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931년생이다. 아버지 나이 마흔을 넘어설 무렵, 나는 걱정이 많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내게 아버지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강박 속에 살았다. 전쟁이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아버지 귀가가 늦는 날에는 온갖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올해 아흔넷을 맞았다.

모든 건 헛걱정이었다. 나 역시 환갑을 훌쩍 넘어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한 고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늘 새로운 시작이었다. 삶은 생각보다 질기고 오래간다. 누구나 길게 살 작정을 해야 한다. 오래 살 것에 대비해 돈을 비축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일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꼭 염두에 두고 챙겨야 할 게 있다. 바로 자신의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말도 함께 자라야 한다. 정신이 설익고 경험이 미숙했던 젊은 시절의 말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나이에 비례해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동시에 쌓여가는 말에 신경 써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나이만큼 쏟아낸 말이 있다. 나이 들수록 더 많은 말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그 말은 그저 흘러가지만 않는다. 그 말이 누군가의 머리와 가슴에 박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게 모르게, 좋게 나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말은 돌이키거나 주워 담을 수 없다.
여러 어른의 말
내가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도 육사를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도전 끝에 입학했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뿐이었다.
얼마 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일화가 회자됐다. 사법시험에 붙은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갈 수 없던 그에게 장학금을 준 김장하 선생님을 찾아가 감사를 표하자, 선생님이 해주셨다는 그 말.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는 한마디가 문 판사 일생의 푯대가 됐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의원이 문형배 후보자에게 “헌법재판관들 재산이 평균 20억 원쯤 되는데 후보자 재산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통계를 보니 가구당 평균 재산이 3억 원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 재산은 4억 원 조금 못 되네요.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거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의원들이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해 존경을 표하자, 그는 “부끄럽습니다”라고 반응했다. 개인의 성공과 이익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나눔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어른 김장하’의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어른’ 하면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또 한 분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모실 당시 청와대 사람들은 그를 ‘어른’이라 칭했다. ‘대통령님’으로는 부족했고, ‘VIP’는 불경하다 느꼈다. 이유는 말에 있다. 말이 어른스러웠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두렵지만 해야 할 일이기에 한다. 바르게 산 사람에게 영원한 패배는 없다”는 그의 말이 그를 어른다운 어른으로 만들었다.
다시 되짚어볼 나의 흔적
나는 이 세상에 어떤 말을 남기고 떠나야 할까? 어른다운 말은 어떤 말인가? 어른의 말은 홀로 서야 한다. 누구의 말이 아닌 자신의 말이어야 한다. 젊은 시절 나는 남들의 말을 옮기며 남의 말 속에서 살았다. ‘유명한 누가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의 이 말이 참 좋던데요!’ 그 속에 내 말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저 사람 마음에 들까만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았다.
그러다 직장을 나와 내 말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처지가 되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는 지식은 얕았고, 정보는 미미했으며, 생각은 빈곤했다. 내 말이 없으니 말을 하며 돈을 벌 수 없었다.
말의 독립을 이루고 내 말이 가치를 가지려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사는 이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은 무엇인지. 그런 전제 위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래야 내 말이 생겨나 자립한다. 남들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말의 독립에 성공한다. 독립에만 그치면 의미가 없다. 남과 연결되어야 한다.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렇지 않은 말은 고립된다. 격리되고 소외된 말은 소용이 없다.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연륜이 보태는 힘
나는 두 대통령과 회장 등 여러 어른을 모시면서 그분들 말에는 자신만의 콘텐츠와 설명, 스몰토크가 있다고 느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연륜이 있다. 연륜만큼 경험하고 깨달은 게 많다. 그런 경험과 통찰로 젊은이들에게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산다는 건 무언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그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나이 든 사람의 역할이고 의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먹히기 위해서는 먼저 젊은이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스몰토크다.
그런데 아무리 자식이나 후배 세대에 도움 되는 말을 준비해서 나누려 해도 반응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기대하는 효과가 나기는커녕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두 가지 경우가 난처하다. 그 하나는 말이 많다고 빈축을 사는 경우다. 나이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며 말을 주저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친근하고 다정하게 말할수록 말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모실 때 경험했다. 그가 속내를 다 털어놓으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많은 사람이 그를 가볍게 여겼다. 대통령의 화법이 아니라며 수군댔다. 어른다운 소통의 딜레마다.
정약용 선생이 두 아들과 제자들에게 보낸 글을 모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이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는 가르침이다. 자기반성과 성찰을 우선해서 말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르침은 ‘시대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자신부터 솔선수범하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더해,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거나 못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 그들의 심리와 심정에 영합하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른이라면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말을 어른답게 해야 한다.
삼가고 지킬 것
나는 세 가지를 삼가고, 세 가지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삼가려고 하는 말은 남 탓, 뒷말, 험담이다. 이제는 책임질 나이다. 누구를 탓해서는 곤란하다. 나쁜 결과에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게 남 탓이라면, ‘그리 될 줄 알았다’, ‘내가 뭐라고 했냐’며 구시렁대는 게 뒷말이다. 이 또한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고, 어른이 할 말은 아니다. 뒷담화와 이간질인 험담도 마찬가지다. 뒷담화가 특정인을 헐뜯는 말이라면, 이간질은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말이다. 편을 가르고 상대를 헐뜯는 말도 이간질에 속한다. 어른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
지키려고 힘쓰는 세 가지도 있다. 먼저, 남의 비밀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것처럼 신뢰를 쉽게 얻는 방법이 없다. 다음으로, 내 말의 일관성을 지킨다. 말을 남발하다 보면 내가 언젠가 한 말과 지금 하는 말, 어디선가 한 말과 여기서 하는 말이 달라질 수 있다. 말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끝으로, 말로 한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한다. 말을 많이 하면 자연스레 공수표를 날리게 되고 지키기 어렵다. 말 약속은 하는 순간 그 말을 한 사람이 ‘슈퍼 을’, 그러니까 빚진 사람이 된다. ‘네가 그렇게 해주기로 했잖아’ 하는 공세에 시달린다.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면 약속을 어길 염려도, 남에게 책잡힐 일도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말할 때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말에서 빼거나 빠진 것 없이 말해야 하고, 낄 때와 빠질 때를 가려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고 나서 ‘그 말을 괜히 했다’거나 ‘그 말을 했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빠트렸다’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빼거나 빠진 것 없이 말해야 한다. 또한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안 하는, 이른바 ‘낄끼빠빠’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어디 가서도 어른답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인생이다. 동시에 얼마나 오래 살지도 모를 인생이다. 나는 죽어도 말은 남는다. 언젠가 생을 마감하는 날, 나에게 어른답게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젊은 세대를 보듬는 방법어른의 말은 남에게 보탬이 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직장 다닐 적 상사의 말을 다섯 가지 수레 끌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첫째, 저만치 앞서가면서 잘 따라오라는 상사의 말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잘 받들고 뒤쫓았다. 둘째, 옆에서 걸어가면서 이런 말 저런 말로 수레를 끄는 나를 격려하고 코치하는 상사도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었다. 셋째, 나를 못 믿겠다며 자신이 직접 수레를 끄는 상사도 만났다. 그가 몸으로 보여주는 ‘솔선수범’을 보며 많이 배웠다. 넷째, 수레에 올라타서 이래라저래라 입으로 사는 상사도 경험했다. 끝으로, 말없이 뒤에서 조용히 밀어주거나, 나와 함께 수레를 나누어 끄는 상사도 있었다.모두가 도움이 됐지만, 누가 가장 고마웠겠는가. 나는 어느 유형의 사람인가.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도움을 주는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고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유하고 공감하고 통찰해야 한다. 열려 있고 깨어 있어야 한다. 말에 쉼 없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말이 늙고 썩고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