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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댈리가 천재적 골퍼인 것은 틀림없다
- 독자는 악동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떠냐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좋아하지 않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그 예측 불가함이 불편해서다. 나와 달리 악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열렬한 팬이 되는 이도 있고. 이런 이는 악동이 보여주는 ‘파격’을 높게 치는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골프 세상에도 악동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 선수 얘기를 하려고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혹시 잔 데일리라는 선수를 아시나요?” 그 무렵 나를 후원하던 골프용품 업체 대표가 전화를 걸어 대뜸 물었다. “잔 데일리요?” 나는 ‘잔 데일리’가 누군지 선뜻 떠오르지 않아 되물었다. “네, 미국 에이전트가 잔 데일리 선수를 후원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요.” 그가 내게 물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제야 나는 그가 말하는 선수가 ‘존 댈리’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존 댈리를 말씀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 골프용품 사업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돼 해외 선수들까지 꿰고 있지 못한 그가 답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현지 에이전트가 존 댈리(John Daly)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 틀림없었다. “존 댈리는 유명한 선수입니다. 지금은 PGA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뛰고 있습니다. 최근에 챔피언스 투어에서 1승을 거뒀구요. 젊어서도 장타자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챔피언스 투어에서 최장타자입니다.” 나는 아는 대로 존 댈리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존 댈리’ 하면 떠오르는 많은 얘기는 꿀꺽 삼킨 채 말이다. “존 댈리에게 연간 30만 달러 정도 후원하고 우리 용품을 쓰게 하면 어떨까요? 물론 경기에 나갈 때는 우리 로고를 달고요.” 그는 에이전트가 제안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말했다. 나는 얼핏 생각하기에 일리 있다고 느꼈다. 존 댈리를 후원하는 것 말이다. 그 골프용품 업체는 그 해 미국 시장에 막 진출한 참이었다. 그러니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을 거다. 물론 상업적으로만 따졌을 때 말이다. 그런데 내게 존 댈리에 대해 물은 대표는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함께 일하면서 충실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존 댈리라는 사내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줄 수밖에 없었다. 꿀꺽 삼켰던 것을 되새김질해서 말이다. 나는 존 댈리가 천재적 골퍼인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1966년생인 그는 대학을 마치고 스물한 살에 프로로 전향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1년에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것도 출전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차를 8시간이나 몰아 대회장 근처에서 기다리다 얻은 출전 기회를 살려서 말이다. 이어 1995년에는 ‘디 오픈 챔피언십’도 거머쥐면서 PGA 챔피언십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그런 존 댈리이지만 스윙만 볼 때는 도무지 메이저 대회를 두 번이나 우승한 선수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 그는 클럽 헤드가 머리 뒤를 넘어 땅에 닿을 것 같은 오버 스윙을 한다. 이런 스윙으로 PGA에 장타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은 더 믿을 수 없다. 존 댈리는 1997년 PGA 투어 최초로 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 300야드를 넘겼다. 이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다시 10년 연속 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 300야드 이상을 기록했다. 2003년까지 시즌 평균 드라이버 거리 300야드를 넘긴 선수는 존 댈리가 유일했다. 작은 키 탓에 ‘땅콩’이라고 불리는 LPGA 선수 김미현은 거리를 늘리기 위해 존 댈리 스윙을 모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존 댈리는 골프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PGA 투어에서는 단 5승뿐이다. 5승이 대단하지 않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의 재능이나 인지도로 따지면 훨씬 더 많이 우승했을 것 같은데 아니라는 말이다. 같은 시대 선수들보다 어마어마하게 멀리 치던 그의 파워로만 따져도 그보다 우승 기록이 많았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그렇지 못했을까? 아마 골프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알코올에 심각하게 의존했다. 대회 때도 종이 봉지에 술을 담아가지고 다니며 몰래 홀짝거리거나 혹은 대놓고 마시며 경기를 치른 경우가 숱했다. 그를 무명에서 영웅으로 만들어준 1991년 PGA 챔피언십 때도 나흘 내내 술을 마시며 경기했다. 도박 중독도 심각했다. 대회장 근처에 카지노가 있으면 어김없이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경기를 했다. 잠이 부족하면 어떻던가? 내 경우엔 숏 게임과 퍼팅이 안 된다.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으니 성적이 들쑥날쑥한 건 당연했다. 성격이라도 좋았으면 조금 나았을지 모른다. 그는 갤러리하고도 이따금 다퉜다.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라운드 중에 클럽을 내던지는 일도 잦았다. 갑자기 기권하고 백을 싸서 떠나는 일도 흔했고. 가슴이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그는 개인사도 순탄치 않았다. 네 번이나 결혼했고 네 번 다 헤어졌다. 그 때문인지 2004년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통산 다섯 번째 우승한 뒤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2007년부터 PGA 시드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그인데도 골프 팬은 그를 경기장에서 이따금 볼 수 있다. 초청 선수로 가끔 불러주기 때문이다. 누가 그를 부르냐고? 당연히 대회 스폰서다. 그와 같은 악동도 골프 월드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한국 골프에도 올까?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골프용품 업체는 존 댈리를 후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으로, 골프채널코리아에서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 2020-09-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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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 좋은 날] 8월 26일 오늘의 띠별 운세
-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남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나 한 가지를 끝까지 밀면 성공한다. 경거망동하여 일을 행할 시에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니 되도록 먼 여행하지 말고 은인자중함이 길한 괘이다. •84년생 : 목적 달성을 위하여 힘차게 나갈 때이다. •72년생 : 노력보다 소득은 적으나 나중에 크게 얻으니 걱정할 것 없다. •60년생 : 한 우물을 파니 마침내 성공이라 재수가 좋고 투자도 길하다. •48년생 : 욕심만 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때를 기다려 맞춘다는 것은 힘든 일이나 시기가 말을 해준다. 움켜지고 있다고 모두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것과 같으니 때가 되고 시가 되면 스스로 크게 될 우가 있으니 큰 손실이 가지 않은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라. •85년생 : 조용히 기다리면 힘들던 일이 하나씩 풀려나간다. •73년생 : 명예가 오르고 바라던 일이 술술 풀리나 큰 재물은 어렵다. •61년생 : 오늘은 힘차게 투자도 하고 서슴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49년생 : 멀리서 좋은 소식이 오기는 하는데 재물이 여유가 없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갓 쓰고 도포 입었다고 양반이 아니다. 자신의 처신을 잘하라. 비록 운기가 길하여 현실에 이익은 있을 것이나 훗날을 기약해 자만은 금물이다. 가벼이 일신을 움직이지 말 것이니 복이 더욱 가중된다 •86년생 : 희망하던 일들을 부모나 선생님이 알아주니 즐겁다. •74년생 : 속태우던 애정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고 재수도 길하다. •62년생 : 한 번 마음에 둔 일이 갈등이나 마음먹은 대로 미는 것이 이익이 크다. •50년생 : 손재수가 지나가니 다음은 들어올 차례다. 투자도 좋다.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마음이 한가하고 여유가 있어 아무런 근심이 없다. •87년생 : 재수가 좋으니 누구든 만나면 재물을 얻게 된다. •75년생 : 나에게 힘든 상대라 걱정했는데 만나보니 상대가 먼저 나를 반긴다. •63년생 : 무리한 투자는 뒷날을 힘들게 한다. 투자받음이 길하다. •51년생 : 왕이 선정을 베풀 듯이 자식이나 아랫사람에게 베풀면 길하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반가운 사람을 만나니 한 번은 좋고 또 한 번은 흉하게 된다. •76년생 :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나를 돕는 사람이라 잘 보고 결정하라. •64년생 : 오전에 꼬인 일을 오후에 귀인이 나타나서 완전히 해결해 준다. •52년생 : 모든 괴로움에서 털고 일어나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40년생 :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기니 힘이 절로 난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가만히 들어앉아 계획만 짜면 무엇하랴. 움직여야 일이 된다. •77년생 : 집안에 앉아서는 아무 일도 안되니 친구라도 찾으면 좋은 소식이 있다. •65년생 : 몸도 움직이고 돈도 움직여야 불어나는 법이다. •53년생 : 참모 역할보다 지휘관이 되어 움직이면 큰 재수가 보인다. •41년생 : 아랫사람이나 자식에게서 막혔든 재수가 시원하게 열린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면 재수를 막는 일이니 잘 돌아보라. •78년생 : 재주를 부리다 오히려 손해를 당하는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 •66년생 : 힘든 일을 하나 처리하고 나니 또 어려운 일이 생기니 한탄스럽다. •54년생 : 사람의 마음은 앞뒤를 다 봐야 하니 조심하여 다루어야 한다. •42년생 : 툭 터놓고 사람을 대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다. 조금 침체된다고 무리하면 힘들게 된다. •79년생 : 다치고 사고 나는 운이니 옆도 보지 말고 조심하라. •67년생 : 지금이 큰 달이니 힘차게 투자도 하고 일을 만들어 보자. •55년생 : 재수는 좋으나 집안일이나 밖의 일에 마음이 고달프다. •43년생 : 간교한 꼬임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사람을 조심하라.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 주는 것이라 모든 일은 때를 만나야 한다. •80년생 : 이성 친구는 마음먹은 대로이나 주머니가 마르니 유비무환 하라. •68년생 :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니 가슴이 답답하나 조용히 기다려라. •56년생 : 시기가 좋지 않으니 지금 그대로 지킴이 상책이다. •44년생 : 관 재가 아니면 손재가 두려우니 미리 방침을 세워야 한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시절이 어렵다고 서로 싸운다면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 된다. •81년생 : 시비 경쟁 방해로 힘든 일이 많으나 슬기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69년생 : 서서히 좋은 운이 오는 때이니 나서 볼 때이다. 재수 대통이다. •57년생 : 사람과 시비를 말라 말로 인해 몸을 다치는 수가 있다. •45년생 :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니 나가서 만나봄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꿈이 있어야 장래가 보이니 원대한 희망을 품어라. •82년생 : 스승 같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이득이 크다. •70년생 : 명분 없는 일에 정신만 산란하니 어디든 나서면 당하는 운이다. •58년생 : 과한 욕심 때문에 걸리는 발동은 화를 초래한다. •46년생 : 아직도 안 되는 일이라고 희망을 버리면 더 힘들어진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제도상의 문제를 그냥 두고 밀고 나가니 따르는 사람이 없다. •83년생 : 진로 수정의 계기가 되는 일이 생기니 잘 접하라. •71년생 : 구름이 많으면 비가 내리듯이 먹은 것이 무거우면 죄가 두렵다. •59년생 : 믿어라. 믿음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된다. •47년생 :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나 오후부터 점차 맑아지니 기운을 잃지 마라.
- 2020-08-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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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간의 휴일, 넷플릭스로 알차게 즐기자
- 오는 17일이 광복절 대체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금 같은 휴일이 하루 더 늘었다. 갑작스러운 휴가에 신이 나면서도 무얼 해야 할지 고민부터 앞선다. 여행지 근처 숙소를 예약하기엔 늦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기엔 시간이 아깝다. 결국 답은 넷플릭스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3일간의 짧은 휴일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넷플릭스 작품 3편을 소개한다. 1. 삼국지 극장판 (Three Kingdoms Theatrical Release Version, 2010) 삼국시대를 호령했던 영웅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다룬다. 위·촉·오 세 개의 나라로 나뉜 시대 모진 계략과 술수, 뜨거운 의리와 배신 등 지배권을 쟁취하기 위한 장수들의 험난한 여정을 그려낸다. 95부작의 대서사시인 중국 드라마 '삼국지'를 8부작으로 압축한 버전으로 원작의 감동과 스피디한 전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원작 드라마는 제작 기간 5년에 약 25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2010년 현지 방영 당시 24개 주요 도시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젠빈천, 위허웨이, 루이 등이 출연한다. 2. 비밀의 숲 2 (Stranger 2, 2020) 웰메이드 드라마 '비밀의 숲'이 시즌 2로 돌아온다. 비밀의 숲은 고독한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비밀 추적극이다. 이번 비밀의 숲2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구조와 입체적인 인물,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첫 번째 시즌의 후속작이다. 시즌 1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조승우, 배두나가 전혜진과 최무성 등 뉴페이스와 함께 색다른 호흡을 맞춰갈 예정이다. 날카로운 필력의 이수연 작가가 다시 한번 펜을 잡았으며, 연출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 ‘함부로 애틋하게’ 등에서 매력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던 박현석 PD가 맡는다. 15일 첫 방송되며 방송분은 넷플릭스에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3. 퍼펙트 맨 (Man of Men, 2018) 까칠한 로펌 대표 '장수'(설경구)와 철없는 꼴통 건달 '영기'(조진웅)가 사망보험금을 걸고 한 방을 노리는 코믹하고 아찔한 이야기. 영화는 조직 보스의 돈 7억을 빼돌렸다가 돈을 다 날려 빈털터리가 된 영기 앞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장수가 나타나며 시작된다. 장수는 2개월 동안 자신이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도와주면 사망보험금을 넘기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돈이 필요한 영기는 거래를 수락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른 두 남자는 장수의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가며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고 조금씩 우정을 쌓아나간다. 조진웅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더불어 관록이 말해주는 설경구의 연기는 보는 이들에게 빵빵 터지는 웃음과 동시에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 2020-08-1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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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자락 걸으며 한갓진 반나절 산림욕
- ‘서울 둘레길’은 서울시 동서남북을 둘러싼 산과 산을 잇는 총연장 157㎞, 8개 코스로 나뉜 원형 둘레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서울을 대표하는 크고 작은 산들의 속살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서울 시내의 면면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 중 서울 둘레길 5코스 관악산 구간은 해발 629m의 관악산 둘레를 도는 산길이다. 바위가 많고 산세가 깊고 웅장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다. 관악구와 금천구를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이 길의 거리는 12.7㎞. 지하철 2·4호선 사당역에서 1호선 석수역까지 이어진다. 넉넉히 반나절 호젓하게 걸으면서 삼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낙성대공원, 서울대 정문, 천주교 삼성산 성지, 관음사와 호압사 등 풍부한 역사문화 현장도 두루 만날 수 있다. 관악산 구간은 ①사당역~서울대, ②서울대~호압사, ③호압사~석수역 3개 코스로 나뉜다. 사당역~서울대 코스는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을 엿볼 수 있고, 서울대~호압사 코스는 흥미로운 설화와 풍수와 역사를 만날 수 있고, 호압사~석수역 코스는 풍부한 삼림욕을 통해 심신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의 조화 사당역~서울대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경기권으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밀집한 상가들을 뒤로하고 관음사 방향으로 걷는다. 번잡한 역을 벗어난 지 5분쯤 지나자 길은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으로 이어지고 금세 조붓한 산길과 닿는다. 조금 전의 소음은 온데간데없다. 도심의 회색빛 대신 온통 초록빛이다. 첫 번째 경유지인 관음사에 도착한다. 관악산 북동 기슭에 자리한 이 절은 예로부터 서울 근교 사찰 가운데 영험 있는 관음 기도도량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시대의 도선국사가 정한 비보사찰(裨補寺刹, 이름난 곳이나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을 돕는다는 도참설과 불교 신앙에 따라 세운 절) 중 하나인 관음사 입구에는 수령이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본당 주변을 한 바퀴 돈 뒤 낙성대공원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오른다. 관음사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당골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바위와 만난다. 과거 무당들이 기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며 촛불을 켰는지 바위 입구가 까맣게 그을려 있다. 곳곳에 나지막한 조망터가 있어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공원 내의 작은 매점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고 간단히 요기도 할 수 있다. 흔히 대학 이름이나 바위 이름으로 오해받곤 하는 낙성대는 고려시대의 영웅 강감찬이 태어난 생가 터다. 강감찬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자리라 해서 낙성대(落星垈)로 부르게 됐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면 재밌다. 1973년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천주교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삼성산 자락 서울대~호압사 이제 서울대 방면으로 이동해 관악산 구간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서울대 정문을 지난다. 정문 근처에는 관악산 관리사무소가 있어 서울 둘레길을 비롯한 관악산 등산 관련 안내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다음 목적지인 천주교 삼성산 성지를 향해 걷는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장돼 있다. ‘삼성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말 명승 나옹, 무악, 지공 등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곳에 천주교 성직자였던 3명의 성인 선교사 유해가 안장됐고, 1970년 이후 천주교는 삼성산을 ‘세 명의 성인 유해가 안장된 성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관악산 구간의 마지막 포인트인 호압사에 이른다. ‘호랑이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를 지닌 절 이름이다. 풍수적으로 볼 때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위치인데, 호환이 많았던 산세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꼬리를 누를 수 있는 자리에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호압사에서 석수역에 이르는 구간은 곳곳에 삼림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끝나가는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다가오는 주말,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서울 둘레길 관악산 구간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달랠 수 있다. 당일치기 둘레길 트레킹을 위한 정보 코스 정하기 먼저 동행할 사람의 성별, 연령, 체력, 산행 경력 등을 고려해 코스를 정한다. 당일 트레킹일 경우 소요시간은 하루 4~5시간 정도, 거리는 10㎞ 내외, 누적 고도차는 1000m를 넘지 않는 게 좋다. 일행 중 노약자가 있다면 좀 더 쉬운 코스를 선택한다. 날씨, 교통, 편의시설, 지형, 중간탈출로 등 여러 가지 조건도 함께 체크한다. 잘 걷기 최대한 효율적으로 걷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짐을 줄여 배낭을 가볍게 해야 한다. 걸을 때는 발바닥 전체로 노면을 내딛는다. 경사도에 따라 상체를 앞으로 굽히고 내딛는 발바닥에 몸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잘 쉬기 적당히 쉬면서 걸어야 큰 피로감 없이 트레킹을 지속할 수 있다. 처음 20~30분은 가급적 쉬지 말고 체온을 올리고 근육을 깨우며 천천히 걷는다. 휴식을 취할 때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겉옷을 입어 보온한 뒤 약간의 물과 간식을 섭취한다. 너무 오래 쉬면 활성화된 신체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근육이 굳어지므로 적당히 쉬는 게 좋다. 잘 먹고 마시기 열량이 있으면서 소화가 잘되는 행동식을 준비해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한다. 행동식은 조리하지 않고 즉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건빵, 비스킷, 치즈, 초콜릿, 사탕, 육포 등을 기호에 따라 챙긴다. 물은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3분의 1모금 정도 입에 머금고 입술과 입안을 적신 뒤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긴다.
- 2020-07-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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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렌치 모던 전(展)에서 만난 여인들
-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철도가 있었다. 빠른 속도의 이동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영향을 끼쳤다. 접이식 이젤, 튜브형 물감의 등장으로 밖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쉬워졌다. 이런 변화들은 빛과 색채의 회화를 도입하려는 세잔, 드가, 르누아르,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점차 발전되는 경제적 풍요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그림의 대상도 변했다. ‘자연의 풍경’에서 ‘풍요롭고 여유로운 지금 여기의 삶’으로 바뀌었다. 그리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림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1889년 완공되었다. 에펠탑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 발전과 변화는 과학적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필요로 했다. 여기에 맞춰서 ‘조루즈 쇠라’ 같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나타났다. 한편, 인상주의의 성공을 넘어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에 갈망을 품은 화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파리를 떠났다. 세잔, 고흐, 고갱이 그들이다. 인상주의의 전성기는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시기였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 획득과 물질문명의 발달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네, 고야 등이 대표적이다. 이어서 회화는 마티스 등 야수파와 피카소 등의 입체파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탐욕과 물질의 팽창은 전쟁으로 폭발했다. 이후의 그림은 고통과 비극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가 오랫동안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 이 시기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그림들을 모아 ‘프렌치 모던:모네에서 마티스까지’전이 ‘고양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곳으로 그림 감상 여행을 떠났다. 1800년대 중반 대대적인 도시 정비로 파리가 지금의 형태로 재편되는 시기에 파리 근교에 모여 순수한 자연과 농민들의 가치를 그린 화가들이 있었다. 사실주의 화가 밀레, 카미유 코로 등이다. 이들은 신화나 영웅 이야기가 아닌 농촌을 중심으로 눈 앞에 펼쳐진 환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밀레의 농촌 그림은 인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쥘 브르퉁’의 농민 그림이 더 인기가 있었다. 전시회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여인도 ‘쥘 브르통’의 ‘양초를 들고 있는 농민 여성’이었다. 대서양에 접하고 있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흑백색 전통 의상을 입은 노파가 양초와 묵주를 든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당시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검소하고 소박한 종교적 자세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이 화폭에 담겨 있다. ‘쥘 브르통’의 다른 작품으로 감자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 여성을 그린 '귀갓길'도 있다.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감자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모습이다. 1848년 혁명의 영향 때문인지 농촌 노동자들을 영웅화하고 싶어 한 당시 사회의 허구가 반영되어 장밋빛 하늘을 그린 배경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그려진 여인은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되고 곱다. 그것은 고흐의 말처럼 작업실에서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주의의 한계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농부는 농부답고, 밭 가는 사람은 밭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두 번째 만난 여인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스파르타의 젊은 여인’이다. 야외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작업을 한 그는 가장 좋아하는 모델을 선택해 자신의 시정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그림에 나오는 여인은 작가의 이상적 여성상이었다. 집시 복장 차림의 나른한 자세와 눈길에서 작가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어서 ‘앙리 팡탱 라투르’의 ‘마담 레옹 마스터’를 만났다. 마네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 그림 역시 명암을 깊게 해 정확히 신중한 묘사를 한 사실적인 초상화다. 그녀가 입은 화려한 이브닝드레스와 그 뒤에 감춰진 우울한 분위기가 당시의 경제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이라는 모순된 시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인의 체념한 눈빛은 기본적 욕구와 욕망마저 포기한 무너져버린 생의 의지가 보여 애잔한 아픔의 해일이 밀려왔다. 주최 측의 의도였는지 바로 이어서 애잔한 가슴을 먹먹한 비애로 만든 조각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다나이드 이야기’를 주제로 형벌을 받아 밑바닥이 빠진 항아리에 계속 물을 채워야 하는 ‘다나이스’를 표현한 로댕의 조각 작품이다. 이 ‘다나이드’는 로댕에게 조각적,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제자이자 연인 ‘카미유 클로텔’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을 만난 순간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는 가냘픈 등줄기와 팔에서 살갗의 온기가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은 운명을 말하듯 방향을 돌린 얼굴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전하는 절망에 대한 공감 때문에 미술관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슬픔, 고통, 불행이 너무나 아름다운 우아한 선과 볼륨으로 표현되어 여인의 운명을 품앗이 하고 싶다는 깊고 깊은 한숨의 울림이 가슴 속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다나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여인을 만났다. 당시의 경제적 번영과 문화예술의 번창을 상징하는 여인으로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 볼디니’의 ‘여인의 초상’이다.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작가는 뉴욕의 자선가 ‘플로렌스 블루멘탈’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했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검은 머리카락과 드레스가 하얀 피부가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역동적인 자세를 순간 포착한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옆에 있는 의자에 눈길이 멈췄다. 곡선을 ‘가우디’는 신의 선이라고 말했지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선이 그림 속에 있었다. 야수파를 대표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가 그린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여인’도 만났다. 마티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북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그린 이 그림에서 그는 모델인 이탈리아 여성 ‘로레토’에게 모로코 전통 의상을 입혀 그림을 그렸다. 분홍색 천의 의자, 길고 검은 머리카락, 녹색 간두라에서 야수파의 특징인 보색대비가 잘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은 ‘드가’의 ‘몸을 닦는 여인’이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실내 빛의 효과와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 특성이 나타났다. 드가는 주로 매춘부들을 모델로 고용해 누드화를 그렸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번성했던 당시 매춘업의 실태와 작가의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이 나타난 현상이다. 그림은 단색의 밑그림으로만 돼 있어 미완성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는 모델의 자세는 작가의 훔쳐보는 시선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노골적인 여성 혐오주의자였던 드가가 가지고 있던 자기모순의 내면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 2020-05-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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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 좋은 날] 4월 28일 오늘의 띠별 운세
-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남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나 한가지를 끝까지 밀면 성공한다. 경거망동하여 일을 행할 시에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니 가급적이면 원행하지 말고 은인자중함이 길한 괘이다. •84년생 : 목적 달성을 위하여 힘차게 나갈 때이다. •72년생 : 노력에 비하여 소득은 적으나 나중에 크게 얻으니 걱정 할 것 없다. •60년생 : 한 우물을 파니 마침내 성공이라 재수가 좋고 투자도 길하다. •48년생 : 욕심만 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때를 기다려 맞춘다는 것은 힘든 일이나 시기가 말을 해준다. 움켜지고 있는다고 모두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은 것과 같으니 때가 되고 시가 되면 스스로 크게 될 우가 있으니 큰 손실이 가지 않은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라. •85년생 : 조용히 기다리면 힘들던 일이 하나씩 풀려 나간다. •73년생 : 명예가 오르고 바라던 일이 술술 풀리나 큰 재물은 어렵다. •61년생 : 오늘은 힘차게 투자도 하고 서슴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49년생 : 멀리서 좋은 소식이 오기는 하는데 재물이 여유가 없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갓 쓰고 도포 입었다고 양반이 아니다 자신의 처신을 잘하라. 비록 운기가 길하여 현실에 이익은 있을 것이나 훗날을 기약해 자만은 금물이다. 가벼이 일신을 움직이지 말것이니 복이 더욱 가중된다 •86년생 : 희망하든 일들을 부모나 선생님이 알아주니 즐겁다. •74년생 : 속태우든 애정 갈등이 완전 해결되고 재수도 길하다. •62년생 : 한 번 마음에 둔 일이 갈등이나 마음먹은 대로 미는 것이 이익이 크다. •50년생 : 손재수가 지나가니 다음은 들어올 차례다. 투자도 좋다.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마음이 한가하고 여유가 있어 아무런 근심이 없다. •87년생 : 재수가 좋으니 누구든 만나면 재물을 얻게된다. •75년생 : 나에게 힘든 상대라 걱정했는데 만나보니 상대가 먼저 나를 반긴다. •63년생 : 무리한 투자는 뒷날을 힘들게 한다. 투자 받음이 길하다. •51년생 : 왕이 선정을 베풀 듯이 자식이나 아랫사람에게 베풀면 길하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반가운 사람을 만나니 한 번은 좋고 또 한 번은 흉하게 된다. •76년생 :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를 돕는 사람이라 잘 보고 결정하라. •64년생 : 오전에 꼬인 일을 오후에 귀인이 나타나서 완전히 해결해 준다. •52년생 : 모든 괴로움에서 털고 일어나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40년생 : 오랜만에 일거리가 생기니 힘이 절로 난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가만히 들어앉아 계획만 짜면 무엇하랴 움직여야 일이 된다. •77년생 : 집안에 앉아서는 아무 일도 안되니 친구라도 찾으면 좋은 소식이 있다. •65년생 : 몸도 움직이고 돈도 움직여야 불어나는 법이다. •53년생 : 참모 역할보다 지휘관이 되어 움직이면 큰 재수가 보인다. •41년생 : 아랫사람이나 자식에게서 막혔든 재수가 시원하게 열린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면 재수를 막는 일이니 잘 돌아 보라. •78년생 : 재주를 부리다 오히려 손해를 당하는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 •66년생 : 힘든 일을 하나 처리하고 나니 또 어려운 일이 생기니 한탄 서럽다. •54년생 : 사람의 마음은 앞뒤를 다 봐야 하는 것이니 조심하여 다루어야 한다. •42년생 : 툭 터놓고 사람을 대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다 조금 침체된다고 무리하면 힘들게 된다. •79년생 : 다치고 사고 나는 운이니 옆도 보지 말고 조심하라. •67년생 : 지금이 큰 달이니 힘차게 투자도 하고 일을 만들어 보자. •55년생 : 재수는 좋으나 집안 일이나 밖의 일에 마음이 고달프다. •43년생 : 간교한 꾀임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사람을 조심하라.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 주는 것이라 모든 일은 때를 만나야 된다. •80년생 : 이성 친구는 마음먹은 대로이나 주머니가 마르니 유비무환 하라. •68년생 :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니 가슴이 답답하나 조용히 기다려라. •56년생 : 시기가 좋지 않으니 지금 그대로 지킴이 상책이다. •44년생 : 관 재가 아니면 손재가 두려우니 미리 방침을 세워야 한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시절이 어렵다고 서로 싸운다면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 된다. •81년생 : 시비 경쟁 방해로 힘든 일이 많으나 슬기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69년생 : 서서히 좋은 운이 오는 때이니 나서 볼 때이다. 재수 대통이다. •57년생 : 사람과 시비를 말라 말로 인해 몸을 다치는 수가 있다. •45년생 :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니 나가서 만나봄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꿈이 있어야 장래가 보이니 원대한 희망을 가져라. •82년생 : 스승 같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이득이 크다. •70년생 : 명분 없는 일에 정신만 산란하니 어디든 나서면 당하는 운이다. •58년생 : 과한 욕심 때문에 걸리는 발동은 화를 초래한다. •46년생 : 아직도 안 되는 일이라고 희망을 버리면 더 힘들어진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제도상의 문제를 그냥 두고 밀고 나가니 따르는 사람이 없다. •83년생 : 진로 수정의 계기가 되는 일이 생기니 잘 접하라. •71년생 : 구름이 많으면 비가 내리듯이 먹은 것이 무거우면 죄가 두렵다. •59년생 : 믿어라 믿음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된다. •47년생 :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나 오후부터 점차 맑아지니 기운을 잃지 마라.
- 2020-04-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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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홍신 “미워하지 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자”
-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성공적인 의정 활동을 수행한 국회의원, 그리고 감사와 봉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 김홍신의 다양한 삶의 여정은 여러 가지 명칭들로 지칭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그는 무엇보다도 다시 만년필을 잡고 원고지와 마주한 작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외부 활동이 불가해지자 그는 멈췄던 장편소설과 수필집을 완성하기로 했다. 1970년대 초를 배경으로 ‘빨갱이’로 몰려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장편소설 ‘적인종’의 집필, 그리고 ‘월간 에세이’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수필집 출간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나 코로나19 여파로 역경의 연속인 삶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울림을 들어봤다. 방송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 김홍신 특유의 인자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외모는 여전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바이지만, 그의 삶은 그런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저 김홍신 인생이 순조롭다고 여기실 테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 또한 순탄하지는 않죠. 모든 삶이 순조롭다면 지구가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죽음이 있고 고통과 고뇌가 있고 실수와 우여곡절이 많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죠.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신화와 역사가 될 수 없고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법이니까요.”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감동도 없다 그는 원래 의대를 가고자 했지만 떨어지면서 재수를 해야 했다. 그때 느낀 울분과 절망은 스스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결국 재수를 해서 들어간 건국대학교 국문과. 취업도 안 되고 할 일이 없다 하여 타과 학생들이 ‘국물과’라고 부르는 학과였다. “그때 집안이 망해서 휴학까지 했죠. 그래서 데뷔도 늦었어요. 그나마 당시에 가장 권위 있던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했지만 날 이끌 사람이 없었어요. 종합대학 중 문인 숫자가 가장 적은 학교가 건국대였으니까요. 내 소설이 뛰어났다면야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죠. 신춘문예에도 여러 번 떨어지니 ‘다 지들끼리 해먹는다’ 싶었고…. 물론 그게 아니지만 그렇게 핑계를 대야 내가 견디잖아요? 유명한 소설가들을 비판하면 비평력이 있다고 착각하던 때였죠.” 절망의 청춘을 지나 성숙해지다 그의 날선 비판 대상에는 당대의 대표 소설가였던 최인호도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야인으로 살던 시절 끝에, 마침내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순식간에 인기 작가가 된 그는 이제 다른 사람 작품의 심사까지 맡게 됐다. “그때 최인호 형과 같이 심사하게 됐는데, 너무 괴로운 거예요.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판했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으려니까요. 그래서 ‘선배님, 고백할 게 있습니다’라고 먼저 말했죠.” 최인호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김홍신은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다 털어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배님을 비판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나를 끌어안는 거예요. ‘내 앞에서 최인호를 비판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용서해 달라고 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너무 고맙다’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을 반성하고 속죄하고자 한 김홍신이나 그런 모습을 보고 기탄없이 받아들인 최인호나 둘 다 넉넉한 인물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식사 때 서로 돈을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의형제를 맺는다. “그때 인호 형이 한 얘기가 ‘지금 김홍신을 시샘하는 사람이 많다. 그걸 견뎌야 한다. 그리고 유명해질수록 바른 걸음으로 걸으며 세상과 너무 타협하지 말라’는 거였죠. 나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나도 그랬는걸(웃음). 온갖 협박 공갈에 편할 날이 없었어요.” 우리 어딘가에 있는 의인들을 도와줘야 그의 고난은 작가 생활을 거쳐 국회의원 시절로도 이어진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2000년에는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계속 주변과 싸워야 했다. 15대 국회에서는 ‘이틀만 근무하는 5월에 한 달 치 세비를 받는 건 혈세 남용이라며 세비거부 운동을 벌여 동료 의원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2003년에는 당 지도부에 의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강제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치권에서 배척받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자신의 진심이 닿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15, 16대 연속 의정 활동 1위 국회의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이 증거였다. 그는 정치에 대해 싸울 때는 침묵하지 않고 자신만의 할 말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몰아내고 영웅이 될 만한 사람들을 쳐냈어요.” 왜 그렇게 된 걸까? 그는 힘 있는 자들의 횡포라고 진단했다. 자기가 역사에 남고 존경받으려면 남을 칠 수밖에 없다는데, 그건 상대를 존중해야 자기도 존중받음을 잊어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적은 일궜는데 기쁨을 잃었어요. 배고픔은 해결했는데 배아픔은 해결 못하고 있죠.” 그래서 그는 시대를 이끄는 현자와 의인들은 시대가 만들어주고 옹호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구석구석에 계십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끝까지 진실을 향해 항해하는 사람. 우리 사회 곳곳에 계세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대구의사협회장의 호소문에 응답하는 의사들의 모습도 그런 것이었다고 봐요.” 굴곡 많은 시련을 어떻게 견뎌왔나 얘기가 자연스럽게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로 들어가게 될 시점이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끝나기는커녕 미국과 유럽 등지로까지 번지고 있는 이 거대한 역병의 파도에 쓸려 심신이 고달프고 막막하며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처럼 굴곡진 삶에서 김홍신은 누구보다도 그런 상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히 지옥 생활이라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소설 ‘대발해’를 쓸 때였다. 시작은 법륜 스님의 권고였다. “국회의원, 장관 열 번 하는 것보다 발해 역사를 알리는 게 할일 아닙니까”라는 말에 동의하며 시작된 ‘대발해’ 집필은 2004년 말부터 3년간 두문불출하고 글만 쓰며 피폐하게 살게 만들었다. 그때가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점도 그를 힘들게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아와 눈, 허리에 문제가 생겼죠. 불면증도 생겼어요. 자다가 단어 하나가 떠오르면 메모해놓고 잠을 자야 했으니까요.” 소설은 마침내 2007년 여름에 발표됐다. 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요로결석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스카프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사연이 있어요. 소설을 쓰면서 밖을 안 나가다 보니 햇볕 알레르기가 생겨서, 햇볕에 노출되면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더군요. 얼굴은 약을 바르면 됐는데 목은 치료가 안 돼서 스카프를 두르게 된 거죠. 그리고 지금도 가끔 손에 마비가 와요. 원고지 만이천 장을 썼으니까요. 교정만 7개월을 봤고요.” 우리는 역경을 거치면 반드시 더 강해지는 민족 김홍신은 ‘대발해’를 발표한 후 7년 동안 소설을 못 썼다. 소설 집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려고만 하면 또 아프다 쓰러지는 것 아닐까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대발해’로 소설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끝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대로 가다간 죽을 때까지 소설을 못 쓰겠다’는 두려움이 집필에 대한 부담감보다 더 커지기 시작했다. “고민을 하다 그동안 사회비판소설, 역사소설을 주로 썼으니 사랑 이야기를 쓰면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쓴 게 ‘단 한 번의 사랑’이었죠. 그 이후에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쓸 수 있었어요. 덕분에 지금은 ‘적인종’을 집필할 수 있게 된 거죠.” 소설을 쓰다 죽을 뻔한 경험을 치른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도 깊은 친분이 있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108배를 하며 세상, 민족, 평화, 북한 동포, 인도 불가촉천민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 자신이 기도한다고 세상이 변할까마는, ‘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와 같은 희망의 마음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품앗이 정신이 대단한 민족이에요. 대구만 봐도 모여드는 의사, 간호사, 봉사자들 보세요. 대구 달구벌과 광주 빛고을이 달빛동맹으로 교류하는 걸 봐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보려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걸 보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토록 남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안도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 반드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DNA가 있잖아요.” 나를 존중하고 세상을 존중하라 그는 잘 늙으려면 스스로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존중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물, 공기, 풀, 햇빛을 사랑하고 그 존엄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과 세상을 위해 깨달은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고 말한다. 이는 김홍신 자신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를 사랑 못할지언정 그에 대한 미움은 없어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면 내 전생의 어머니였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려 하면 내가 편안해져요.” 그에게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개인적 사연이 있다. 과거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그를 잡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재작년에 사망했다. 그는 그의 부고 소식이 실린 신문을 스크랩해서 노트에 붙여놓고 그 옆에 그와 자신의 사연을 썼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 방향을 향해 108배를 했다. 생전에, 그는 김홍신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죄를 구했다. 김홍신은 그런 그를 보며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문이 있었다. ‘내가 과연 그를 용서한 걸까?’ 그래서 108배를 해보며 계속 되물었다. 답은, 용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의 평화를 만드는 마음의 다짐 “지금 제가 찬 시계는 흔들어줘야 가는 오토매틱 시계예요. 이틀 가만 놔두면 죽어요. 이 시계처럼 인생도 자꾸 흔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남한테는 ‘흔들어주세요’라고 말해놓고 자신이 안 하면 안 되겠죠. 몸을 흔드는 게 아니라 마음을 흔들어야 해요. 명상과 기도, 고맙다는 감사 등이 그 방법들이에요.” 그는 요즘 모두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집에 있는 진달래, 홍매화도 스승이다. 자신을 기쁘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운 사람이 생겼다고 쳐요. ‘에휴…’ 하다가도 ‘내가 미워하면 안 되지. 잊어버리자’ 하며 다잡습니다. 그리고 저녁기도할 때 ‘내가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반성합니다. 그러면 내가 편해져요. 그러니까 그 사람도 제 스승인 거죠.” 물론 무조건 다 그의 말처럼 살 수는 없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계속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깨달음과 평화가 있음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김홍신이란 이름을 부를 때 기뻤으면 좋겠어요. 아주 기쁘진 않더라도, 싫지 않고 밉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려고 하니까 힘들게 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그걸 해내는 게 기쁨이 될 수 있는 거죠.” 마음 한쪽이 아련히 아팠다. 그렇지만 그와 이야기하면서 지금 ‘장총찬’이 절실한 이 시대에 김홍신이라는 문인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무릎을 탁 치며 늙음과 낡음이 명확히 깨달아지는 축복이 스며들었다.
- 2020-04-0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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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꽃 만개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 '사람이 곧 하늘이니 마땅히 사람을 하늘처럼 대해야 한다.' 인간 평등을 담고 있는 동학 이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로 거친 손을 맞잡고 저항했던 민초들, 그들의 이름은 사람이었고 위대한 백성이었다. 전남 장흥의 겨울바람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마주 보았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녹두꽃'이 있었다. 동학농민을 다룬 드라마가 여간해서 없었는데 근래에 드물게도 이런 드라마가 나와 세태의 흐름과 함께 생각해 보게 했다. 사람다움 없는 기득권자들의 자리싸움은 물론이고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도 금수저니 놋수저니 숟가락 타령까지 만들어 냈다. 드라마는 영웅 일대기가 아닌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민초들의 삶과 항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겠다 이 말여” 배우 조정석이 울부짓던 것처럼 인간 존엄을 연결시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전남 장흥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중의 한 곳이 바로 장흥이다. 공주 우금치, 정읍 황토현, 장성 황룡, 장흥 석대들.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석대들에 소나무를 앞세우고 조용히 앉혀져 있다. 1894년 이 땅에서 동학농민운동 사상 가장 치열한 '석대들 전투'가 있었던 곳, 대규모 농민군이 참여한 최후 최대의 격전지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 바친 항전의 모습을 이곳 전시관에서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 그분들의 뜻을 기리는 상징적인 조형물과 깃발 광장, 기획전시실과 체험실, 시간순으로 나뉜 영원의 불, 개벽의 들불, 타오르는 불꽃, 분노의 불씨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넋을 추모하는 불꽃이었다. 혼란의 시대에 변화를 꿈꾼 백성들의 희생에 전율이 느껴진다. 대나무를 항아리처럼 엮어놓은 것이 있다. 그 안에 볏짚을 가득 넣어 굴리며 방어용 공격용 무기로 사용한 장태를 보며 들불처럼 타오른 농민 항거의 모습이 느껴져 숙연해진다. 그리고 영상실에서는 일본군에 쫓긴 동학농민들을 며칠 밤을 새워 완도와 고흥의 섬으로 피신시킨 열여섯 살 소년 뱃사공 윤성도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절박했던 순간에도 의연하던 소년의 모습 멋짐 폭발이다.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던 사람들, 당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 2004년이다. 그분들의 피의 투쟁이 100년이 넘어서야 인정된 것이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전시관 옥상으로 올라가면 드넓은 석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맞선 동학농민들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세찬 겨울바람이 분다. 나라가 바르게 서지 않을 때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나선 사람들, 부패한 기득권자들이 득세할 때 짓눌리기만 하던 민중들이 손을 맞잡았던 곳, 석대산 자락에 서서 그분들의 열망과 흔적을 좇으며 생각해 본다. 살면서 가끔은 한 번씩 내 삶의 뿌리에 누군가의 노고가 있었는지, 이제는 녹두꽃이 만개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장흥 석대들에 서면 그분들의 소중한 희생으로 꿈꾸던 세상이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남외리 16 서울 기준,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장흥시외버스터미널→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평일 7번 주말 8번 운행 간 김에 장흥 둘러보기 -소등섬 고기잡이 나간 가족을 기다리며 섬에 소등(小燈), 즉 호롱불을 밝힌 데서 유래된 섬 이름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촬영지로 더 알려진 소등섬의 남포마을, 배우 안성기와 오정해가 거닐었던 영화 속의 포구가 지금은 찬 겨울 속에 있다. 소등섬 너머로 떠오르는 해돋이가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맛집 -내저마을 매생이 매생이는 청정한 갯벌의 내해에서만 자라는 건강한 안심 먹거리다. 장흥의 내저 마을엔 현재 매생이 수확이 한창이다. (11월 말부터 그다음 해인 2월 경까지가 수확시기다) -굴구이 자연산 굴 채취가 쉬운 이곳에 굴구이집이 많다. 석화가 가득 쌓인 입구부터 푸짐하다. 강당처럼 넓은 실내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 앞에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석화구이를 즐기는 맛과 풍취가 넘친다. 신선한 굴을 살짝만 익혀 껍질을 열면 짭조름한 굴즙이 흐르고 탱글한 굴을 호로록 입에 넣는다. 남포수산 전남 장흥군 용산면 접정남포로 763-96. -장흥삼합 장흥의 삼합요리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메뉴가 낙지삼합이다. 생물로, 익혀서, 볶아서 이렇게 삼 단계의 맛을 즐긴다. 낙지 삼합은 오래전 이 집의 주인이 개발한 메뉴로 이제는 타 지역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맛집이다. 장흥의 맛있는 기억은 끝도 없다. -이 뿐 아니라, 운치있는 힐링의 숲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장흥의 랜드마크 정남진 전망대, 용도 폐지된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장흥교도소, 천연기념물 후박나무,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을 현대화해서 편리하게 구경할 토요시장 등 가 볼 곳이 지천인 장흥이다.
- 2019-12-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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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문화 행사를 찾다
- 파란 하늘 아래 걷고 싶은 계절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2019 서울 빛초롱 축제 일정 11월 1~17일 장소 서울 청계천 일대 매년 11월, 매해 다른 콘셉트로 청계천 일대에서 오색찬란한 등(燈)을 밝히는 서울의 대표 축제다. 올해는 ‘당신의 서울, 빛으로 꾸는 꿈’을 주제로 청계광장부터 수표교까지 약 1.2km 구간에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등불을 감상할 수 있다. ◇ 호이 랑 일정 11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고전 ‘일사유사’에 등장하는 효녀 부랑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발레극. 국립발레단의 신작으로 강수진 예술감독과 강효형 안무가를 비롯한 국내외 베테랑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 패왕별희 일정 11월 9~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동명 경극을 원작으로 춘추전국시대 초한전쟁에서 패하고 자결한 영웅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사랑을 노래한다. 시각 중심의 경극과 청각 중심의 창극이 만나 특유의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 인테리어즈 일정 11월 15~17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노벨문학상을 받은 상징주의 대표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인테리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블랙코미디의 요소를 부각했다. 마치 집 안을 들여다보는 듯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 아이다 일정 11월 16~2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한국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아이다’가 올해 무대를 끝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아이다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더욱 아련하게 펼쳐진다. ◇ 감쪽같은 그녀 개봉 11월 27일 출연 나문희, 김수안 70대 철부지 할머니 말순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10대 손녀 공주의 좌충우돌 동거를 그렸다. 말순 역의 나문희와 공주 역의 김수안은 65세의 나이 차이를 초월하는 연기 호흡을 통해 유쾌한 웃음과 훈훈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 2019-11-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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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건축물의 보고, ‘인천개항누리길’을 걷다
- 휴일 오전, 전철 1호선을 타고 종착역인 인천역으로 간다. 한산한 전철 안에서 시간여행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인천역 앞에 있는 화려한 패루를 통과하면, 1800년대 말 인천 개항 시절의 풍경이 펼쳐지는 상상 말이다. 실제로 패루 너머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곳에 새겨진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간을 되짚어보면, 나도 모르게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걷기 코스 전철 1호선 인천역▶ 제1패루▶ 차이나타운▶ 선린문(제3패루)▶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인천 중구청(옛 일본영사관)▶ 중구생활사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옛 인천일본제1은행)▶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옛 인천일본18은행지점)▶ 신포시장▶ 답동성당▶ 애관극장▶ 싸리재 카페▶ 전철 1호선 동인천역 인천 개항과 함께 형성된 화교 마을 1883년 인천 개항 후 청국인, 일본인, 러시아인, 독일인, 영국인들이 앞다퉈 제물포(지금의 인천항)로 몰려왔다. 항구 일대에는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공원, 극장, 학교, 호텔, 은행과 같은 서양식 근대건축물도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철도, 시외전화, 화폐, 구두, 등대, 담배 성냥, 축구, 야구 등 해외 문물도 물밀듯 들어왔다. 이 시절의 흔적이 제물포와 가까웠던 지금의 인천시 중구에 오롯이 남았다. 그 자취를 찾으며 질풍노도 같았던 인천의 근대사를 돌아본다. 출발지인 인천역부터 특별하다. 인천역은 1899년에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종착역이었다. 인천역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우마차나 수로로는 반나절 이상 걸릴 길을 열차로 한 시간 만에 갔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겠다. 인천역 광장 맞은편에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시에서 기증한 패루가 화려한 단청을 뽐내며 서 있다. 패루 사이로 차이나타운의 ‘T’자형 대로가 보인다. 차이나타운 골목마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대규모 중식당과 중국 간식 상점,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개항 후 중국 산둥성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이때 정착한 화교들이 중국요리점을 열고, 한국인 입맛에 맞는 자장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자장면의 대명사로 불렸던 ‘공화춘’의 우희광 씨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83년에 문을 닫은 공화춘은 30년 뒤인 2012년에 ‘짜장면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옛날 공화춘의 인기는 신승반점, 만다복, 연경, 중화원 등이 잇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요리 외에 화덕 호떡인 옹기병과 월병, 홍두병, 공갈빵 같은 중국 전통 간식도 재미 삼아 먹어볼 만하다. 뜨거운 옹기병을 뜯어 먹으며, 차이나타운 중간 지점에 있는 선린문(제3패루)으로 향한다. 3개의 계단을 지나 마지막 계단 위에 우뚝 세워진 선린문은 차이나타운 최고의 포토존이다. 선린문을 통과해 다시 계단을 조금 오르면 자유공원 입구와 만난다. 왼쪽 길에 초한지 벽화 골목이 있고, 오른쪽 길은 자유공원 산책로와 연결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인천 근대사 이야기 자유공원은 1888년 응봉산에 건립된 국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공원 초입에 있는 석정루에 올라 인천 앞바다와 월미도를 조망하고, 한미수교 100주년(1982년)을 기리는 기념탑과 한국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둘러본 뒤, 제물포구락부로 이동한다. 제물포구락부는 자유공원과 이어진 계단 중간에 있다. 이곳은 개항 당시 제물포에 거주했던 독일, 미국, 러시아, 일본인들의 사교장이었다. 하얗게 회칠한 외벽과 고풍스러운 홀이 인상적이다. 제물포구락부와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도 거리가 가깝다. 이 계단은 일본과 청나라가 각각 조계지를 설정하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계단을 경계로 북성동 쪽은 청나라의 차이나타운이, 신포동 쪽은 일본 건축물이 들어섰다. 계단 양쪽에 세운 석등조차 중국식과 일본식으로 구별돼 있다. 계단 상단의 공자상도 중국 쪽으로 약간 치우쳐 세워졌다. 외국인들이 조선 땅을 땅따먹기하듯 갈라놓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현장이다. 청일조계지 계단을 내려와 왼쪽, 중구청(옛 일본영사관)으로 가다 보면, 일본 적산가옥과 일본제1은행, 구 일본18은행과 같은 근대건축물이 모여 있는 개항장 거리를 만난다. 차이나타운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다. 거리 입구에 있는 중구생활사전시관은 1888년에 개업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외관을 되살려 지은 건물이다. 귀부인이 머물렀을 법한 객실과 1960~70년대 인천 중구의 의식주 생활공간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나무 전봇대가 세워진 골목길과 문방구, 백항아리집(선술집), 극장, 다방, 의상실, 이발소 등 추억을 부르는 풍경이 마냥 반갑다. 전시관 옆 개항박물관은 옛 일본제1은행을 개조한 것이다. 1883년에 건축한 르네상스풍의 석조 건물로서 일본영사관의 금고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우표와 우편물, 우체통, 전보와 전화기, 경인선 기관차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같은 라인에 있는 근대건축전시관은 일본제18은행 건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나가사키 상인들이 상해에서 수입한 영국 면직물을 한국에 수출해 큰 이익을 얻자, 인천에 은행 지점을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개항장 일대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과 소실된 건축물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인천과 서울을 연결했던 싸리재 고갯길 개항장 거리를 지나 먹거리 성지인 신포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포시장은 인천 개항 이후 형성된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이다. 19세기 말 화교 농민들이 산둥성에서 채소 씨앗을 가져와 키워 시장에 내다 판 것이 신포국제시장의 시초라고 한다. 역사가 깊은 만큼 먹거리도 풍성하다. 쫄면의 탄생지도 신포시장이며, 신포순대, 신포만두의 고향도 이곳이다. 주먹으로 깨 먹는, 단단한 공갈빵과 매콤한 맛을 강조한 신포 닭강정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닭강정을 사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골목 안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다. 시장 골목 끝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국내 성당 중 가장 오래된 답동성당과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을 만날 수 있다.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을 지닌 애관극장은 1895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20년대부터 애관극장으로 불리며, 복합상영관이 주름 잡는 이 시대에도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설은 여느 극장과 비슷하고, 상영작도 같다. 흐뭇한 마음으로 애관극장을 구경하고, 동인천역으로 내려가는 고갯길, 싸리재를 걷는다. 옛날에 이 길에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낙후한 거리가 되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만 해도 병원, 한약방, 약국, 양화점, 포목점 등이 즐비했던 곳이다. 서울 명동 못지않은 상권을 자랑했다고. 옛날 양복점과 병원 건물과 기록 사진만이 싸리재의 옛 영화를 증명한다. 최근,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싸리재의 아날로그 정취가 돋보인다. 그 중심에 ‘싸리재’ 카페가 있다. 지은 지 90년 된 목조 카페에서 노부부가 커피를 내린다. 카페 안쪽에는 노부부의 100년 된 한옥 살림집이 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부는 수집한 축음기로 레코드판 음악을 들려준다. 마침 퀸의 ‘보헤미안랩소디’가 흘러나와 한껏 흥에 젖는다. 바리스타인 박차영 대표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하니 자신이 개발한 ‘커피봉봉’과 ‘싸리재’를 권한다. 모든 커피를 모카포트로 내려준다. 쌉싸래한 에스프레소와 달콤한 연유, 촉촉한 생크림의 조화가 감미롭다. 싸리재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포근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노부부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싸리재 카페에서 동인천역은 멀지 않다. 전철을 타기 전에 송현동 순대 골목이나 화평동 냉면 거리, 동인천 삼치 거리에서 요기를 해도 좋겠다. 주변 명소 & 맛집 신승반점과 명월옥 공화춘은 1983년에 폐업했으나 우희광 씨의 자손들이 공화춘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우희광 씨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신승반점이 그곳. 신승반점의 인기 메뉴는 돼지고기와 채소를 갈아 춘장과 볶은 유니자장면이다. 달지 않으면서 감칠맛 나는 자장 소스와 부들부들한 면발이 입맛을 당긴다. 흰 자장면이 궁금하다면 만다복(032-773-3838)을, 맛있는 짬뽕을 먹고 싶다면 복림원(032-773-8778)을 추천한다. 한식은 신포시장 가는 길목에 있는 백반식당, 명월집이 잘한다. 1966년에 개업한 식당이다. 7000원짜리 백반에 밑반찬만 열 가지. 여기에 곤로 위에서 푹 끓인 돼지김치찌개와 누룽지도 양껏 먹을 수 있다. 신승반점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31-3, 매일 11:00~21:00 명월옥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41, 07:30~19:30(일요일 휴무) 송월동 동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은 차이나타운과 이어져 있다. 2013년 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세계명작동화를 주제로 마을을 예쁘게 꾸몄다. 입구의 아치문을 통과하면, 알록달록한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골목마다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전래동화길 등 테마가 있다. 동화 캐릭터 입체 조형물이 많아 곳곳이 포토존이다. 이 마을이 개항기 때 독일, 일본, 프랑스인들이 살았던 부촌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인천 중구 자유공원서로37번길 22(연중무휴) 짜장면박물관 1908년 차이나타운에 개업한 중식당, 공화춘의 내부를 개조해 2012년에 개관했다. 전시물을 통해 화교와 자장면의 탄생기, 전성기, 자장라면의 역사 등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공화춘 접객실,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다. 졸업식이나 운동회 날에 부모님과 자장면을 먹으러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공화춘 건물은 중국 산둥 지방의 장인이 참여해 중국식으로 지었으며, 2006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09:00~18:00(월요일 휴관) 걷기 Tip ❶ 차이나타운은 골목이 많으므로 인천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센터에서 지도를 받아, 갈 곳을 미리 표시해두는 게 좋다. 송월동 동화마을을 코스에 넣는다면, 맨 먼저 들르자. ❷ 신포시장까지만 걷는다면, 수인선 신포역에서 전철을 타면 된다. ❸ 개항박물관, 짜장면박물관, 중부생활사전시관, 근대건축전시관, 한중기념관 등 5개 전시관 통합관람권을 구매하면 입장료를 아낄 수 있다. 통합관람권 어른 3400원.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입장료 무료.
- 2019-03-20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