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들어서자 솔 그늘이 짙다. 부소(扶蘇)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을 일컫는 백제 말이란다. 부소에 산성을 쌓았으니 부소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산의 높이는 겨우 106m. 낮고 평평하나, 이 야산에 서린 역사가 애달파 수수롭다. 부소산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백제의 도성(都城). 백제 최후의 비운과 아비규환이 화인(火
엄마 친구 집 대문을 열다
7월의 뜨거운 열기조차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고향 순창으로 갔다. 얼마 전 뇌졸중이 재발되어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한적한 골목길을 거닐다 어느 집 앞에 멈춰 섰다. 엄마의 오랜 친구 정봉애(89) 씨가 사는 집 앞. 한참을 서성이다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반갑게 맞
“박술녀 한복을 입지 않으면 한국에서 가장 핫한 셀럽이 아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수긍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 한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대체하기 어려운 박술녀가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일궈온 박술녀 한복의 성공담은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불굴의 의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선생님,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그동안 강녕하신지요? 무엇 하나 순조로울 것 없는 세상에 날씨마저 이러하니 주위의 장삼이사의 삶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언젠가 읽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할 때 우상을 침묵케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려울 때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외며 저는 정치가 통계수치로 제시하는 장밋
젊은 시절 외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해외공사를 많이 하는 건설업체에 취직했다. 업무상 유럽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주말에는 출장지 부근 관광지를 다닐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현지의 많은 관광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과 열정이 넘쳤고, 내가 그들 나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시대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예술이다. 토양의 기운과 그 땅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 조화를 이뤄내는 것은 전통예술이다. 역사의 질곡에 이은 현대사회 전환기에 살았던 한 소년. 그는 음악에 눈뜨면서 막중한 임무처럼 국악계의 문을 두드렸다. 전통음악의 한계를 허물고 한국 예술 전반에 주춧돌을 쌓다 보니 어느덧 30여 년 세월. 우리 음악이
단톡방이 신호를 보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보리라 생각하며 하던 일을 마쳤다. 은퇴 후 인생이모작을 위한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방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기 이름으로 자신의 장례일정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순간 장난하는 건가? 아직 60대 초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이라면 아주 실감나게 한 것이고 아니라면? 갑자기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무등산 자락에 가면 ‘생오지문예창작촌’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80) 씨가 추구하는 문학의 열정을 증명하는 이곳 주변의 도로명은 생오지길. 원래는 만월2구라 불렸다고 한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문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이곳을 생오지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문학의 집을 만들어 생오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 지금에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날이 있다.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집 안을 한 구역씩 나누어 뒤집어놓는다. 앞뒤 베란다, 거실, 냉장고, 안방, 공부방, 그리고 창고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이다. 그날은 창고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이사 오고 20년 가까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창고의 짐들을 거실에 펼쳐놓았다. 창고 속 상자를 열자 왕릉
청중은 젊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면서 박수쳤고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제2인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를 비롯해 교사, 시인, 사진작가 등 모인 사람들의 나이와 직업도 참 다양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들 앞에 선 강연자는 이동순(李東洵·68)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다. 시를 쓰는 문학인이라는데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