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시정부

기사입력 2016-06-29 09:13 기사수정 2016-06-29 09:13

▲상해임시정부청사 내부 전시물. (이경숙 동년기자)
▲상해임시정부청사 내부 전시물. (이경숙 동년기자)
얼마 전 여행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다녀왔다. 먹을 거리와 볼거리의 색다름에 취해서 이틀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하이임시정부청사’에 들렀다. 일본에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일했던 곳이라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건물 앞에 섰다.그러나 임시정부라 하기엔, 청사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자그만 3층 건물로 들어서자 좁고 가파른 계단은 삐꺽 거리고 집무실, 부엌, 화장실, 놓인 소품들도 무척이나 소박해서 그 시절의 어려움을 말하는 듯 했다.

그 곳에서는 독립운동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민족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한인 2세의 교육에 힘쓰고, 일제침략의 부당성과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외교활동을 했다. 일제의 탄압과 여건 악화로 임시정부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침체되자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열사,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결행했다.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거사 전 찍은 두 청년의 사진은 울컥하게 했다. 거칠지도 강해보이지도 않는 체구로 보였지만 가슴 속 조국해방을 위한 염원만은 용암 같았을까?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뒤로 하고 죽음의 길을 걸은 그 들의 아픔이 녹아 조국이란 이름으로 ‘붉은 꽃’이 된 듯했다.

관람실을 돌다가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하고 말았다. 흑백사진 속에 있는 젊은 청년들이 눈에 들어 왔다. 후원자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초라한 옷차림이지만 단정했고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눈에서는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생명체가 그 곳에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채로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구릿빛 얼굴과 결연한 의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의 가슴도 떨리도록 아직도 조국을 놓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이 아까운 청년들이 일제의 총과 칼, 모진 고문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다니!

무능한 나라는 얼마나 큰 죄악인가? 무수한 생명을 흔적도 없이 스러지게 하는 대학살자이다. 한숨을 토해내며 그들의 한 맺힌 노력과 피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피를 솟구치게 했다. 잊지 말자. 그것이 패배거나 승리거나 수치라 할지라도 우리가 뿌리내린 역사이므로 교훈이 되어야 한다.

초라한 임시정부청사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자원도 없고 일제의 수탈로 재정도 빈약한 나라가 한국전쟁을 겪고도 GDP 세계 11위가 된 것은 이 초라한 건물에서도 우리 독립 운동가들이 원대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감사라고 표현하기에도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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