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에 살고 싶어요. 거긴 천국 같아요. 아시시나 토디 근처에 새집을 장만할까 합니다.” 영국의 글램 록 가수의 대명사인 데이비드 보위가 한 말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한 이탈리아 신문을 통해 “자신이 지상에서 본 천국은 아시시”라고 말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도시를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은 분명코 데이비드 보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푸른 심장’ 아시시
아시시(Assisi) 여행은 혼자가 아니다. 시에나(Sienna) 숙소에서 만난 남미계 미국인 신디아(38세)와 동행한다. 그녀는 3개월간 혼자 여행 중이다. 시에나에서 아시시까지는 매우 복잡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버스, 기차를 여러 번 바꿔 타면서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느낌을 주는 아시시 간이역(1866년 개통)에 내린다. 메인 타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타원형의 고풍스러운 타운. 스바지오 산 언덕 위에 오롯이 모여 있는 아시시를 보고 서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리, 너무 아름답다. 시에나보다 나은걸.” 표정이 풍부한 신디아는 아시시의 첫 느낌을 한껏 표출하고 있다. 가파른 언덕길로 버스가 올라서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정류장에서 성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숙소가 서로 다른 신디아와는 클라라 성당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아시시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주 북부의 아펜니노(Appennino, 켈트어로 ‘산봉우리’라는 뜻) 산맥의 남서쪽 기슭 위에 있다. BC 1000년경, 움브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했고 이후 에트루리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BC 295년, 로마인들이 아시시움(Asisium)을 건설하면서 현재의 도시명 ‘아시시’가 됐다. 2000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도시는 이탈리아의 ‘푸른 심장’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오래된 가옥, 울퉁불퉁한 골목길마다 긴 세월의 흔적이 녹아들었다.
성 프란치스코 출생지, 코무네 광장
클라라 성당 앞에서 다시 만난 신디아와 함께 도심을 걷는다. 클라라 성당을 비껴 키에사 누오바 교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1615년,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이 교회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가 위에 세워졌다. 교회가 생기기 두 해 전(1613년), 프란치스코의 생가는 부서질 위기에 처했다. 이걸 본 스페인인 ‘비카’는 자국의 펠리페 3세(1578~1621) 왕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교회를 지었다.
성당 앞쪽에는 성인의 부모님 동상이 있고 성당 안쪽에는 성인이 갇히게 된 감옥이 있다. 성인은 이곳에 갇혀 신의 부름에 답하고 고행의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고 전해온다. 길을 따라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아시시에서 가장 오래된 코무네 광장이다. 로마의 흔적들이 남은 곳으로 사자상 분수대가 눈길을 끈다. 미네르바 신전 위에는 산타마리아 성당이 있고 그 옆에 포로 로마노 박물관이 있다. 포로 로마노 박물관에서는 부서진 로마의 유적과 함께 폼페이에서 본 똑같은 스타일의 벽화를 봤다. 1997년에 발견된 고대 로마의 빌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리라.
‘빈자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남쪽 끝에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있다. 수도복 입은 수도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거리를 누빈다. 수도사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유럽 전역에서 ‘아시시’ 하면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1182~1226)를 떠올린다. 수많은 순례자들은 ‘가난과 결혼한 수도자’,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그의 헌신적인 삶을 기린다. 부유한 직물 장사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군대에 입대했다가 포로로 잡혀 감옥에서 살기도 했다. 두 번째 군 입대 후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시로 돌아와 스스로 ‘빈자의 성자’ 삶을 선택한다. 이때부터 최소한의 먹거리를 직접 구하며 청빈한 초막생활, 영성적 삶을 시작한다. 무수한 일을 해냈고 여러 번의 기적을 보여줬다. 그러다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반쯤 멀고 심한 병까지 얻어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의 작은 오두막에서 84세로 선종했다.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대성당 지하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에서는 프레스코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눈길을 끌었고, 1230년부터 수사들이 기거해온 대성당 수도원이 특별하다.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 정원 쪽으로 올라오면 ‘패잔병 프란치스코’의 동상이 있다. 페루지아 전쟁터에 나갔던 23세의 청년 프란치스코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아시시로 귀환하던 날을 표현해낸 동상이다. 말 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듯 고개를 떨군 모습은 해질 무렵이라서 그런지 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프란치스코의 여제자 성 클라라
패잔병 프란치스코의 동상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해걸음을 벗 삼아 신디아와 저녁을 먹는다. 무척 배가 고팠다는 것을 표정으로 보여주는 신디아. 그녀가 “수도자의 삶을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길래, 난 일언지하에 “싫어. 평생 싱글로 사는 것은 좋지 않아”라고 말했더니, 한국어로 숫총각은 뭐라 말하느냐고 묻는다. ‘동정남’이라고 말해줬더니 그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흉내를 낸다. “그러면 너넨 뭐라고 말하니?”라고 물었더니 남녀 상관없이 ‘버진(virgin)’이란다. 그녀는 아시시에서 단 하루밖에 머물지 못하고 이른 아침, 로마로 가서 포르투갈로 가야 한다. 그녀를 위해 시간을 더 할애해준다.
길을 거슬러 처음 만났던 산타 키아라 성당(1257~1265년에 건축) 앞에 선다. 멋진 건축물이다. 이 성당엔 성 프란치스코의 여제자 클라라(Clara, 1193~1253)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떠나기 전에 아시시에서 가장 높은 로카 마조레는 꼭 가보고 싶다는 신디아의 뒤를 따른다. 가는 길목에 루피노 대성당이 있다. 이 성당과 종탑 앞 아치형 건물 사이에 클라라 생가가 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클라라는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곳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듣고 제자가 됐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와는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만 기도하며 살았다 그녀가 살았던 산 다미아노 수도원은 처음부터 엄격한 봉쇄의 장소였다. 그녀는 매일 허리를 끈으로 묶는 허름한 수도복을 입었고, 사시사철 맨발로 다녔으며, 삭발한 머리에는 흰 두건과 검은 수건을 쓰고 다녔다. 잠자리는 맨바닥 위의 요였고, 베개는 나무토막이었으며, 공동 침실은 춥고 적막했다. 식사는 대개 하루에 한 끼만 먹었고 주일과 성탄절에만 두 끼를 먹었다. 고기와 포도주는 언제나 금했고, 주로 빵과 채소를 먹었다. 계란이나 우유가 생기면 병자들에게 주었다. 그녀는 가난을 ‘그리스도인의 특전’이라고까지 불렀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죽은 지 30년 만(60세)에 죽음을 맞았다. 클라라의 삶을 되새기면서 ‘조선의 테레사’로 불리는 서서평(1880~1934)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가 떠올라 자꾸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아시시 ‘뷰포인트’ 로카 마조레 요새
로카 마조레(Rocca Maggiore)는 아시시의 북동쪽,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골목과 계단을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야 한다. 신디아는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 해” 하면서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면서도, 가로등 불빛에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발코니에 걸린 꽃 화분을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성곽 일부에만 서치 조명이 아름다운 요새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신디아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다음 날, 일찍 요새에 올라 박물관이 오픈하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시시 마을과 움브리아 전원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넓은 평원에 감탄하고 아름다운 아시시의 전경에 넋을 놓는다. 더 작은 요새인 미노레 성채의 남은 흔적도 찾아낸다. 성곽 안에는 유명 인물의 연보와 중세의 물건들, 음악회, 연극이 열렸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시시를 떠나 역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을 찾아가 포르치운콜라 예배당을 본다.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한 여행객일 뿐인데도, 이 도시는 발길을 부여잡는다. “아직 넌 볼 것도 할 것도 많아”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Travel Data
현지 교통 정보 로마에서 열차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테르미니 역에서 하루 네 번(토요일 3회) 직행 열차가 운행된다. 약 2시간이 소요되며 환승을 하면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또 로마 티부르티나 역 광장에도 버스(7시, 10시 30분)가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1회(8시 15분) 운행된다.
아시시 박물관 카드 로카 마조레 외에 두 군데의 박물관을 더 볼 수 있는 ‘아시시 티켓’이 있다.
맛집 정보
타운에는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고 매일매일 색다른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많다. 빵 위에 다양한 재료를 얹어 먹는 애피타이저 브루스케타가 깔끔하다. 호텔 추천 레스토랑은 할인이 가능하다. 길거리 음식인 파니니 등도 맛있다.
숙박 정보 아시시에는 호텔, B&B, 게스트하우스가 부지기수로 많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또 가톨릭 신도가 아니더라도 델 질리오 수녀원을 이용할 수 있다.
어탭터 정보 다른 지역과 달리 3핀 어탭터가 꼭 필요하다. 미리 준비 못했다면 타운 숍에서 구입 가능하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아시시 시내만 보게 된다면 딱히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천천히 순례지(Eremo della Carceri, San Damiano) 등을 찾아 트레킹을 즐기면 된다. 또 아시시 주변의 페루지아(Perugia), 아멜리아(Amelia), 나미(Nami), 토디(Todi), 오르비에토(Orvieto), 구알도타디노(Gualdo Tadino), 구비오(Gubbio),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와 시에나를 거쳐 토스카나까지 여행을 즐기면 된다. 이탈리아는 한 달 여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