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깊은 사죄” 日 86세 대학원생의 진심

기사입력 2025-05-26 08:40 기사수정 2025-05-26 08:40

[일본 시니어 라이프] 80대에 박사과정 도전, 모국 만행 깨달아

최근 일본 사회에서 학구열에 불타는 시니어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충족을 넘어 사회참여를 통해 활기찬 노년 생활을 영위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가운데 86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메이지대학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8년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고미 도모에(五味智英) 씨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역사 공부를 통해 과거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을 알게 됐다는 그는 한국에 깊은 사죄의 뜻을 전했다.


▲박사과정 다니는 건물 앞에 선 고미씨(신미화 교수)
▲박사과정 다니는 건물 앞에 선 고미씨(신미화 교수)


일본 문부과학성의 2023학년도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석사과정 진학자는 330명, 박사과정 진학자는 185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일시적인 감소세를 보였지만, 최근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시니어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젊은 시절 일이나 가정 사정으로 대학원 입학을 포기했지만 학위 취득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도전하기도 하고, 직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려는 사람도 있다. 취미로 시작한 공부를 심화해 논문이나 서적으로 발표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같은 분야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시각과 자극을 얻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고미 도모에 씨는 어떠한 스토리를 갖고 있을까.


▲메이지대학 대학원 건물 (신미화 교수)
▲메이지대학 대학원 건물 (신미화 교수)


무역업계 ‘여성 선구자’의 삶

1939년생인 고미 도모에 씨는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러시아 민요와 문학, 그리고 러시아어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기업인 이토추상사(伊藤忠商事)에 입사해 대외 무역 업무를 맡았다. 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 국가와의 섬유 및 잡화 수출입을 담당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직장에서 계속 일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여자라서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죠. 직물과 민예품 수입 일을 담당하면서 애착도 생겼고, 열심히 지식도 습득했어요. 해외 출장을 다니는 기회도 많았는데,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침대 시트로 사용되는 리넨을 많이 수입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방문했어요. 지금 그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파요.”

커리어우먼의 선구자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도전적이었던 일은 무엇일까.

“국가별 기후와 관습에 따라 필요한 직물의 수요가 달라지는 점이 흥미로웠지만, 가격 협상은 늘 쉽지 않았어요. 때로는 클레임 문제가 발생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안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제가 담당한 제품이 계약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큰 거래로 발전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컸죠.”


▲메이지대학 대학원 건물에 설치된 조각품.(신미화 교수)
▲메이지대학 대학원 건물에 설치된 조각품.(신미화 교수)


‘늦깎이 학생’ 80대 박사과정 도전기

고미 씨는 퇴직 후 곧바로 공부를 시작할 계획은 없었다. 몇 차례 전직을 거친 뒤 정년퇴직을 했고, 이후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장거리로 간병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아 투병 생활을 하다 2007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고미 씨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잇달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고미 씨는 메이지대학 야마다 아리카(山田朗) 교수의 일본 근현대사 강연을 듣게 됐다. 강의는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웠으며, 이를 계기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일본 근현대사, 특히 국민이 어떻게 전쟁으로 내몰렸는지, 육군의 선전전과 정보전에 큰 흥미를 느꼈단다.

“처음에는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점차 직접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들어 다시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죠. 71세였던 2010년 3월, 메이지대학 문학부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은 열망이 커지면서 결국 석사과정에 이어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어요. 물론 중간에 휴학도 했지만요.”


▲취재에 응하는 고미 씨.(신미화 교수)
▲취재에 응하는 고미 씨.(신미화 교수)


일본인이 한국에 사과한 이유

고미 씨는 현재 야마다 교수의 연구실에 소속돼 있다. 그 외에도 시니어 대학원생이 많다. 80대는 그가 유일하지만 60대 3명, 70대 2명이 있다. 시니어가 대학 강좌를 청강하는 경우 정규과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할 때보다 수업료가 훨씬 저렴하다. 그럼에도 고미 씨가 정규과정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스스로 설정한 연구 주제에 따라 조사하고 연구하며, 이를 발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지방의 문학관을 방문해 역사 자료를 찾아다니다 귀중한 새로운 자료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연구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과제가 나타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 과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느끼는 희열이 저를 계속 공부하게 만듭니다. 또한 같은 지도교수 아래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역사학이 과학이라는 것, 그리고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문득 고미 씨는 말을 멈추고, 천장을 응시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슬픈 눈빛을 띠며 조용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역사 연구를 통해,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강압적으로 통치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고통을 주었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일본은 한 나라의 국모를 비참하게 살해한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하며, 저 역시 깊이 사죄하는 마음입니다.”

그의 사죄는 정치인들의 형식적인 발언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직접 사죄하는 듯, 진심 어린 태도로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죄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머물다가, 다시 자신의 연구 이야기로 돌아갔다. “배우고 연구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완성도 높은 연구, 나만의 독창성이 담긴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터뷰 후에 고미 씨가 보내준 ‘PTSD 일본군 가족회와 함께하는 시민의 모임’과 관련된 자료(신미화 교수)
▲인터뷰 후에 고미 씨가 보내준 ‘PTSD 일본군 가족회와 함께하는 시민의 모임’과 관련된 자료(신미화 교수)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전쟁

정년 후 새로운 삶을 맞이한 고미 씨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그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상사 9조 모임’이다. 과거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정년 후에도 교류하며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의하는 모임이다. 특히 일본 헌법 9조,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 원칙을 수호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어린 시절 전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공습을 피해 도망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평생 저를 따라다녔고,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해줬습니다. 일본 헌법 9조는 ‘다시는 다른 나라에 총을 겨누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저는 이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는 이어서 또 다른 모임인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본군 가족회와 함께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받았던 충격을 전했다. “일본에서는 신체적 상처를 ‘명예의 부상’으로 여기면서도 정신적 상처는 ‘수치심’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패전 후 PTSD를 앓는 일본군 출신들이 알코올 중독과 함께 가족에게 폭력·폭언을 행사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어요. 자녀들은 아버지의 본성이 원래 폭력적이라고 오해하며 평생 증오와 적대심을 품고 살아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연약한 일본군 병사는 없다’며 일본군의 PTSD를 철저히 은폐해왔다. 전후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사과나 전쟁 책임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에서 돌아온 일본군 병사들은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을 곳조차 없었던 것이다.

“전쟁 트라우마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자녀에 이어 손주까지 가정폭력의 원인을 모른 채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제야 시민 모임을 통해 가족 간의 상처를 직면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늘 화가 나 있는 아버지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두려웠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으며, 정규직으로 일하지 않아 집안 형편도 어려웠다.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등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는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져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단호한 의지가 어려 있었다. “정말 일본이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죽임을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이는 사람에게도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취재가 끝난 후 고미 씨가 추가 자료와 함께 보내온 편지.(신미화 교수)
▲취재가 끝난 후 고미 씨가 추가 자료와 함께 보내온 편지.(신미화 교수)


‘활기찬 노년’의 비결

고미 씨의 정년 이후 삶은 단순한 휴식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학문적 지식을 쌓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모임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활기찬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는 직장 생활을 너무 바쁘고 힘들게 했기 때문에 정년 후 일을 계속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일을 계속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퇴직 후에는 일, 취미 활동, 공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한 의지와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일본 샐러리맨, 특히 상사 출신은 높은 연봉뿐만 아니라 풍부한 연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60대 이후 연금을 기반으로 생활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에 몰두하는 것은 많은 시니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경우에도 배움의 기회는 열려 있다. 시니어를 위한 무료 온라인 강좌나 대학에서 제공하는 공개 강좌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대학원은 정년 후 또 다른 경험을 쌓는 새로운 장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입학을 희망하는 시니어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원 졸업 후 연구생이나 비상근 강사가 되는 시니어도 간혹 있다. 또한 오랜 경력을 살려 창업하는 사람도 있으며, 학회 발표나 논문 투고를 통해 연구를 지속하거나 책을 출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미 씨는 역사학 연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깊이 탐구하며, 이를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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