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노인천국이다. 그러나 백인 노인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외로움이 그 한 몫을 차지했다. 미국의 노인들은 대체로 검소하지만 부유하고 고독한 만큼 사랑도 넘쳤다. 미국인들이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라고 누가 그랬는가. 자본주의가 넘치는 미국에 살면서 얻을 것과 배울 것은 끝이 없었다.
하얀 은발머리가 햇빛에 반짝이며 곱게 단장한 백인 할머니 한 분이
건강한 가정이 모여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이런 공동체가 모여 국가의 초석이 된다. 하지만 가정 해체가 심심찮게 일어나면서 아동학대, 노인 소외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허물어지는 가정 해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바로 효(孝)라고 말한다. 이번 호에서는 효를 실천하는 3인이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1987년 부산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사만다 푸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가 4년 전 SNS를 통해 극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면서, 그리고 “저 역시 입양아로서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아나이스 역시 입양의 어두운 면이나
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
얼마 전 여행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다녀왔다. 먹을 거리와 볼거리의 색다름에 취해서 이틀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하이임시정부청사’에 들렀다. 일본에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일했던 곳이라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건물 앞에 섰다.그러나 임시정부라 하기엔, 청사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자그만 3층 건물로 들어서자 좁고 가파른 계단은 삐꺽
조선은 1883년 미국 공사 푸트(Lucius H. Foote)가 조선에 부임한 데 대한 답례사절로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그런데 정사(正使) 민영익(閔泳翊)은 미국 체스터(Arthur Chester) 대통령에게 큰절을 하여 미국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국서를 전하면서 양국의 우호, 교역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조선정부에 대한 중국의 압력이 더욱
우리나라 해방은 독립투사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온 가족과 전 재산을 바쳐 독립투쟁을 하였다. 그러나 큰 공적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고, 명예나 지위를 탐하지 않았다.
온가족과 모든 재산을 바쳐 독립투쟁
6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소재 ‘우당기념관’을 찾아 그의 공적을 살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1867년 이조
2015년 말 한국직업사전에 직업으로 등재 된 총 직업 수는 1만1440개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 직업의 수는 얼마나 될까? 미국은 30,000개, 일본은 25,000개가 넘는다.
그럼 왜 이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직업의 수가 많을까?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업 발달로 직업이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애완동물 전문 변호사, 말 치과의사, 음식 조각
조국의 역사가 안겨다 준 수많은 비극이 있다. 그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독립 투사와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애절한 감동으로 다가와 그 여인이 옥중에서 쓴 수기 내용을 우선 써 내려가본다.
“박열을 처음 사랑하던 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박열의 식민지 조선 독립운동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고…. 아무리 독립운동이 나의 사상에 반하는 것일
밤새 내리던 비가 개었다.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하늘은 맑고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들에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책 보자기를 들고 학교로 냅다. 동 뛰었다. 동네 입구를 막 빠져나가는데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범아! 어디 가니?” 논에서 줄을 지어 모내기하던 사람 중에 아버지와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