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건강한 노인들이 대대로 많이 살아 장수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의 개발 등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장수촌의 특징 또한 ‘백세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건강한 노후야말로 ‘백세인생’을 즐길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의료기술과 건강보조식품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백세인생’의
헝가리는 부다페스트를 기점으로 도나우 강 근교 지역(약 45km)을 묶어 도나우 벤트(Danube Bend)라 부른다. 도나우 벤트 중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다. 1000년의 역사가 흐르는 고도로 사적과 문화유산이 많고 17~18세기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도시를 빛낸다. 특히 도시 전체에는 예술미가 넘쳐난다. 1920년대, 독립적인 삶
뭐 대수랄 게 있나? 오히려 추세 아닌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또 빨래 개고 등등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막상 해보니 점차 재미있기까지 해서 ‘체질인가?’ 하며 속으로 놀라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부엌 근처엔 갈 일이 없었고 밤중에 보채는 아이들 업어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전에 없던 생각이 든다.
한낮, 때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집 근처로 잠깐 나가 점심 한 끼 맛나게 먹고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오전 내내 집안일을 마치고 아침에 가족들이 남긴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무심히 식탁에 꺼낸다. 집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이 급기야는 맥빠진다. 그렇다고 배달음식은 내키지 않는다. 아줌마도
마로니에 공원의 추억을 들추며
비 내리는 날의 외출이 신나고 즐거울 시기는 지났지만 때론 예외일 때도 있다. 빗속을 뚫고 혜화동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니 역시 날씨에는 아랑곳없는 청춘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오가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와보는 마로니에 공원이지만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한때 젊은이들의 문화를 꽃피웠던 이곳에서 봄날의 파릇함, 낙엽 지던
“아시시에 살고 싶어요. 거긴 천국 같아요. 아시시나 토디 근처에 새집을 장만할까 합니다.” 영국의 글램 록 가수의 대명사인 데이비드 보위가 한 말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한 이탈리아 신문을 통해 “자신이 지상에서 본 천국은 아시시”라고 말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도시를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은 분명코 데이비드 보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돈암동에서 살았다. 당시 돈암동의 랜드마크는 태극당이라는 제과점이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할 때 늘 ‘태극당 앞에서 몇 시’ 하면 다 통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규모도 상당히 컸고 빵도 맛있었고 고급 이미지까지 있어 자주 이용했다. 그때는 데이트를 제과점에서 하는 게 보통이었다.
중학교 때 필자는 전차
“어 이게 누구야”
“너 여기 숨어있었구나”
바람도 살랑대는 어느 맑은 가을날 오후
내가 봉사하는 경로당에 입당하러 오신 어르신과 총무님께서 마냥 어린애 되셨다
그 후 두 분의 대화는 함께하시는 어르신들이 다 외울 정도로 그게 그 얘기였지만 정작 두 분은 한 이야길 또 하며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고 즐기신다.
늘 남의 말에 갈고리 걸어 다툼을 일으키시는 대머
4월의 ‘한 달 여행’ 시리즈는 ‘길 위에 오두막 별장 만들기’다. 한 달간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피레네 산맥을 등에 기대고 사는 프랑스 산간 마을, 생장피에드포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준비를 한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프랑
초등학교 통지표에 ‘의자에 앉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다’는 말과 함께 나오던 단골 멘트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오류가 많다’였다. 필자는 그 시절 자그마한 걸상에 비스듬히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보다는 마루 사이에 낀 지우개 가루를 쉽게 파내는 방법 따위를 생각하느라 골몰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말씀이 맞다.
학교에 갔다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