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만 3년1개월의 종지부를 찍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었으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농촌은 더욱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필자는 휴전이 끝난 직후인 53년 8월 14일 경기 부천시 영종면 중산리 1385(현 인천 중구 중산동)에서 5남 3녀의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채
가난은 나의 스승
지난 세월에 살아온 길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한편으로는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전쟁 직후 태어나 1960년대 중고등학교에 다녔고,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다. 이후 80~90년대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태어나 가장 급속한 발전으로
첫번째 오남매가족사진, 1번 임산부필자 3번 40대의필자 4번 빛바랜 가족사진들 6번 두딸과 필자모습
카네이션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이 되면 유년 시절의 필자는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시들어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엄마를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속에서 흘린 눈물은 차곡차곡 쌓여 강하고 모진 모성애를 잉태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의
밥만 해 먹는 여자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폐업 하고나서 꼭, 10년! 집에서 밥만 해먹고 사회활동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밥만 해 먹으면서 가정 살림만 한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심하게 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활동을 해야만 훌륭하고 대단하게 여겨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집에만 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
좁고 불편한 비행기 좌석에 앉아 비몽사몽간에 몇 시간을 버티었을까? 몸도 뒤틀리고 다리도 저리고….그렇게 고통의 몇 시간이 흐르고 나니 창문틈으로 말간 빛이 흘러들어왔다. 비행기 안에서 쪽창문을 열고 내다본 바깥세상은 어렴풋 켜켜이 쌓인 만년설 위를 지나가는 듯 한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구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
‘도랑 치고 가재 잡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하다 보면 곁들여 또 다른 좋은 일이 겹쳐진다는 의미다. 늦깎이로 시작한 사진 취미가 바로 그런 예가 되었다. 60세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사진취미가 바탕이 되어서 KBS 1TV ‘아침마당’ 출연을 비롯한 방송활동, 강사, 기자, 저자로 인생이 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서다.
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덕분에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건너기 싫은 강이다. '고령자'가 싫어서 59세에서 나이 먹기를 멈추고 젊은 오빠인 양 10년을 살았다. 삶길 어언 70년! 살길 30년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
학생 시절에 읽은 어느 유명 여류작가의 ‘29세 10년’이라는 글귀가 실감 나게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시도, 신도, 모도는 다리로 연결돼 ‘삼형제섬’으로도 불린다. 강화도 마니산 궁도연습장에서 활쏘기 훈련을 할 때 과녁으로 삼았다고 해서 시도(矢島)다. 모도(茅島)는 그물을 걷으면 물고기보다 띠풀이 많았다고 해서 띠염이라 불리다 이름이 바뀌었다. 시도에서 모도를 건너는 다리 왼편에는 달려가는 청년과 앉아 있는 소녀 조각상이 있다
이재준(아호 송유재)
봄 바다, 물이랑 위 바람이 너울질 때, 깊이 따라 색의 스펙트럼(spectrum)이 펼쳐진다. 더 깊은 곳의 쪽빛에서 옥빛으로, 얕은 모래톱 연두의 물빛까지 그 환상의 색 띠를 보노라면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아쉽게 잃어버린 사람이 생각나고,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월이 아프게 떠오른다.
바람 따라 물결은 끝없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우리나라 화폐에서 모자(母子)가 함께 지폐의 인물이 되는 영광을 가진 분은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1504~1551)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다. 율곡은 5000원권의 주인공이며 현재 발행되는 신권 중 가장 먼저 나온 지폐이다. 1972년에 선보인 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