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린이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산타할아버지 ‘선물’에 크게 감동한다. 할아버지ㆍ할머니는 손주와 함께 어울려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지냈다.
할아버지ㆍ할머니를 초대한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
지난 목요일 오후, 자원봉사활동을 마치고 세종시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다른 때는 가끔 가서 유치원에서 하교하는 외손자를 마중하였으
주부의 가사노동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이혼할 때 받는 위자료에서 종종 가사노동의 가치가 계산되기도 한다. 부를 이룬 유명 배우나 재벌 기업가들이 이혼할 때 이 비용을 포함한 위자료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곤 한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이혼할 때도 그랬다.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이혼보다 전처들이 받을 위자료가 얼마나 되는가에 온통 쏠려
함철훈 사진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이 여행할 수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고향이 있는 사람만이 사진을 찍는다는 짠한 말을 네덜란드 출신 미국의 가톨릭 사제인 작가 헨리 나우웬(1932~1996)은 남겼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서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하고, 사진 강의를 위해 매달 홍콩으로 출장가면서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
장리석(張利錫, 1916~ ) 화백은 2016년 4월 백세(百歲)를 넘긴, 그러나 아직 화필을 잡는 당당한 현역이다. 평양에서 출생하여 상수보통학교 졸업, 1937~1939년 일본 다마가와(多摩川) 제국미술학교 수학, 귀국해 1940~1945년 평양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미술부장, 이때 조수로 있다 숨진 화가 최지원(崔志元, ?~
며칠 지나면 크리스마스이고 다음 날은 아버님 기일이다. 형제자매와 조카들에게 "아버님 기일 오후 4시에 메모리얼 파크에서 모이자“고 ‘가족밴드’에 올렸다. 형제자매들은 가족들의 소통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가족밴드를 이용한다.
의사소통의 변천사
통신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직접 대면하여 소통하였다. 어른이나 상사를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고 지인을 직접 만나서
성공의 뒤안길에는 대부분 전환의 계기가 있다. 요즘 이를 두고 영어로 'Turning Point'라 한다. 필자는 사진작가로 후반생을 전반생보다 더 바쁘게 산다. 사실 사진작가가 된 전환점이 있었다.
2010년 7월부터 6개월 동안 1주일에 1시간 반씩의 강좌로 구성된 고양시 일산동구청의 시민 사진교실에 참여하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이 놀고 있던 때
과거 중년들이 생각하는 병원에 대한 개념은 한마디로 ‘어지간해서는 가지 않는, 가면 큰일 나는 곳’이었다. 내 가족을 위해 죽어라 일만 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병원은 적어도 선고 정도는 받아야 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세대에게 병원은 아파서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 또는 가족과 이별하는 장소로만 각인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세태가 달라졌다
은퇴가 다가오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제2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새로운 나로 살 수 있다는 등 제2의 인생에 대한 말도 많다. 하지만 그 달콤쌉싸름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막상 도전하려고 하면 어렵다. 무슨 일이든 첫 시작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베테랑 보험설계사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자신감 하나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몇 년 전 2월이다.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을 했다. 취업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는 아들 어깨도 무거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애비의 마음도 찬바람 불고 황량했다. 아들은 어떡하든 졸업하기 전에 취업해보겠다고 노력했다. 학교 근방에 방을 얻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몇 군데 원서를 넣었는지 필자는 묻지도 않았지만 말이 없는 걸 보니 결과는 낙방이었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동생네가 김치를 갖다 준다.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김치를 사 먹을 일은 없다. 김치는 있어도 별로 먹을 일이 없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 김치이다. 그대로도 먹지만 가끔 해먹는 김치찌개 용도로 유용하다. 가름에 볶다가 물만 부으면 되기 때문에 조리가 간단하다. 해마다 선물로 들어 와 쌓여 있는 참치 통조림도 그때 같이 넣어 소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