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애(高光愛·80) 작가는 1958년 대학 시절 한국일보에 공채 1호 여기자로 입사하는 동시에 이화여대 18대 메이퀸으로 선발되며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로부터 1년 뒤,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영화평론가 임영의 아내로, 또 영화감독 임상수의 어머니로 불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은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가 50세가
‘굿’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죽음 혹은 아픔이 전제하고, 한(恨)이 깔려 있으며 원한풀이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년 말 30스튜디오(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의 개관 작품으로 선보인 은 진도의 씻김굿을 연극무대로 옮긴 것이다. 개인의 슬픔을 넘어 한국의 역사, 풀리지 않는 현실 속 한국의 이야기가 한판 굿으로 관객과 어우러졌다.
‘순례의 삶에 한국
내가 처음 미국을 방문한 것은 1961년이었다. 그 당시 미국의 교수들을 비롯한 지성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말 중의 하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나이가 되면 인생은 끝나는 때라고 흔히 말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인생의 전성기가 60부터라는 관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즐기기 위해 산다는 목표를
지난 8개월간 고인의 회고록을 썼었다. 고인이므로 실체가 없고 사진과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서 고인을 상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렴풋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고인의 실체가 보이는 듯했다.
고인은 나이는 필자보다 5살 위이지만, 고향이 충북 영동으로 동향이다. 고인의 딸이 나를 보더니 고인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인간과 인간이 만나 기품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나 작은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기품을 느낀다. 괴테도 “결혼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혼은 절대로 용납 못해 졸혼으로
경제계에서 뜨겁게 논쟁하던 성과급제가 국정농단 혼란 속에 파묻혔다. 이제 정치집단의 이해득실을 떠나서 정치에 성과제 시행을 진지하게 검토할 단계에 이르렀다.
제왕적 권력 집중방지와 특권폐지
국정농단은 국가권력의 1인 권력집중에서 발생하였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은 무너지고 국가는 난파선이 되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상황에 이
부모에 대한 불평의 항목들을 설정해 자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단연코 1등은 부모의 잔소리가 될 것이다. 부모의 잔소리는 이미 아이들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속어가 됐다. 그러나 부모의 잔소리는 품위의 언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교육도 있겠지만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교육은 더 크다. 양육과 교육은 부모의 성역이다. 임무이고 책임이고 권리이기도
지난 4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자서전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자서전은 필자의 자서전부터 타인의 자서전까지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간의 자서전은 당사자를 서너 번 만나 이야기를 듣고 몇 가지 자료와 사진을 받아 책을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서전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되어 회고록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유족의 이야기를
문학, 예술, 철학을 넘나들며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구해온 문광훈(文光勳·52) 충북대학교 교수. 지난해 을 통해 삶의 심미성과 인문학적 사유를 펼쳤던 그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책임 있는 말과 생각, 느낌 등을 통해 오늘의 삶을 쇄신하는 것이 인문학의 최종 수렴점이라는 것. 문 교수는 이를 위한
현재 시니어들은 국가와 가정을 위해 몸을 혹사하고, 마음 돌볼 시간조차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세대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지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식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