바람 같은 흔적을 놓치고 매번 조
꼭 필요하지만 혐오시설이나 인식이 좋지 않은 단체가 우리 이웃에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로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시설이나 쓰레기 소각장, 하수 처리장, 핵 폐기물처리장, 화장장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있어야 하지만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 (not in my backyard)' 를 뜻하는 님비현상을 다들 아실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웃는 얼굴, 근엄한 얼굴, 크고 작은 석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쩌면 100년도 더 넘는 시간동안 비바람을 맞고 어디엔가 쓰러져 있던 석상. 사람의 욕심에 끌려 바다 건너갔다 돌아온 고단한 돌들의 쉼터가 서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우리옛돌박물관’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2000년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었던 세중옛돌박물관을 서울 성북구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봉덕사종(奉德寺鐘)’보다는 ‘에밀레종’이란 이름이 우리한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범종에 스며 있는 설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우리나라 사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범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업 때면 과목의 본질보다는 국사 시간에나 걸맞은 것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던
신라의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 이곳에서 맞는 새벽은 늘 벅차다. 문무대왕의 산골(散骨)이 뿌려진 동녘 끝 감포바다로부터 잘생긴 신라 화랑의 자태를 연상케 하는 감은사지 탑, 너른 황룡사지, 계림의 신비로운 숲과 왕릉들. 어디든 지그시 눈감고 앉아 있으면 그윽한 고도의 기운이 감지되는 곳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이
굽이굽이 꺾인 골목길을 따라 무너져 내린 성곽 끝자락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일행의 시선을 붙든 건 음습한 기운 속에서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작고 허름한 벽돌집. 그렇게 한 세기 이상을 숨죽여 지내온 과거의 시간은 세월의 모진 풍파를 피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그 흔적이나마 보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잊혀진 역사를 더듬어 떠나는 여정, 촌철살인의 역
굽이굽이 꺾인 골목길을 따라 무너져 내린 성곽 끝자락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일행의 시선을 붙든 건 음습한 기운 속에서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작고 허름한 벽돌집. 그렇게 한 세기 이상을 숨죽여 지내온 과거의 시간은 세월의 모진 풍파를 피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그 흔적이나마 보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잊혀진 역사를 더듬어 떠나는 여정, 촌철살인의 역
용문사 가는 도로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도로 양 편으로 길게도 이어진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만추의 여정이 가득한, 휘어진 길. 그 뒤로 아스라이 옛 추억 한 자락이 떨어지는 낙엽 위로 오버랩된다. 형형색색으로 변한 산야 속에 유난히 노란 단풍잎이 눈을 시리게 한다. 이렇게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은 것은 용문사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성성하게 버
동·서양의 많은 미술가들이 배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즐겨 그리거나 조형물 또는 설치미술로 남겨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쳐 있고 강도 많아서 유년기, 성장기, 노년기 중 한때를 바다나 강 곁에서 살아 온 우리들에게 배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배는 물을 건너는 교통수단일 뿐 아니라 어업을 생계로 하는 이들에게 곧 삶의 터전이었다. 문학을 비롯해 여러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