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접어들어 관광객이 붐비는 도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앳된 군인이 차를 막아선다. 그가 전해준 비표는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쳐 낡아 있었지만, 잃어버렸을 때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쥐어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때마침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에 잡음이 끼어들며 괜한 으스스함을 더한다. 그렇게 언덕을 넘으니 교동대교가 시야에 들어
며칠 전 미국에서 십 년쯤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기로 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지낼 집을 함께 둘러보는데 동행해 주었다. 몇 군데의 집을 살펴보고 나와서 함께 걷는데 주변에 시장과 골목이 있고 갖가지 풍물스러운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친구가 말한다.
“오옷...역시 한국이 좋아, 저렇게 오밀조밀하고 익사이팅한 것들이
우리의 근대사 속 중요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영정사진이다. 부산의 이태춘 열사의 사진을 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옆에 나란히 선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나, 이한열 열사의 영정사진을 든 이상호 의원의 사진은 그 장면만으로 아직까지도 상징성을 인정받고 회자된다. 영정사진은 고인이 누구였는가 설명하는 생의 마지막 수단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혜화동에 있는 소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갈 일이 생겼다. 혜화동은 필자가 좋아하는 동네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살았던 돈암동과 가까운 곳이고 중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인 해숙이네 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숙이 부모님은 의정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남동생들 보살피면서 학교 다니라고 혜화동에 아담한 한옥을 장만하셨다.
부모님 안 계신 해숙이
책상 위에 놓은 휴대폰이 윙윙대더니 친구가 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친구는 아파트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며 툴툴거린다. 시내에 커다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가 뜬금없이 왜 아파트 타령일까. 알고 보니 딸이 결혼을 한단다. 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왜? 아파트 사주려고?” “응.”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친구가 돈이 좀 있는 것
세상 모든 길에 사람이 지나다닌다. 이들 중에는 길과의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추억이란 살아온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날씨와 감정이 잘 섞이고 버무려져 예쁘게 포장된 것이다. 박미령 동년기자와 함께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더듬으며 종로 길을 걸었다. 흑백사진 속 전차가 살아나고 서울시민회관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행복한 발견.
만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지만,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나 대우는 지금과 달랐다. 대표적 사례로 1972년에 있었던 정병섭 군 사망사건이 있다. 만화 주인공의 부활을 따라 하다 12세 소년이 숨진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혀 517개 만화대본 업소가 쑥대밭이 됐고 2만 권이 넘는 만화책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렇
필자는 가수 김광석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그룹 ‘동물원’으로 데뷔한 시기가 1984년이었는데 그 당시 필자는 서독지사 주재원으로 나가 있었다. 한동안 한국 대중가요를 듣지 못하고 지내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노래교실에 다니면서 가수 김광석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노래는 소위 기타 치며 젊음을 구가할 때 한창 부르던 포크송
‘세계여성문학관’은 2000년 11월 여성 문학 관련 연구 지원을 위해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 내에 설립됐다. 도서관 안에 문학관이라니 처음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합성어 ‘라키비움’인 세계여성문확관은 ‘라키비움’의 독특한 특성을 살려 여성 문학 연구를 지원하며 다양한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