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헨리 포드 등과 함께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을 만든 비즈니스 영웅 20인’에 오른 메리 케이 애시(Mary Kay Ash, 1918~2001). 아이 셋을 둔 40대 주부가 세계적인 코스메틱 브랜드 ‘메리케이’의 CEO가 됐다는 그녀의 성공담은 많은 여성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 그녀 못지않은 아름다운 성공을 일궈낸 이가
누구나 해보고 싶은 어렸을 적 장래희망을 다 해보고 있다.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을 거쳐 최근에는 한국줄넘기총연맹 총재로 변신한 전현희씨. 그녀는 다양한 직함이나 명함에서 나오는 딱딱한 자세보다 소신 있게 길을 걷고 싶다는 소박한 웃음으로 본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
필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바둑의 기초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좋은 승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승부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이 넘어서자 승부욕이 현저히 줄어들어 두기보다는 구경하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다 바둑을 두어도 전과 같이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연히 승률도 많이 나빠졌다.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 현재, 스포츠는 경제와 함께 신생 대한민국이 압축 성장한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대한제국이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된 이후 한국인들의 스포츠 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으면서도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1920년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를 창립하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글 신명철 스포츠 평론가
일제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3,4위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이 있다. 바로 ‘제2연평해전’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참수리 357호 27명의 용사들이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 영화 의 김학순 감독, 진심과 열정을 담아 진한 감동을 선사한
사람은 자신의 피리어드(period) 대로 역사를 생각한다. 70의 인생을 아직 겪지 않은 사람에겐 한국영화의 지난 70년은 인식과 학습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198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는 현재 대부분이 망자(亡者)의 것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유현목 감독과 그의 영화 ‘오발탄’같은 것이 그렇다. 거목 유현목은 갔지만 아직 이 영화에 대한 명성과 그에
필자의 고교 동기동창들이 동창회를 창립한 것은 졸업한 지 13년째 되는 1975년 3월이다. 당시 L동문이 사장으로 있던 시내 S호텔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동창회는 첫 번째 행사로 바로 다음 달인 1975년 4월에 역시 같은 S호텔에서 제1회 동창회 바둑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때 후배인 프로기사 홍종현 4단(당시)에게 지도를 부탁하였으나 선약을 이유로
“얼마나 힘이 세졌는지 확인해 봅시다.” 김영우 박사는 황병만씨를 보자마자 덥석 손을 잡아끈다. 당장 몸 상태를 체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겨도, 기분 상하면 안 됩니다.” 물론 팔씨름의 승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황씨는 김 박사를 이겨보려 안간힘을 쓴다.
이들은 밝은 날씨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인사 대신 팔씨름
광복 70년 분단 70년, 2015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감격과 환호 속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칠순을 맞기까지 우리는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한국의 70년은 외국의 17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와 맞먹을지 모른다. 이 길고 험난했던 세월 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는 어떻게 달라져 오늘에 이르렀으며 무엇이 시대의 화두였나. 앞으로 8월호까지 부문별로
※한강을 따라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강변을 가로막고 선 철책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그렇게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진 그 길 끝에 임진각이 있다. 슬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임진각,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글ㆍ사진 김대성 여행작가
◇전쟁의 아픔이 아로새겨진 임진각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