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드라마 의 바르디바른 둘째 아들 용식,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극인, 그리고 막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어느새 올해 67세를 맞이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렇듯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매스컴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연극인으로 돌아간 그는 OBS의 대담 프로그램 M
필자는 어릴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돈암동에서 살았다. 당시 돈암동의 랜드마크는 태극당이라는 제과점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할 때 늘 ‘태극당 앞에서 몇 시’ 하면 다 통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규모도 상당히 컸고 빵도 맛있었고 고급 이미지까지 있어 자주 이용했다. 그때는 데이트를 제과점에서 하는 게 보통이었다.
중학교 때 필자는 전차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은 ‘사람은 천일 동안 한결같이 좋을 수 없고, 아름다운 꽃도 백일 동안 붉게 피어 있지 못한다’로 해석된된다.
나무[木]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가 있다. 7월부터 9월까지 꽃이 피어 있는 화려한 꽃나무인데 그 하나하나의 꽃잎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 피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바람에 날려 잔디나
바둑은 필자의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바둑은 언제부터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필자와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바둑 급수가 유단자 수준에 이르렀다. 바둑계에는 바둑을 만 판만 두면 1급 수준에 이른다는 속언이 있으니 어쩌면 필자가 그동안 만 판을 넘게 두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도 같다. 어느 날 바둑대회장에
학창 시절 제법 각오하고 공자의 를 뒤적였던 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생각나는 구절이 없지만, 첫 문장은 기억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문장이다. 당시 해석에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로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늘 배우고 익혔으나 재미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선생님들이
이맘때쯤이었다. 1962년 완도 앞바다의 햇살은 따뜻했다. 바닷가엔 조개껍데기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뱃머리에 선 소년은 이 정도 기온이면 다시는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안심했다. 당시만 해도 전라남도 완도에서 서울로 가려면 배를 두 번 타야 했고,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14세 소년은 멀고 긴 상경길이 걱정되지 않았다. 고향에는 다시
4월의 ‘한 달 여행’ 시리즈는 ‘길 위에 오두막 별장 만들기’다. 한 달간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피레네 산맥을 등에 기대고 사는 프랑스 산간 마을, 생장피에드포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준비를 한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프랑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화장실에서 평소와 다른 시커먼 그것을 보았을 때 말이다. 심상치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가 떠올린 것은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는 그의 병이 위암이라고 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만난 오성표(吳聖杓·68)씨의 이야기다. 그리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