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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죽과 옥수수빵 이야기
- 필자는 옥수수를 무척 좋아한다. 상앗빛의 알이 고른 옥수수를 하모니카처럼 들고 먹는 생각만 해도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상상이 돼 입안에 침이 고인다. 한창 잘 먹을 땐 앉은 자리에서 10개를 먹은 적도 있다. 시장에 가니 막 쪄서 올려놓았는지 커다란 솥 위의 쟁반에 윤기 나는 옥수수가 김을 내며 탐스럽게 쌓여 있어 한 봉지에 3개 들어 있는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는 필자에게 여러 가지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필자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는 옥수수빵이 급식으로 나왔다. 요즘 빵처럼 생긴 게 아니고 노랗고 거칠거칠한 옥수수가루를 반죽해 손바닥만 하게 쪄낸 모양이었다. 후에 둥근 모양으로 급식시간에 나온 옥수수빵은 필자가 좋아하던 맛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도 필자가 먹었던 노란색의 거친 옥수수빵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같은 나이가 아니면 필자가 아는 옥수수빵을 모른다 하니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별로 없다는 게 못내 허전하다. 필자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대전에서 살았다. 우리 동네였던 대흥동 성당에서는 담장에 문을 만들고 그곳을 통해 사람들에게 옥수수죽을 나눠주었다. 당시에는 어려운 사람도 많았고 전쟁고아도 많아 적잖은 사람이 옥수수죽 도움을 받았다. 우리 집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필자는 장난처럼 동네 친구들과 줄을 서서 옥수수죽을 받아먹어 보았다. 삶은 옥수수나 노랗고 거친 옥수수빵은 그 맛이 좋았지만 옥수수죽은 그리 맛있지 않아 더는 줄을 서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때 성당 옆 담장에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의 행렬이 생각나는데 그땐 몰랐지만 배고픈 사람들이었으니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맛있는 옥수수로는 단연 동해안 바닷가에서 맛보았던 것이 최고였다.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뜨거운 모래사장 위를 가녀린 할머니 한 분이 옥수수 함지를 이고 다니셨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필자는 여러 개 샀는데 먹어본 옥수수 중 그런 맛의 옥수수는 처음이었을 정도로 맛있었다. 할머니가 가신 후 좀 더 많이 살걸 하고 후회할 정도였다. 강원도 옥수수가 맛있다더니 할머니가 텃밭에서 딴 옥수수를 직접 쪄서 가지고 나오셨을 그 옥수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 학창 시절 엠티로 자주 갔던 강촌에 친구의 세컨 하우스가 있어 작년 여름 피서를 그곳에서 했다. 주변 경관도 빼어나고 그림처럼 예쁜 별장이 부러울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구곡폭포도 시원했고 뒤편의 문배마을에서 맛본 동동주와 산채나물도 아주 맛있었는데 문배마을은 영화 처럼 6.25전쟁이 났을 때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지냈을 만큼 아늑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을 알지도 못하고 지냈다니 참 신기하다. 그 동네의 옥수수도 정말 맛있었다. 며칠 전 친구가 그 동네 옥수수를 택배로 받을 수 있다며 한 접은 너무 많으니 반접씩 사자고 했다. 반접에 택배비 포함 2만5000원이라 했다. 반접이면 50개일 텐데 그 많은 걸 어쩌나 했더니 한꺼번에 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때 다시 살짝 찌면 된단다. 옥수수를 워낙 좋아하니 당장 주문했다. 택배로 온 옥수수 자루를 보니 어찌나 큰지 좋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했다. 50여 개나 되는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는 것도 큰 일거리였지만 필자는 차로 만들어 마시면 혈압에 좋다는 옥수수수염을 따로 모아 채반에 널어 말리기도 하면서 아주 알뜰하게 손질을 끝냈다. 큰 들통에 두 번에 나누어 옥수수를 쪄낸 다음 식혀 비닐봉지에 서너 개씩 담아 냉동실에 쟁여뒀다. 가득 채워진 옥수수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 하루에 한 봉지씩 꺼내어 쪄 먹는 맛이 쏠쏠하고 그 맛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오늘도 옥수수를 먹고 있다. 아주 맛있게.
- 2017-08-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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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의 홍어 맛
- “홍어회 드실 줄 아세요?” 새 친구를 만나면 필자가 꼭 해보는 질문이다. 홍어도 음식이니까 다들 잘 먹을 줄 알았는데 홍어회를 못 먹는 사람이 많았고 그 냄새가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홍어회를 좋아한다면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홍어회를 진짜 좋아한다. 한 입 물었을 때 알싸하게 퍼지는 맛과 식감이 너무 좋다. 네모로 가지런하게 썰어서 내온 홍어회와 막걸리 한 사발은 굳이 삼합이 아니어도 필자를 황홀하게 만든다. 심하게 삭힌 것은 입천장이 까지고 숨을 못 쉴 정도로 톡 쏜다는데 그런 홍어는 아직까지 맛보지 못해 서운하다. 홍어 파는 음식점에서는 매번 많이 삭힌 거라고 했지만 기회가 되면 좀 더 푹 삭힌 걸 먹어보고 싶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TV에서 전라도에 사는 할머니가 큰 장독에 짚으로 넣고 홍어를 삭히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흑산도 홍어가 제일 맛있고 귀하다는데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더 선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홍어를 좋아하게 됐을까? 어릴 때부터 그 맛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는 특히 홍어찜을 자주 해주셨다. 푹 쪄낸 홍어찜을 대나무 채반에 담아 상 위에 올려놓고 온 식구가 양념간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살도 맛있었지만 오독거리는 뼈도 너무 맛났다. 결혼한 후에는 시어머니가 홍어회무침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친정에서 먹었던 찜보다 더 맛이 좋았다. 새빨간 홍어회무침은 매우면서도 쫄깃하고 부드럽고 새콤달콤했다. 필자는 그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요리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아니, 살림에 취미가 없었던 필자가 먹을 줄만 알았지 요리법 배울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곁눈질로 보니 식초에 절였다가 꼭 짜서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에 무치셨던 것 같은데 후에 홍어를 사다가 어림짐작으로 만들어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물도 흥건하게 생기고 고춧가루를 아무리 넣어도 시어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색이 곱지도 않았으며 꼬들꼬들한 식감도 없었다. 그때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걸 몹시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홍어로 알고 먹는 것들은 대부분 가오리라는 생선이란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진짜 홍어는 귀해서 그 값이 엄청 비싸다고 하는데 그래도 물량이 없단다. 가오리면 어때? 홍어랑 비슷한 맛이니 굳이 그런 걸 따지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홍어가 한 마리에 수십 만원 한다고 하니 비슷한 맛을 값싸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가오리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경동시장에 갔더니 홍어가 있다. 아니 가오리이겠지만 반쪽을 사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홍어찜을 해봤다. 양념장을 만들어 쪄낸 가오리찜을 한입 맛보았는데 이것도 예전 맛이 아니었다. 결대로 살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부드러운 맛이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홍어회처럼 손맛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맛이 안 나는 걸까? 이제부터라도 정말 필요한 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홍어찜을 했는데 엄마가 해준 맛이 안 난다 했더니 팔순이 넘으신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왜 그렇지?”라고만 하셔서 필자 마음이 슬펐다. 두 분께 홍어찜과 홍어회무침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게 영 아쉽다. 홍어찜도 좋고 매우면서도 새콤달콤한 홍어회무침도 좋지만, 날씨 좋은 날 마음 맞는 친구랑 네모반듯하게 썰어진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 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필자를 기분 좋게 한다.
- 2017-08-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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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활량 늘리는 몇 가지 방법
-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나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많은 미세먼지와 흡연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폐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방치하다가 큰 병에 걸려 후회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폐는 공기 중의 산소를 혈액에 공급해주고,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기능을 합니다. 이를 가스 교환이라고 합니다. 폐는 근육이 없기 때문에 횡격막 운동으로 호흡을 합니다. 횡격막이 수축하면 허파 속의 공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고, 횡격막이 이완되면 바깥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폐(허파)에는 폐포(허파꽈리)가 있고 가스 교환은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성인은 보통 1분에 15~18회의 호흡을 하며, 한 번에 흡입되는 공기의 양은 약 500ml 정도입니다. 건강한 성인 남성의 경우 최대 폐활량은 약 4800ml에 이릅니다. 폐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폐활량이 좋아야 합니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차 도중에서 쉬었다 가는 사람은 폐활량이 적기 때문입니다. 또 폐활량이 적은 것은 폐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폐에 문제가 있으면 장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 번 망가진 폐는 직접적으로 자극을 주어 원상복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수를 원하는 시니어는 폐활량을 적절히 늘리고 유지해 폐를 보호해야 합니다. 일단 줄어든 폐활량을 늘리는 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시니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시니어의 폐활량 늘리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도록 조금씩 연습량을 늘리고 그 강도를 높여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유산소운동인 걷기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걷고 평소에 계단을 많이 이용하면 폐활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사실 걷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숨이 찰 정도로 달려야 합니다. 5분 정도 전력질주한 후, 5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매일 40~50분만 해도 폐활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둘째, 복식호흡입니다.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입으로 내쉬면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복식호흡을 생활화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식호흡 대신 풍선불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번에 풍선을 열 개씩 불면 충분히 운동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색소폰을 부는 시니어들의 폐활량이 큰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셋째, 금연입니다. 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담배는 건강에 백해무익합니다. 폐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금연해야 합니다. 아무리 걷고 뛰고 복식호흡을 한다 해도 금연을 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넷째, 폐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는 것입니다. 도라지, 토마토, 더덕, 복숭아 등이 폐에 좋은 음식입니다. 꾸준히 챙겨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니어는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 폐활량 늘리는 연습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누죽걸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입니다. 뜻을 알고 나면 좀 싱겁긴 해도 시니어에게 딱 맞는 격언 아닐까요. 많이 걷고 행복하게 삽시다.
- 2017-08-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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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를 남기자
- 청년 시절 필자의 별명은 디파인(define) 성이었다. 명확한 의사결정을 좋아하고 모호한 태도는 싫어한다 해서 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때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고 뿌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롱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별명 값을 하듯 필자는 토론을 할 때 흥분을 잘하고 침을 튀겨가며 자기주장을 펴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쌈닭이었던 것이다. 첫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다. 회의를 하면 팀 상사가 필자를 향해 “○○씨, 더 할 얘기 없어요?” 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도 불편하게 건의할 일이 있으면 내 등을 밀었고 그때마다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듣게 된다.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는데 필자가 또 나서서 운영상의 부당함과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프로젝트 책임 상사가 필자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일침을 날렸다. “○○씨, 다른 사람은 몰라서 입 다물고 있는 거 아니고, 성질부릴 줄 몰라서 참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순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불이 나는 거 같았다. 가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게 된다. 묵묵히 일하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있었는데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결기와 치기로만 가득했던 필자 모습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정말이지 지우고 싶은 20대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그날부터 깨달음을 얻어 득도하듯 바뀌었을까. 아니다. 그 후로도 여전히 흥분하고 자기주장을 해대며 30대까지 쌈닭으로 살았다. 의견 대립이 있으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필자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났다.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상대의 의견이 달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 동료는 필자의 모호한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어느 날 다소 불만 섞인 한마디를 했다. “○○님이 부하 직원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그럴 수도 있지’입니다.” 한때 쌈닭이었고 ‘디파인 성’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필자가 왜 그렇게 됐을까. 나이 먹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진 걸까?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두고 싶은 걸까? 여러 생각을 해봤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세상에는 한 가지로 규정하고 단정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한때 세상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이 네모라고 생각했다. 당시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였지만 가당치도 않은 거짓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뒤엎는 발표가 자주 있지 않은가. 하물며 수량도 아닌 개인의 생각에 절대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일까. 나이 들면서부터는 여지(餘地)를 남기며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화가 날 때 내린 결론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 여지를 두고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자.
- 2017-08-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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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 통해 천연염색가로 변신하다
- 늙음 뒤엔 결국 병과 죽음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애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뉴스는 비 오듯 쏟아진다. 비곗살처럼 둔하게 누적되는 나이테에 서린, 쓸모 있는 경험과 요령을 살려 잘 부릴 경우, 회춘과 안락을 구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삶의 후반전, 그 인생 2막을 열어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에 달려 있다. 이 풍진 세상의 사이즈는 간장종지 같은 게 아니고 바다처럼 크넓다. 타성과 습성에 안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전혀 새로운 삶의 파노라마 속으로 족히 여행하거나 방랑할 수 있으며, 그럴 때라야 세월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부질없이 낭비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대전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분주하게 살았던 진연순(57)씨 부부는 귀촌으로 인생 2막의 첫발을 내딛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의 시골마을이다. 진씨네 집을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은 매우 준수하고 청결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너른 살림채와 푸르른 농장 그 어느 구석 한 곳에서도 먼지나 잡풀을 찾아보기 힘들다. 난장판에 가깝도록 사물들을 널브러뜨린 채 살아가는 나에게는 거의 충격적인 풍경이다. 비지땀을 흘려 밤낮없이 근로를 하고, 청소를 하고, 미화작업을 하고서야 직성이 풀리게 되어 있는 성향의 부부가 사는 집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사실 이 부부는 바지런하기가 헤집어놓은 개미굴 속의 병정개미와도 같다. 근면과 성실로 지상에 태어난 자의 사명을 다하길 습관처럼 거듭해 도시에서의 학원사업을 번듯하게 꾸려왔다. 그러다가 6년 전에 다 정리하고 후다닥 시골에 입장했다. 시골의 무엇이 이 부부를 호명했을까? 진연순씨에게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남편이나 저나,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선 스트레스나 피로를 덜 느끼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래서 10여 년 전에 남편의 고향인 이곳에 농토를 구입해 주말농장으로 활용했어요. 서둘러 귀촌하는 대신 미리미리 준비를 했던 거예요. 저희 슬하엔 남매가 있는데요, 이 녀석들이 커 독립을 한 시점에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비로소 이곳으로 완전한 이주를 했어요. 시골 정착이 비교적 순조로웠던 건 그렇게 나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수강생이 수백 명에 달했다죠? 멀쩡하게 잘 운영되던 학원을 정리하기 아깝진 않았어요?” “사실 결혼하면서부터 부부가 함께 공들여 키워온 입시학원이라 애착도 있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모로 힘에 부치더라고요. 제가 전공인 수학을 강의하며 운영했는데요, 아이들은 나이 든 아줌마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입시철이면 피를 말리는 긴장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늘 시달렸죠. 귀촌을 하고 나서는 그런 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요.” “저는 말이죠, 수학여행은 좋아했지만 수학은 참 싫었어요(웃음). 인생을 과목에 비유한다면, 수학 선생님이었던 당신의 인생은 어떤 과목을 닮았다고 보시죠?” “흠. 도덕? 제가 원래 어떤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도덕적인 성격이에요. 모범생이라고 할까?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자유분방이라는 걸 용납하기 힘들었고요. 그런데 시골에 와서는 제가 천연염색에 푹 빠져 삽니다. 염색이라는 게 공예의 한 분야이고, 이른바 ‘끼’라는 게 요구된다는 걸 자주 실감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에게도 뭔가 숨은 끼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웃음).” “남편은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아내는 천연염색을 하고, 매우 이상적인 배합으로 보여요. 처음부터 그러자는 발상을 했을까?” “아녜요. 제가 일찍부터 천연염색에 취미가 있긴 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남편의 농사 역시 처음엔 깨끗한 먹거리를 길러 식구들 건강이나 챙기는 정도의 소소한 수준에 불과했죠. 그런데 일이 커졌습니다.” 천연염색은 색채의 향연을 즐기는 일 취미는 삶에 재미와 흥미를 보태준다. 권태롭거나 지겨운 일상에 생기를 부여한다. 지나친 탐닉으로 허영과 낭비의 골짜기로 빠질 수도 있는 게 취미생활이다. 진연순씨의 취미는 썩 근사한 방향으로 비약했다. 대전에 살 때부터 틈틈이 천연염색 공부를 해왔던 그녀는 시골에 살며 한결 더 진도를 냈다.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게 하나의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는 효과를 자아낼 줄은 자신조차 미처 몰랐다지. 취미로 사귀었던 천연염색이 어느덧 직업으로 진화한 거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이 기꺼운 변동! 이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인생을 만족스러운 쪽으로 끌고 가는 행운아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귀촌 초기에 저는 골방 하나를 놀이터 삼아 혼자 천연염색이나 즐기며 지냈어요. 당시엔 사실 시골생활이 외롭고 힘들었거든요. 그걸 견디게 해준 게 염색이었어요. 남편은 이 마을이 고향입니다. 낙향한 셈이죠. 마을의 많은 주민들이 남편의 친척이나 친지, 선후배들이에요. 그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농사일도 거들고, 수많은 단체에도 가입하고. 아무튼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았어요. 저는 외톨이처럼 그저 집에 틀어박혀 염색작업에 간신히 마음을 붙이고 지냈어요. 그러면서 서서히 실력이랄까, 솜씨랄까, 그런 게 늘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붙으면서 염색작업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블로그를 본 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염색 체험학습 의뢰를 해왔습니다. 그게 직업화의 신호탄이었죠.” “단기간에 널리 알려지고, 순조롭게 자리 잡힌 건가요? 천연염색을 직업으로 삼아 체험장을 운영하는 귀농인들이 가끔 있지만 시원치 않다고들 해요.” “제가 운이 좋은 걸까요? 빠르게 자리가 잡혔어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학교와 청소년 단체, 가족, 성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강을 해요. 시설도 점차적으로 늘렸어요. 실내외 교육장은 물론, 전래놀이 체험장, 잔디구장, 염료식물 재배장 같은 걸 구비했죠.” “천연염색의 매력은 뭐죠?” “순수하게 자연에서 얻어온 식물 재료들로 색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자연물에서 갖가지 신비한 색들이 나온다는 게 마음을 사로잡아요. 나뭇잎에서는 그냥 연둣빛만 나올 것 같지만 노란색이나 빨간색도 나옵니다. 쪽풀에서는 가슴 시린 파란색이 나와요. 마치 마법처럼 신기해요. 매염제를 사용하면 더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요. 염색으로 수입까지 발생한다는 점도 매력!” “금상첨화?” “일거양득!(웃음)” ‘라온뜰 농촌문화체험농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진씨 부부의 거처에 말이다. 진씨가 천연염색으로 자신의 취향과 희망을 일구듯이, 남편 박용규(59)씨는 아로니아 농장에 심혈을 기울인다. 귀촌 즉시 사업이라는 걸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단다. 이왕 시골에 살 거라면 유유자적까지는 아니라도 골치 아픈 속세의 일에서 해방돼 취미나 삼삼하게 즐기며 휘적휘적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흥청흥청 주야로 신바람 나게 노니는 일에도 대찬 내공이 필요하거니와, 부부의 적성 자체가 ‘놀자’ 과(科)가 아니라서 무위(無爲)란 그들의 소관사항이 아니었으렷다.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하는 비결 부부는 도시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일로 뛰어들었다. 아내는 천연염색을 또 하나의 배필처럼 감미롭게 맞이했고, 남편은 몸에도 좋고 벌이에도 유망하다는 아로니아 재배에 열애하듯 뜨겁게 뛰어들었다. 말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라는 남편 백씨는, 근로를 숭상하고 농사를 애호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데, 그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농업 사업 특유의 경쟁에서 낙오될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타고난 근면으로 안착에 이르렀다. “남편의 농사엔 실패가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천마를 심었다가 실패했고, 왕벚나무를 심었다가 타산을 맞추기는커녕 포클레인으로 다 뽑아냈고요, 검정콩도 심어봤지만 본전도 건지지 못했어요. 이후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은 아로니아 재배로 비로소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한때 블루베리의 채산성이 좋았지만 너도나도 덤벼드는 통에 과잉 생산이 돼 이젠 폐업하는 농가가 속출한다고 해요. 아로니아의 수익성은 아직 안정적일까?” “아로니아도 이미 과잉 생산에다 수입산까지 마구 들어오면서 위기에 직면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해 단골 소비자를 확보해야만 해요. 남편이 생산하는 아로니아는 친환경 무농약 인증과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인증’을 받았어요. 덕분에 순항하고 있어요.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전량을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고요.” “시골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권장할 생각은 있나요?” “농사란 참 힘들어요. 아아,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엔 풀인지 모종인지 구분조차 못해 다 뽑아냈어요. 지금은 남편이 농사를 전담하지만, 남편 역시 고생이 많아요. 초심자라면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해요. 남들 말만 듣고 작물을 선택하는 건 필패의 비결이고요. 처음 몇 해의 부진을 감당하려면 자금력이 있어야 해요.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염색의 경우에도 노동과 시간과 수고가 필요해요.” “귀촌을 후회하진 않았어요? 도시도 매력적인 삶터인데 공연한 일탈을 했다는 의기소침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는….” “후회할 정도로 바보스런 선택을 하진 않아야죠. 가장 힘든 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었어요. 남편은 빨리 적응했지만, 저는 너무도 더뎠어요. 혼자 집에 박혀 염색만 했으니까. 이웃들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칫 왕따 당할 상황이었죠. 그래서 태도를 바꿨어요. 마을 아줌마와 할머니들에게 염색을 가르쳐드렸고, 염색한 손수건을 선물했어요. 때론 식사 대접도 했고요. 이후 서로 흐뭇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어린애는 볼수록 예쁜 짓을 하지만, 나이를 푸지게 먹어가면서는 미운 짓만 골라 하기 십상이다. 황혼의 광야에 서서, 마음 문고리를 안으로 닫아걸고 나 잘난 멋에만 안주하고서도 귀촌생활을 발랄하게 영위할 비결은 거의 없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아마도 그게 길이겠지.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8-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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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하는 바람에 끊어진 인연
- 인간은 강약의 차이가 있긴 해도 옳고 그름을 떠나 상처를 받으면 대체적으로 언사가 거칠어진다. 그리고 차분한 상태가 되면 자신이 화가 났던 일을 다시 생각하며 후회를 한다. “조금만 더 참을걸~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 필자 역시 그런 일이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필자가 느긋해 보이고 화를 전혀 낼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들 한다. 맞다. 가능한 한 참는다. 그래서 남보다 속앓이를 더 많이 한다. 그러다가 천성적으로 급한 성격이 한쪽에 도사리고 있다가 자존심이 다치기라도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화를 낸다. 그리고 화를 낸 것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또 다른 속앓이를 한다. 최근 오랜 인연을 맺어왔던 이전 직장 동료 한 사람이 필자 곁을 떠났다. 욱하는 성격이 빚은 결과였다. 어느 날 SNS에 필자가 출연한 방송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것을 본 이전 직장 동료가 댓글을 남겼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필자를 크게 오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는 댓글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하루를 참았다. 생각할수록 댓글 내용이 황당했다. 댓글을 내리게 할 요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 업무로 시간대가 맞지 않아 그 방송을 보지 못했다고 필자에게 분명히 얘기한 적이 있음에도 마치 방송에서 들은 내용처럼 변명하는 바람에 꾹 참고 있던 화가 올라오고 말았다. 화를 잘 내지 않던 필자가 버럭 화를 내자 그는 당황했는지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되냐?”면서 오히려 필자를 속 좁은 사람으로 깎아내렸다. 인격 모독의 발언이었다. 잘못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필자의 자존심을 더 건드리는 태도에 크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와는 연락을 끊고 지낸다. 이후 필자는 혼자 속앓이를 했다. 그의 잘못이 명백하다 해도 조금만 더 참을걸 하며 후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범하게 대할 수는 없었을까? 다른 사람이 오해하면 어때? 이 나이에! 본인이 그렇지 않으면 되는 거지! 뭘 그걸 가지고 화를 냈을까?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전달해도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후회막급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더 실감했다. 생각해보니 그가 내뱉은 한마디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말처럼 필자가 속 좁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가진 동물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칠십 가까운 인생을 살았으면 감정을 자제할 줄 아는 지혜 정도는 있어야 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면 결국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된다. 정적들의 공격적인 말에 유머로 대처한 윈스턴 처칠의 재치 있는 한 장면이 부럽다. 어느 날 처칠이 파티에서 한 부인을 만나 반가워하며 “커피 한잔 하실까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네, 그래요” 하면서 “만약에 내가 당신하고 결혼했다면 당신이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 잔에 청산가리를 넣었을 겁니다” 했다. 그러자 처칠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만약에 내가 당신하고 결혼했다면 당신이 나를 위해 청산가리를 넣은 커피를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과부로 만들겠어요”라고 말했다. 재치 있는 유머로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고 때로는 정적들을 꼼짝 못하게 했던 처칠. 그의 느긋하면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는 자세는 욱하는 성격이 남아 있는 필자가 배워야 할 삶의 지혜다.
- 2017-08-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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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코같은 소리, 자중하세요”
- 얼마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료들은 은퇴 후 다시 다니는 직장이라 대부분 협력회사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근무자에 대한 차별이 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못 되고 은퇴자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위(自慰)하면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말이 있듯이 동료들끼리 서로의 형편을 이해해주고 의지하면서 일하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목도 다지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지내보자는 의미로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회원이 “날씨도 더운데 퇴근길에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소위 번개를 친 것이다.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땀 흘려 일하고 퇴근길에 막걸리 한잔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홉 명의 회원 중에 네 명이 모였다. 다른 회원들은 3교대 근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야간 근무나 오후 근무를 해야 했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당일까지 작성 처리해야 할 기사가 있어 참석을 하지 못하고 귀가하자마자 저녁도 대충 먹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과 씨름했다. 잠시 후 카톡 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궁금해서 슬며시 휴대폰을 열어보니 가관이었다. 막걸리 집에서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고 마시고 건배하는 장면 등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면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좋은 시간 되시라’는 댓글도 달아줬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노골적으로 미참석자들을 자극하는 멘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흥에 겨워 그러는 거겠지 하며 이해를 했다. 그러나 도를 넘어 유치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자 슬그머니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만난 사람끼리 기분 좋게 한잔 마시고 담소를 나누면 될 일이지 근무하느라 참석 못한 사람들을 계속 자극해서 뭐하겠다는 것인가? 그중 연장자인 한 회원도 한마디 한다. “오늘 번개에 못 온 놈들 약오르지? 약오르면 지금이라도 달려오면 돼!” 이게 할 소리인가? 더운 날씨에 힘들게 근무하는 회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행동이었다. 참으로 너무한다 싶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요산요수(樂山樂水)’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참으로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네, 본인은 기분 좋아 지껄이는 말일지 몰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 못한 회원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지!’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설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참고 내뱉은 한마디는 “개코같은 소리, 자중하세요”였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카톡 들어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더 이상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또 한 번의 카톡 소리가 들려와 확인해 보니 사과 멘트였다. 필자 역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화가 나서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한마디. 시간이 지나니 좀 더 참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 사전까지 뒤적여 ‘개코같은 소리’의 의미를 찾아봤다. (상태나 모양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형용사였다. 필자가 회원들에게 던진 ‘개코같은 소리’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였다. 어쨌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속 말들을 그 한 문장에 함축시켜 일갈(一喝)해버림으로써 그날의 사건은 다행스럽게 일단락되었다.
- 2017-08-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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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면서 챙겨야 할 것들
- 댄스 계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평생 댄스만 하다 보니 바깥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다니는 지공선사의 단계에 올랐으니 시니어 라이프나 노후 대비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다. 그래서 식사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면 상당히 놀라워한다. 우선 나이가 들면 병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60세 넘은 사람들이니 이미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앓아 약을 먹는 사람이 많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면서도 검진이나 받고 돌아오기 바빴지, 정작 예방주사 맞을 생각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폐렴 예방주사부터 맞으라고 했다. 사소한 감기로부터 시작해도 폐렴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폐렴 주사는 20만원이면 평생 유효한 백신주사가 있다. 필자의 아버지도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감기가 악화되어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필자는 폐렴 예방주사를 맞았으므로 적어도 폐렴으로 죽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이 대상포진 예방 백신이다.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약해지는데 주변에서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한 사람들이 많다. 출산에 버금가는 통증이 따른다고 하면 다들 공포에 떤다.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왜 미리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역시 20만원이 든다. 9월이나 10월쯤에는 독감 예방주사도 해마다 맞아두는 것이 좋다. 독감 종류가 많아 100% 예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발병 확률이 높은 독감 종류는 피할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댄스 지도자들은 독감 환자로부터 전염되기 쉽다. 65세 이상이면 무료이고 65세 이하면 3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65세가 넘으면 예방주사 가격이 무료이거나 좀 내려간다고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그 사이에 병이 나면 그 돈 아낀 것을 후회하며 고생 좀 한다. 심할 경우 후유증으로 시달리거나 죽을 수도 있다. 60세가 넘은 댄스 지도자들은 자신이 면역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 한창 때 플로어를 누비던 때와 달리 춤 좀 추고 나면 힘들다고 헉헉거리는 것부터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다. 체력이 떨어지면 면역력도 감소한다. 보험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보험이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간청 때문에 억지로 들어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돈도 필요해 바로 깨버렸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보험회사에서도 기피한다. 이미 다른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면 더 불리하다. 3년 이내 입원한 사실이 있으면 아예 가입 자격이 안 된다. 보험은 건강할 때 들어두는 것이 유리하다. 이제 와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많이 후회한다. 댄스 계는 직장이 아니고 자유업이므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둑한 연금으로 여유 있게 노후를 보내며 댄스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이제야 부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나이 든 사람들이 댄스계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2017-08-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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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에게 혐오감을 주는 문신(文身)은 이제 그만
- 목욕탕에서 웃고 떠드는 한패의 젊은이들의 팔뚝에 전부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 잉어의 문신이 있다. 순전히 문신 때문에 이들로부터 조폭의 냄새를 맡는다. 요즘 들어 부쩍 문신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시용으로 또는 남들과 차별화된 멋으로 한다. 예전에는 문신한 사람을 경찰에서 불신검문 하기도 하고 문신이 지나치면 군대에도 가지 못했는데 요즘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처벌이 많이 완화된 모양인지 많다. 나이든 우리세대는 문신이란 조폭이나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이마에 낙인을 찍기도 하고 노예의 표시로 새기는 불도장도 있었다. 지금도 가축을 구별하기 위해 인식표로 불도장을 찍는다. 우리의 조상들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하여 우리의 몸을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쳤다. 당연히 금방 자라는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다. 하물며 몸속에 검은 먹물이나 이물질을 넣는 문신은 생각지도 못할 큰일 날 자해행위였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조폭을 검거하면 조폭 조직을 나타내는 단체 문신을 보여줬다. 이런 학습효과로 목욕탕에서 등짝에 커다란 용무늬 문신을 한 젊은이를 보면 혹 조폭이 아닌가? 겁이 나서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 일반인의 보편적 행태다. 오늘 보니 내가 자주 가는 편의점의 총각도 팔뚝에 꽃과 뱀의 조화를 이룬 문신이 있다. 그동안 문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여름이 되어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으니 확 들어났다. 평소 얌전한줄 알았는데 문신을 보는 순간 총각에 대한 이미지가 신선함에서 불편함으로 변했다. 혹시 이 총각이 조폭? 아니면 비행소년?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기분이 씁쓸하다. 편의점 총각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물어봤다. “그 문신 얼마나 오래 가는 거야?” “ 평생 가지요.” 말투와 표정으로 보아 당당하고 문신을 한 것에 자랑스러움이 배어난다. 이런 총각을 상대로 문신이 몸에 해롭고 어쩌고저쩌고 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고 꼰대소리만 듣는다. 문신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음도 잘 안다. 지하철 에서 가끔 보는 광경이지만 탤런트처럼 아주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의 팔뚝에 꽃무늬 문신은 복점처럼 귀엽고 깜직하다. 스포츠 선수가 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위한 문신은 팬 서비스의 일종으로 보기 좋다. 시대가 변했는데 미용의 한 방법으로 하는 가벼운 문신까지 나쁘다고 말하거나 이를 탓하려는 마음은 없다. 문신의 부작용으로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도 감수하고 스스로 하겠다는 사람을 굳이 말릴 생각도 없다.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처럼 색조에 변화를 주면서 사람을 돋보이는 지워지는 문신은 애교로 봐주고 싶다. 하지만 문신이 흉악하고 저질스러워 바라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이나 위압감을 준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한때 우쭐하는 만용으로 문신을 한 사람이 나중에 후회하고 돈을 들여 다시 지우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문신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
- 2017-07-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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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소비를 활용한 가족관계 회복 방법
-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때가 있다. 대학입학 때는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대학졸업을 할 때는 “스펙 좀 쌓아둘걸”, 결혼을 할 때는 “돈 좀 모아둘걸”, 직장을 다닐 때는 “좀 더 성공했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3년에 출간된 의 저자 브로니 웨어는 10여 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던 중 문득 자신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의미하다고 느껴 모든 생활을 접고 호주에서 호스피스 간병인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수많은 이가 죽음의 순간에 후회하는 것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는 그 경험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 5가지는 ① “내 뜻대로 살걸” ② “일 좀 덜 할걸” ③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걸” ④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할걸” ⑤ “도전하며 살걸”이다. 5070세대도 이런 후회를 해본 적 있을 것이다. 5070세대가 젊었을 때 자신의 뜻대로 살아본 적이 있을까? 일에 치여 야근이 일상이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다 커버렸고, 아내와도 너무 멀어진 것 같다. 현역에 있을 때는 나름 네트워크가 탄탄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연락은커녕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도 많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다. 과거 직장생활할 때 눈치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병만 키우던 시간들, 하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살아온 세대가 지금의 5070세대인 듯싶어 씁쓸하다. 지금까지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달라지면 된다. 5070세대가 앞으로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돈·연금·봉사·기부 등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대상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을 생각할 것이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가족관계 측면에서 가치 있는 노후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충전하라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1945~2013) 선생은 197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월간 에 자전적 수필 ‘가족’을 연재했다. 가족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은 사후에 로 발간되었다. 그가 부인과 나눈 마지막 말은 “사랑해요”, “여보, 나도 사랑해”였다고 한다. 황혼이혼과 졸혼이 회자되는 세상이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최인호 선생이 세상에 던지고 간 마지막 선물이다.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딴 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소홀하기 쉬운 ‘가족관계’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달 고등학교 선후배 모임에 참석했을 때 퇴직한 한 선배가 해준 이야기다.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선배는 퇴직한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해 뜨기 전 눈뜨고, 해 지면 집으로 돌아오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해 뜨면 눈뜨고,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신세가 됐다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지원하던 아내도 이제는 은근히 불편해하는 눈치 같아서 걱정이란다. 선배가 조심스레 아내에게 “여보! 우리 여행이나 같이 다닐까?” 하자, 동네 스포츠센터 언니, 동생들과 함께 여행 가기로 했으니 혼자 가란다며 푸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퇴직 전에는 늘 가족과 함께 여행 가자고 하던 아내가 이제는 자기보다 더 바쁜 사람이 되었다며 걱정한다. TV나 신문에서 퇴직 후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내와 취미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 무시하고 지나친 게 지금의 서먹함으로 이어진 것 아닌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5070세대가 배우자와 나누는 대화시간은 하루 1시간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50대의 70%, 60대의 60%, 70대의 50%가 그 정도밖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무원 인생이모작 교육에서 만난 어느 수강생의 이야기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말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아들이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가버렸다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들이 방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졌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불러볼까 하다가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이 거실에 있는 동안 나오지 않아 포기했단다. 부모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녀들과 서먹해진 걸까? 자녀교육을 시킬 때 무관심이 최고라는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으로 그동안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건 아닌지, 흘러간 시간이 너무 아쉽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5070세대는 특히 은퇴한 뒤에 배우자는 물론 자녀와의 관계에서 뜻밖의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가족들에게 휘둘리거나 조급해하면 가족 파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김치가 맛있어지려면 오랜 시간 익어야 하는 것처럼, 가족관계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숙고하다 보면 이 기다림의 시간도 잘 여물어갈 것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늘리자 건강검진 후 “검진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앞으로 살 날이 9개월 정도 남으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당황스럽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것이다. 몇 년 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라는 카피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광고가 있었다. ‘가족시간계산기’로 앞으로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주는 내용이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자신의 나이와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 잠자는 시간, TV 보는 시간, 스마트폰 보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혼자 보내는 시간 등을 빼보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나왔다.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9개월! 참고로 필자의 경우는 약 11개월이었다. ‘가족시간계산기’는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참고1]의 ②번 기대여명은 통계청 홈페이지를 방문해 연령별 기대여명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귀찮다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인 82세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고 계산하면 된다. ‘가족시간계산기’를 작성하다 보면 그동안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해볼 수 있다. 가치소비를 통해 가족관계 강화해보자 ‘가족시간계산’을 통해 그동안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어떤 배우자, 부모가 될 것인지 액션플랜(action plan)을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소비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가령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반드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배우자와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데이트하기’, ‘배우자와 마주앉아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 ‘배우자 또는 자녀와 함께 여행하기‘ 등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해본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소비와 삶을 위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옮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몇십 년을 같이 살아왔어도 배우자와 자녀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왔다면 반성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가치 있는 소비와 실천으로 꽉 막힌 대화의 문을 열어보자. 처음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되더라도 인내심과 배려심을 갖고 접근하면 봄눈 녹듯 그동안의 소통 단절은 스르르 사라질 것이다. 필자도 당장 실천하겠다.
- 2017-07-25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