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의학의 신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식은 몸이요, 마음이다(食卽身心). 음식을 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하며 각종 질병에서 해방된다. 좋은 음식은 에너지원 제공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골고루, 충분히 함유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평소에 식습관을 제대로 들인 사람은 몸이
2015년 겨울, 미국에 사는 아들과 딸을 만나러 갔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 유학을 마친 아이들이 그곳에 터 잡아 산 지 10년이 흘렀지만 사는 것 보러 미국에 갈 시간이 없었다. 직장생활에 매어 있던 몸이라 불가피하게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야 꿈에도 그리워하던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출발하던 날 인천공항은 겨울비가 왔는데 비행기는 멋진 구름바다 위를 날았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 체 게바라
집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이듯, 한 나라를 아름답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아름다운 사람이 만든 역사. 살사, 시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캐리비언 바다…. 쿠바를 수식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지만 누가 뭐라
‘딱 1년만 있다 돌아가자’ 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타국에서의 시절이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체념도 희망도 아닌 시간들이 안간힘을 쓰며 흘러갔고 20대 네팔 청년은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토끼 같은 아이들도 태어났다. 섬유공장 30여 만 원 월급으로 시작해 인도·네팔 요리전문점 ‘두르가’를 7호점이나 연 네팔인 비노드 쿤워(
우리나라에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가 몇 명 안 되던 시절,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은행에 위폐를 감별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매년 외화 감별 수수료로 나가는 돈도 수십 억 원이나 됐다. 오기가 발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 작은 정보라도 얻으려 찾아가면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오는 날
애초 부모님이 북쪽에 고향을 두고 계셨던 까닭으로 명절이 되어도 어디 갈 곳이 없다. 그저 관성처럼 TV를 통해 남들 귀성행렬을 바라보며 설이나 추석이 되었거니 느끼며 살았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지만 올 추석은 유달리 썰렁했다. 유난했던 세계적 자연재해와 경제 침체로 흥이 날 리 없기도 하다. 게다가 명절 연휴만 되면 고향보다 해외로 나가는 유행이 거리
톨스토이만큼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러시아 작가가 있을까? 그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 해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리바이벌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통해 젊은이들도 잘 아는 세계의 대문호다. 그가 태어나고 말년에 살았던 곳이 툴라 근처의 마을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다.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하나 더하기 하니는 더 큰 하나’ 는 서울시 강서구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의 슬로건 이다. 각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하하하’ 로 함축했다.
둘이 아니고 계속 하나가 되려면 동질성을 지속 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국적은 분명 한국인인데 이주민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놓고 차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라도에서 태어났어도 경상도에서 태어
검정고무신, 아이스께끼, 초가지붕, 푸세식 화장실…. 지금은 까마득한 시절의 우리나라 풍경을 오롯이 기억하는 사람. 1969년 미8군 장병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물한 살 청년은 소와 함께 밭을 갈고,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나라가 무작정 좋았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궁리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