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동대문구에는 치매 환자 실종에 대응하기 위한 ‘스마트 울타리’가 쳐졌다. 관내 택시회사에 ‘치매파트너’를 양성하고 경찰서와 협조를 통해 치매환자 실종에 대응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면서다. 실종환자 발생시 실시간으로 ‘실종알리미’ 카카오톡 채널에서 알림톡을 발송하고, 실종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인근에서 활동 중인 기사 중심으로 배회 어르신을 찾는 데에 동참한다. 실종 어르신을 발견하면 ‘안심귀가’ 송영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건복지부는 동대문구를 비롯한 ‘치매안심마을’ 우수 사례 공모를 실시해, 선정된 시군구에 예산 및 홍보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이는 올해 집중적으로 추진할 치매 정책 중 하나로, 복지부는 지역사회 치매 관리 허브기관으로 치매안심센터를 고도화하고, 돌봄‧의료서비스를 다양화할 예정이다. 치매 환자가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치매안심마을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돌봄 부담 경감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특성을 따라 읍면동 단위로 조성하는 마을이다. 2017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2019년 전국에 확대돼 현재 641개 마을(2021년 기준)이 운영 중이다.
이번 공모에서는 서울 동대문구를 포함해 총 28개 시군구를 치매안심마을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우수 사례로 선정된 경기 광명시에서는 배회증상을 보여 실종이 우려되는 치매 환자에게 ‘스마트태크’를 보급해 실종을 예방한다. 남원시에서는 ‘25시 치매 돌봄 구축’으로 치매 환자 가정 내 스마트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실종자 발생 시 신속한 위치 확인 및 추적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인지 프로그램 운영 면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된 지역도 있다. 목포시는 ‘다시, 청춘 GO!’를 통해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학교생활을 재연한다. 이로서 치매 환자의 교류를 지원하고, 인지기능과 신체기능, 사회성 강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치매안심마을에서는 치매 환자 돌봄으로 지친 보호자와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안양시는 ‘우리 동네 마음충전소’를 운영해 가족 돌봄 및 상담을 제공할 예정이다. 속초시는 ‘休 + culture 보호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 환자 보호자들에게 시립박물관, 자생식물원, 족욕 공원을 즐기는 1일 체험 프로그램을 선사한다.
김혜영 치매정책과장은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도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치매 환자 및 가족이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치매안심센터의 기능을 치매 관리 허브기관으로 강화하고 치매안심마을의 확산을 통해 치매 환자 및 가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이명현은 별과 시, 소설을 사랑하는 전파 천문학자다.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한다. 현재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 프로젝트 ‘세티’의 한국 책임자(SETI KOREA 대표)와 메티 인터내셔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더불어 어릴 적 자랐던 삼청동 옛집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고 과학 소통가로서 우주과학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이명현 천문학자가 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0년대 서울의 변두리, 답십리 골목길에서 딱지치기나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다. 해 질 무렵,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엄마의 부름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혼자 남아 밤하늘을 바라봤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이 퇴근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별에 매료돼 ‘별을 헤는 사람’이 됐다.
상반된 단어들의 별난 집합
“초등학교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어요. 최연소 회원이었죠. 그때만 해도 서울 밤하늘이 제법 어두웠어요. 인공 불빛이 덜했으니 어지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 은하수는 가끔, 안드로메다 은하는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도 다시 만나던 단골손님이었어요. 성운과 성단의 이름을 적은 노트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눈으로 찾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본 후 그림을 그리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의 세월은 문학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가을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로부터 이별을 알리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인생 첫 실연이었다. 편지에는 김소월의 ‘초혼’과 윤동주의 ‘서시’ 두 편이 적혀 있었다. 서럽게 울다가 두 시인의 시를 보았다. 그리움을 곱씹으며 구할 수 있는 모든 시집은 다 구해서 읽고 외웠다. 이별이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준 셈이다. 윤동주가 공부했던 숭실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가 참여했던 평양 숭실고 교지 ‘숭실활천’의 정신을 잇는 문학 동인회 ‘활천’을 만들었다. 그 이름으로 동인지도 발행했다. 대학교도 윤동주의 흔적이 남은 연세대학교로 갔다. 마침 같은 학교에 입학한 아내를 1학년 가을, 윤동주 시비 앞에서 다시 만났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가 된 후 전파 망원경을 통한 은하 연구의 중심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연구원 생활을 마쳤다. 귀국해서는 연세대학교 연구교수와 천문대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이명현 인생의 화두인 별과 윤동주의 문학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2010년 11월 말, 일요일 밤이었어요. 김장철이라 배추를 나른 뒤였죠. 약간 숨이 찼지만 힘들진 않았는데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어요. 응급처치 덕에 살았지만 지금은 심장 근육의 일부만 뛰는 상태에요. 그때 현장 과학자로서는 은퇴했어요. 당시 연재 중이던 온라인 매체 ‘프레시안 북스’의 서평 연재 코너 빼고요. 격주로 진행했는데, 책을 한 권 읽고 글 쓰는 게 다였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 재활 훈련으로 여겼죠.”
‘과학의 문학’을 위한 책방
2018년에는 삼청동 뒷골목에 과학책방 ‘갈다’를 열었다. 원래 이 공간은 아버지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저자)가 1979년에 지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관리가 살던 단층 적산 가옥이 있었다. 이 명예교수가 2002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집을 새로 지어 옮겨간 후 삼청동 집은 지인이 오랫동안 비폭력대화센터로 운영해왔다. 그러다 센터가 이사하며 집이 비자 이 명예교수는 장남 이명현 천문학자에게 공간을 내줬다.
“갈다는 갈릴레오(Galileo)와 다윈(Darwin)의 앞글자를 합친 단어예요. ‘세상을 바꾼 과학을 만나는 곳’이란 뜻부터 ‘문화의 터전을 갈다’, ‘지식의 칼날을 갈다’, ‘딱딱한 과학을 부드럽게 갈다’, ‘지식의 판을 갈다’ 등 5가지 의미를 담았어요. 장대익 서울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상욱 경희대 교수 같은 친한 학자 10여 명과 아이디어를 모았죠. 이름을 지은 다음 뭘 할까 고민했어요. 다들 과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사람이고, 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터라 교양과학 책방을 열기로 했죠. 2층에는 저자의 방, 지하엔 북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어요.”
이명현 천문학자는 과학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 출발은 대학원생 때다. 연구실로 초등학생 꼬마 한 명이 들어와 다짜고짜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론에 입거한 증거를 나열해 친절히 얘기해줬지만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을 납득시켜달라고 보챘다. 아무리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천문학을 매개로 비전공자와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이후 다양한 강연을 통해 과학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꾸준히 전한다.
왜 과학, 책일까?
“대부분 과학책이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거리를 둬요. 과학책을 쉽게 읽고 싶다면 ‘느슨한 독서’를 추천합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적어 책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어요. 그만큼 정독, 완독, 반복 등이 중요했죠.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서 좋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와요. 첫 장부터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고,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세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등 비독서 행위를 활용하면 효율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흘려놓은 정보에 올라타는 거죠. 장으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는 책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는 것도 느슨한 독서 방법이에요.”
물론 영상, 팟캐스트 등의 미디어를 통해 과학을 접한다 해도 진입장벽은 높다. 그럼에도 느슨하게나마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 매체가 익숙한 시대에 살다 보니 현대인은 즉각적인 반응을 도출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복잡한 상황도 마주한다. 이명현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독서가 최적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정보 습득의 목적도 있지만,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어요. 사고력을 기르는 거예요. 많은 분야 중에서도 왜 하필 과학책일까요? 중세에는 신학, 천문, 지리, 음악이 핵심 교양이었죠. 그걸 알아야 사람들과 호흡하고, 시대를 풍성하게 누릴 권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과학이 핵심 교양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봐요. 심리학이나 행동과학 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과학으로 이해한 다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현대 인문학이에요. 인문학과 과학은 뗄 수 없는 관계죠. 핵심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익혀 우리 함께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선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을 맞을 때 쓴다. 눈을 떠야만 하루치 인생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 막이 내리기 때문에.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깨우쳤을 때도 눈을 떴다고 한다. 성우 서혜정(61)은 새롭게 눈뜨기를 즐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롭게 시작한 하루치 인생이 기대돼 좋고, 일상 속 소소하지만 빛나는 깨달음이 반가워 좋다. 화수분 같은 목소리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에 성우라는 한 우물을 40년 파온 경력까지 합쳐지니 금상첨화다.
서혜정 성우는 1982년 KBS 공채 17기 성우로 일찍이 데뷔했다. 이후 1988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외화 시리즈 ‘엑스파일’(X-Files)의 데이나 스컬리 역, KBS ‘생로병사의 비밀’, tvN 예능 프로그램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 등을 맡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원 성우과 겸임교수이자 서혜정낭독연구소 소장으로서 성우 지망생들을 만나고 있다.
양반 교육이 터준 성우의 길
‘국민 성우’의 될성부른 떡잎이 일찍이 보였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양반가 핏줄인 어머니로부터 ‘양반 교육’을 받았다. “양반은 말을 빨리 하면 안 된다. 밥 먹을 때 소리 내서 말하면 안 되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서도 안 된다. 양반이란 걸을 때도 방정맞지 않게 걸어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일부러 하신 건 아니었지만 성우 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언어 훈련을 받았던 셈이죠.”
게다가 어릴 적 집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드라마는 그가 목소리에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라디오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던 아이는 자라서 방송반 활동을 하고, 서울예대 방송 경연대회에서 대상과 개인상을 따내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경연대회 입상은 수시 특별전형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는 무리 없이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그도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여느 새내기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5월에 성우 선배의 추천으로 시험 삼아 본 KBS 공채에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대학가요제도 나가고,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었던 꿈 많은 새내기는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휴학계를 내야 했다. 당시 KBS에 막 입사했을 때의 나이 스무 살. 동기 내에서도 여덟 살까지 차이가 났다. 막내 중의 막내였던 그는 어린 나이에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었죠.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울기도 많이 울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차이도 상당했거니와 나는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고로 꾸지람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선배들이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성우실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훈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혼낼 때도 끝에 가서는 꼭 안아주거나 밥을 사주셨어요.”
칭찬은 천재를 노력하게 만든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은 막내 성우를 대성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잘한다, 목소리 좋다’는 칭찬이 더 듣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무슨 배역을 맡아왔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가리지 않고 대본을 받아 들었다.
가장 애정 가는 배역은 뭐니 뭐니 해도 ‘엑스파일’의 스컬리다. ‘엑스파일’은 1994년 10월 31일부터 2002년 10월 26일까지 방영된 미국 드라마다. 한 인물을 10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기회는 그때도 지금도 흔치 않기 때문에 애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컬리는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성적이며 똑 부러지고 빈틈없는 과학자. 타고난 성격이 정반대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단다.
반면 덮어두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1992년에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의 휘트니 휴스턴 역이 그렇다. 녹음을 앞두고 목을 쓰는 성우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감기에 걸리고 만 것. 수많은 스태프들이 더빙 작업을 위해 어렵게 맞춘 일정을 미룰 수 없어 녹음 부스로 향했지만, 결국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돌이켜봐도 여전히 아쉽다.
1982년부터 성우 일을 했으니 경력만 40년이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녹음 부스를 들락거렸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베르사유 궁전부터 추억의 외화 시리즈, 유명 애니메이션, TV 프로그램 내레이션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다. 장을 보다가 직원에게 찾는 제품이 없는데 갖다달라고 요구하면 부탁한 물건 말고 ‘혹시 성우가 아니냐’는 질문부터 날아들곤 했다. 녹음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 방송 속 자신의 목소리에 지레 놀랐던 적도 있다.
“저는 성우로서 할 건 다 해봤어요. 그래서 이젠 젊을 때처럼 일에 미쳐서 살지도 않고, 하나라도 더 하려고 욕심부리지는 않아요. 대신 그날그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 하죠. 집에서 요리할 때나 청소할 때, 오디오 녹음이 필요한데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요.”
일에 미쳐 살던 40년 세월이 만들어낸 변화는 아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거창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매일을 열심히 살다 보니 이 위치에 와 있더라고 회고할 수 있는 사람.
‘재능 재벌’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늙지 않고 아무리 써도 축나지 않는 목소리를 나누는 일도 그렇다. 자칭 ‘재능 재벌’인 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활동에 나선 지도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배리어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어르신도, 장애인도 누구나 장벽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 해설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한다. 화면 속 진희라는 인물이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장면이라면, ‘진희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라고 해설해주는 식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는 2000년대부터 배리어프리 버전 영화를 제작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그는 배리어프리 내레이션 녹음만 벌써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의 협약으로 시니어 배리어프리 활동가 양성과정 중 하나로 창설된 수업을 새롭게 진행했다. 그는 교육과정 중 더빙과 내레이션 녹음하는 법에 대해 8주가량 강의했다. 녹음의 기초부터 영화 각 장면에 대해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로 더빙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직접 대본을 써서 제작한 영화에 시니어들이 더빙한 배리어프리 영화는 지난해 ‘2021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기대 이상이었어요. 이미 목소리와 발성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모여서 그런지 무언가 가르쳐드리면 곧잘 흡수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처음 시행한 게 워낙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같은 과정이 개설될 것 같아요. 다만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 수강신청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겠어요.”
그는 서혜경낭독연구소에서도 시니어 성우 지망생을 만난다. 기초부터 심화, 전문가반 등 다양한 낭독 강의를 제공하는 연구소를 지난해에만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쳐갔다. 처음에는 목소리에 자신 있어 찾아왔다가 낭독의 매력에 빠져 오디오북 내레이터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성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낭독이다. 사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추천하고는 있지만, 시니어를 대상으로 가르칠 때는 특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목소리는 늙지 않아요. 그런데 분명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이건 말소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신체 기관, 즉 조음 기관들이 둔해져서 그래요. 나이가 들수록 말할 일이 줄어들거든요. 그러면 혀, 입술, 턱, 치아 같은 조음 기관이 점차 굳으면서 둔해져요. 목소리가 변한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미 줄어버린 ‘말할 기회’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아하는 글을 혼자 소리 내 읽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직접 말하고 본인 목소리를 직접 듣는 낭독은 눈으로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묵독보다 뇌를 더 자극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꾸준히 낭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젊어지려면 조음 기관을 깨워내고 훈련해야 된다는 것. 오죽하면 그가 써낸 책 제목이 ‘나에게, 낭독’일까.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 강의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그는 최근 낭독연구소 덕분에 의외의 효과를 봤다. 낭독 수업이 세대 화합의 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 청년들은 중장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중장년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상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낭독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눈을 뜨는’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 요즘 그는 기쁘기만 하다.
만 60세, 새로운 서혜정의 ‘지금 이 순간’
그는 사람 나이 60세 때 진정한 ‘인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까지는 몸이 성장하는 시기이고, 스물부터 예순까지의 40년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시기라는 것. 벼는 익어야 고개를 숙이듯, 60년이 지나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그는 새로 태어난 지금이 만족스럽다. 60세인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은 나이도 없다.
“올해로 103세이신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딱 100세 됐을 때 했던 인터뷰 기사가 기억에 남아요. 기자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분 대답이 60세였어요. 기자가 더 젊은 시절을 놔두고 왜 60세를 골랐느냐 되물으니 ‘60세는 돼야 철이 들어 그렇다’고 답하셨거든요. 60세가 된 지금 100% 공감해요.”
최근에는 ‘사랑’에 대해서도 눈떴다.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생각을 고쳐먹은 지 얼마 안 됐다. 그렇다고 거창하거나 숭고한 희생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속을 잡을 때 나보다 남에게 더 편한 곳으로 장소를 정하고, 나보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할 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 ‘지금 이 순간’이 그의 테마곡이다. 그의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오늘 만나는 사람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마실 나가듯 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즐길 뿐이다. 다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강렬한 느낌은 곧 경험이 뒷받침해주는 근거 ‘있는’ 직감이다. 매일에 충실했던 40년 세월이 국민 성우 서혜정을 만들었다. 그가 오늘보다 내일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리란 직감이 들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전기 방화재 분야 전문가 임장호 아이캡코리아 대표 등 3명을 올해 1~3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했다. 지난 29일 세종청사에서 시상식을 열고 이들에게 고용노동부장관 증서를 수여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은 기술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숙련기술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2006년 8월부터 매월 한 명 씩 선정(2022년 3월 기준 181명 선정)하고 있으며 직업계 학교 등을 졸업하고 산업 현장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숙련기술인이 대상이다.
1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아이캡코리아 임장호 대표
임장호 대표는 전기 절연재와 방화 자재 국산화에 성공한 방화재 분야 전문가이다.
임 대표는 방화재 설치 공사현장에서의 방화재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회사를 창업하고 각종 공사현장의 방화재 시공을 시작했다.
전기공사 현장에서 꼭 필요한 자재이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전기 절연재인데 그 중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해 과부화 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본산 절연튜브를 발견하고 국내로 들여와 현장에 공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기설비에 국제규격(IEC publication)을 적용하게 되면서 일본규격 제품이 현장에 맞지 않게 되어 절연튜브의 국산화에 도전했고 일본제품의 단점을 보완해 온도 변화는 물론 커넥터 연결 상태까지 알 수 있는 아이캡(EYECAP)을 개발했다.
임 대표가 2017년 기존 PVC에서 실리콘으로 소재를 바꾸면서 세계 유일 친환경 절연튜브로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아이캡은 온도 변화의 이력 확인 기능을 더해 화재 예방의 효과도 높였으며 2021년에 한국산업표준으로 지정 받았다.
임 대표는 또한 국내 최초 실리콘 내화충전재를 개발해 글로벌 화재 인증으로 통용되는 미국의 ‘불연.난연성 보장 인증(FM-APPROVED)’을 획득했다.
임 대표는 “현장 일용직에서 지금까지 책임감으로 걸어온 시간이라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바빴다”며 “지나온 내 시간들이 기술자로 살아왔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능한국인으로서 선정돼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제 그 무게감으로 우리 기술을 세계로 알리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청파이엠티 김진선 대표
김진선 대표는 전자계측기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공업교육 장비를 개발해 교육 현장에 공급하고 있는 전자 계측기술 전문가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후 계측기 기술 기반의 교육 장비를 제조, 공급하는 ㈜이디엔지니어링에 근무하면서 전자 계측 기술을 배웠다.
기술에 대한 배움이 필요했던 김 대표는 기술 개발은 물론, A/S와 영업 등 회사의 전 부서에서 근무하며 기술이 적용되는 전 분야를 배웠고, 회사를 다니며 동서울 대학교에 입학해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1995년 ㈜청파이엠티를 창업한 김 대표는 연구소와 대학이 주문하는 교육 관련 연구 장비를 개발했으며 주문자 맞춤형 생산으로 모든 주문이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그가 개발한 연구 장비에 대한 교육 현장의 만족도도 높았다.
전자안전 계측기인 디지털 다기능 계측기를 개발해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업무용으로 채택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며 나노 방사 시스템 개발 등으로 대학과 연구소에 기술력 있는 기업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기술 교육 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세계 최초로 태양광.풍력.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실습 교육 장비를 개발했고, 다양한 공학 교육 콘텐츠를 탑재한 공학 교육 플랫폼(ARes)을 개발해 교육부총리상을 받았다.
또한 각 분야 전문 교수진과 협업하여 개론서, 교수용 지도서, 학습자용 교재를 개발해 교육 장비와 함께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발 빠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학교 현장이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함으로써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 주인공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면서 “기능한국인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친화적인 디지털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하겠다”라고 말했다.
3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파인디앤씨 김종찬 대표
김종찬 대표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기계 조립과 금형을 전공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금형 기술을 익힌 금형 분야 전문가이다.
여러 회사에서 금형 기술 전문가로 일하면서 금형 기술력과 전 공정에 대한 분석력을 키운 김 대표는 2018년 옥외피난계단 시스템을 개발해 2020년 지석영상, 2021년 대한민국안전기술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또한 유기발광다이오드(QD OLED) 부분에 독자적인 금형 기술을 개발해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생산하는 TV모듈의 새로운 도약을 돕고 있다.
김 대표는 고급 기술인 금형은 배우기가 어려워 전문 기술인 양성이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론과 경험을 모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기술 지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기능한국인 선정이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정이자 금형 분야에 더 많은 후배들을 길러내라는 의미”라 생각한다며“기업 현장에서 기술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은 “기능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며, 능력중심사회를 이끄는 선도자”라면서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후배들과 우리 사회에 나누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앞으로도 우수한 숙련기술자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자원봉사 전문가 육성을 위해 ‘서울시민대학 자원봉사 시민석사과정’을 신설했다. 수강을 마친 수강생은 서울시장 명의의 시민 석사가 수여될 예정이다.
서울시민대학은 시민의 강좌 수강과 활동을 학습 시간으로 인정하고 이수 시간에 따라 서울시장 명의의 명예시민학위(시민 학사·석사·박사)를 수여하는 명예시민학위제도를 운영한다. 2018년 처음 명예시민 학위제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1257명의 시민 학사 및 시민 석사가 배출됐다.
이번에 신설된 ‘자원봉사-시민석사과정’은 서울학·시민학 등 서울시민대학 석사과정 필수과목과 현장 활동으로 축적된 자원봉사자의 경험을 성찰해보는 인문학 과정과 자원봉사 실무 역량을 향상하는 자원봉사 특화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하려면 1년간 총 200시간 학습에 참여해야 한다.
또, 봉사활동을 통해 쌓아온 봉사자의 경험과 지혜를 공익자원으로 환원할 수 있도록 지식화하는 전공세미나 과정도 진행된다. 졸업 연구 결과물로 제출하는 자기보고서는 지도교수와 소그룹 연구를 통해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쌓은 지식과 비결을 담을 계획이다.
23일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입학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원봉사-시민석사과정이 진행된다. 김주명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은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자원봉사-시민석사과정’은 학습과 실천을 연계해 새로운 학습 경로를 제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학습자가 수동적 지식소비자에서 자발적 지식생산자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50대 이상에게 전공투에 대해 묻는다면 영화를 보러 간 극장의 대한뉴스에서 반복된 도쿄대학 야스다 강당이 불타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일부 과격한 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점거하여 경찰에 진압되며 화재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천하의 도쿄대학이 그해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이 따라붙었다. 전공투는 일본 학생운동의 과격화와 몰락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좌절한 학생들은 과거를 묻어버리고 체제에 투항하여 기업 전사 ‘시마 과장’(課長 島耕作)이 되어 ‘기업 사회 일본’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전공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와 좌절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조된 것은 아닌가? 2019년 전공투 운동 50주년을 맞아 시행된 설문조사에 답변한 전공투 참가자들의 85%는 ‘운동에 참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68%는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회신을 보내온 집단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모두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일본 대학가에 과격한 학생운동이 등장했다. 수업 거부와 데모를 넘어서 본관을 점거하여 행정 업무를 마비시켰다. 학부 단위의 자치회와 별도로 학부와 분파를 넘어선 연합 조직이 전체 대학 단위로 결성되었다. ‘전공투’는 이러한 연합 조직인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줄임말이다.
이 시기 학생운동의 폭발은 구조적 문제였다. 단카이 세대라고도 불리는 제1차 베이비붐 시기(1947~1950년)에 탄생한 이들이 18세가 되는 1965년부터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본래 일본의 고등교육은 도쿄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7개의 구 제국대학이라는 엘리트 양성 기관과 그 외의 지방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일본 정부는 후자를 통해 대량 양산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부실한 대학들이 급증하며 사립대학의 등록금 인상, 입학 및 회계 부정, 공립대학의 사립화, 무차별적인 연구비 수주 등의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대학은 학생들의 대화 요구를 거부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을 약속했다가도 정부의 압력을 받아 약속을 번복하고 기동대를 투입하여 강경 진압을 계속했다. 학생들은 소속 학부와 정파를 넘어 학교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조직을 만들었고, 1969년 9월 5일에 전국 전공투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지도부가 투옥되고 이후 당파 간의 항쟁이 격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전공투 운동은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1960년대의 안보투쟁이 외부의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면 전공투 운동은 대학과 학생, 연구자의 존재 방식을 묻는 ‘대학의 이념과 학문의 주체를 둘러싼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대학은 ‘제국주의적 관리에 편입된 교육 공장’에 불과하며, 교수는 ‘관리 질서를 담당하는 권력의 말단 기구’에 불과했다. 결국 이러한 관리의 질서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률적으로 전공투 세대라고 표현하지만 20대 후반의 대학원생부터 19세의 신입생까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다양한 그룹이 있었다. 이미 사상적 자아를 형성하고 직업적 교육도 어느 정도 완수한 대학원생이나 학부의 상급 학년은 운동이 쇠퇴한 후에도 의사나 변호사,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전공투를 상징하는 인물, 도쿄대 전공투의 대표이자 전국 전공투 의장으로 선출된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는 도쿄대 투쟁 당시 물리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었다. 제도권 학계를 떠난 그는 출옥 후 유명 입시학원의 물리 강사로 30년 넘게 일하면서 자연철학과 과학사 분야의 연구를 계속했다. 학원 교재로 출판한 ‘물리입문’도 유명했지만, 2003년에 집필한 ‘자력과 중력의 발견’은 학술상과 출판 저작상을 휩쓸며 학술적 능력을 입증했다. 그 밖에도 논픽션 작가이자 도쿄 도지사에 당선된 이노세 나오키, 설명이 필요 없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유명 프로듀서 테리 이토 등이 있다.
‘속 전공투백서’에 의하면 70대 중반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설문 응답자의 10%는 700만 엔 이상의 수입이 있으며, 최고 소득자는 3000만 엔이었다. 1000만 엔 이상의 수입도 꽤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본 65세 이상 고령자 세대의 평균 소득인 308만 엔에 훨씬 못 미치는 250만 엔 이하의 수입을 가진 이들이 40% 정도 된다고 한다. 노년의 활동가들 사이에도 생활의 격차는 존재했다.
투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의료와 복지, 농업, 장애인, 노동 등의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한 이들이 많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여성은 차 심부름이나 하던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전공투 경험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키울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한편으로 상처도 남았다. 운동을 그만둔 이유로 ‘동료들이 서로 죽이는 내부 폭력’과 ‘취직’이 거의 비슷한 비율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패배감과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합계 37년간 평사원으로 정년을 맞았다. 내부 항쟁으로 중증 장애를 입은 활동가를 만난 일이 있다. 속죄의 마음으로 평생 평사원에 머무르겠다 결심했다. 이전 활동가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속죄의 마음이 강해지며 무언가 종교에 귀의하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와 같은 회상에는 살아남은 자들의 무게가 느껴진다.
현재의 정치 성향도 명확하다. 아베 정권의 개헌에 대해서는 95% 이상이 반대하며, 선거에는 항상 참여한다는 대답이 77%였다. 지지 정당은 입헌민주당이 52%, 자민당도 8.8%이며, 공산당은 6.8%에 불과했다. 은퇴한 헤이세이 덴노에 대해서는 65.5%가 긍정적 평가였으며, 도쿄올림픽에 대해서는 68.9%가 전혀 평가하지 않았다. 정치 참가 의사를 묻자 과반수가 앞으로 참가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70대 중반이 넘어도 그들의 의욕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 같다.
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력을 말한다. 86세대인 그들이 학생운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별난 학생들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을 녹여 그래픽 노블(만화책) ‘비밀 독서 동아리’를 펴낸 김현숙(58)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현숙 작가는 1964년생이고, 1983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어머니는 대학교를 굳이 가야 하냐는 입장이었고, 김 작가는 집에서 가까운 창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입학 첫날부터 김현숙 작가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이 펼쳐지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김 작가는 겁 많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비밀 독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불어 당시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진압, 고문 등의 고초를 겪은 친구들의 모습을 옆에서 생생하게 봤다. 이 모든 이야기를 책 ‘비밀 독서 동아리’에 담았다.
김현숙 작가는 스스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은 아니라고 평했다. 김 작가는 그때 학생들의 외침이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적극적으로, 더 당당하게 학생운동에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서 읽는 비밀 독서 동아리
‘비밀 독서 동아리’의 주인공 이름도 현숙이다. 김 작가는 현숙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실제 자신과 거의 흡사하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창원대학교가 ‘안전대학교’로 나온다. 당시 안전하지 않은 시대를 반영해 반어적인 의미로 ‘안전대학교’라고 했다.
1980년대의 대학교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로 혼잡스러웠다. 그 속에서 현숙은 “나는 공부하러 대학교에 왔다”며 시위 동참을 원치 않았다. 김현숙 작가는 “당시 학교에서 ‘데모하면 안 되고 공부만 해라’라고 일종의 세뇌를 했다.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낙인찍힌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괜히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무서웠던 현숙은 ‘학생운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러나 탈춤 동아리마저 과거 양반을 풍자하던 탈춤을 추며 현 정권을 꼬집었다. 현숙은 실체를 알고 도망가려고 하지만, 독서 동아리 가입을 제안받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현숙은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는 ‘금서(禁書) 동아리’였다. 금서란 국가나 종교상의 최고 권력자에 의해 출판 또는 판매가 금지된 책을 말한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임꺽정’,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영혼의 죽음’ 등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경찰에 잡혀갈 수 있었던 시대, 현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마음이 바뀌었다. 현숙은 동아리 친구들을 통해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이유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언론 탄압이 자행된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들이 왜 목숨 걸고 싸우는지도 깨달았다. 이에 각성한 현숙은 보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며 친구들과 뜻을 함께했다.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하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을 펼쳤죠. 책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서 깨우치고 자기한테 저항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이 싫어서 책 자체를 못 읽게 한 거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북 클럽을 통해서 조금씩 눈을 떴어요. 나중에는 직접 책을 찾아서 보고, 더 나아가서 학생회 참여도 하고. 광주, 서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가보고 공부도 했죠.”
‘비밀 독서 동아리’에는 중앙정보부의 눈총 아래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다. 김현숙 작가는 검열을 해야만 하는 대학 신문(학보), 이유도 없이 끌려가 고문당한 학우들, 장학금 때문에 밀고자가 된 학생의 모습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김현숙 작가 역시 정보부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다. 책에 나온 대로 정보부는 김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스테이크 가게로 전화를 했다. 김 작가는 실제로도 정보부의 전화를 친구의 전화인 척 받고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나는 기지를 발휘했다.
“현숙이는 화려한 말솜씨로 정보부 옥 형사를 당황케 하죠. 실제로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보부를 만나기 전에 고압적이고 강압적으로 나를 몰아세울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복을 입고 와서 그런지 의외로 평범해 보였고 질문도 조곤조곤 하시더라고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캐보려는 느낌은 받았죠. 그런데 그분도 어쨌거나 그게 직업이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양면성이 있는 거죠.”
촛불집회, 미국인 남편의 출판 제의
‘비밀 독서 동아리’는 학생운동을 함께한 친구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2016년 9월~2017년 5월)에서 다시 모여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라고.
김 작가는 “촛불집회 동창회 신을 넣은 이유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다. 1980년대에는 학생, 지식인 위주로 운동을 했지만, 그때는 모든 시민이 참여했으니까. 그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동창회는 허구지만 촛불집회는 ‘비밀 독서 동아리’와 연관성이 깊다. 촛불집회는 책이 세상 밖에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현숙 작가는 부산 서면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미국인 남편 라이언 씨는 한국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멘붕’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남편은 트럼프, 저는 박근혜. 그때 미국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서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남편이 촛불집회를 보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이 지도자로 아니다 싶으니까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촛불집회를 펼친 것이 놀랍고 대단하대요. 폭력적이지도 않고, 남녀노소 모두 목소리를 냈으니까요. 미국은 불평 불만은 많지만 정작 그렇게 못 해서 더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김현숙 작가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한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게 됐다. 라이언 씨는 아내의 과거를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 자료를 찾아본 그는 자신의 아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느낀 것 같다. 라이언 씨는 ‘대한민국 대단하다,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트위터에 아내의 이야기를 썼다. 이를 본 미국 출판사 아이언 서커스 코믹스에서 정식 출판 제의를 해왔다.
김현숙 작가는 학생운동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얘기이고, 자신은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번역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자 남편이 “같이 써보자”면서 힘을 줬다. 자신이 느낀 것처럼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나 보다.
이에 본격적인 책 작업이 진행됐다. 김현숙 작가는 오랜만에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정치인이 된 이도 있다. 책에 ‘유니’로 등장하는 김경영 경남도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 작가는 “졸업하고 공장에 위장 취업해서 노조 활동을 오래 했고, 여성운동도 하다가 현재는 의회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는 여러 캐릭터로 파생돼 녹아 있다. 동창들은 자신이 모델이 된 것에 대해 뿌듯해했다고.
책의 스토리는 아내가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라이언 씨가 썼다. 김현숙 작가는 자문과 검토를 맡고 이야기를 보충했다. 그림은 라이언 씨가 직접 그릴 수 있었지만 한국적 색채를 살리기 위해 고형주 만화가가 맡았다. 이색적인 것은 영어 책이 먼저 쓰였고, 그 다음에 한국판이 나왔다. 한국판이 번역본이 된 셈이다.
책은 2020년 5월 18일 세상 밖에 나왔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판됐다.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아마존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Bestseller on Amazon - YA History Comics)를 차지했고, 청소년도서관협회 올해의 최우수 그래픽 노블(YALSA Great Graphic Novels 2021)로 뽑혔다. 이밖에 미국 학교 도서관 저널, 스미스소니언, 북리스트, 미국 잡지 Publishers Weekly 등에서 최우수 리뷰를 받았다.
“트럼프가 인종차별 발언으로 대통령이 됐잖아요. 미국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국민들은 후퇴해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아직도 책을 검수하고, 성 평등, 인종차별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책이 호응을 얻은 것은 영감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 권장도서로 많이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저항을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가는지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가만히 있으면 변화되는 것은 없잖아요.”
김현숙 작가와 라이언 씨는 다음 책으로 ‘노 룰스 투나잇’(No Rules Tonight)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통금 제도를 다룰 예정이다. 책의 ‘투나잇’은 크리스마스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밀 독서 동아리’의 캐릭터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에서 출판되며, 202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나올 예정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심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을, 2010년대에는 촛불집회를. 86세대는 분명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왜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것일까. 김현숙 작가는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1955 ~ 1963년)는 전쟁도 겪었고 많이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터전을 잡고 발전해야 하니 독재가 용인됐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자신과 같은 86세대는 민주주의를 이룬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권위주의적인 사람,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같은 소용돌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86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들이 자유를 외치고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 투쟁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도 물론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있더라고요. 술도 마시라면 마셨고, 군사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체화된 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 사람들이 보기엔 ‘학생운동 했으면 다야?’, ‘리더면 다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너무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고칠 점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김현숙 작가는 “젊은 세대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도 투쟁을 할 때 윗세대가 목소리를 잘 들어주기를 바랐다. 젊은 세대의 마음을 듣고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엄마는 암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퇴근하면 여전히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 아내는 밥하는 것도, 설거지도, 빨래도 싫어하는데 말이다. 교사는 밥하다 말고 문득 생각했다. ‘이러다 나는 죽을 때까지 싫어하는 일만 하겠구나.’ 그래서 33년 차 엄마이자 아내, 교사 김희숙(62)은 직장부터 때려치우고 독립을 선언했다.
작가 김희숙은 독립하기 이전 성실한 시민이었다. 사회에선 좋은 선생님, 가정에서는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다가 지치곤 했다. 교장이라는 지위까지 가기 위해 세웠던 계획은 다른 사람 눈에 보기 좋은 계획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특히나 ‘밥’이란 그가 맡은 의무이자 사는 내내 따라붙은 고정관념 그 자체였다. 밥 한 번 지어본 적 없었지만 보수적인 남편 만나 매끼 밥상을 차려냈다. 아이들이 생긴 뒤엔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학생들 끼니를 챙겨야 했다.
그러다 암 판정을 받은 그는 2018년 교단에서 내려와 항암 치료에 집중했다. 2019년부터는 암 환자들끼리 모이는 글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모임에서는 글을 한 편씩 써서 내야 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항암 치료까지 끝난 당시, 그는 거대한 시간 덩어리가 다가오는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고민한 결과 독립선언서가 탄생했다.
“제가 제일 단단하게 얽매여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그래야 독립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그게 밥이었어요. 밥으로부터 벗어난 뒤로는 저만의 시간을 많이 확보해냈죠.”
밥으로부터 벗어나 가족에게서 독립하다
33년 동안 밥을 했던 그에게 ‘이제는 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독립선언이나 다름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아예 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밥을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땐 밥을 하지 않고 여행을 훌쩍 떠나버린다. 그는 삶의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며 원하는 삶을 사는 독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들은 그가 집에 없으면 자연스럽게 ‘어디 여행 갔나 보다’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오히려 깨끗해져 있는 집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 가족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구나. 어쩌면 집을 가장 어지르는 사람은 나였을지도 몰라.’ 그리고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건 그지만 서로가 서로에게서 독립했다는 것도.
독립선언 후 ‘날라리 자유인’ 신분이 된 지금은 그저 마음이 편안하다. 가족이나 친척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도 많이 벗어났다. “부탁을 받으면 ‘내가 할 수 있을까?’ 부터 생각해요.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거절하죠. 죄책감도 그만 느끼려고 해요. 내가 좋아야 남도 좋을 테니까.”
하지만 자식으로부터의 독립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당장 오늘도 ‘엄마 이 목걸이 할까, 저 목걸이 할까’ 골라달라고 했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너무 친밀하니까 사소한 것까지 공유하게 되는데 자식 입장에선 부담될 수도 있잖아요. 자제하려고 하는데 제일 지키기 어려워요.”
그럼에도 아이들과 남편, 나아가 세상과의 적절한 온도를 찾는 일은 계속할 생각이다. 너무 뜨거운 것 같으면 조금 멀어져서 온도를 낮추고, 너무 멀어진 것 같으면 조금 다가서서 온도를 높이는 일 말이다.
여행과 책상, 그리고 적당한 관계
대신 자신과의 온도는 꾸준히 올리고 있다. 방에 책상도 새로 들였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는 책상에서 매일 저녁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요즘은 교사 생활하며 있었던 재밌는 일화를 짤막한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느 정도 개수가 차면 세 번째 책을 낼 생각이다.
좋아하는 것도 마음껏 한다. 노는 데 진심인지라, 더 열심히 놀기 위한 것들만 골라 담아 배우는 중인데 그 종류가 자그마치 10개다. 당구도 배우고, 필라테스, 라인 댄스도 배운다. 여행도 열심히 다닌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로 떠날 수는 없지만 국내에도 다닐 곳은 많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인천의 굴업도다. 무인도나 다름없는 섬에서 사슴들과 함께 원 없이 하늘 바라보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단다.
가족과 직장. 기존의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그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상대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암에 걸리든 멀쩡하든,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수 있잖아요. 언젠가 누군가 떠나가도 적당히 슬퍼하되 나의 삶을 온전히 잘 살 수 있는 정도의 사이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 사람의 부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으니까요.”
독립선언 후 스스로를 우선시했더니 삶의 반경이 오히려 넓어졌다. 그는 암 환우들과의 글, 그림, 독서, 필사 모임에서, 아미북스를 통해 책을 내려는 예비 작가에게 선배로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내가 필요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가족, 직장에서 만난 인간관계를 넘어 제3자에게까지 영향력이 닿게 된 것.
빨리 할수록 좋으니 지금 시작하라
독립하고 싶지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덧씌워지는 의무들이 더욱더 굳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고민하는 김에 한 발이라도 내딛어보는 게 중요하다. 그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아내, 엄마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인식시키고,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61세의 독립선언도 너무 늦어 아쉽기만 하다. 독립 선배로서 추천하는 ‘독립 적령기’는 50세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과 일을 확장시켜나갈 것인지. 기대수명 백 세의 절반인 50대에는 적어도 독립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제가 50세일 때는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그저 교사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살던 대로 살기 바빴죠. 이제 와 생각해보니 너무 아까워요. 더 빨리 결심했어야 했는데.”
조금 늦은 시기, 생각지 못한 질병으로 말미암은 독립이지만 덕분에 모든 순간에 더욱 진하게 몰입할 수 있게 됐다.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건, 삶이 더 진해진다는 말과 같아요. 아프지 않을 때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암을 겪고 난 이후에는 확실히 달라요.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소중해져서 열심히 살게 되거든요.”
그가 암 환우들을 위한 프로그램, 모임에서 만난 이들 모두가 그랬다. 무언가 하고 싶다면 바로 해버리고, 그 순간 그 일을 아주 만끽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 역시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이 하루가 되었든, 100년이 되었든 시간에 굴하지 않고.
[김희숙의 독립선언서]
하나, 나는 선언한다.
지금부터 난, 내 의지대로 선택, 결정하고 살아간다.
둘, 자식은 놓는다.
내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집착하던 아이들, 잠시 내 곁에 머무르다 가는 사랑이었거니 생각한다.
셋, 남편은 바라본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의미를 두고 굴레를 씌운 우리! 서로의 발목을 묶고 있던 짧게 맨 끈을 느슨하고 길게 풀어 멀리서 편안하게 바라보자.
넷, 사람과 더불어 산다.
어울림이 아름답기도, 타인의 시선이 감옥 같기도 하다. 때론 뜨겁게 때론 무심하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처럼 조절하며 살자.
다섯, 나의 무지를 인정한다.
어느덧 가족 중에서 가장 아는 게 없고, 새로운 것들이 낯설기만 한 나. 하지만 못하겠다고 타인에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스스로 느릿느릿 깨우쳐보자.
여섯, 지나친 의무감과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 그 틀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불안해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자.
일곱, 세상을 걷는다.
산과 들, 강가와 골목, 사람들 사이를! 바람 냄새가 그때그때 곳곳이 다름을 느껴보자. 넓고 깊이 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곳을 걷는다.
활기찬 노후 정착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환경 미화나 교통 지도를 하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넘어 사회 서비스형, 시장형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등장했다. 음식 정기 배송, 농산물 재배, 취약계층 돌봄 등 보다 다양해진 일자리 현장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은 두 번째 청춘들을 만났다.
하나금융그룹의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중장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만 60~64세의 60%는 70세가 넘어도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통계청이 공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000만 명이 넘는 장래 근로 희망자 중 70~74세는 79세까지, 75~79세는 평균 82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은퇴 이후에도 근로 의욕을 드러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책이 바로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고령층에 제공되는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역사회 공익 증진을 위한 ‘공익활동형’(공공형)은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참여 대상으로 하며, 주로 노노케어(건강한 노인이 병이나 다른 사유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노인을 돌보는 일), 학교 급식 지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 봉사활동을 한다. 10~12개월간 하루 3시간, 월 30시간 이상 활동하면 한 달에 27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형’은 만 65세 이상 참여할 수 있고 복지시설, 보육시설, 금융기관 등에서 10개월간 월 60시간 이상 활동한다. 급여는 근로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월 71만 원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다. 참여자 인건비를 일부 보충 지원하고 추가 사업소득으로 운영하는 ‘시장형’은 식품 제조·카페와 같은 소규모 매장, 아파트 및 지하철 택배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근로 수익금에 따라 활동비를 배분한다. 다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 급여 수급자나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 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자, 정부 부처나 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타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자는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 서비스형’
2021년 우리나라는 2조 6000억 원의 예산으로 82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73.8% 정도가 공공형 사업이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여자 평균 연령은 77세 수준으로, 참여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주거환경 개선이나 스쿨존 안전 지킴이 등 단순한 활동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변화하는 노인의 특성과 경력을 활용하는 사회 서비스형과 시장형 일자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삼척시니어클럽은 사회 서비스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를 운영 중이다. 장애인,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을 방문해 대형 빨래를 수거하고 세탁해 집으로 배송해준다. 이외에도 필요한 생필품이나 상비약을 주문받아 함께 전달하고, 가스·수도·전등 수리 및 가스 누출 점검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세탁이 불가한 낡거나 보온성이 떨어지는 이불은 무료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백창석 강원도 일자리국장은 “빨래방 서비스와 더불어 생필품 구매 대행과 우유 배달을 진행해 취약계층 어르신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며 “통합 생활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발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1월 16일 사회 서비스형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체계가 재택치료 원칙으로 전환되면서 재택치료자·자가격리자 증가에 따른 일선 방역 현장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업단의 주요 업무는 재택치료 키트, 자가격리 물품 점검·배달 및 지역사회 방역 등 지자체와 보건소가 수행하는 포괄적인 방역 현장 지원이다. 방역수칙과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통해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재택치료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할 예정이다. 주철 복지부 노인지원과 과장은 “재택치료 키트 배달 등 방역 현장 지원이 절실한 지금,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은 건강하고 경험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해 국민의 안전에 이바지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어르신과 함께 키워나가는 ‘시장형’
구로시니어클럽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장형 일자리 사업으로 주택가 한복판에 꽃송이버섯 재배 농장을 마련했다. 서울도시주택공사가 매입한 임대주택을 활용해 ‘시티팜’을 운영한다. 집 전체가 버섯 생육장이다.
여기서 자라는 꽃송이버섯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베타글루칸 성분을 다량 함유해 항암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습도와 온도에 민감해 생장 요건이 맞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는 탓에 키우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 이곳에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비치된 기계에 배양액을 채우고, 방 안에 고루 퍼지도록 버섯의 위치를 바꿔주는 등 생육 환경을 최적으로 유지하는 일을 한다. 다 자란 버섯을 수확하고 무게별로 포장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수익은 어르신들의 급여와 관리 유지비, 재료비 등으로 사용된다. 때문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양임순 구로시니어클럽 관장은 “신생 사업이라 판로 확보를 위해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대형마트 등 직접 발로 뛰며 납품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꽃송이버섯은 원래 1kg당 1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지만, 중간 유통 과정이 없어 시중가보다 4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로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담아드림’ 역시 시장형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담아드림은 샐러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자재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 신선한 재료로 매일 아침 샐러드를 만든다. 재료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껍질을 까거나 고기를 삶는 등 하나하나 어르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포장과 배송도 다 이들의 몫이다. 샐러드 종류는 아보카도, 훈제오리, 닭가슴살, 새우, 게살, 버섯 등이 있다. 가격은 5000~6000원으로 시중의 다른 가게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어르신들은 제작 및 포장팀과 배송팀으로 나뉘어 주 2~3회 근무한다.
현재 인근 관공서, 공공기관과 가산디지털단지를 판매 지역으로 정해두고 있다. 양 관장은 “시장형 일자리는 어르신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서 “앞으로도 어르신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현장 근무자들의 말말말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 유을자(65)
“원래 보험 설계사 일을 했어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본사에서 영업소를 축소하는 바람에 근무 지역이 멀어져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구직 활동을 하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알게 돼 신청했고, 참여자로 선정됐을 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지금은 한 달에 총 12일, 하루 5시간을 일해요. 수거한 이불을 빨아서 생필품과 우유를 함께 배달하고, 도움이 필요한 집을 선정해 이불을 교체해요. 혼자 사는 어르신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더 나이 들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 일 같지 않죠. 그래서 진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해드리려고 노력해요. 몸은 바쁘지만 사회에 도움 되는 좋은 일이니,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담아드림 조규숙(68)
“일자리 모집 공고를 지역 소식지에서 발견했어요. ‘아, 이거다!’ 싶었죠. 자식들도 다 커서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많으면 100인분가량의 샐러드를 만들 때도 있는데, 아침부터 재료를 손질하려면 전쟁터예요. 특히 훈제오리나 닭가슴살은 기름기를 일일이 다 빼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야 해서 굉장히 손이 많이 가죠. 그래도 소스나 재료를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의논하면서 메뉴를 발전시키는 재미가 있어요. 출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도 하고, 바쁘게 움직이니 운동도 되는 것 같아요. 삶의 활력소를 찾은 셈이죠.”
시티팜 최수자(80)
“꽃송이버섯에 대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효능을 알고 나니 좋은 농산물을 재배한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출근하면 버섯 보며 잘 잤냐고 말도 걸어보고, 비닐이 구겨져 있으면 일일이 손으로 펴주기도 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손주 보듯 사랑으로 돌보게 된달까요.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 보니 책임감을 갖고 어떤 요리에 넣어 먹으면 맛있을지 개발해보는 등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한다거나 용돈을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얼마 전에는 손주에게 시계를 선물로 사줬는데,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시티팜 송현순(65)
“집에 있으면 겉모습에 신경 쓰기보다 편하게만 있게 되는데, 여기 나오고부터는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눈썹도 그려보면서 관리를 하게 돼요. 아무래도 밖에서 사람들과 만난다고 생각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더라고요. 불면증이 있었는데 열심히 활동하니 잠도 잘 오고, 좋은 배양액을 덩달아 맞아서 그런지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전체적으로 제 삶이 윤택해졌죠. 저도 얼마 전에 손주가 입학한다고 해서 책가방을 선물로 사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