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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우울증 극복하는 9가지 방법은?
- 많은 직장인이 이틀 간의 휴식이 끝나고 다음날 회사 출근하기 전날인 일요일 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 이른바 일요일 우울증에 고민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 크로니클은 30일(현지시간) 성공한 사람들이 이런 우울증을 극복하는 9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이들은 주말에 가족과 친구, 중요한 사람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시한다. 또 다음 일주일을 흥미진진하게 보낼 만한 일을 일요일 밤에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예를 들어 식구 집을 돌아다니며 매주 가족식사를 하거나 영화 온천욕 볼링리그 참가 등의 방법을 신문은 권했다. 일주일치 계획표를 먼저 작성하는 것도 일의 효율은 물론 압박감을 더는 좋은 방법이다. 테니스와 산책 등 운동을 통해 심신을 새롭게 하거나 자기 전에 책을 읽는 방법도 있다. 주중에 바빠 미처 하지 못한 이메일 답장 보내기 등 밀린 숙제를 허가나 다음 주를 뜻깊게 시작하고자 자원봉사 하기, 아예 모든 것을 잊고 휴식을 취하는 것 등도 좋은 방법이다. 궁극적으로는 월요일 아침은 어차피 무조건 오기 때문에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우울증 극복의 핵심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 2014-03-3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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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 “산야초 장아찌와 건나물로 불안한 미래 잡았어요”
- 제2의 인생 멋지게 꾸며가는 전남 순천의 ‘월암공주’ 이인자씨 50대 중반의 나이에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가 귀농귀촌을 결정하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을 배워갔다. 농사와는 담을 쌓고 살려던 생각이 바뀌면서 귀농귀촌인들에게 희망의 꿈을 전하고 싶어졌다. ◇지긋지긋해 떠나려던 농촌으로 돌아오다 = 충청도 공주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해 언제든 시골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로 상경해 직장생활을 했다. 농사와 관련된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던 계획은 성공했지만, 지금 내 직업은 농업인으로 바뀌었다. 아직 내 인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가늠이 잘 안 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08년까지 귀농귀촌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 남편의 큰 배려로 뒤늦게 대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순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한다며 같이 다니기를 권유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한두 명씩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나도 순천시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접수하고 말았다.그것도 혼자가 아닌 남편까지 동행하고 말이다. 우리 부부는 전원생활대학 과정을 무사히 이수했다. 최종적으로 귀촌을 결심한 동기는 자영업을 하는 오십대 중반인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앞으로 아이 둘을 출가시키고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사업을 접어야 할 시점이 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남편도 흔쾌히 허락해 어렵게 터 넓은 시골집을 구입했다. 손수 인부들과 집수리를 시작하면서 나의 귀촌생활은 시작됐다.한편으로 아이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결혼해 나가고, 아빠 엄마가 더 나이 들어 시골에서 아프면 병원이 멀어 어쩌려고 하시냐”며 걱정했지만 지금은 제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시골 외가집이 생겼다며 좋아 한다. 처음에는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많았다. 포클레인이나 큰 차가 다니면 길이 망가지니 자제하라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됐다. 길을 만들 때 자신의 땅을 기부해 만든 길이니 자기의 길이라는 논리로 밀어부칠 때는 마음이 상해 잠시나마 귀촌생활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당 작업 과정에서 앞집 경운기 주차 공간을 만들어주고, 새로 지은 저온창고의 한쪽을 같이 사용하는 등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자 이웃은 그 누구보다 내게 큰 힘을 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지금도 마을 분들을 만나면 언제나 반갑게 인사한다. 대부분 어른들이 반겨주신다. 그러다가도 내가 뒤돌아서면 등 뒤에서 “이런 시골에 뭐 해먹을게 있다고 왔을꼬. 쯧쯧…” 하시며 흉을 보기도 한다. 이제 뒤통수 가려운 그런 말은 못들은 척 지나쳐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여서 수시로 마을 어르신들이 들리시는데, 그럴 때마다 간식을 준비해드렸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단감, 고구마, 무, 야콘 등을 가져다주시며 젊은 사람과 함께 살게 되어 너무 좋다고들 말씀하신다. 나 또한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마을 회관 어르신들까지 챙기는 습관이 생겨 이제는 제법 ‘큰 손’이 되어버렸다. 옆집 아주머니는 “집이를 뭐라 불러야 하는지 알려 줘봐” 하신다. “저는 충청도 공주가 친정이고, 공주 이씨이고, 현재도 앞으로도 공부를 해야 할 주부이기 때문에 공주라 불러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 그래, 공주 맞다. 이제부터 공주댁으로 부를 테니 그리 아셔” 하며 웃으신다. ◇산야초 장아찌와 건나물로 짭짤한 수익 = 수리한 집은 제조시설로 용도 변경해 준공하고, 아주 많은 고민 끝에 외서면 월암리에 ‘월암마실’이란 이름을 붙여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마을에서 땅을 임대하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집을 소개 해준 분께서 고맙게도 밭 700평을 무상으로 임대해주셨다. 2012년 봄, 처음으로 임대한 밭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호박, 가지, 토란을 심어 건 나물을 만드는 것으로 나의 농촌 생활이 시작됐다. 작년 봄부터는 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두릅, 가시오가피, 죽순, 엄나무순 등 봄나물을 이용해 산야초 장아찌를 열심히 만들어 나만의 제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제품을 보관할 저온창고가 없어 고민하던 중 ‘우수창업농 지원사업’으로 저온창고와 조그마한 작업장을 건축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저온창고가 없어 애써 만든 건 나물이 습기로 인해 망가지기도 하고 이웃집 저온창고 신세를 지면서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 건나물, 장아찌 등을 저온창고에 맘껏 저장할 수 있어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른다. 산지에서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던 하품 농산물을 건조해 시장에 판매하면서 농가소득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내 귀촌 생활을 눈여겨보시던 이웃 한분은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같이 하시자고 하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 50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변한 것이 있다면,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스스로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꽃차 3급’ 과정과 자격증을 취득해 귀촌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꽃들로 꽃차도 만들고, 다른 방법을 응용해 야생차를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고 고객들에게 전하기도 한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자투리 시간에 천연비누 제조법을 배워 단호박, 자소엽, 당귀 등 농산물을 이용해 천연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농가에서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많고 조금만 신경 쓰면 여러 가지 천연비누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직은 서툴지만 나의 귀촌생활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블로그, SNS를 통해 제품 판매경로도 조금씩 뚫었다.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박한 시골 살이 이야기와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나만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아동요리 공부를 이번 가을학기에 등록해 일주일에 한번씩 열심히 배우고 있다. 다른 교육생들은 봄 학기에 수강을 시작했고 나만 초보학생이지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요리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귀농생활에서 나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시골생활을 한다면 발전이 아닌 그대로 정체될 것 같다. 남편은 가끔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끝나느냐” 묻기도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동안까지 공부는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열정이 없었다면 난 그저 남편만 바라보는 평범한 주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어떤 분들은 “시골 생활을 결심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지만 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다른 귀농귀촌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한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 나이가 더 들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마을 어른들과 함께라서 더 행복한 귀촌생활 = 초보 농사꾼이다 보니 마을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소꿉놀이 정도로 보이는지 텃밭의 작물을 보면서 그때그때 조언을 해 주신다. 혼자 힘들어 하는 일은 직접 농기계로 말끔히 해 주기도 한다. 만약 마을 분들이 아직도 나를 ‘뜨내기’로 생각한다면 이런 도움을 주셨을까? 이런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마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에는 적극 동참하고 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홍보는 물론 판매에도 열심이다. 마을 주민이 되었다며 텃밭에 밑 걸음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이장님도 계시고, 밤늦도록 멸치젓을 담아 주는 어르신도 계신다. 고추장, 된장 간 봐 주신다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시는 어르신과 보리 엿기름 기르는 것 알려 주시면서 딸처럼, 며느리처럼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마을 분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순천시 외서면은 주암호 상류 지역이다. 이런 특성에 맞는 작물을 이용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대가 높기 때문에 배추, 무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고 나 또한 무를 재배하기에 무를 이용한 맛있는 무장아찌와 한과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농촌에서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노인들뿐이라는 이야기는 생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절반 정도는 독거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농촌 실정을 늘 걱정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중, 무장아찌와 한과를 생각해 낸 것이다. 집집마다 무를 재배하고 있고, 한과 역시 농한기인 겨울에 만드는데 작업 환경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건축한 작업장에서 좀 더 위생적이고 편리한 환경에서 한과를 만들어 판매해 보기로 했다. 큰 노동력이 아닌 단순 활동을 통해 노인들의 무료함을 해소하고, 노인 소득의 기쁨과 동시에 마을의 발전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이런 일들을 하면서 마을사업으로 이끌어 가고픈 마음이다. 이런 작은 노력으로 마을 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꼭 욕심내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장아찌 요리를 담는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 올 추석에 장아찌를 선물로 받으셨던 분들께 서 짜지 않고 맛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줘 커다란 용기를 얻었다. 언젠가는 꼭 꿈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 ·귀농 전 거주 지역: 순천 시내 ·귀농 전 직업: 주부 ·귀농 결심동기: 미래에 대한 준비 ·귀농 선택작목: 건나물류(고사리, 취나물, 죽순, 호박, 가지), 장아찌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순천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연간 수익: 2012년 1000만원
- 2014-03-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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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작지만 강한 ‘동네잡지’의 아우성
- “우리 동네엔 골목이 있었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모든 동네엔 골목이 있었다. 그 길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옛날 골목길이 그리웠다. 동네 골목길을 잊고 사는 동안 우리는 공동체를 잃어버렸다.” (수원 골목잡지 ‘사이다’ 창간호 서문) 탄산음료 얘기가 아니다. 2012년 4월 19일 100여쪽의 두께로 세상의 빛을 본 ‘사이다’는 동네 사람들의 세월과 일상을 이야기한다. ‘사이다’의 ‘사이’는 너와 나, 사람과 사람, 동네와 동네 사이의 네트워크를, ‘다’는 많음(多)을 의미한다. ‘사이다’는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많이 담겠다는 바람으로 탄생했다. 계간지 ‘사이다’는 매호 5000부를 찍는다. 인구 110만명이 넘는 경기 수원을 대표하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남수동과 장안동, 북수동 등 수원의 작은 동네와 골목을 주제로 소소한 얘기들을 다룬다. 의구심을 갖던 동네 주민들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지면에 실리면서 참여도가 높아졌다. 무가지 ‘사이다’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이나 도울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잡지를 만들어?” 또 다른 동네잡지의 이야기다. 광주 남구 월산4동 주민들은 지난해 마을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700만원을 지원받아 동네잡지를 창간했다.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월산4동에 살다’는 40년 전통의 동네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주민의 손으로 만든 마을잡지의 위력은 컸다. 마을에 활력이 넘쳤다. 주민들은 마을 역사에 벽화를 그렸고, 주민워크숍을 가졌으며, 골목지도를 그렸다. 자발적이었다. 마을 박물관도 세울 계획이다. 주민들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 마을잡지는 생동감 넘치는 마을로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지난 6일 ‘월산4동에 살다 2호’가 발간되기도 했다. 3월 현재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잡지는 총 4950권으로, 지역 잡지는 127권(2.6%)에 불과하다. 매체 수는 적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크다. 동네잡지는 동네와 지역·골목의 소통창구, 지역을 알리고 소개하는 안내자, 지역의 역사를 켜켜이 쌓는 아카이브(특정 장르에 속한 정보를 모아 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카이브는 별 게 아니다. 2009년 6월 창간한 서울 홍대앞 소식지 ‘스트리트 H’는 매월 홍대앞 지도를 싣는다. 매월 실리는 지도는 쓰러지고 세워지고를 반복하는 홍대의 변천사를 층층이 쌓는다. 이에 대해 ‘스트리트 H’ 장성환 대표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홍대 앞의 변화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1, 2년이 아니라 10년이 되면 참 많은 의미를 축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 지역 잡지들이 손을 맞잡기도 한다. ‘전라도닷컴’(광주), ‘함께가는 예술인’(부산), ‘월간토마토’(대전), ‘월간Yellow’(인천), ‘사이다’(수원) 등은 2012년 전국지역문화잡지연대를 결성했다. ‘전라도닷컴’ 김창영 실장은 “지역 잡지가 지속돼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었다”며 “자생적으로 재생산 구조를 갖기 어려운 지역잡지 특성상, 함께 유대를 강화해 정보를 교환하고 나아갈 담론을 형성하고자 뜻을 모았다”고 연대 취지를 설명했다. 이밖에도 서울 이태원의 ‘사이사이’,·‘남산골 해방촌’, 서울 성수동의 ‘뚝섬이야기’, 서울 종로 서촌의 ‘시옷’ ‘서촌라이프’, 서울 영등포의 ‘문래동네’, 서울 구로의 ‘구로커’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지역 잡지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각 지역별로 자기 지역을 대변하는 언론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동네잡지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 2014-03-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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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정착 성공사례(7)] “흘러간 ‘왕년’ 버리고 포도송이 같은 ‘내일’을 키우죠”
- ‘내일’을 키우죠” 베이비부머 귀농의 정석 전북 고창의 송인보씨 목에 힘주고 자신감 넘치던 삶은 세월에 밀려 점점 작아져만 갔다. 도시생활을 툭툭 털어버리고 선택한 고창행. 우리 부부는 따뜻하게 맞아준 이곳에서 허리 꼿꼿이 펴고 농사짓는 포도와 복숭아를 선택했다. 몸은 힘들지만 강소농을 꿈꾸는 새 인생이 즐겁다. ◇귀농 3년차, 몸은 축나고 수입은 없지만…= 지금은 여름, 할 일이 무지하게 많다. 과수묘목을 키우는 농부는 2년차에 나무를 얼마만큼 키우는가 하는 게 향후 농사의 갈림길이다. 풀과 전쟁하고, 벌레와의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친환경을 고집할 경우에는 더더욱 힘든 싸움이 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포도밭에서 일하다보면, 복숭아밭 주변 개암나무는 어느새 풀로 덮혀 있다. 회양목 잡초라도 뽑으려 하면, 포도넝쿨은 엄청 자라있기 일쑤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한낮에 잠깐 쉴라치면, 무슨 일이 또 생기는지 컴퓨터를 켜고 글을 올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고창에 귀농 또는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담바우농장에도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 귀농에 대한 자문을 듣겠다고 할 때면 아직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귀농해서 2년차에 바로 수입을 짭짤하게 올리는 사람도 무지 많은데, 햇수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몸만 축내고 수입 한 푼 없는 놈에게 자문이라니…. 하지만, 담바우의 내 자신이 귀농을 했고, 고창의 많은 귀농인들과 인연도 쌓으면서 느낀 점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귀농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다 보니 귀농에 관한 내 개인적 소견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서울출신이고, 서울과 그 변두리지역(좋은 말로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소위 ‘기역자를 보고 낫을 연상’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렇듯 우리도 그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왔다. 젊어선 종합상사 입사를 목표로 공부했고, 결혼해서는 출근시간은 알아도 퇴근 개념이 없는 것을 당연시 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문 닫을 거란 자만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40대에는 성질난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한다고 은행에서 대출받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며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다시 일을 벌이기도 했다. 50대 초반을 넘기면서는 사업을 다시 하자니 겁이 나고, 취직을 하려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버티다보니 자연스럽게 벼룩시장 구직란도 기웃거리게 됐다. 이런 생활의 반복을 옆에서 지켜보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에게 겨우 한다는 말이 “여보, 우리 시골 내려가서 살래? 당신 생각은 어때”라면서 인터넷 검색어에 ‘귀농/귀촌’을 치고는 엔터키를 팍 눌렀다. 어디서 무슨 귀농박람회를 한다거나 또 어디서 도시민유치 설명회를 한다고 하면 찾아가고 귀농책자와 조그만 찹쌀떡봉지 하나 받고는 터덜터덜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이곳 고창으로 오게 됐다. ◇따뜻하게 맞아 준 고창에서 발품 팔아가며 정착 = 남들에겐 “지도를 펴놓고 손바닥에 침을 탁 쳤더니, 침이 고창에 떨어져서 왔노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연히 들른 고창에서 귀농귀촌협의회와 기술센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의 귀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나가다 들린 부부에게 빈집을 소개해 준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그분들은 마침 빈집이 있어서 소개해 주었겠지만), 처음 보는 분들의 따뜻한 애정이 우리에게는 감동이었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그렇듯 떠밀리듯, 흘러들듯 귀농(?)을 했다. 처음엔 귀농이라고 하자니 농사기술도 없고, 몸도 부실하고, 경작할 토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귀촌이라 하자니 돈도 없는 주제에 염치도 없었다. 그래서 귀농을 했다고 할지, 귀촌을 했다고 할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귀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의 6개월을 우리 부부가 정착할 수 있을만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고창에 온지 6개월 후인 2011년 11월에 선운사 뒤편 담바우라는 산속마을에 3000평의 밭을 매입했다. 또 어떤 작물을 택할지를 결정하기위해 고창의 선진농업인들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많은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포도 한그루에 2000송이를 맺는 유기농포도의 장인이며, 대한민국 신지식인인 도덕현 선생님을 멘토로 친환경시설포도와 노지 복숭아를 재배하게 됐다. ◇‘왕년’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을 보라 = 우리가 귀농 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특히 도시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왕년의 자기스펙에 자만하고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들이나 프랜차이즈의 유혹에 솔깃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경청하기를 바란다. 첫째, 귀농하고자 하는 지역을 먼저 확실히 정해야한다. 먼저 발품을 팔고, 그 지역의 기술센터나 귀농상담소를 찾아봐야한다. 정착지를 선택하는 것도, 향후 어떤 작물로 먹고사느냐 만큼 중요하다. 지원이 많은 지자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수 있고, 지원이 적은 지자체는 귀농해 봐야 찬밥일 뿐 먹고살기 힘들 수도 있다. 수도권 주변 땅은 거의가 서울의 있는 사람들의 소유이고, 기획부동산이 훑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거기에 맞춰 지역을 찾아야 한다. 무화과를 심으려면, 장류를 제조하려면, 소를 키우려면 어디가 좋을까? 복분자를 짓고 싶다면 고창을 우선순위로 두듯이 말이다. 둘째, 집이나 땅을 먼저 사지 않는 게 좋다. 100여 평이 넘는 대지위에 그럴듯한 기와지붕의 농가주택이 3000만~4000만원이라면 도시인 개념에선 “우~와, 싸다”이겠지만 그 집을 중심으로 활동범위의 제약을 받게 된다. 집주변에서 땅이 없다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먼저 전세든 월세든 아님 공짜든 거주할 집을 구하는 게 첫 번째지만 사는 건 심각하게 고려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귀농 후 발품을 팔며, 매입이든 임대든 땅을 먼저 알아보는 게 집을 매입하는 것보다는 우선일 것 같다. 셋째, 작물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 가장 안전하다. 고창이라면 수박, 복분자, 고추 등 일단은 수매가 확실한 작물이 좋다. 남들이 안하는 것을 했다가 만약 수매가 안 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수익성이 아무리 좋아도 10개를 생산해서 3개만 판 다면 문제다. 때문에 농사지을 땅의 날씨, 바람의 방향, 주변 환경, 땅의 성질, 멘토의 확보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용인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고창에서 땀 흘려 가족농사를 짓는 성은주 목사님은 “농사에는 하층농사, 중층농사, 상층농사가 있다”고 우스개를 하곤 한다. 하층농사는 고추, 수박, 고구마, 양파 등 온갖 과채류를 지칭하는데 이 작물들은 바닥을 박박 기며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것이다. 중층농사는 블루베리, 복분자, 버섯, 아로니아 등으로 이건 서서 허리를 약간 숙이고 농사를 짓는다. 상층농사는사과, 배, 복숭아, 감, 포도 등 온갖 과수류를 말하는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농사를 짓는 것을 빗댄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상층농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귀농 3년차인데 아직도 수입이 없고, 돈만 나간다. 거품은 많이 줄었지만 농촌 살림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가 있다. 남들이 복분자를 몇 킬로그램 팔아 얼마를 벌었다고 말하면 괜스레 힘이 빠지고 주눅이 든다. 또 예측 못 할 기후조건에 한순간에 성목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의 소득을 바라고 하층농사를 택하면, 30~40년은 기본인 기존 원주민의 발끝만 따라가야 한다. 몸 고생은 장난 아니게 힘들고, 항상 몸으로 때울 뿐 향후 미래소득이 지금보다 나아지진 못한다. 이렇게 힘들다 보면 집에 계신 사모님께서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는 고추, 저기는 오디, 나머진 감나무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더 힘들 수도 있다. 작물의 선택은 신중해야한다. ◇작지만 강한‘강소농’이 해답이다 = 넷째, 강소농을 꿈꿔야 한다. 땅의 크기는 상관없다. 재배 면적이 크면 수입이 배로 생기겠지만, 인건비도 배로 나가고 만약 잘 안될 때는 손해도 곱절로 볼 수 있다. 작지만 강한, 작지만 알찬, 작기에 덜 힘든 강소농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착 후 교육을 잘 받고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귀농과 귀촌을 같이 생각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센터를 활용한 각종교육과 멘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진정한 강소농의 꿈을 실현하기 바란다. 누가 뭘 심어 얼마를 벌었더라는 풍문들은 무시해야 한다. 다섯째, 지원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귀농하는 사람들 중에 “고창에 오면 뭘 주나요?” “돈은 얼마나 줘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도시에서 시골 오는 게 다 자기 개인사정 때문이지, 시골에서 오라고 애걸하는 건 아니다. 지원을 목표로 사업을 하게 되면, 그래서 자신입장과 상관없이 지원 사업을 받게 되면 결국엔 자부담금액은 날아가고 융자부분은 빚으로 남게 된다. 열심히 하다보면 지원받을 기회도 온다. 지원이 목표가 되면 안 될 것이다. ·귀농 전 거주 지역: 경기도 수지 ·귀농 전 직업: 기업 퇴직 후 자영업 ·귀농 결심동기: 노후준비 ·귀농 선택작목: 복숭아, 포도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만 55세 ·귀농지 선택사유: 농업특화도시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땅 3000여평(1억원), 집 건축비용 1억원 ·현재 영농규모: 포도하우스 800평, 복숭아 1000평 ·연간 수익: 아직 없음(내년 3000만원 예상)
- 2014-03-2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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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첫 독거노인 '짝 찾기' 프로그램 연천서 입교식
- 전국 처음으로 마련된 독거노인들의 황혼 미팅 프로그램인 '두번째 프러포즈' 입교식이 24일 경기도 연천군노인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연천 노인복지관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3∼11월 9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공동 진행한다. 오후 2시께 열린 입교식에는 황혼의 새로운 짝을 찾아 자리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자기 소개와 웃음 치료가 이뤄졌다. 이모(73ㆍ여)씨는 자기 소개에서 "제 취미는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라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지 말고 즐겁게 참여하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 별명은 까도 까도 속살이 하얀 '양파'"라고 소개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앞으로 성교육과 데이트를 비롯해 △대인관계 지지 △정서적 지원 △성인식 개선 △공동체 문화 △종합평가의 5단계로 진행된다. 세부 내용을 보면 '웰 다잉'을 고민하는 1박 2일 캠프, 웃음치료와 미술치료, 1:1 맞선과 성박물관 나들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전문가에게 성 상담을 받는 시간, 성 인식과 관련한 교육, 성병 예방을 위한 특강도 준비됐다. 연천지역은 201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 9천340명 중 독거노인이 2천608명(28%)에 이른다. 2007년 지역 자살자 22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17명(77%), 2012년 19명 가운데 10명(53%)으로 당시 경기지역 노인 자살률 1위를 차지했다. 김규선 연천군수는 입교식에서 "연천의 노인 자살률이 높아 여러 해결 방도를 시도했지만 잘 안됐다"며 "이번 프로그램이 노인 분들의 외로움을 덜어내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 2014-03-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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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기획-나이들수록 소통에 힘써라]⑤<끝>소통 전도사, 소통의 휴머니즘을 말하다…박춘희 송파구청장
- 송파구는 지난해 성과 관리 명예의 전당 헌액, 아시아 도시경관상 등 4개의 국제상을 수상했다. 이는 박춘희 송파구청장이 임기가 시작된 이후 받은 7개째의 국제상이었다. 그 외에도 박 구청장은 일자리 창출과 현장 문제 해결 성과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박 구청장은 문제에 대해 소통의 방법론으로 다가갔던 것이 해법이었다고 항상 말한다. 그 말처럼 서울의 구청장들 중 대표적인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박 구청장에게 본인이 갖고 있는 소통 철학과 그 방법론을 물어봤다. 평소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시는 구청장님께서는 스스로 소통의 노하우를 터득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통 철학을 갖게 되신 동기나 배경은 무엇인가요? -먼저 소통이 중요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소통이 대두되는 이유는 사회 전반이 이제 창조성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창조성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카리스마 리더십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거든요. 행정도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려면, 개개인의 지혜와 능력을 소통을 통해서 집단지성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현 시대에는 소통이 없다면 성과도 기대하기 힘들고, 발전도 있을 수 없는 시대인거죠. 저 같은 경우는 평범한 늦깎이 변호사로 살다가 갑자기 구청장이 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또 소통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소통을 잘 했던 건 아니지만, 시행착오도 거치고 소통을 통해 문제해결도 하면서 스스로 소통의 힘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소통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공부했던 것들을 구청장의 직무에 적용도 해보고 그러면서 소통의 소중한 경험들을 스스로도 각인시키고, 또 남들과도 나눠야 되겠다는 생각에 책도 쓰게 됐습니다. 10여 회에 걸친 를 진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시는 동안 느낀 점은 무엇인지요? -사실 주민과의 대화는 임기 초부터 꾸준하게 해 오던 일입니다. 참석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분들도 많고요. 솔직히 듣기 좋은 소리만 나오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 기꺼이 나가는 이유는 주민과의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고, 그중에 정말 구정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 있거든요. 그럼 가져다가 제도적으로 검토해서 구정에 접목시키고, 또 아이디어성 사업으로 재탄생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건의사항이나 민원, 이런 것들이 보면 대부분 행정적으로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걸 가지고 무조건 언제까지 좀 해달라고 하면 설득하는 과정이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또 고질적인 악성 민원인들 같은 경우는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의도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그런 민원들은 당장 해결하기 힘들다는 걸 민원인들 스스로가 더 잘 압니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얘기하는 건 구청장이 좀 그 사안을 잘 들어주고, 관심을 표명해 달라, 이런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 주신 사례에서처럼 소통의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소통의 난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소통 방법은 어떻게 세워두고 있으신지요? - 주민들이나 직원들과 대화할 때, 그냥 얘기해보라고 하면 다들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러면 돌아가면서 다 얘기해보라고 하고 저는 잠자코 가만히 있습니다. 그렇게 한 두 명 순서가 돌면 그때부터는 다들 얘기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작년에 사회복지직 공무원들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잖아요. 그래서 그 문제가 터지자마자 우리 직원들을 모아서 간담회를 했습니다. 흔히 아는 그런 딱딱한 간담회는 아니었고요, 간부들은 모두 빠지고 허심탄회하게 할 이야기들을 할 수 있도록 해줬거든요. 그랬더니 평소 얌전히 근무 잘하던 직원들도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어려웠던 얘기들을 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를 마무리하기 힘들 정도로…. 이런 게 바로 소통을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일단 멈춰야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고, 하고 싶은 행동도 잠시 뒤로 밀어두고, 일단 멈춰서 상대방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거죠. 만약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디 한 번 말해봐라’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소통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찾아가는 소통’으로 현장을 자주 살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어르신 주민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많은 사례들이 보이는데요, 어르신 주민들과의 소통은 어떤 게 있었습니까? -취임 이듬해, 그러니까 임기 첫 신년인사회 때는 원래는 지역 인사들이나 명망가들을 많이 모아놓고 인사를 하고, 구정을 소개하고, 지지를 부탁하고 그런 자리거든요. 그런데 제가 과감하게 방향을 바꿔서 평소에 돌보지 못했던 경로당이나 독거노인들을 많이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동 별로 행사를 그렇게 진행하니까, 그분들은 평소에 구청장과 마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적은 편이지 않습니까. 많이들 좋아해 주십니다. 또 제가 부모님처럼 섬기겠다고 공언하고, 실제로도 수시로 노인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봉사도 하고, 발도 닦아드리고, 독거노인 분들도 찾아가서 식사도 대접하고 그렇게 살뜰하게 챙겨드리니까 많이 반겨 주십니다. 또 임기 중에 어르신 전용 복합문화센터인 송파실벗뜨락을 개관했습니다. 여기서는 어르신 일자리, 취미생활, 여가생활, 건강 유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거든요. 특히 기존의 노인복지관과는 다르게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특화시켜서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소통을 잘하기 위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소통을 시도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 이건 답을 알고 푸는 문제나 다름없거든요. 진정한 소통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타인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그 소통은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죠. 특히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우기게 되면 내 생각과 다른 모든 생각은 틀린 생각, 오답이 됩니다. 물론, 실생활에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누구든 틀릴 수 있는 것이죠. 긍정적인 소통의 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소통의 방법을 필요로 하지만 그걸 잘 하지 못하시는 시니어분들께 드릴 수 있는 조언이나 팁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 많은 분들이 소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는데요. '내가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 또는 '남을 설득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건 소통에 정말 반대되는 생각이거든요. 오히려 소통은 나의 특정한 부분을 오픈하고, 그것을 비워냄으로서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스스로가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죠. 제가 처음 구청장이 됐을 때, 몇몇 분들이 우려했던 것이 행정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건 공천과정에서도 제기됐던 문제였고요.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행정 경험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구청에는 수십 년 간 행정을 꾸려온 행정 베테랑들이 많이 있다. 소통을 통해서 이 분들의 지혜와 경험을 모으고,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잘 조율해서 구정을 이끈다면 경험이 부족한 부분은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항상 주민들의 목소리, 또 직원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2014-03-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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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각색하는 허세문화…지금, 행복하시나요
- 이 글은 서울보증보험 사보(SGI서울보증 2014년 3-4월호)에 기고한 유종현 SNS칼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SNS에 허세 가득한 사진을 올리는 10년차 골드백수 차백수(31세). 늦은 아침 일어나 양푼에 밥을 비벼 먹고 유명 커피숍의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마시면서도 자신의 SNS에는 이렇게 올린다.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 브런치 후 마시는 콜롬비아 원두 핸드드립 커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중 다시금 휴대폰을 꺼내든 차백수는,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사진을 찍는다. 곧이어 사진과 함께 SNS에 "양주가 지겨울 때면 난 가끔 소주를 마신다. 안주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은은한 달빛 한 스푼이면 충분해"라는 글을 남겼다. 허세에 찌든 차백수는 비루한 현실을 숨긴 채 자기 자신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공원에서 셀카를 찍고는 “그 무엇도 날 구속할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는 비스트”라고 덧붙여 SNS에 전송했다. Beast는 영어 철자를 몰라 한글로 고쳐 썼다. 하지만 네버(Never)를 ‘네이버(Naver)’라 올려 끝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배우 김민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트콤식 옴니버스 예능 드라마 《백수의 품격》속 장면들이다. 김민종의 허세 가득한 코믹 연기를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SNS에는 온갖 ‘있는 척’을 다하고 '좋아요'를 받고 싶어 하는 모습과 심리가 어디 차백수뿐이랴.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SNS 이용 기회가 많아졌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 때문에 현대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SNS를 통해 폭넓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좋은, 혹은 진정한 인간관계는 아닐지라도…) 그런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하다보면 ‘이게 정말 내 본모습인가?’하고 놀랄 때가 있다. “착한 나, 정의로운 나, 풍요로운 나,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나, 똑똑한 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그럴듯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 모습의 ‘나’로 가득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SNS 이용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과시욕과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데 SNS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SNS에서는 '내가 누구인가'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집착한다. 결과적으로 SNS는 '진솔한 삶'이 아니라 '가공된 삶'을 보여주는 허세의 공간인 셈이다. SNS에서는 많은 사람, 특히 내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거나 가식적인 표현을 쓰기 쉽다. 허세란 무언가? 없으면서 있는 체하고, 텅 비었으면서도 가득 찬 체하며, 좁은 소견을 가졌으면서도 넓은 견문을 지닌 양…말하자면 실속 없이 과장되게 부풀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SNS에선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도 생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욕을 퍼붓고, 분노하고, 린치를 가하고… 심지어 괴담을 유포하기도 하는데, 누군가 ‘좋아요’나 ‘리트윗’으로 그걸 받아주면 신나서 꽃을 달고 다닌다. 이것 역시 허세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허세를 부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긴 하다. 자기PR시대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손해라는 인식마저 퍼져있다. 더 나아가 허세가 밉지 않고 심지어 매력으로까지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허세가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상황이 지속되면 믿을 수 없게 되고 질려버리게 된다. '허세의 바다' SNS에 빠져있다 보면 페친(페이스북 친구)이나 트친(트위터 친구)들이 자신보다 더 풍요롭게, 재미있게, 멋지게, 다양한 경험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또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비관적, 열등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도 있다. SNS에서 쏟아지는 타인의 멋진 삶과 글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그러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허세와 자아도취 경쟁에 말려들게 된다. 그거 대부분 ‘화장발’이고 허상이다. 선동꾼이나 허세꾼, 뻥쟁이, 혹은 나와 비슷한 보통사람들이 만든 SNS 허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 잘 조절해야 한다. 때때로 SNS에서 한발 물러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SNS가 허세경쟁에 불을 지핀 측면이 있지만 허세는 어쩌면 인간 본성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본 역사영화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인간의 이중성과 이기심을 다룬 자신의 영화 ‘나생문(羅生門, 일본식 발음은 라쇼몽)'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潤色)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나생문(라쇼몽)은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허세는 이기심의 산물인 셈이다. 유달리 남의 눈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허세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명품 옷과 가방, 고가 패딩, 고가 위스키, 고급 자동차 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매 패턴은 나를 위한 ‘가치소비’를 넘어 허세로 이어진다. 명품 매장은 언제나 붐비고,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오히려 판매가 급증한다.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고 없어서 못 판다. 물론, 부자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적극 환영할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부자가 자기 분수에 맞게 소비한다면 명품이 뭐가 문제인가. 다만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허세를 부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허세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어떤 이는 허세로 인해 감당 못할 빚을 지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혼수와 예물 등 과도한 결혼 비용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마침내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부부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어떤 기사를 보니, 강남의 한 의사는 보증금 6억 원에 1000만 원짜리 월세를 내며 100평 규모의 고급 주상복합에 살고 있다. 속내는 월세 내기도 벅차지만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불가피했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다. 우리는 어쩌면 과잉적인 ‘허세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맛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허세를 행복의 도구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허세는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다.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허세.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이니 결국, 남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더 애를 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란 그리 힘 드는 일이 아니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허영심 때문에 자기 앞에 있는 진짜 행복을 놓치는 수가 있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가 남긴 말이다. 허세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자.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출발점이다. http://consline.co.kr/4984
- 2014-03-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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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일자리(11)] 베이비부머 은퇴 후 인생설계… 지자체가 나섰다
-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보다. 하지만 대부분 막연하게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좌절하기 십상이다. 이들의 문제는 은퇴를 앞두고 그 이후의 삶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수도권의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는 은퇴 전까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은퇴 준비를 했더라도 40대 이전에 준비한 경우는 5%에 불과했고, 그나마 50대에 은퇴준비를 시작한 경우도 16%에 그쳤다. 응답자의 61%는 은퇴 준비를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처하지 못한 이들의 경우 인근에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부서 및 센터를 찾으면 가장 손쉽게 재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에 대비해 재취업 프로그램 등을 준비·시행해 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은평구 녹번동에 베이비붐 세대의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한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개관했다. 지원센터는 경제활동을 희망하는 은퇴 세대들에게 재취업·창업 등을 지원하고 사회공헌을 원할 경우 재능기부를 할 수 있도록 연령별, 소득·지식 수준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는 △인생설계 △사회공헌·재능나눔 △창업 △재취업 등 4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또 서울시는 ‘종로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 55세 이상 서울시 거주자 및 이들을 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구직·구인 알선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구인처에서도 근무조건과 함께 인력을 요청하면 이와 매칭을 하고 있다. 아울러 각각 구청에서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을 구성해 추진하고 있다. 서초구청은 지난 2일 베이비부머를 위한 은퇴 후 전직교육 특강을 진행했다. ‘서초구 베이비부머는 RESTART↗ 한다’ 주제의 특강은 취업비법, 자기소개서 작성법, 취업 지원기관 사업설명 및 상담 등 3부로 구성됐다. 서초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이 밖에 금융전문가 양성과정이라는 취업프로그램이 지난 4월부터 국비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이라며 “또 ‘중장년층 전직스쿨’ 프로그램을 오는 9월 3일부터 11일까지 시행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중장년층 전직스쿨은 노사발전재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하고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밖에 반포도서관에서 ‘현장속취업정보은행’을 통해 취업상담를 하고 있다”며 “둘째·넷째 목요일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둘째 주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와서 상담, 컨설팅 등 중장년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천구청도 지난달 26일 지역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인 ‘Digital Contents Making’(웹개발자 및 웹디자인) 전문가 과정 수료식을 가졌다. 해당 교육 프로그램은 포토샵, 일러스트, 홈페이지 제작 등 쇼핑몰 창업에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됐으며, 교육인원의 절반은 베이비붐 세대로 알려졌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사업은 베이비붐 세대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며 “오는 8월 5일부터 2기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며, 7월부터 접수한다. 교육생 중 반절이 베이비붐 세대”라고 설명했다. 동대문구청은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구청은 베이비부머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자전거 정비 기술’ 교육을 사회적기업인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에 위탁해 시행 중이다. 상반기 교육은 24명을 대상으로 상·하반기로 나눠서 총 410시간 동안 시행했으며, 19일 완료 예정으로 현재 하반기 교육생을 모집 중이다. 아울러 50여명의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인생설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은 6회에 걸쳐 시행되며 은퇴 후 사회공헌 활동이나 제2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의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전문적 시행기관을 찾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는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직업전환과 은퇴 후 재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베이비부머를 위한 재취업 프로그램’ 2기를 운영했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같은 프로그램 3기 지원자를 15명 모집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베이비붐 세대의 재취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맞춤형 구직 스킬을 교육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기간은 다음달 19일부터 23일까지다. 파주시는 지난 2기 교육 종료 후 수료자를 대상으로 파주시청 일자리센터 전문상담사가 취업지원 개인상담을 통해 원하는 기업과의 알선을 비롯한 동행면접 등 적극적인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교육 신청자격은 접수일 기준 주소지가 파주시이며 1954년 1월 1일생부터 1962년 12월 31일 사이에 출생한 시민이다. 경상남도 역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후 노후 설계를 돕기 위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경남 베이비부머 은퇴설계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아카데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위한 노후설계, 재취업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창원권, 진주권, 김해·양산권 등 3개 권역에서 개최되는 아카데미는 은퇴 후 생애설계 전략, 재취업 전략, 자산·변화 관리 등을 주제로 한 강연과 전문 컨설턴트의 개인상담으로 구성됐다. 부대행사로는 무료 건강검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2014-03-0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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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데이옥션 온라인 미술품 경매 …청전 이상범부터 앤디워홀까지
- 온라인 미술품 경매 전문 아트데이옥션(대표 소돈영)은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온라인 미술품 경매를 진행한다. 출품작은 종로 삼청동 갤러리 도스에서 10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경매는 아트데이옥션의 2014년 첫 정기 경매로,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김창열, 장욱진, 전혁림, 박영선, 문신, 유영교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등 한국화 거장들의 작품과 해외 팝 아트 작가 앤디워홀,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 등 총 120여 점을 선보인다. 봄기운이 물씬 나는 아름다운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로 다수 구성된 이번 경매는 감상자들의 마음에 활기를 전해줄 것으로 보인다. 아트데이옥션 온라인 미술품 경매는 국내 미술시장 가격보다 약 30~50%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감상자들은 온라인 경매에 앞서 아트데이 프리뷰 전시기간을 통해 오프라인상에서 출품작들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경매마감은 11일 오후 5시부터 작품 번호 순으로 진행되며, 1분 간격으로 1점씩 이뤄진다. 아트데이옥션 홈페이지(www.artday.co.kr) 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아트데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매 응찰 현황을 볼 수 있고, 직접 응찰도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작품 감상부터 응찰, 구매까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어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주요 작품 소개 박영선 화백은 평양 출신으로 파리 유학을 통해 폴 세잔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젖을 먹이고 있거나 한복을 입은 여인상을 주로 그려왔다. 이번 출품작은 장미를 담은 꽃병을 그린 정물로 부드러운 색감과 붓 터치로 로맨틱한 작가의 감성이 반영됐다. 색채의 마술사, 통영의 피카소라 불리는 전혁림 화백의 무제가 출품된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전혁림 화백은 60이 돼서야 미술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진한 테두리에 선과 면의 강렬한 색채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평면과 입체를 막론하고 추상화ㆍ풍경화ㆍ정물화ㆍ도자기ㆍ목조 등 다양한 조형작업을 펼쳤다. 전혁림은 그동안 장르, 재료에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독창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탄생시켜 왔다.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추상조각가 문신의 브론즈 작품이 출품된다. 프랑스 남부에서 열린 국제 야외 조각전에서 태양의 사자로 국제무대에 데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스테인리스 조각으로 또 한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출품작은 하늘로 치솟듯 삐죽삐죽 튀어나온 대칭을 이루는 기이한 형체가 생명력을 내뿜는 듯하다. 간결하면서도 풍만한 선이 대칭과 비대칭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돌의 성질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돌박사’ 유영교의 여인상이 출품된다. 하얀 대리석을 이용한 따뜻하고 푸근한 여인상이 그의 주 대표작이며, 화강암으로 제작해 한국적인 투박함을 나타내기도 하며 돌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번 출품작은 붉은 대리석으로 돌이 가진 표면 흔적이 남아있어 자연친화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곡선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듯 고요한 산골에 두 채의 소박한 집. 그리고 그 주변으로 밟으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 낼 것 같은 노란 나뭇잎들이 지극히 향토적이다. 쓸쓸한 가을 풍경은 작가의 마음을 담아낸 듯해 시골 가을 전경을 실감하게 한다. 짧은 붓질과 반복하는 발묵과 파묵의 조화로 거침과 온화함이 공존한다. 앤디워홀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Space Fruits이 출품됐다. 앤디워홀은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전통적 회화를 벗어나 산업사회에 새로운 예술 양식을 제공하며 그만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폴 세잔의 단골 주제인 과일을 실크스크린 인쇄기법으로 여러 번 겹치고 올려 그린 과일들은 앤디 워홀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준다. 회화적인 느낌을 더하기 위해 완벽하게 칠하지 않고 그 위에 스케치를 더했다. 데이비드 걸스타인은 파리 에꼴 드 보자르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를 거쳐 런던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이스라엘 출신 작가다. 화려한 색채와 아기자기한 표현으로 친근감이 넘치는 작품이 보는이를 기분좋게 한다. 그만의 독특한 컷아웃 기법은 새로운 회화방식을 구축하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을 선사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출품작인 Paradise Flowers는 생동감 넘치는 터치와 친근한 소재로 어린아이부터 어른들이 모두 좋아할만한 작품이다. 장욱진은 순박하고 향토성이 짙은 유화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말년에 간소화된 표현 방법으로 삶과 밀접한 소재들을 이용하여 수묵화를 그려냈다. 함축된 묵선으로 대담하게 표현된 나무와 산, 새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장욱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로, 늘 그렇듯 나무가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 2014-03-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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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리 찾기1부-대한민국 시니어들의 자화상] ②비참한 노인(NO人) 늙은 게 죄인가
-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동반자살해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어머니인 박 아무개 씨(60)와 큰딸 김 아무개 씨(35), 그리고 둘째딸(32)이 집안에 누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비극은 아버지 김 씨가 12년 전 암 투병을 하다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은 사업 실패로 인한 상당한 빚과 투병생활로 인해 밀린 병원비뿐이었다. 가정은 어머니 박 씨 홀로 책임졌다. 그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그동안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인 집에 9년째 살면서 공과금도 꼬박꼬박 납부했다. 박 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어서 정부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빙판 길에 미끄러져 팔을 크게 다친 박 씨는 다니던 일도 그만둬야 했다. 그의 큰딸은 7년 전부터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딸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막다가 결국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악재가 겹치면서 세 모녀는 한 달가량 수입이 모두 끊기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세 모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놓치고 있던 사회적 약자, 바로 경제적 궁핍과 일자리를 잃은 박 씨는 상실감, 퍽퍽함에 계속해서 병들어갔고 구멍 뚫린 사회적 안전망의 허점으로 그들의 삶의 무게는 감당할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아직도 수많은 노인들이 이들처럼 지독한 가난과 고독감에 싸우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허리가 휠 정도로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 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노인복지관 근방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빈약하지만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기회가 있다. 복지관이 먼 곳에 있으면 밥 한 끼 해결하기 위하여 차를 타고 가야하는 사람은 차비가 없으면 굶는다. 지하철이 무료라 하지만 지하철역까지는 역시 버스를 타야 한다. 노인정이라는 곳도 돈 있는 사람들 사랑방 정도일 뿐이니 그곳 출입도 어렵다. 텃세가 심해서 주눅 들고 만다. 가난과 외로움에 병들어가다 학교 동문, 고향 친구, 직장 선후배, 군대 동기들이 있을 것인데 매일 같이 공원이나 놀이터에는 할일이 없는 노인들이 이웃들과 어울려 잡담이나 세상사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진정한 친구도 이웃도 아닌 그냥 말 상대다. 여지없이 꽃샘추위의 영하의 날씨를 보인 날의 보라매공원. 이날도 노인들은 또래 노인들을 만나기 위해 차가운 바닥에 자릴 잡고 앉았다. 돗자리와 이불까지 들고 나온 노인은 “집에 혼자 있으면 뭐혀. 추워도 이게 낫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로움과 고독의 내리막이 가파르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는 막막함,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은 이들의 일상을 한층 황폐하게 만든다. 게다가 노후의 삶을 어떻게 가꿔갈지에 대해 별다른 학습이나 고민도 없이 황혼을 맞이했고 부딪치는 상황마다 실패와 상실의 연속이다. 이런 어려움의 강도는 현역 시절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일수록 더하다. 어딜 가도 자신을 알아보고 향유하고 대접해주는 환경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스스로 일상을 챙기는 일에 너무도 미숙한 탓이다. 74세 아파도 씨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내가 죽어야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부쩍 잠이 줄어들면서부터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혼잣말을 한다. 그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서다. 그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날이 많다”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아파도 씨는 자식들 눈치 보여 집에 있을 수 없고, 잘 차려입고 밖에 나왔으나 갈 곳은 마땅치 않고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 죽치고 앉아 있다.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거지, 뭐. 옛날에야 나이 많다고 대접받았지.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밖에 더 돼?"하고 내뱉는 아파도 씨의 말에 마음 한쪽이 아릿해졌다. 자조와 푸념 섞인 말들이 그의 의지에서 비롯된 건 아닐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와 가정에서 마땅히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하게 되면 주된 생활영역이 직장에서 가정과 지역사회로 옮겨진다. 기존의 인간관계가 직장 동료들과 같은 공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은퇴 후에는 가족 친구와 같은 사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생후반기로 갈수록 활동 반경이 줄어드는 만큼 인간관계에서 가족은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집에 들어앉게 되면 평소에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고 차츰 만나는 회수가 줄어들어 결국은 외톨이로 마음의 자리가 상실해간다. 나도 모르게 노인이 돼 있다 은퇴나 퇴직을 한 50대 후반 부터는 어느 곳에서도 활동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로 인하여 용돈도 궁하여, 친구 모임도 줄어들고 가정에서도 비생산적 소비자로 놀고먹는다는 미안함 때문에 대화도 뜸하고 소외되어 외로워진다. 혜화동 짚풀박물관 부근에서 만난 69세 이희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고 하고 사방팔방에서 ‘기초연금’이네 하며 ‘노인문제’를 다룬다. 그렇다 보니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 어느 사이 69세 ‘노인이 돼 있다’라는 사실은 마치 내가 이 사회에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든다. 마음은 더 약해져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고 서러워진다.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상실과 압박감에 존재의 의미를 못 느낄 지경에 이른다.” 억울한 심정이라 분하고 서글픔이 한계에 이르지만 나이 탓으로 돌리고 억지로 참게 된다. 그러면 속병은 더 깊어진다. “내 현실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식도 아내도 모른다. 하기야 한 번 뿐인 인생에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대기업 정년퇴직 후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김정일(62) 씨는 “말로는 어른을 공경하고 우대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럴만한 환경이 아니다. 세상이 너무 급속히 변하고 경제가 어려우므로 젊은이들은 변화를 따라잡기에 바빠 노인을 돌볼 형편이 못되고, 노인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젊은이들을 의지 하다 보니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 소비만 하고 할 일 없이 놀기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노인은 없어도 괜찮고 있으면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이라 단호하게 설파한다. 그렇다면 어르신들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고 개발하여 나름대로 생을 즐기며 가꿔야하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한 평생 일만 했고, 가족만을 위해 희생만 할 줄 알았지 자기 계발과 봉사나 취미 활동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게 할 줄도 모르고 용기도 없다. 이희수(69) 씨는 “매스컴을 통하여 노년에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용에 적극적인 분들이 소개되지만, 이는 대부분 50~60대로, 의식주 걱정이 없고 여유 있는 극히 소수인의 삶일 뿐.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루하게 소외감과 불안 속에서 우울하게 산다. 노인 자살자 대부분 이 70대 이상인 것을 보면 이 연령대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70대 이상에 대하여 각별히 관심 가져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증권 및 은행에서 일하다 퇴직한 최명숙(65)씨는 “노인인구는 급격히 늘어난다는데 정부의 대책이라고는 기초노령연금이 고작이다. 이것도 이런저런 문제에 걸려 지체되고 있다. 지금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우리나라를 오늘에 이르도록 평생 수고했고, 어려운 중에도 자녀교육에 힘써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일꾼들을 많이 키워낸 그야말로 ‘국가 유공자‘들이다. 그러다보니 노후 대책은 전혀 세우지 못한 슬픈(?)세대”라고 안타깝게 토로했다. 돈 많은 어르신만 대접받는 사회? 노인 복지가 국가적 화두가 됐지만, 노인들은 정작 대한민국에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자조가 팽배하다. ‘돈 많은 어르신’ 이외에 모두 가볍게 취급받는 ‘경로(輕老) 사회’라는 비아냥을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가운데 ‘노인들의 4苦’ 즉 신체적 질병, 정신적 고독, 경제적 빈곤, 사회적 고립 등에 시름이 더 깊어져가고 있다. 특히 노인 자살은 질환, 경제적 궁핍, 고독, 상실감, 가정불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지만, 노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그저 잔명(殘命)으로 힘겹게 버티는 이들이 많다. 학대받고 버림받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복지시설에 가고 싶어도 자식들 때문에 자격이 안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배우자나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이 최근 3년간 26.5%이상 증가했다. 노인복지를 외치는 이 시점에도 노인들에 대한 학대와 경시 풍조 팽배는 음성적으로 때로는 양성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에 네티즌들의 공분을 일으킨 고교생의 막말 동영상과 대구 패륜남의 등장은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봉사활동을 하라고 보냈더니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노인에게 욕설과 반말을 하고, 할머니가 파는 수박을 발로 차는 행동들들. 노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마냥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다. 이런 도리를 언급하기 이전에 노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 배우자 등 가족의 한 일원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웃이기도 할 것이다. 비단 노인에 대한 폭행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서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가정폭력의 일환으로서 가까운 사람이 가하는 노인폭행이 문제이다. 노인 학대와 폭행 뿐 아니라 노인 대상 사기는 날로 급증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진다. 홍보관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대출 사기, 상조 사기, 효도관광 및 경로잔치 사기, 투자 사기, 공공기관 사칭 사기 등 끝 간 데 없는 노인 대상 사기 범죄들로 난무한 세상이 됐다. 노인을 섬기고 존경하는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가 사회의 고령화로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복과 전쟁,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며 사회 발전을 이끌어온 노인 세대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장과 성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더는 유능한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점차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하면서 65세 이상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황혼자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평소에 잘나가던 사람들일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져서 결국은 대인 기피증 환자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외로움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가 될 수도 없는 이 외로움이 노인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조금씩 조금씩 찾아와서 잠식해 버린다. 젊은 노인이 고령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시점에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노년의 적막을 온 힘을 다해 견디는 모양새다. 그 분들의 노년이 역경의 세월을 헤쳐 온 만큼 존중받고 있는지, 앞 세대의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노년에 과연 ‘살맛’을 누리게 될지, 그러기 위해 100세 시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리해보면 어떨까.
- 2014-03-06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