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추억 속 음악은 아련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주유하게 한다. 지난날 삶의 변곡점을 만든 노래가 있는가 하면, 중년에 접어들어 새롭게 전환점이 된 노래도 있다. 오선지에 찍힌 음표처럼, 희로애락의 하모니를 이루며 우리네 인생 변주곡을 채운 그때 그 노래들을 다시 소환해본다.
도움말 김동률 서강대학교 교수 참고 도서 ‘인생, 한 곡’
70년대의 좌절 속 청춘의 마음을 불태웠던 노래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by ‘고래사냥’(송창식)
퇴폐와 자학이 넘치던 1970년대. ‘고래사냥’은 대학가의 절망과 희망을 도도하게 포착하며 청년 지식인들을 끊임없이 선동했다. 계엄령, 긴급조치에 억눌린 젊음에게 서둘러 고래사냥을 떠나라는 절규 아닌 절규였던 셈이다. 안개 같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인생의 가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지만 떠나야 한다. 동해 바다로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야 할 때다. 그렇게 ‘고래사냥’은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떠나라고 우리를 충동한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by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빠빠빠빰 빠빠빰 빠빠빰 빠 빠빠빰”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전주다. 반주나 마이크가 없어도 어묵 국물에 숟가락 서너 개 걸쳐놓고 목 터지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자타 공인 최고의 가수이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그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가왕 조용필의 이름을 전적으로 드높여준 노래다. 1970년대 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각종 단합대회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단골곡이 됐다. 대학 엠티에서도 직장 회식에서도 흥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이면 함께 열창하던 노래였다.
중년 이후 다시 들으면 가슴 먹먹해지는 노래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by ‘서른 즈음에’(김광석)
서른을 많이 넘기지 않은 사람은 노랫말이 주는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서른을 훌쩍 넘긴 사람은 노래가 주는 슬프고도 시린 마음에 잠을 뒤척인다. 치기 어린 사랑 투정이라 짐작했을 그 가사가 얼마나 가슴을 치는지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서른 즈음에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떠났고 살아남은 우리는 그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by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낭만에 대하여’의 모티브가 된 통학길 완행열차에서 최백호는 첫사랑 그 소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박경희, 최백호는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름을 밝혀도 좋으리라 말한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최백호의 첫사랑인지조차 모를 테니까. 그렇게 낭만은 아득하고 추억마저 긴긴 세월 속에 야위어갔다. 젊은 시절에는 곡의 깊고 유창한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열병처럼 지나온 젊은 날 추억의 장소로 회귀하는 노래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by ‘광화문 연가’(이문세)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종로서적이 떠오르고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당시 광화문은 청춘들이 몰려다니던 거리였다. 경기고를 비롯해 서울고, 창덕여고, 진명여고, 숙명여고, 이화여고, 배제고, 경기여고 등 명문고교가 즐비했다. 입시학원, 고고장, 나이트클럽, 음악감상실, 분식집, 빵집이 넘쳤고 거리는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들로 가득했다. 특히 양식집 ‘이딸리아노’는 연예인이나 당대 명망가들이 드나드는 장안의 명소였다. 서울고와 이화여고 중간에 자리했는데, 이곳에서 고등학생 때 언약하고 결혼까지 한 사람도 꽤 있단다. 어느덧 세월 따라 그 시절 청춘들은 떠났고 노랫말처럼 언덕 밑 정동길엔 감리교회만이 버티고 있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by ‘골목길’(김현식)
그렇게 시작되는 ‘골목길’은 묘한 상상과 함께 사내들의 술자리에서, 대학생 동아리 모임에서, 회식 후 늦은 밤 귀갓길에서 가만히 터져 나왔다. 노랫말처럼 그 시절 신촌의 골목길에 접어들 때면 가슴이 뛰곤 했다. 곳곳에는 숨겨진 술집과 만화방, 장미여관, 은하수여관이 있었다. 곡에 등장하는 신촌 골목길들은 이른바 1980년대 낭만 히피들의 ‘나와바리’였다. ‘골목길’의 탄생에는 신촌블루스가 있다. 1986년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가 결성한 록 밴드다. 그 시절 ‘레드 제플린’은 ‘러시’와 함께 낭만 히피들의 아지트였다. 엄동설한 골목길 곳곳 카페에 몰려든 젊음들은 벽난로 가득 활활 타는 통나무 장작을 바라보며 떠나가는 청춘을 노래했다.
서울로 상경한 공순이 공돌이들의 삶을 위무했던 노래
"돌담길 돌아가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고” by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물레방아 도는데’의 노랫말에는 고향을 떠나온 이의 애끓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낙엽이 쌓이고 흰 눈이 내려도 미싱을 잡아야 했던, 이른바 수많은 공순이의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업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이 노래는 국민가요라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물레방아 도는데’는 공순이, 공돌이란 이름으로 사라져간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헌정곡과 다름없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by ‘사계’(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는 여성 보컬과 건반의 경쾌한 연주와는 대조적으로 여공들의 쳇바퀴 도는 듯한 단조롭고 신산한 삶을 노래한다. 그 발랄함 속에 숨은 페이소스에,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깊고 무거운 슬픔에 잠기게 된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혁명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수시로 아픈 일이 많았다. 노동현장에서 젊은 학출(學出)들은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론 일류 대학생과 공돌이, 공순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이 땅의 누나, 여동생들이 흘린 회한과 고독이 ‘사계’에 녹아 있다.
하늘길이 닫혔다. 매년 당연하게 떠났던 해외여행은 잠정 중단되어 여행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방구석 세계 탐방을 몸풀기로 시작했다. ‘부루마블’ 보드게임에서 아무리 많은 도시에 호텔을 사도 없어지지 않는 현장감을 채우고 싶었다. 안전상 멀리 떠날 수 없어 선택한 여행지는 ‘서울’. 이 도시에 뿌리내린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섰다. 거미줄 망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술 빚는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서울 속 세계 음식점을 탐방해보자.
사직동 그 가게
아는 작가 동생이 이곳에서 일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원활동가이며 ‘지기’라 불린다. 사직동 그 가게는 록빠(티베트 난민구호 단체, 티베트어로 ‘돕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이 공간은 지기들의 재능기부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사직동 그 가게. 구어체 느낌의 상호다. 사직공원을 돌아 들어오면 약간 외따로 떨어진 가게가 보인다. 오른편은 티베트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소품 가게이며, 왼쪽 붉은 벽돌 문으로 들어오면 카페와 식당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 흔적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 가게는 인도 짜이, 라씨 그리고 커리를 판매한다. 커리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주로 새우커리와 치킨커리를 선호한다. 두부커리, 시금치커리 같은 비건 메뉴도 있다. 인도 전통의 맛을 최대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아늑해 아지트에 머문 기분이 든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8
지하철역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454m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Last order 19:30)
이스탄불그릴
공덕역 인근 노후한 건물들이 헐리고 새로운 마천루가 세워졌다. 자영 업장들이 서서히 건물 1층을 채웠다. 이스탄불그릴(Istanbul grilll)은 터줏대감 가게 중 하나다. 터키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터키식 양갈비 그릴이 주요 메뉴다. 이스탄불그릴 사장님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벽면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사장님의 캡처 사진이 붙어 있다. 보통 두 명이 오면, 가장 무난한 메뉴가 이스탄불그릴(2인분)이다. 터키 빵+오늘의 수프+메인메뉴(그릴)로 취향에 맞게 6가지 종류로 세팅돼 있다. 식후에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지하철역 5·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공덕역 1번 출구에서 312m
영업시간 매일 11:00~15:00, 17:00~22:00, 주말 11:00~22:00 (명절 휴무)
레스쁘아 뒤 이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함께 있던 친구는 내 행적을 물으며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도로 옆 우거진 쥐똥나무 속을 뒤지더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다. 그 답례는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에서 이뤄졌다. 레스쁘아 뒤 이부는 청담동 속 작은 프랑스를 연상케 한다. 임기학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12년 차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이다. 그는 뉴욕 미슐랭 레스토랑인 다니엘(Daniel)에서 근무한 이후 이곳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미슐랭 2020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높은 인지도만큼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면 볕 좋은 오후, 테라스에 앉아 유유자적 프렌치 요리와 와인을 즐기기에 탁월한 공간이 나타난다. 5만 원에 제공되는 런치 메뉴는 애피타이저부터 본 요리까지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하우스 스페셜 메뉴인 ‘오리 다리 콩피’는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 콩피는 염장한 오리를 기름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삶은 뒤 굽는 프랑스 정통 조리 방식이다. 그밖에 킹크랩과 엔다이브샐러드, 양파수프, 광어파스타, 에스카르고(달팽이요리)를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33
지하철역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에서 456m
영업시간 매일 12:00~15:00, 18:00~22:00 (명절 휴무)
파르투내
색이 바랜 만국기가 펄럭인다. 여기는 동대문과 맞닿은 광희동. 만국기 아래 터를 잡은 몽골인들. 몽골타운 옆에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기점으로 접경 지역에 있는 나라의 동포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상점을 형성했다. 여기는 ‘서울의 실크로드’다. 그 중심에는 파르투내(Restaurant Fortune)가 있다. ‘Fortune’는 러시아어로 ‘파르투내’이고, 영어로는 ‘포춘’이라 명명한다. 우즈베키스탄 남편과 러시아 아내가 9년째 운영 중이며, 건물 1층은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카페, 2층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본격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다. 얼마 전, 맞은편에 식품 마트를 새로 오픈해 총 3개의 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지인과 우리나라 손님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다. 메뉴 책은 두껍고 무거워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수프, 샤슬릭, 차가 기본 조합이다. 샤슬릭은 양, 닭, 소고기를 구운 러시아식 꼬치 요리인데, 평소 우리가 흔히 아는 꼬치보다 3배 정도 크다. 우즈베키스탄식 누들수프인 라그만은 기름진 우육면과 비슷한 식감이다. 감자샐러드 속에 당근과 비트 그리고 청어가 들어 있는 독특한 청어샐러드도 있다. 러시아 맥주 발티카와의 페어링이 무난하나, 러시아산 보드카에 도전해보자. 후식으로는 꿀 케이크인 메도빅과 러시아 차를 권해본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54
지하철역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6번 출구에서 121m
영업시간 매일 10:00~23:00, 일요일 09:00~22:00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페트라
페트라(PETRA)는 서울 지부 중동 음식 순례지 중 0순위로 꼽힌다. 한국에서 중동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대표 야서 가나옘은 순수 요르단 출신이다. 폭넓은 중동 음식 중 동지중해 부근의 레반트(Levant) 지역 음식을 선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재료를 요르단에서 공수해온다. 음식점 내부 문양만 봐도 이슬람 사원 속 어딘가에 온 듯하다. 페트라는 할랄 의식을 치른 고기로만 요리하는 할랄 레스토랑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메뉴도 있다. 병아리콩을 삶아 각종 채소와 섞어 동그랗게 튀긴 팔라펠이 대표 메뉴이며 홈머스, 타볼리샐러드, 캅사, 쿠스쿠스 등 요르단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33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 1번 출구에서 181m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울프하운드
펍(Pub)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로 ‘공공장소’란 뜻이며, 맥주의 동력으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펍이 유래한 영국뿐만 아니라 그 옆 나라 아일랜드에도 아이리시 펍이 성행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만 해도 1000개에 가까운 펍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문호인 제임스 조이스가 “펍을 피해 더블린을 걷는다는 건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에 현지 아이리시 펍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바로 울프하운드(The Wolfhound) 펍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외국인(특히 영어권 국가) 손님 비율이 높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중요한 아일랜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맥주를 들고 응원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대표 맥주인 기네스와 크림 에일 맥주 킬케니를 생맥주로 주문할 수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달콤하면서 매콤한 치킨윙과 피시앤칩스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지하철역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95m
영업시간 매일 16:00~02:00
하노이102
성수동 주택가에 붉은 벽돌로 된 2층 주택 앞에서 머뭇거렸다.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바탕 족자에 세피아 톤으로 그려진, 베트남 여성으로 추정되는 그림만이 이 건물의 힌트였다(현재는 이 그림 아래 한글로 상호가 새겨짐).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특유의 베트남 쌀국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하노이102(Hanoi102)는 근처에 위치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운영하는 대표가 베트남을 콘셉트로 오픈한 레스토랑이다. 대표는 약 7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하면서 하노이 가정식을 섭렵했다. 가구, 테이블 등 작은 소품까지 베트남에서 공수해와 레스토랑을 꾸몄다고 한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일까. 레스토랑 내부는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난다. 같이 온 친구들과 소품의 디테일을 감상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는 쌀국수, 철판 분짜, 쌈에 싸 먹을 수 있는 튀긴 만두 넴 등이 있다.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이 떨어졌다. 식후에도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내부 디자인에 감탄했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6길 18
지하철역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에서 356m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18:00~22:00 (Last order 15:00, 21:00, 화요일 휴무)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질투로 얼룩졌던 마티스와 피카소의 우정을 소개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젊은 예술가들의 산실로 불리던 파리에는 다양한 국적의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었다. 스페인에서 온 풋내기 청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1906년 그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당대 프랑스 화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였다.
프랑스 북부 시골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법학을 공부하다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대 초반 파리로 갔다. 이후 회화 양식과 색채와 빛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명성을 얻었고 야수파의 우두머리가 됐다.
‘색채의 혁명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던 이 대작가는 무명작가인 피카소의 그림을 보자마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마티스를 뛰어넘고 싶었던 피카소
그 무렵 마티스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만든 조각품의 신비로움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골동품 가게에서 콩고 조각품을 구입한 그는 동료 화가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어 예술가들로 북적이던 아지트로 향했다. 마침 피카소도 그곳에 와 있었다. 그는 마티스가 가져온 ‘흑인 두상’ 나무 조각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황급히 일어나 자신의 작업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원시 아프리카 미술을 재해석해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을 통해 인체의 비율과 ‘색채’를 고민했고, 피카소는 마법처럼 느껴지는 ‘초월적 힘’에 심취했다.
마티스가 아프리카 조각품의 원시성에서 영감을 받고 그린 ‘삶의 기쁨’(1906)과 ‘푸른 누드’(1907)가 발표됐을 때 비평가들은 “불편한 느낌을 주는 도발적인 작품”이라며 주목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피카소는 비판을 쏟아냈다. “무릇 화가라면 단순한 색깔로만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형태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의 작품을 깎아내렸던 것. “색이 무엇인지 인류에게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말로 칭송되던 마티스의 작품에 대한 도전적 발언이었다.
피카소는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다. 마티스가 활용한 기법들은 철저히 지양했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있는 듯 없는 듯 곡선으로 처리하고 강렬한 색으로 아우라를 발산한 ‘삶의 기쁨’은 피카소에겐 매우 중요한 도전 대상이었다. 그는 바짝 긴장했고, 힘찬 직선으로 원시적 생명력을 표현한 ‘아비뇽의 처녀들’(1907)로 응수했다.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평론가들은 그림 경쟁을 벌이게 된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심리’를 분석하며 마티스보다 더 뛰어나고 싶었던 피카소의 속내를 지적했다.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해 미술계의 1인자가 되고 싶었던 피카소가 스승처럼 따랐던 마티스를 경쟁상대로 만들며 자신의 욕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흠모와 질투의 ‘붓 대결’
마티스는 신중하고 사색적인 사람이라 홀로 조용히 작업하는 걸 좋아한 반면, 피카소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어울리며 작업을 했다. 비슷한 취향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늘 서로의 작품에 끌렸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마티스와 피카소의 이른바 ‘붓 대결’은 그렇게 흠모에서 질투, 그리고 경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피카소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마티스를 강박증 환자로 몰아세우며 공격했다. 마티스도 이에 질세라 피카소의 콜라주 기법을 쓰레기라 비웃었다. 급기야는 서로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헐뜯었다.
피카소에게 실망한 마티스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교류를 끊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렀고 두 사람의 입장은 뒤바뀌었다. 피카소가 미술계의 거장이 됐을 때 병약해진 마티스는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954년 8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가 생을 마무리하면서 남겼다는 한마디는 피카소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내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지 말아주게. 불꽃같이 강렬하고 번득이는 그의 그림들 옆에서 내 그림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마티스의 사망 소식을 듣던 날 피카소는 슬픈 얼굴로 창밖을 보며 “마티스가 죽었어, 마티스가 죽었어”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자책감 때문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는 ‘캘리포니아 아틀리에’를 그리며 떠나간 마티스를 추억하고 애도했다. “다시 태어나 그림을 그린다면 마티스처럼 그리고 싶다”고 말했던 피카소는 1973년 92세에 눈을 감았다.
요즘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시니어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했다면, 요즘 시니어는 스스로의 인생에 충실하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은 자녀의 미래를 지원하면서도, 젊은 감성으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한다. ‘오팔 세대’라 불리는 이들 시니어의 우아한 인생을 들여다봤다.
요즘 시니어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전쟁과 혹독한 불경기가 지난 뒤 태어나 사회적·경제적 성장을 이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시니어 삶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옛 시니어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지원하고 응원하지만 경제력을 갖춘 덕분에 이전 세대와 달리 풍요로운 노후를 즐긴다. 이들은 1958년 전후에 출생해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세대라고도 불린다.
오팔 세대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활발한 시간을 보내고, 빛의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오팔처럼 화려한 인생을 즐긴다. 자신을 가꾸고,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남은 노후를 우아하게 장식한다. 은퇴 전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것을 모으거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화려한 문화·예술활동을 즐기고, 재충전을 위해 호화스런 여행을 떠나거나 거친 레포츠에도 뛰어든다.
◇이제 한정판 구입도 거뜬하게
한상민(61세) 씨는 캠핑 마니아이자 한정판 수집광이다. 캠핑과 관련된 한정판 제품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비교적 저렴한 ‘실리웨어 티타늄 코펠세트’부터, 고가의 ‘힐레베르그 케론4GT’ 텐트까지, 최근 2년간 60여 개의 한정판 캠핑용품을 모았다. 최근에는 20만 원대 ‘조커 사냥용 나이프’ 한정판과 캠핑용품은 아니지만 스마트워치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구성된 297만 원짜리 ‘삼성전자 갤럭시 Z 플립 톰브라운 에디션’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한정판’ 수집은 대체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국내에 없는 상품은 해외 직접구매 사이트를 이용해야 하고, 판매가 완료된 상품은 온라인 중고카페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터넷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옛 시니어들은 일반적인 수집을 취미로 즐기긴 했어도 한정판을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정판 수집이 시니어의 새로운 취미로 떠올랐다.
천연 원석 모으는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원석은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다. 각기 다른 색상과 모양 때문에 희소성이 꽤 높다. 보석보다 가격이 저렴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보석 가격이 워낙 비싸서 그런 것이지, 원석 가격이 절대적으로 싼 것은 아니다. 주로 파워스톤으로 사용되는 천연 화산암과 흑요석 같은 몇만 원짜리 원석부터 20만 원 안팎의 가넷 원석이 거래되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육박하는 다이아몬드 원석도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원석 전문점을 운영하는 윤정선 대표는 “원석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찾는 젊은 여성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나이 든 손님이 많이 방문한다”며 “시니어 손님들은 인체의 치유와 균형에 도움이 되는 원석을 집 안에 두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자수정이 방출하는 원적외선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논문이 있고, 동의보감에도 자수정을 사용해 병을 치료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사람이 내뿜는 기운이 다른 것처럼 원석도 각기 다른 파장을 방출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안목 기르려고 공부하다
정순철(62세) 씨는 정년퇴직을 한 3년 전부터 그림 경매 일정을 꼼꼼히 체크한다. 만족스러운 작품을 최대한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다.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안목이 부족하면 오히려 제값보다 비싸게 구매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예전에 규모가 좀 작은 옥션에서 위작인 줄도 모르고 사서 손해를 본 적이 있다. 이후 그는 옥션 구매를 하지 않는 날이면 전시회를 가거나 미술품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다.
은퇴 후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미술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쉽진 않지만, 퇴직 후 여유가 생긴 터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시니어들은 보통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짜리 작품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데, 작품 값 외에도 15~20%의 구매수수료와 특송을 통한 배달료까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은 가격보다 가치를 더 따진다. 감동과 행복감을 주는 작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귀는 어두워질수록, 더 좋은 음질을 원한다.” 오디오를 좋아하는 시니어들이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청력이 점점 떨어지게 마련인데, 좋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용 리스닝룸을 만들어 오로지 감상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후자에 속한다. 오디오를 즐기는 시니어는 좋은 음질을 즐기기 위한 최적의 구성을 늘 고민한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뱅앤올룹슨’의 무선 스피커 하나의 가격은 무려 270만 원에 달한다. 하이파이(Hi-Fi) 오디오의 구성 장비 중 하나인 파워앰프의 경우 미국 ‘제프롤런드’ 제품은 30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하이파이 오디오 구성 장비인 CD플레이어와 프리앰프, 파워앰프, DA컨버터, 튜너, 스피커 등을 모두 장만하려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기존 기기보다 두 배 더 비싼 장비를 들여놓는다고 해서 음질이 두 배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디오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취미로 꼽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백~수천만 원을 들여 원음의 재현율을 0.1%라도 더 높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계획하고 떠나는 여행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단체 패키지 여행 상품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의욕이 넘치는 요즘 시니어들은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자유 여행에 큰 관심을 보인다.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정신없이 움직이는 패키지 여행보다 직접 계획을 세운 뒤 떠나는 걸 더 선호한다. 이들은 평소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한 곳에 흥미를 보이지만,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여정에 따라 움직인다.
취향이 뚜렷한 시니어들은 특별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초호화 기차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의 ‘트레인 스위트 시키시마’는 객실에 다다미 바닥과 전통적인 삼나무 욕조가 있다. 혼슈 동쪽 섬에 있는 온천과 고대사원 등을 방문하는 이 여행은 1인당 500만 원 정도가 든다. 또 아일랜드의 ‘벨몬드 그랜드 하이버니안’ 열차에서는 라이브 공연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더블린, 코르크, 벨파스트를 방문하는 이 여행의 비용은 1인당 350만 원 정도다.
보호자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 여행도 혼자 떠난다. 일본 여행사 ‘클럽 투어리즘’이 내놓은 나홀로 여행객을 위한 맞춤상품은 50~70대의 신청만 받는다.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려는 사람은 신청할 수 없다. 여성 전용 상품도 있어 남성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 이 상품은 온천, 꽃놀이, 미술관 투어, 크루즈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여행과 함께 사진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오팔 세대는 디지털 카메라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에 40대 안팎의 나이였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덩치 큰 DSLR보다 작고 얇은 ‘미러리스’와 아날로그 감성의 디지털 카메라 ‘라이카’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것. 디지털 카메라 조작에 익숙한 이들은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사진에 담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한다.
◇놀 줄 아는 오팔 세대
홈 파티를 열어 지인을 초대하는 시니어도 늘었다. 당일배송 서비스를 활용해 쉽게 식재료를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특히 마켓컬리의 경우 ‘레시피 골라 담기’를 통해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클릭 한 번으로 살 수 있다. 가정간편식(HMR) 메뉴가 다양해져 홈 파티 음식을 대체할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HMR은 바쁜 직장인이나 수험생이 메인 수요층이었는데, 이제는 시니어를 위한 보양식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홈 미팅 후에는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한다. 젊은 세대의 놀이터이자 공부방 역할을 해온 이곳에 시니어들이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일. 심지어 커피숍을 찾는 시니어 손님이 늘자, 날계란이 들어간 쌍화탕을 메뉴에 추가한 곳도 생겨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스타벅스가 아니라 ‘실버벅스’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커피숍들이 시니어의 아지트로 바뀌고 있다.
이외에 산악바이크나 서핑 등 짜릿한 아웃도어 활동에 도전하는 시니어도 있다. 옛 시니어들은 힐링과 휴식이 목적이었다. 반면 도전적이고 체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요즘 시니어들은 성취감을 얻기 위해 레저나 스포츠를 즐긴다. 물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시니어도 많다. 이들은 피트니스, 요가, 필라테스 등으로 몸매를 가꾸거나 체력을 단련한다.
대한민국 1호 여성 시니어 보디빌더인 임종소(76세) 씨는 “허리 협착증을 앓던 중에 근육강화 운동을 해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좋아졌다”며 “이왕 시작한 거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한 결과 피트니스 대회에서 2위를 수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피트니스 외에도 왈츠, 탱고, 자이브 등 사교댄스를 배우고 있다”며 “매일매일이 바쁘고 즐겁다”고 덧붙였다.
바둑돌들이 사각사각 바둑통 안에서 돌더니 툭, 툭 하고 자리 잡는 소리가 들린다. 바둑 두지 않는 사람들은 그 매력을 절대 알 수 없다고 했다. 서울교육삼락회 바둑동호회 회원들은 이미 깊은 경지를 아는 듯 몸을 더 낮추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가까이 한몸이 되어갔다.
서울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인근에 서울교육삼락회 바둑동호회 아지트가 있다. 초인종을 누르니 이항재 회장이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했다. 10명 정도의 회원들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수학선생님이었던 이항재 회장은 20년 전 정년퇴임을 했다.
“퇴임 후 바로 바둑동호회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때 회장님으로 계시던 분이 연세가 많으시더라고요. 그분이 저 입회하고 얼마 안 돼 몸이 좀 편찮으셨는데 그때 제가 업무를 맡아 20년 넘게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교육삼락회는 1969년에 퇴직한 교육공무원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삼락회’란 배우고 가르치고 봉사하는 즐거움을 뜻한다. 정년퇴임한 교원과 교직원이 가입하는데 현재 전체 회원은 1000명 정도. 그중 바둑동호회 회원은 50여 명이고 대부분 70대에서 90대다. 서울교육삼락회 탄생 때부터 같이 해온 모임이다.
수준급 바둑인이 모여 있는 곳
“매년 11월 자체적으로 바둑대회를 여는데 회원 중 30여 명 정도는 꼭 참석합니다. 예전에는 조금 넓은 기원을 빌려서 했는데 작년에는 이곳에서 대회를 치렀어요.”
50여 년 동안 외부 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탔다. 퇴직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안전부장관배 친선 바둑대회에서는 우승과 준우승을 해왔고, 작년에는 3위를 했다.
“저희 회원 중 실력이 1급 되시는 분도 있습니다. 대부분 4급에서 1급 정도 되는데 다들 잘 두십니다. 그러면서 여생을 함께 보내고 있죠.”
사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회원들은 다들 화려한 현역 시절을 지냈다. 이항재 회장은 수학선생님 출신으로 교장으로 퇴임했다. 영어선생님이었던 이일우 씨는 지금도 영어교육 봉사를 한다. 바둑동호회에서 최고령 회원인 올해 99세 최영목 씨는 자리 중앙에 꼿꼿하게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 실력은 여전히 청춘. 원래 나이는 97세이나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병을 피하기 위해 나이를 두 살 올려서 호적에 고쳐 올렸다며 옛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바둑의 매력은 몰두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바둑은 정신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치매에 걸릴 일이 없죠.”
이항재 회장도 바둑 예찬론을 펼쳤다.
“아침부터 바둑알을 잡고 있어도 지루한 줄 몰라요. 어느 정도냐면, 어떤 사람이 부인이랑 예식장을 가야 하는데 바둑을 두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엔 못 갔답니다. 바둑에 빠지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어요.”
각종 대회에도 출전
바둑동호회가 모이는 장소는 교학사가 운영하는 용옥장학문화재단 사무실. 이항재 회장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독도서관에 서울교육삼락회가 있었어요. 30여 년간 그곳에 있었는데 사무국이 다 나오게 됐습니다. 그때 교학사 양철우 회장님이 교과서를 많이 팔아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며 퇴직한 선생님들을 모신 거죠.”
뭔가를 더 보여주고 싶은지 이항재 회장은 수납장에서 그동안 받은 상장을 꺼내 보여줬다. 상장과 상패가 들어 있는 파란색 벨벳 상자들이 빼곡했다. 조용히 앉아 유유자적하면서 바둑을 두는 건 아니란 의미.
“계속 이렇게 바둑을 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말이죠.”
서울교육삼락회 바둑동호회. 매일 바둑과 함께 즐겁게 하루하루 보내기를 기원한다.
송해거리의 주인공 송해 선생님!
5월호 아지트 기획을 위해 종로의 송해거리로 나섰습니다. 출동(?)한 지 10분 남짓 흘렀을까요?
앗, 그분이 나타났습니다. 잽싸게 인사를 드리고 짧게나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게 바로
현장 취재의 묘미가 아닐까요?
따뜻한 대구의 기억
초여름에 찾은 대구, 그곳엔 이규리 시인이 있었습니다. 때 이른 더위에 따사로운 한
줄기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녀의 품에 쏙 들어왔습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미지근했던 그날의 온도가 이제는 포근하리만큼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만난 최고의 캐릭터 정경교 씨
마을 사람들에게 ‘정도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내공 있는 무도인의 면모를 보여주셔서 멋진 B컷이 남았습니다. 내 취향대로 이왕이면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군요.
눈은 이렇게 뜨는 것!
한여름에 만난 찐한 언니들 루비밴드. 좀 더 강렬한 표정을 지어달라고 하니 보컬인 이오옥 씨가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를 주시합니다. 다른 멤버들은 그 모습이 웃긴지 카메라 보기를 포기했군요.
선글라스일까요?
창가를 바라보는 황덕호 재즈평론가. 안경에 빛이 반사되며 마치 선글라스를 낀 듯한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그 앞에 쌓인 음반들까지 몽환적으로(?) 그려지며 오묘한 느낌이 듭니다.
매우 인상적인 컷이었지만, 그의 맑은 눈을 먼저 보여드리고파 잠시 숨겨두었습니다.
저무는 놀빛 앞에선 허허롭다. 서산 너머로 사라진 해는 이제 어느 숙소를 찾아가는가. 인생 황혼에 접어든 사람은 어디로 가나. 만족은 없고 갈증은 자글거린다. 요즘 말로 ‘심쿵’은 멀고, 딱딱한 가슴에 먼지만 폴폴 날린다. 이건 겁나게 먹은 나이에 보답하는 정경이 아니다. 어이하나. ‘나, 물처럼 살래!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걸리거나 진땀 빼는 법이 있던가, 물이 답이자 선생이다!’ 문순우(73) 화백은 그리 생각한다. “너, 나를 물로 보니?”라 할 때의 그 물이다. 옳다구나, 가급적 만만하게 살자는 얘기일 게다. 그게 잘 사는 길이라는 소식이다. 노자가 설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이니 문순우 기자, 아니 문순우 도사가 취재한 ‘도(道) 뉴스’일 수 있다.
못 믿을 게 도인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하니 문순우를 도사로 읽는 건 결례이거니와, 그는 ‘도’라는 거룩한 단어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물이 좋아 물을 닮고자 한다. 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가는 노경(老境)을 선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물로 봐야 한다. 그게 예의에 맞다. 이 물은 오늘 숲속의 잠잠한 초록호수처럼 평온하다.
“나 요즘 편안하거든. 만족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여기에서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에요.”
문순우의 올해 나이 일흔셋.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연치(年齒). 이젠 귀신조차 바라보일 시절이다. 그러나 그가 요새 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건 캔버스다. 죽자사자 그리는 것 같다. 창작이란 방울방울 피를 뿜는 일. 흔히 산고(産苦)에 견준다. 이 힘든 일을 왜 용을 쓰고 하나, 싶지만 문순우는 힘 안 들이고 대꾸한다.
“힘은 무슨 힘? 영감(靈感)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영감’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후루룩 내려오는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를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해치우는 문순우의 내공이랄까, 그런 게 영감님을 모셔다주는 모양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문순우는 그림만 그리진 않는다. 그는 사진으로 예술에 입문했다. 도예도 주 종목이다. 목수이자 오디오 평론가이기도 하다. 와인과 재즈에 통달한 전문가다.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남몰래 눈물을 훔칠 요리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 기똥찬 다재를 일컬어 ‘전방위 예술가’라 한다. 어찌 보자면 이도 저도 아니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하나를 들입다 파더라도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기 쉬운 게 예술이다. 하나에 쉬 질리거나 옹골차게 돋우지 못해 여럿을 동시에 신나게 파 젖히는가? 딴엔 그게 자연스럽다. 물에 무슨 경계가 있던가. 열에 열 골 물이 하나로 통하고 모이는 게 물의 생태 아니던가.
나부터 사랑하기
문순우가 점심 요리를 한다. 아내 박미광(64)이 조수로 나서 묵은 김치를 물에 헹궈 숭숭 잘게 썬다. 그 사이 그는 양파와 토마토 등 갖가지 재료를 올리브유에 지지고 볶아 소스를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이름은 묵은지 파스타. 작은 꽃송이와 향신채소 잎 두어 개를 파스타 위에 살짝 얹고 요리 끝! 그러나 진정한 마무리는 아니다. 촛불을 켜고 글라스에 레드와인을 채우고서야 식사가 시작되니까. 나는 한낮의 식탁에서 제 몸을 사르는 촛불에 황송하다. 생일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촛불 보시를 한 이여, 복되도다.
“웬 촛불이냐고? 이게 격(格)이라는 것이지. 우린 항상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해요. 라면을 먹더라도 초를 켠다고. 하하핫. 이왕이면 소소한 일상이더라도 축제처럼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 내가 나부터 사랑하기, 그런 게 돼야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게 생활의 격이라 보는 것이지.”
“요리는 언제 배우셨지?”
“마흔 살 넘어 사진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했는데, 그때 요리를 배웠어요. 내겐 특이한 성향이 하나 있어요. 왕성한 호기심, 그거! 중학생 땐 전축에 호기심이 불붙어 진공관식 앰프를 직접 만들었다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그런 호기심을 누를 길 없어 유목민처럼 평생 곳곳을 떠돌기도 했어요. 파리 유학 시절엔 프랑스 요리에 호기심이 들끓더라고. 그 무엇보다 파리의 살롱 문화에 반해버렸고.”
“궁정과 귀족의 저택을 무대로 성행한 프랑스의 사교 모임, 그게 살롱의 유래죠? 사르트르나 피카소가 즐겨 드나들었던 몽마르트의 카페들이 그 후신일 테고.”
“한마디로 문화 사랑방이라 해야겠지. 프랑스 문화의 기저, 단순히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논쟁과 소통이 다반사로 벌어져 당대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나간 공간, 다종다양한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어 생을 즐긴 아지트. 꼭 필요한 그게 한국엔 드물다는 걸 알고 귀국하자마자 살롱을 차렸어요. 재즈 클럽 ‘라 끌레’라고 삼청동에 있었다고. 너무도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웃음)”
나에겐 삼사 년 전 문순우의 거처에서 한나절을 놀았던 추억이 있다. 당시 그의 집은 시골 숲속에 있었다. 그의 집이랄 것도 없다. 그는 돈이라는 게 당최 없다. 남의 헌털뱅이 대형 창고를 빌려 집으로 개조해 부부가 살았다. 그게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만가지 진기한 사물들이 절묘한 미학으로 어울린 예술적 파빌리온. 작업실과 와인 바와 집채만 한 오디오 장비가 혼융된 그 창고 건물은 그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살롱 용도로 쓰였다. 수많은 예술 동네 종족들이 물방개처럼 부산히 드나들었다.
현재 그의 거처는 안성시 외곽 대로변에 있다. 큼직한 신축 건물에 산다. ‘제네시스 미술관’이라 쓴 손바닥만 한 팻말이 붙어 있다. 이 집도 그의 것이 아니다. 갸륵한 후배들이 지어 내준 건물이다. 내부는 전에 살았던 창고 건물 풍경과 거의 이하 동문이다. 고스란히 옮겨 적절히 반죽해 치장했다. 별개의 사물과 사물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공감각적 코러스를 자아낸다. 오디오를 켜면 그의 귀는 칡넝쿨처럼 뻗어 선율을 빨아들일 게다. 와인 병이 즐비하니 취하고 싶을 때 취할 테지. 이 집의 모티브 역시 살롱이다. 사적으로는 미술 작업실이고 공적으로는 재즈 클럽이다. 그는 재즈에 홀려 산다. 재즈의 무엇에 심취하지?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얘길 해볼까. 그녀의 대표곡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살해된 흑인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노래했어요. 자유와 해방, 그걸 노래로 외쳤다고. 그게 재즈 정신이에요. 재즈를 듣다가 인생이 변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재즈란 고도의 매혹적 예술이겠고.”
“이곳에서 매월 한 차례씩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죠? 재즈 전도사로 나선 거예요?”
“한국의 암 발생률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더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 문화의 열악함에도 원인이 있다고 봐. 예술이란 어디에 쓰이느냐, 남들에게 이바지하는 거, 즉 사회적 공헌에 목적이 있다고 난 봐요. 내 그림도, 재즈 공연 기획도 문화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길 바라며 하는 짓들이지. 공연 때 놀러오라고. 1세대 재즈 밴드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재즈 뮤지션들이 오거든.”
“비쌀 텐데, 개런티!”
“기름값밖에 못 주지만 부르면 다들 기꺼이 달려와요. 자유로운 영혼들이거든. 게다가 내가 일찍이 한국 재즈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집문서 없어도 잘 산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을 다탄두로 매단 럭비공을 닮았다. 문순우의 삶이 그걸 알게 한다. 젊은 날의 그는 날품팔이나 구두닦이로 밥을 벌며 세상이라는 정글을 배웠다. 공수부대원으로 3년간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가진 거라곤 돈뿐이던 시절도 있었다지. 디자인 분야 사업을 해 17명의 직원들을 거느렸고, 스포츠카를 몰았더란다. 그러다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돈에 덜미 잡힌 삶이 원숭이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 것처럼 요상하고 우스웠던 모양이다. 해서, 사업을 접었다. 돈벌이의 노예로 사느니 천성인 방랑벽을 고이 살려 유목민으로 살자, 늦깎이로나마 예술과 한판 붙어보자, 그런 작심을 야무지게 하고 프랑스 유학에 나섰던 것. 이후 오늘날까지 예술이라는 참호 속에 들어앉아 세상을 겨눈다.
돌아다닌 세상, 겪은 세사가 많아 일화도 숱하다. 누적된 연기(緣起) 속에서 명멸한 기억들…. 아프기론 월남전에서 목도한 참상이다. 곱살하기론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심혼이 남긴 잔상으로, 일테면 그건 문순우가 보유한 정신적 체력을 북돋운 한 가지 양분이었던 것 같다. 들어볼까.
“언젠가 용산역 앞에서 어느 스님이 건달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더라고. 그걸 내가 뛰어들어 수습했어요. 알고 보니 중광 스님이더라고. 묘한 인연이었지만 이후 가족처럼 지냈지. 내 삶으로 육박해온 가장 청명한 성좌였다 할까. 때로 파격의 괴물이었으나 근본은 순진무구의 화신이었어요.”
“사람이 새벽이슬도 아닌 것을, 순진무구를 유지하며 이 난잡한 속세를 견딜 수 있을까요? 때 묻히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지 않나?”
“그렇기에 용케도 순수한 사람들이 그립고 좋고 사랑스러운 게 아니겠어? 이 순수란 증류수와도 같은 무균 상태가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품성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신 역시 봄바람처럼 따사로워 인간적이지만, 일면 자학적이기도 해요. 그 독한 파이프담배 아니면 시가만을 피우다니, 그거 자학 아닌가?(웃음)”
“애연가 등소평은 아흔네 살까지 살다 간 것을.(웃음) 그가 말했지. 흡연은 젊은이에겐 낭만을, 늙은이에겐 위엄을 부여한다고. 와인은 또 얼마나 좋은가. 내가 아
술타령으로 죽을 쑨 인생이 많지만, 술이 건진 고통과, 술이 익힌 시와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는 와인과 노닐어 멋과 낭만을, 작업의 효율을 구가하는 것 같다. 버선목이 아니라서 문순우의 속을 뒤집어볼 순 없지만, 그의 내부에도 고독과 불안이 고여 있을 테지. 그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우수를 술과 음악으로, 또는 창작으로 청소하길 능란하게 하는 사람. 해서, 태연하고 평온하게 노년을 영위하는 사람. 그게 문순우이며, 이런 그에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는 건 돈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모두 그 앞에서 절을 하는 물신(物神)의 가호를 받지 못한 채로 영일(寧日)을 누리다니. 늙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돈이라는 감옥에 갇히기 십상인 게 삶이지만, 그는 감옥 밖에서 말짱하다. 비결이 뭘까? 그를 물로 보면 답이 나온다. 어디든 흘러가 채워주는 물! 목마른 자에게 흘러들어 한 잔의 샘물이 되는 삶! 그는 그런 지향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 결과 집문서는 없으나 사람문서를 쥐게 됐다.
“나를 부르주아라 오해하기 십상이지. 시가에 와인에, 고급 음악에, 모든 호사를 누리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난 가진 게 없어요. 옷가지도 30년째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작품 재료도 모두 폐품을 활용한다고. 전화기도 오래된 폴더 폰이야. 식재료도 텃밭에서 손수 길러 쓰고 말이지. 딱히 잡기라는 것도 없어요. 돈 들어갈 게 뭐란 말인가.”
“날마다 한두 병씩 마시는 와인은 어디서 오죠?”
“작품이 팔리면 와인부터 비축하지만, 작품이 팔리는 일은 드물지. 그걸 잘 아는 제자나 후배들이 와인이며 시가며, 심지어 거처까지 마련해주더라고. 차후 ‘문순우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더군. 아아,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 자주하는 것이여.”
“반대급부 없는 도네이션은 없는 법.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그토록 받으시지?”
“좌우명을 말해볼까? ‘남을 대하기를 나를 대하듯이 하자.’ 이기심을 버리는 게 자유롭게 사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살았어요. 주변과 타인을 채우는 샘물로 살아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남을 소중하게 아끼면 그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게 나를 채우는 길이다, 그런 신념을 잊지 않고 실천했어. 사실, 우리는 모두 빚쟁이 아닐까? 남들에게, 세상에게 신세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던가? 그렇다면 날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사는 게 옳지 않나?”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계산 없는 물로 돌아가 세상 빚을 갚으면 빛난다! 그게 문순우의 비결이다. 윽! 난 오늘 한 방 맞았다. 허울 좋은 처신과는 격이 다른 고수(高手)의 이타(利他), 그 실천적 뉴스에.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을 가름하며 나만의 영역을 완성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의 다양성만큼이나 개개인마다 가지각색의 취향도 있게 마련. 유독 찾아드는 아지트를 보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묻어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매거진을 거쳐간 셀럽들에게 공간 초월 당신만의 아지트에 대해 물어봤다.
작품 찾아 떠나는 길목 ‘정독도서관’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2014년부터 줄곧 서울시극단 단장을 맡아온 김광보 연출가의 아지트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제가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가서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구상도 하고 많은 것을 결정했습니다. 특히 잘 안 풀리거나 어려운 작업을 할 때, 사면초가의 마음일 때 정독도서관으로 갑니다. 이제는 오래된 버릇이 됐습니다. ‘사회의 기둥들’(2014), ‘줄리어스 시저’(2014), ‘은밀한 기쁨’(2014), ‘M버터플라이’(2012) 등을 그곳에서 풀었습니다.”
정독도서관 자리에는 1900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중·고등학교가 있었는데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당시의 교정 모습이 잘 간직돼 있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옛 교정을 도서관으로 만든 곳이라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이 분명히 있을 테지요, 사람들 냄새도 많이 나요. 정독도서관에는 후각을 통해 영감을 자극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왠지 마음이 경건해진다고나 할까요.”
1980년대 초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해 1990년대 초에 서울로 올라와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니 정독도서관은 김광보 단장의 꽤나 오래된 아지트다. 요즘도 자주 찾느냐는 질문에 “서울시극단에서 하는 일이 많아 예전만큼 자주 찾질 못한다”며 깊은 한숨에 아쉬운 웃음을 보인다.
“아무래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도서관에는 자주 가지 못해요. 뜸해졌습니다. 지금은 작품 구상할 틈도 없지만 또 언젠가 정독도서관에 앉아 책 펴놓고 고민할 날이 올 겁니다.”
시원하게 목 좀 풀어보겠습니다 ‘양재시민의숲’
신강균 前 한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황진이가 인생 2막의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 신강균 前 한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그의 아지트는 어디일까?
“양재시민의숲입니다. 저와 판소리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요. 초기에는 장구까지 가지고 갔는데 지금은 안 가지고 다녀요.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인적 드문 정자에 모여서 두어 시간 노래를 부르면서 놉니다.”
판소리는 호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맛이 난다.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흥이 더 붙는다. 도반들과 마음이 맞으면 밤이고 낮이고 숲으로 가서 흥을 나눈다. 그런데 양재시민의숲이 신강균 교수에게 꼭 판소리만을 위한 아지트는 아니란다.
“현대 서예를 즐기는 사람들과도 가끔 가서 ‘숲속 휘호’를 합니다. 시창작반 회원들과는 백일장도 열고 미술반 도반들과는 야외 스케치도 하고요.”
신 교수는 시니어에게 아지트란 커뮤니티와 같다고 말했다.
“저처럼 시·서·화·창(詩·書·畵·唱), 악기, 무용까지 다양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아지트가 한 군데일 수가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그림을 그려요. 아주 집중하면서요. 다른 팀들과 어울릴 때는 관심사를 또 바꿉니다. 이를테면 양재시민의숲을 중심으로 이동식 아지트를 운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듯합니다.”
당신의 아지트는 어디인가? 물론 특정한 한 곳만을 아지트로 삼은 사람도 있겠지만 날씨, 기분, 개인 욕구에 따라 가고 싶은 장소가 달라지기도 한다. ‘2019 시니어 아지트’ 설문조사에서 ‘시니어를 위해 생겨났으면 하는 아지트 유형은?’이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문화공간, 학습터, 쉼터를 꼽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즐기고,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쉬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공간을 소개한다.
연재 순서 ① 樂(즐기다), ② 學(배우다), ③ 休(쉬다)
休(쉬다)
고즈넉한 여유
학림다방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 지식인, 문화예술인의 아지트다.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1956년에 문을 열었다. 삐걱대는 나무계단,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LP판과 목조 구조물들이 정겹다. 클래식한 매력 덕분에 주말이면 계단에 대기 줄이 이어질 만큼 인기다. 한가롭게 음악도 듣고 이 공간을 즐기고 싶다면 평일에 방문하는 게 좋다. 로스터리 카페 ‘학림커피’도 가까운 거리(도보 1분)에 위치해 있다.
위치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혜화역 3번 출구 도보 1분)
운영시간 매일 10:00~23:00 (연중무휴)
싸롱마고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한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싸롱마고’다. 현재 은덕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예, 사군자를 가르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진행된다. 1층에 진열된 옛 CD, LP판, 턴테이블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층은 천장이 높아 탁 트인 느낌을 주며 2층엔 아담한 좌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쾌청한 날 북촌길을 거닐다 이곳에 들려 책과 음악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자. 대표메뉴는 마고차(직접 만든 국산 차 6000~7500원), 복분자 빙수(1만2000원).
위치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49 (안국역 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매일 11:00~18:00 (월요일 휴무)
보약 같은 휴식
솔가헌
도심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다면 한옥 한방 카페 ‘솔가헌’에 들러보자. 진산한약국에서 운영하는 솔가헌은 한옥 내외부를 환경호르몬이 전혀 없는 원목으로 꾸몄다. 탁 트인 공간과 함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편백 좌식 온돌방도 마련되어 있다. 또 한방차와 더불어 각종 에이드와 스무디, 해독 피자, 다이어트 쿠키 등 다양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솔 향 가득한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즐기는 족욕(20분에 1만 원)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대표메뉴는 진산한약국이 개발한 10여 가지의 한방차(다과 포함 1만 원).
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4 (경복궁역 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평일·토요일 11:00~20:30, 일요일 12:30~20:30 (주문마감 20시, 화요일 휴무)
카페 드 바디프랜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 드 바디프랜드(Cafe′ de Bodyfriend)’는 안마의자로 유명한 헬스케어그룹 ‘바디프랜드’가 운영하는 복합힐링공간이다. 1층은 카페&베이커리, 2층은 레스토랑, 3층은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카페&베이커리, 레스토랑에서는 친환경 식자재를 엄선해 사용하고 일체의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전시장에서는 직접 바디프랜드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으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힐링의 격을 높여준다. 모든 층의 바닥과 벽면은 대리석,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다. 한강과 도심을 내려다보며 안마도 받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도 즐길 수 있어 호화로운 호텔 부럽지 않다.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546 (청담역 1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카페&베이커리 10:00~22:00, 레스토랑 런치 12:00~15:00/디너 17:30~22:00, 전시장 10:00~21:00 (모두 연중무휴)
예약방법 070-4237-7985~7
당신의 아지트는 어디인가? 물론 특정한 한 곳만을 아지트로 삼은 사람도 있겠지만 날씨, 기분, 개인 욕구에 따라 가고 싶은 장소가 달라지기도 한다. ‘2019 시니어 아지트’ 설문조사에서 ‘시니어를 위해 생겨났으면 하는 아지트 유형은?’이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문화공간, 학습터, 쉼터를 꼽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즐기고,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쉬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공간을 소개한다.
연재 순서 ① 樂(즐기다), ② 學(배우다), ③ 休(쉬다)
學(배우다)
떠나자 북캉스!
서울책보고
최근 문을 연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1465㎡ 규모의 신천유수지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공공 헌책방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책벌레를 형상화한 비정형 나선 구조의 거대한 헌책 장서가 눈을 사로잡는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있던 25개의 헌책방을 모집해 10만여 권의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북카페에서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독창성과 희소성 있는 독립출판물 2000여 종과 명사의 기증 도서 1만여 권도 전시되어 있다. 독립출판물과 기증 도서는 구매가 불가하고 서울책보고 내에서 읽는 것만 가능하다. 또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절판된 서적도 구매할 수 있으니 추억의 헌책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서울책보고로 GO!
위치 서울 송파구 오금로1 (잠실나루역 1번 출구 도보 3분)
운영시간 평일 10:30~20:30, 주말 10:00~21:00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휴무)
청운문학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은 자연 속에 위치한 한옥형 문학특화도서관이다. 시·소설·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 문학 작품 및 작가 중심의 기획 전시와 인문학 강연, 시 창작 교실 등도 운영한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조망을 자랑하고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하다. 독서와 사색,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이 도서관의 또 다른 매력은 ‘문학둘레길’과의 연계다. 문학 둘레길은 인사동, 만해당(한용운 가옥), 보안여관(시인부락), 이상의 집, 윤동주 하숙집 터, 세종대왕 생가 터, 정철 생가 터,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문학과 자연의 향기에 취하고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36길 40 (경복궁역 3번 출구, 광화문역 2번 출구 → 버스 환승)
운영시간 매일 10:00~19:00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휴무)
아크앤북
책과 라이프스타일 숍이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입구에서부터 세련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복합문화공간답게 다양한 장르의 도서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 및 잡화도 판매하고 있으며 카페와 음식점도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 ‘태극당’도 입점해 있어 출출할 때 간식을 즐기기에도 좋다.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아크앤북에 방문했다면 ‘타센 아트북 스트리트’로 불리는 아치형 책 터널은 꼭 보고 가야 한다. 독일의 예술서적 전문출판사인 타센의 도서 8000권 속에 자석을 넣어 천장을 덮은 특별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치 서울 중구 을지로 29 (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 도보 1분)
운영시간 매일 10:00~22:00 (연중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