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답사거리 명문예식장이 있던 자리에서는 매주 수요일이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합주가 흘러나온다. 힘 있고 웅장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청년악단이 아닐까 싶고, 짜임새 있는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CD를 틀어놓은 듯 흐트러짐이 없다. 내공이 느껴지는 이 연주의 주인공은 바로 평균나이 75세의 ‘무궁화 시니어 윈드 오케스트라’다. 그들에게 있어 음악
서의호(徐義鎬·63) 교수(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는 ‘무즙파동’을 겪은 당사자다.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당시 수험생으로서, 또 지금의 대학교수로서 그는 50년 전과 오늘날의 입시환경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이게 정
모든 병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은 심각한 사고나 사소한 해프닝일 수도 있고, 최근의 일이거나 또는 꽤 오래전 벌어진 사건이 단초가 되기도 한다. 부산에서 만난 옥기찬(玉基燦·55)씨와 그를 치료한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의 허중보(許仲普·40) 교수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했다. 이제 중년의 삶을 시작하는 환자를 위해 다른 치료법을 선택한 의사의 이야기는
시계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시계는 자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생기는 자연의 순행에서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이를 물리적으로 표시하는 시계라는 도구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글 장세훈(張世訓)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학계에서는 기원전 3000
러일전쟁이라면 국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이 먼저 떠올라 우리에게는 결코 유쾌한 사건이 아니다.
전쟁의 쟁점도 한반도라고 믿고 싶겠지만 서양 학계에서는 러-일 양국이 다툰 것은 만주라고 평가해 왔다. 지난 20~30년 전부터 ‘한반도’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지난 호에서 청일전쟁을 ‘일본과 이홍장 간의 전쟁’이라고 평한 바 있는데 러일전쟁
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음악 중에는 미국 팝송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그리고 라틴음악도 있었다. 필자가 샹송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9월쯤이었나,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로 근무하시던 선친과 명동 국립극장(현 예술극장)에서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의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혼’, ‘
요즘 결혼하는 세대들은 맞벌이가 많지만 지금의 40~50대만 해도 외벌이가 대부분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신부들도 결혼 후에는 가사와 출산, 육아 등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시의 세태였다. 30여 년 전만 해도 외벌이 남편들은 월급봉투에 가득 현금을 담아 아내에게 갖다주는 뿌듯함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봉투째로 넘기는 남편도 있었지만
작년이었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오랜만에 이탈리아 여행에 나섰다.
볼로냐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소도시들을 기웃거렸다.
정년퇴직을 하고 연금으로 이냥저냥 살아가는 칠십 노인에게 여행은 더 이상 관광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피렌체에서 샀던 낡은 가죽으로 된 보스턴백 하나를 어깨에 걸치면 그것으로 여행
왕년의 챔피언 친구 강칠과 종구가 과거의 오해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한 마디 ‘미안해’. 까칠한 여배우 서정을 10년째 짝사랑해온 매니저 태영의 용기 있는 한 마디 ‘사랑해’.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딸 은유와 마주해야 했던 형사 명환이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건넨 한 마디 ‘고마워’. 평범하지만 값진 세 마디를 통해 얻게 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