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떨림이 느껴지는 눈빛이 입을 열었다. 머리에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며 가벼운 질문에도 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도, 맞서는 것도 이제는 ‘정신 사납다’고 표현하는 이 사람,
코디 최(최현주 崔玄周·55).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대나무 위 무림고수를 만나고 온 기분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보다.
코디 최란
최근 강남역 묻지 마 여성 살인 사건이나 수락산 등산객 피살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끔찍하고 무섭다.
여성이 주로 공격받으니 딸 있는 친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외출한 자녀가 돌아올 때까지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어디 젊은 여성만의 걱정일까? 우리도 시니어지만 약한 여성이므로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움츠
책은 빌리고 안 갖다줘도 범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을 여러사람이
쉽게 빌리고 쉽게 사고 애착이 없는 분들도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빌려줘도 꼭 받아서 찾아오는 편이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백과사전,종이신문 조간석간신문을
정독을 하는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계속 책을 모아두고 이동할 때 어린시절 썼던
일기장도 수
필자 집 작은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의 아지트이다.
필자는 결혼 후 시댁에서 살다가 아이가 4세 되던 해 분가했다. 서울 장충동 시댁이 저택 같은 큰 집이었지만 독립해서 남편과 아들과 셋이서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울 변두리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망설임 없이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이사했었다.
시어른 참견 없이 필자가 주체가 되어 가정
글 한만수 소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충북 영동은 워낙 산골이라서 전국적으로 소문난 난시청 지역이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이며 김천만 가도 몇 개의 라디오 프로가 나오지만 영동은 FM 주파수 하나만 간신히 잡힌다.
그 시절 라든지 라는 심야 방송이 유행했었다. 별도 새도 잠든 한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는 프로그램은 내게 신세계였다. DJ의 감미
한국무역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2016 생생(生生)무역수기 공모전’ 수상작을 책으로 만들었다. 필자가 본 책 중에 가장 고급의 두툼한 아트지로 140쪽의 그럴싸한 책자이다. 여기 필자도 원고를 보내고 우수상을 수상했다.
무역협회는 필자와 인연이 있다면 있는 단체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일은 없으나 몇 년전 무역협회 아이디어 공모전에 공동세무
나는 수원이란 작은 동네 서둔동에서 살았다. 초등 1학년부터 결혼할 때 까지 이사 한 번 안 하고 컸다. 서둔동에는 서울 농과대학과 진흥청이라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곳이 자리하고 있는 관계로 오랫동안 수원의 교육열이나 교육관계의 문제라면 모두 통계로는 전국 1위권이었단다. 수원에서 자라는 동안 연습림이라는 하늘이 안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조선호텔 앞에서였다. 막 그곳을 통과하던 필자는 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한 남자가 머리에 갓을 쓰고 있었다. 한 손에 부채를 든 채로 여유 있게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화가 났다. 조선의 선비가 쓰는 갓을 청바지 위에 함부로 쓰고도 점령군처럼 안하무인이라니. 필자의 눈에선 퍼런 레이저가 발사
고금석 연극연출가
허망한 소싯적 꿈~
나의 원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문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던 것이고 1학년 때부터 경제원론이니 법학통론, 정치외교사 등을 두루 청강하였다. 5개 국어를 마스터할 계획도 세우고 첫 방학부터 중국어, 프랑스어 학원을 찾았다. 당시 독일문화원에는 독일 문학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대학생 모임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