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가 귀촌을 촉발했더란다. 영주시 이산면 산기슭에 사는 심원복(57) 씨의 얘기다. 어릴 때 경험한 시골 풍정이 일쑤 아릿한 그리움을 불러오더라는 거다. 일테면, 소 잔등에 쏟아지는 석양녘의 붉은 햇살처럼 목가적인 풍경들이. 배고프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밥을 나눠주었던 도타운 인정이. 타향을 사는 자에게 향수란 근원을 향한 갈증 같은 것. 그렇다고 사무친 그리움은 아니라 굳이 억지로 누르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삶이란 어차피 부평초처럼 객지를 떠도는 일이지 않던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향수가 깊어졌던 모양.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아질 즈음, 심 씨는 서울생활을 후다닥 접었다.
“새가 제 둥지에 깃들여 살듯이!” 심원복 씨는 귀촌생활을 그리 비유한다. 도시에선 좀체 느끼기 어려웠던 안심과 평온을 비로소 누린다는 뜻일 테지. 물론 도시에서라고 불안이나 불만을 옆구리에 달고 살았던 건 아니었단다. 숨막힐 것 같은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 적당히 착실하고 조신하게, 적당히 눈치보고 적당히 머리 굴리고 적당히 처세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소시민들의 절박하고도 쩨쩨한 현실. 그 역시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발칙한 일탈 따위는 그의 종목이 아니었으며, 과한 출세욕이나 물욕에 허덕이며 살지도 않았을 게다. 심 씨의 유순해 보이는 인상에 이미 쓰여 있다. 별다른 폭풍과 이변과 무용담이 없었을 얌전한 인생 드라마의 표징이라는 게.
심 씨가 아늑하게 옴팡진 여기 산기슭에 집을 짓고 귀촌한 건 10년 전. 땅은 이미 그전에 사두었다. 소백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무심코 들른 산촌에서 만난 싼 매물이었다. 길도 없는 농지 1200평을 우발적으로 사들였던 것. 오우, 나중 여기에 허름한 흙집이라도 하나 짓고 살면 되겠는걸! 그런 생각으로 말이다. 땅을 미리 잡아놓은 덕에 귀촌 행보는 빨랐다. 애초 생각했던 간소한 흙집 대신 번듯한 목조주택을 지었다. 바지런히 직장생활을 했기에, 좀 모아둔 게 있었기에, 귀촌해서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력은 됐다. 그렇게 사뿐한 산골살이를 시작했다.
“시골에 가서 무슨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를 딱히 의도하거나 꿈꾸진 않았습니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 마음 편하게 살면 그만이지 싶었거든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인생사 희로애락이야 뭐가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순순히 적응하며 살면 될 거라 봤지요. 흔히들 귀촌 초기의 갖가지 고생담을 토로하는 것 같은데 저희 부부에겐 그런 게 거의 없었어요.”
“낯설고 물설은 산골에 잠시 놀러온 것도 아니고, 아예 새 살림을 시작하는 상황이었는데 전혀 곡절이 없었던 거예요?”
“아마도 아내는 초기에 이모저모 고생이 좀 있었을 겁니다. 제가 직장을 정리하기까지 아내 먼저 이곳에 내려와 잠시 혼자 살았으니까. 보시다시피 저희 집이 마을과 떨어진 골짜기에 있는 외딴집이에요. 일단은 밤이 엄청 무서웠다 하더라고요. 근데, 외딴집의 장점도 많아요. 오붓하고 조용하고, 게다가 어느 정도 이웃들의 관심권 밖에 있으니까.”
“귀촌 정착은 의자를 만드는 일이나 뒷산 꼭대기에 오르는 일과 달리 만만치 않은 공력을 쏟아야만 할 겁니다. 그래서들 미리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내려가라 하죠.”
“제가 보기보다는 꽤나 태평한 사람입니다. 매사 준비나 계획 같은 걸 하고 살질 않았어요. 직장에서 업무를 볼 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호통도 내질렀지만 타고난 천성은 느긋하고 무계획적이에요. 귀촌 준비, 그런 거 전혀 없이 내려왔어요.”
“계획 대신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하는 게 상책이라는? 흐르는 물처럼?”
“사전 귀촌 계획이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시골의 현실적 형편과 어긋나는 수가 많으니까. 제게 있었던 계획이라면 나를 내세우지 않겠다, ‘틀’ 안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 정도였죠. 이건 소극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착을 가능케 했습니다. 목에 힘을 빼고, 긴장할 것 없이, 예컨대 소풍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게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잊을 수 없는 귀촌 첫날의 별빛
소풍처럼! 지독한 게 삶이라 하지만 지독하게 애만 쓰다가 허무맹랑한 파장을 보기 쉬운 게 또한 인생이다. 그러하니 억지로 애쓰지 말자, 귀촌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자, 김밥 싸 들고 소풍 가듯이 가볍게 운신하자, 심 씨의 내심엔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 구체적인 구상이나 기어이 이루고 싶은 그 무슨 목표를 정하지 않은 채 산골살이를 시작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나 어디 두고보자, 하는 투로.
“산골 자연 경관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 한 가지만으로도 귀촌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은퇴한 분들에게 어서들 내려오십쇼,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권장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어요. 제가 낭만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지만 나무와 달, 별을 즐기게 되었는데요, 그 순수한 자연 풍경들이 마음을 하염없이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뭐니 뭐니 해도 마음 편히 사는 게 행복이지 않겠어요? 귀촌 첫날 밤, 침실 창밖 허공으로 쏟아지던 별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도 별도 날마다 바라보다 보면 심드렁해지지 않던가요? 낭만주의자들의 음풍농월조차도 반복되면 싱거워지는 거라서.”
“초반엔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딱히 할 일을 만들진 않았지만 텃밭 농사하랴, 산나물 뜯으러 다니랴, 산책하랴, 하루해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아내와 함께 즐겼어요. 그런데 말이죠, 한두 해가 지나자 슬슬 심심해지더라고요. 친구들의 방문도 서서히 줄어들다 끊어지고, 시간이 무료해지고. 그래서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죠.”
“어떤 작물들을?”
“1000평 농토에 고추, 생강, 도라지, 호박 등 이 마을에서 흔히들 하는 작물을 재배했어요. 인건비를 아끼려고 모든 일을 아내와 둘이서 해냈지요. 양봉도 해봤고, 된장을 만들어 팔기도 했고요. 한 해 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어느 해엔 기상 악화로 망치기도 했어요. 농사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심 씨의 집 풍경을 볼까? 포옹처럼 터를 에워싼 야산 중턱에 들어앉은 남향집이니 밝고 따사롭다. 집도 마당도 널찍하다. 꼬끼오! 닭장에선 수탉이 관악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청을 돋워 산중 적막을 비틀어댄다. 집 모서리엔 한때 꿀을 얻었던 폐 벌통 스무 개쯤이 쌓여 있다. 뒤뜰 장독대엔 후덕하게 생긴 항아리들이 즐비하다. 나무나 화초 가꾸기엔 별 취미가 없는지 이렇다 하게 공들여 운치 있게 꾸민 기색이 없다.
너른 발코니나 마당에 의자라거나 앉을 만한 자리 하나 마련해두지 않은 걸 보면 주로 서서 움직이는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모양이다. 집 둘레 곳곳에 널브러진 폐물들에서도 이 집에 사는 부부가 미화작업에 신경 쓸 겨를 없이 근로에 시간을 아껴 쓴다는 걸 짐작할 만하다.
마당 한편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선 심 씨의 아내가 쇠스랑으로 텃밭을 고르고 있다. 어디 딴 데 눈 한 번 돌리는 법 없이 열심히, 혹은 고독하게.
이분은 한때 병을 얻어 고생을 했다. 그게 귀촌을 서두른 요인이기도 했다지. 산골의 어디에 사람의 몸을 고치는 미약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귀촌을 통해 다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하는 걸 나는 간혹 봤다. 심 씨의 아내 역시 귀촌 이후 건강을 완연하게 회복했다는 게 아닌가.
“저희 부부는 외식을 안 합니다. 농약 친 식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을 싫어해서죠. 직접 온갖 채소들을 깨끗하게 가꿔 찬을 만들어 먹기, 이 역시 산골에 사는 행복 중 하나입니다. 그게 건강비결이라고 봐요. 요양을 위해서라면 가급적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겁니다. 농약을 엄청 뿌려대는 과수 단지나 유해 가스를 배출하는 축사 지구를 피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곳은 도시보다 공기의 질이 더 나쁠 수도 있으니까.”
“도시에서와 달리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어쩌면 불운한 여건에 처한 부부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질도 중요하겠죠? 귀촌한 부부들이 대화단절이라거나, 도시에서보다 갈등을 더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더군요. 부인은 산골생활에 만족하시나요?”
“만족할 리가요. 여자에게 시골은 아무래도 불편이 많으니까요. 체념하고 사는 것 같아요. 부부싸움도 하지만 그때마다 화해를 하죠. 친구처럼 그냥 무덤덤하게 삽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 뭐 그래도 밥은 얻어먹고 삽니다.(웃음) 다툼이 있더라도 그게 다 내 탓이거니, 그리 여기고요.”
“‘내 탓’이라는 건 뭐죠?”
“흠, 제 약점이랄까, 제가 느려터진 면이 있어요. 게으름과는 좀 다른 건데요, 옆에서 볼 땐 당치 않은 여유나 허세를 부린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어릴 때부터의 천성이라 어쩔 수 없더라고요. 좀 더 느린 숨결로 여유롭게 살자! 귀촌 때 그런 다짐도 했고요.”
“마을 이장을 맡으셨죠? 주민들의 신임을 얻지 않고선 그거 어려운 거 아녜요?”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를 내세우지 않고 배운다는 자세로 어울렸어요. 술자리도 함께하고 오락 화투도 같이 치며 섞여들었어요. 시골에선 사생활이라는 게 어렵습니다. 뭐든 묻거든요. 답을 안 해주면 오해를 살 수 있고요. 그런 풍토를 긍정하고 잘 적응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정착할 수 있어요.”
마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사람의 마음은 새장에 달린 문과 같아서 활짝 열어젖힐 때 비상할 수 있다. 시골에 살며 아는 척, 잘난 척, 멋있는 척을 하다 보면 새장에 갇힌 신세를 자초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세를 낮춘 갸륵한 선의마저 곧이곧대로 믿어주질 않는 경우가 많은 게 세상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는 게 인간이라는 종이다. 시골인들 혼선이 없으랴.
“험한 꼴을 당한 적은 없으셨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은 상황이라든가.”
“텃세라는 건 주로 집성촌에서 벌어집니다. 60여 명의 각성바지들이 살아가는 이 마을 주민들은 다들 점잖아요. 귀촌하고서 집들이를 했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오셨더라고요. 이 마을에 이주한 최초의 외지인이라며 반겨줬어요. 그 분위기를 죽 유지한 셈이죠.”
이장 일을 보면서부터 심 씨의 양상이 급변했다. 마을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 굵직굵직한 마을 사업들을 펼쳐 성과를 거둬서다. 자칫 먹은 것 없이도 바가지로 욕먹을 수 있는 게 마을 사업 선도자다. 그는 공생 공영을 열심히 추구한 나머지 흠집 난 게 없는 것 같다.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아는 이의 활보라 할 수 있겠다.
“귀촌하려는 분들에게 꼭 귀띔하고 싶어요. 재능과 역량을 마을에 쏟는다면 반드시 좋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하는 마을지원사업의 규모나 종목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 착안하시길 바랍니다. 마을의 공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개인의 이익도 도모할 수 있으니까.”
심 씨는 고개를 뒤로 꺾으며 큰 소리로 자주 웃어젖혔다. 우스울 게 없는 대목에서도 마구 웃으니 난 그게 우스워 덩달아 웃길 거듭했다. 적극적인 사교의 기술일 테지. 몸에 밴 겸양의 꽃으로 터져나온 홍소(哄笑)일 수도.
심원복 씨가 주는 귀촌·귀농 준비 Tip
•최소한의 생활비(월 100만 원 정도)를 조달할 수 없는 재정 형편이라면 귀촌하지 않는 게 좋다. 비참해질 수 있으니까.
•농사로 돈을 모으기는 정말 어렵다. 노동 강도도 세다. 섣불리 농토에 투자하지 말자. 일단 맨몸으로 들어와 빈집과 묵은 전답을 빌려 수련기를 갖는 게 좋다.
•시골생활을 하다 보면 무료해진다. 변화가 없는 일상에 지칠 수 있다. 그럴 때 자연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산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감성도 길러진다. 열렬한 취미 한두 가지를 가지고 내려온다면 한결 바람직하고.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꽃가루가 날리고 위험 수준을 초과하는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들이다. 햇볕도 강
해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 몸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바로 눈이다. 몸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눈은 매우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점점 나빠진다. 대체로 40대 중반부터 가까이 있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를 노안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이런 증세를 경험했고 그 뒤로 시력이 점점 떨어져 이젠 안경 없이는 일상이 불편할 정도다. 안과 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어쩐지 두렵기도 해서 쉽게 나서질 못하다가 용기를 냈다.
서울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를 찾던 날은 봄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는 눈이 좋은 편이어서 지금까지 안과를 가본 적이 거의 없다. 나이가 들어 찾게 되니 어색하기도 하고 살짝 겁도 났다. “어쩌자고 여길 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 입구로 들어서니 현대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마치 카페에 온 듯 소파에 앉아 잡지와 신문을 보거나 차를 마셨다. 카페 분위기가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보호자도 볼 수 있는 수술 현황
안전한 시술, 세심한 케어를 위해 15단계의 60가지 정밀검사가 이루어진다 하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외 1대 1 상담, DNA 유전자 검사, 수술 전 토탈아이케어, 수술 후 건조케어 등 의료시설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신뢰가 갔다. 그러고 보니, 스마일라식·라섹, 엑스트라 라식·라섹, 옵티라식·라섹 등 수술에 있어 의료진의 숙련도가 높은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최첨단의 검사 장비들을 둘러보니조금씩 기대감도 생겼다. 검안실은 개방형이라 궁금하면 언제든 들여다볼 수도 있다. 누구든지 병원 내부 답사가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해둔 것이다. 특히 보호자도 수술 현황을 볼 수 있고 수술 후에는 진료센터에서 집중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영화관처럼 어두운 공간이 있어 들어가 보니 시신경과 망막을 검사하는 곳이었다. 별도로 마련된,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렌즈는 키즈카페처럼 밝고 동화 같은 분위기였다.
치료를 시작할 때 충분한 상담 후 결정할 수 있도록 상담실도 여유 있게 준비되어 있는 등 환자를 최대한 배려한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시작된 진료는 안내에 따라 진행됐다(동행한 두 분의 동년기자와 함께). 나는 일단 기본검사만 하기로 했다. 시력검사, 망막검사, 그리고 눈 안쪽을 검사했다. 눈에 바람을 쏘는 안압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눈 속의 압력을 측정한 후 검은 포를 머리 위에 쓰고 선과 색깔을 보며 눈동자 검사도 했다. 백내장 진단도 했다.
안내에 따라서 하면 되는 시스템이어서 검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검사 결과를 듣는 시간. 의사는 내 눈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관리 방법까지 알려줬다. 나를 포함해 함께 검사를 받은 동년기자들 모두 약간의 백내장 증세가 있어 앞으로 정기적인 검안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외엔 다행히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의 시력 손상이나 시력 저하를 막기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검안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요즘 사람들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신체의 일부처럼 가까이하며 살고 있다. 눈 질환의 원인이 되는 청색광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눈 관련 질병이 발생하는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안과적 문제는 더 이상 노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신체기관 중 가장 빨리 늙는 부위는 눈이라고 한다. 40대 중반부터 노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노안은 질병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노쇠 현상이다. 안과 질환은 초기에 자각 증세가 없어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눈 질환에 조심해야 하는 시니어는 안과와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듯 눈도 정기적으로 정밀검사를 해서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한다. 시력은 한 번 잃으면 되찾기 어렵다.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건강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눈 건강은 필수다.
22일 오전 5시 45분 경북 울진군 동남동쪽 해역에서 규모 3.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일 오전에는 강원도 동해시 인근에서 규모 4.3의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근 지역은 물론 수도권까지 지진을 체감했다는 소식이 들리며 이에 대한 불안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 장소마다 그에 따른 대피 방법이 필요하겠다. 행전안전부 ‘지진 국민행동요령’에서 제시하는 장소별 행동 요령을 살펴보자.
#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 책꽂이 등 무거운 물건이 많아 다칠 위험이 크다. 사무실 책상 아래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책상다리를 꼭 잡아 몸을 보호하는 것이 좋다.
# 백화점 또는 마트에서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진열장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떨어져 다칠 우려가 있다. 이때 장바구니를 들고 있다면 머리에 써서 보호하면 좋다. 계단이나 기둥 근처로 피하고 지진이 멈추면 안내에 따라 밖으로 대피한다.
# 극장 또는 경기장에서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가방 등 소지품으로 몸을 보호하며 우선은 잠시 자리에 머문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한 곳으로 갑자기 인파가 몰리면 사고 우려가 있으므로, 안내에 따라 조심히 이동한다.
# 엘리베이터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대피 중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아야 하며, 이미 타고 있다면 즉시 내리는 것이 좋다. 탑승 중에는 1층까지 내려가기보다는 모든 층의 버튼을 눌러 가장 먼저 열리는 층에서 신속하게 내린 후 계단을 이용한다.
# 자동차 안에서
차 안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서서히 속도를 줄여 도로 오른 쪽에 차를 세우고 긴급차량을 위해 도로 중앙부분을 비운다. 라디오 정보를 잘 듣고 대피할 대는 열쇠를 꽂은 채로 문을 잠그지 않고 이동한다.
# 전철 안에서
전철의 손잡이나 기둥, 선반 등을 꼭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전철이 멈췄다고 해서 서둘러 출구로 뛰어가는 것은 위험하므로, 안내에 따라 행동한다.
# 산 또는 바다에서
산처럼 급한 경사지 근처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변 물체에 주의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바닷가에서는 지진해일 특보가 발령되면 긴급 대피 장소 등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푸르덴셜생명이 한국퇴직연금개발원과 함께 은퇴예정자를 위해 제작한 ‘은퇴수첩’을 배포한다고 17일 밝혔다.
‘은퇴수첩’은 은퇴 예정자들이 은퇴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은퇴 후 생활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 워크북 형태의 수첩으로 ▲자산관리 ▲건강생활 ▲취미 및 여가활동 ▲일자리 ▲주거생활 ▲관계관리 등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은퇴 후 삶을 계획하는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은퇴준비 진단표’의 20개 질문을 통해 현재 자신희 은퇴 준비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푸르덴셜생명은 ‘은퇴수첩’을 한국퇴직연금개발원이 주관하는 ‘은퇴준비세미나’의 교육자료 및 은퇴교육을 희망하는 공익 기관이나 은퇴지원센터 등의 교육자료로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커티스 장 푸르덴셜생명 사장은 “이번 ‘은퇴수첩’을 통해 은퇴가 예정된 사람들이 더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푸르덴셜생명도 다양한 연금상품과 재정 솔루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은퇴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푸르덴셜생명이 서울과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은퇴 후 생활계획’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은퇴 준비 점수는 10점 만점 중 평균 4.7점에 불과해 노후 준비에 대한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환자의 고민과 마주해온 하지현(河智賢·52) 건국대학교 교수. 그는 인생의 고민을 ‘중력’에 비유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작용하는 중력처럼, 고민은 삶에 적당한 긴장을 주며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민 없는 삶’을 바라기보다는 ‘잘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국·영·수 각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닌 ‘공부’를 잘하는 원리를 찾듯, 하 교수는 고민이라는 큰 주제의 해결 방법을 ‘고민이 고민입니다’에 담았다.
나이가 들수록 고민의 무게는 점점 더해진다. 어른으로서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 많아지는데, 가능한 한 좋은 방법을 찾아 잘 해내고 싶은 마음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다가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괴로워진다. 이러한 현상에 하지현 교수는 “결코 답을 못 찾아 고통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상담을 해보면 중장년 세대는 대부분 이미 해결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겪은 직·간접경험을 통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충분히 끄집어낼 수 있는 시기이니까요. 문제는 갖가지 고민을 한데 뒤엉킨 채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나하나 떼어서 보면 쉬운 고민조차도 모두 어려운 고민으로 여겨버리고 맙니다. 정말 답이 없다기보다는 여러 고민을 펼쳐놓고 해결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거죠.”
그가 언급한 ‘공간’은 뇌와 마음의 여유를 뜻한다. 그럼 이 공간을 늘리면 고민은 잘 해결될까? 아쉽게도 뇌와 마음의 용량은 한계가 있다.
“뇌와 마음의 공간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합니다. 완벽주의자일수록 뭐든 중요하게 여겨 쉽게 못 떨쳐내는 성향이 강합니다. 때문에 중요도를 따지기보다는 고민의 개수를 파악하는 편이 낫습니다. 무얼 버려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면 인간의 ‘자동 정리 기능’인 ‘잠’을 이용해보세요. 복잡했던 생각과 감정이 한결 정돈되는 효과가 있지요. 잠을 이룰 상황이 아니라면 일명 ‘멍때리기’를 하거나 목적 없는 산책을 다녀오는 것도 뇌와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는 요령입니다.”
직관이 편견이 될 때
한 교수는 두려움, 불안 등 감정에 휘둘리거나 완벽한 답을 갈구하며 결정을 미루는 행위도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감정은 상황을 채색해버립니다. 마치 까만 선글라스를 끼면 까맣게, 빨간 선글라스를 끼면 빨갛게 세상이 보이듯 말이죠. 그렇게 어떤 일을 판단하는 데 감정이 개입하면 있는 그대로가 아닌 필터링이 된 모습으로 판단해버려요. 물론 인간은 감정이 완전히 ‘제로(0)’일 수 없습니다. 감정은 내 생각과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되, 다만 그것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완벽한 답은 없을 뿐더러,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는 ‘고민을 잘하는 성숙한 어른’이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할 줄 알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자기 성숙을 위해 고민보다는 실행에 비중을 두고, 반성은 하되 후회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전혀 고민 없이 자기 직관에만 의존해 판단하는 이들의 경우 소위 ‘꼰대’가 되기에 십상이라고 염려했다.
“뇌는 무조건 효율적으로 움직이려 하는데, 이는 에너지를 덜 쓰는, 즉 고민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라고 하죠. 그러나 ‘직관’은 아주 쉽게 ‘편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대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중장년 부류가 이런 성향을 보입니다. 이들은 직관적으로 결정을 먼저 내리고, 그 뒤에 이유를 찾아 설명하곤 해요. 문제는 성공해온 경험 덕분에 자기 판단을 합리화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는 거죠. 나이 들수록 과거부터 자신이 옳다고 여겨온 것들을 부정하긴 힘듭니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해도 거부하죠. 그건 ‘업데이트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새 길이 뚫렸는데도 옛길만 고집하는 거니까요. 더 나은 삶과 관계를 위해서는 스스로 편견에 갇힌 건 아닌지, 내가 틀린 것은 아닌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가능성을 찾기 위한 고민 갈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심리학을 통해 위로받는 이가 많아졌다. ‘트라우마’, ‘분노조절장애’ 등의 용어도 대수롭지 않게 쓰인다. 하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우려했다.
“심리학적 지식은 내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갖게 해줍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는 거예요. 트라우마처럼 세상만사가 과거의 사건에 영향을 받는 건 아닙니다. 아무런 계기 없이 벌어지는 일도 많거든요. 심리학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상황에도 이런저런 의미부여를 해서 스토리텔링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나 기분을 그럴싸한 단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이론적으로 해석하려 들죠. 한 번쯤은 이러한 과정으로 내 상태를 살펴볼 수는 있겠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지난 불행을 ‘트라우마’로 진단해버린 채 현재의 문제를 모두 그 탓으로 돌린다면 과거에 매여 더 나은 삶으로 전진할 수 없다. 자신의 고민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터. 그는 ‘불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이 많을수록 쪼개서 생각해야 합니다. 가령 ‘나는 왜 1000억이 없을까?’라는 고민은 상식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죠.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 이런 건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가능한 목표이고요. 그렇게 애당초 불가능한 고민은 제외하세요. 뒤섞여 있으면 모두 불가능해 보여 포기해버리기 쉽거든요.”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여러 문제를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특히 자신의 안 좋은 습관을 인지하면서도 ‘이제는 바꿀 수 없다’면서 변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하 교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당부했다.
“최근 연구를 보면 노년기에도 뇌세포가 재생하고 변화한다는 결과가 많아요. 물론 젊은 시절보다 활발하지는 않지만 늙었다고 뇌가 퇴화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중장년 세대의 장점은 지구력이 있다는 거죠.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끈질기게 해내려는 경향이 있어요. 갑자기 운동을 한다거나 행동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면 평균 석 달쯤 걸린다고 해요. 1년에 서너 개의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셈이죠. 불가능하다고 낙담하며 한 해를 보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우리의 노후는 꽤 깁니다. 여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잘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한동안 ‘기승전OO’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떤 일의 시작, 전개, 전환 과정과 무관하게 결론이 항상 같게 나타날 때 쓰는 용어인데, 본래는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따온 말이다. 안대회(安大會·5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한시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이 부침하는 인간의 생애 또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띤다고 말한다. 유행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결(結)’에 다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안대회 교수가 엮은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인간의 삶을 큰 줄기로 잡아 152편의 한시를 ‘기승전결’ 4부로 나눠 편집했다. 전반부(기·승)가 갈등과 슬픔, 불안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부(전·결)는 기쁨과 안정,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시를 고르고 해석하며 자연스레 동년배인 중장년층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안 교수. 그의 삶은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책에 실린 한시가 쓰인 시대로 따지면 이미 ‘결’이겠지만, 요즘의 생애주기로 보면 아직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전(轉)은 인생에서의 변화를 겪는 전환기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보면 퇴직 전후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때이고요. 책에서는 ‘삶이 다가오는’(시기)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성상 4부로 나누긴 했지만, 독자에 따라 어떤 시는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갔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꼭 기승전결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배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는 굴곡과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정조도 염원한 ‘미로득한방시한’
책 제목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영조 시대의 문관 홍신유(洪愼猷)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만들었다. 풀이하면 ‘재주가 없어 낙향한 덕분에 무척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겠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어떤 점에서 이 구절을 마음에 둔 것일까?
“홍신유는 중인(中人) 출신이지만 문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했어요. 그러다 출세가 힘들어져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왔는데, 그때의 상황에서 보면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정말 능력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니까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회한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다는 거죠. 가질 수 없는 걸 부여잡고 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어요.”
홍신유는 자칫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만족으로 전환했다. 안 교수는 그런 홍신유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한가로움을 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閒方是閒)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미로’ 늙기 전에, ‘득한’ 한가로움을 얻어야, ‘방시한’ 그게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전에 퇴직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나이 들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억지로 얻는 한가로움보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보내는 한가로움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거죠. 꼭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리 정리한 삶의 방향대로 간다면 인생이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해요.”
그는 ‘미로득한방시한’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추천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득한정(得閒亭)’이다.
“수원을 방문한다면 기념 삼아 한번 가보세요. 득한정은 말 그대로 ‘한가로움을 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정조가 붙인 이름인데, 그 역시 미로득한방시한을 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가 세운 ‘갑자년 구상’을 보면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인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죠. 아쉽게도 정조는 그 구상이 실현되기 전인 18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뜹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가진 게 많을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니까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안고 있을 때, 또는 너무 바쁠 때는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각별함,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다
여항시인 최천익(崔天翼)의 시에서도 홍신유와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병석의 나를 위로하며(病中自慰)’라는 시에서 그는 병이 생겨 누워 있는 탓에 몸은 수척해졌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내적 양식을 쌓으리라 의지를 다진다.
“원문에는 ‘近裏工夫或庶幾(근리공부혹서기)’라 쓰여 있어요. 가까울 근, 속 리, 즉 근리공부는 내면공부와 같아요. 최천익은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한 내면공부를 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말했죠. 대부분 좌절을 겪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나이 들면 병이 생기는 것도 큰 좌절이잖아요. 낙담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려 채워간다면 위기도 더 나은 인생을 향한 전환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이황(李滉) 역시 ‘세상맛은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며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 교수에게 나이 들수록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때의 ‘각별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는 건 그동안 별것 아니던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경험을 말해요. 젊어서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꽃도 좋아하지 않거나 장미처럼 화려한 걸 선호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참 예뻐 보여요. 늙어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있던 평범한 것들에 눈이 가고,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거죠.”
안 교수는 노탐(老貪)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결’에 이르고 싶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언젠가 다가올 인생의 한가로운 시기에 대한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보다는 연장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게 제겐 즐거움이고 취미거든요. 다들 그건 너무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해요. ‘인문’ 자체는 하나의 종목이지만, 내용에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성이 존재하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다 해내지 못할 정도로 끝도 없고, 경지도 없어요. 그 속에서 내가 보는 만큼 아는 거고, 찾는 만큼 나아가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역량껏 차근차근 ‘결’의 시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자료 수집하러 여행도 다니고, 다른 것에 매여 하지 못했던 박제가(朴齊家) 평전도 쓰고요. 그게 바로 제가 택한 한가로움입니다.”
갑자기 친구와 약속이 생겨 부리나케 준비하고 외출을 했다. 서둘러 나가면서 무언가 빠트리고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는데 버스에 타고 나서야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그냥 나온 게 생각났다. 아차 싶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휴대폰을 들고 나올까 잠시 망설였지만, 약속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디서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문자나 카톡으로 누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궁금해지면 급기야 초조함까지 밀려왔다. 휴대폰을 들고 나왔다면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벌써 서너 번은 열어봤을 것이다. 시간을 보거나 문자나 카톡 확인 등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기로 하고 휴대폰 없는 동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휴대폰 없이 다들 잘 지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나 어른이나 휴대폰 없는 세상은 용납이 안 되는 듯하다. 연락을 주고받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정보 등을 즉각 얻을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옛날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나 이런저런 이름을 대보다가 스마트폰으로 영화 내용을 검색하면 영화 제목과 감독, 주인공까지 자세하게 나오니 정말 기특한 존재임은 확실하다.
아이가 중학교 시절 들고 다니던 휴대폰을 처음 접했을 때, 대학 동창이 휴대폰이라며 가방 속에서 꺼냈던 전화기를 봤을 때 무척 신기했다. 당시는 삐삐라는 기기로 연락을 받으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집 밖에 나와서도 안방 전화를 쓰는 것처럼 통화가 되는 걸 보고 참으로 놀라웠다.
친구의 첫 휴대폰은 모토로라에서 나온 제품이었는데 집 전화만큼이나 컸다. 흡사 무전기처럼 보이는 큰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하던 친구가 신기해서 너도나도 그 물건을 만져봤던 추억이 있다. 그 후로 폴더형, 슬라이드형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나도 스마트폰의 장점을 톡톡히 누리는 사람이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야 할 수 있었던 블로그 활동을 언제 어디서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전에는 메모지를 꺼내 적어두었다가 집에 와서 글을 작성하곤 했다. 메모지가 없을 때는 그 생각들을 다 잊어버려 안타까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스마트폰에 저장한다. 가입한 카페에 글을 올리는 것도 출석 체크도 집이 아니라도 가능해졌으니 스마트폰은 정말 편리한 기구임에 틀림없다.
외출해 있는 동안 무척 불안했다. 집으로 달려가자마자 충전기에 꽂혀 있는 스마트폰을 열어봤다. 그런데 참으로 무심하게도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동안 스마트폰은 편안한 휴식을 한 셈이다. 왠지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잠깐 헤어져 있어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 근사하게 나이 들기 하야시 유키오, 하야시 다카코 저ㆍ마음산책
일본에서 ‘패피(패션피플) 부부’로 알려진 하야시 부부가 말하는 ‘어른의 멋’과 ‘패션 철학’을 들려준다. 40년간 옷을 만들고 판매해온 부부는 “일상이 패션의 밑거름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근사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일상복’부터 신경 쓰라고 조언한다. “멋이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됨됨이”라며 평소 입는 옷이 곧 그 사람의 특성과 분위기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야시 부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실험적인 패션을 즐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시간의 흐름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노안이 오면 다양한 안경으로 멋을 내고, 몸매가 망가지면 변화된 신체 비율에 맞춰 기장을 맵시 있게 수선하는 식이다. 책의 3장 ‘사소함이 즐겁다’에서는 부부가 직접 입고 걸친 옷과 패션 아이템들을 사진과 함께 스타일링 비법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책을 통해 “어깨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 사라 윌슨 저ㆍ나무의철학
불면증, 강박장애, 우울증, 경조증 등 평생 8가지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한 여성의 20년에 걸친 심리 보고서다. 인간이 다스리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기복이나 중독 증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방법과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 나를 지켜준 편지 김수우, 김민정 저ㆍ열매하나
부산의 50대 시인 김수우와 서울의 20대 여성 김민정이 1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담았다. 세대 차이와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고민 속에서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두 여성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다.
◇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 저ㆍ황금가지
2018년 타계한 판타지 소설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이 2010년부터 5년 동안 블로그에 남긴 글 50여 편을 담은 생애 마지막 에세이다. 문학과 정치적 이슈를 비롯해 여든을 넘긴 저자가 바라본 노년의 삶과 사색이 드러난다.
◇ 50대 또 한 번 나 혼자만의 시간 나카미치 안 저ㆍ시그마북스
남편과의 별거, 자녀의 성장 등으로 50대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저자가 경험한 진취적이고 즐거운 일상을 이야기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하며, 성숙한 홀로서기 노하우를 제안한다.
삶이 즐거운 건 살고 싶은 대로 살 때다. 그러나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쉽지 않다.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냥 대충 살기 십상이다. 이럴 때 삶이란 위태한 곡예에 가깝다. 곡예 역시 진땀을 흘려야 한다는 점에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왕지사 한 번 태어난 인생, 심란한 곡예보다는 평온한 활보로 삶을 즐기는 게 낫겠지. 이 사람을 보라. 살고 싶은 대로 산다. 남들이 어떻게 살건,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없다. 내 방식대로, 내 지향대로 산다.
사는 것처럼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거지? 좋은 삶이란 뭐지? 나답게 잘 산다는 건 어떤 거지? 김형태 목사(50)는 그런 궁리를 일찍부터 줄기차게 해왔던 모양이다. 뭐시라? 누군들 그런 생각 안 해보겠어? 그리 따질 입들이 많겠지만, 김 목사의 모색은 한결 심각하고 절실한 것이었다. 이미 신 안에 사는 사람이었지만, 해서 잡다한 혼선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삶이었겠지만, 그러나 그는 현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일에 늘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심지어 화두였다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문제. 어떻게 살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인생인걸, 무슨 거한 포부가 있기에 화두까지 타셨나? 그리 또 따질 입들이 있겠지만, 김 목사는 화두를 파 궁구한 나머지 마침내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했다. 귀농 행(行)! 바로 그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아내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삶과 교육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변에 공동체생활의 이상과 실천을 말씀하시는 스승들도 많아 영향을 받았고요. 도시의 복잡하고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대안적 삶을 실천하고 싶다는 거. 그게 제대로 사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고 산골로 내려왔습니다.”
여기 합천 땅 황매산 기슭으로 내려온 건 6년 전. 이곳에 오기 이전, 청송과 산청에서도 한두 해 시골살이를 했는데, 그건 워밍업이었단다. 이미 몸을 풀고 링에 올랐기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더란다. 기쁨에 들떠 산골에 입장했다니 행복, 혹은 행복의 조짐을 움켜쥔 셈이었다.
아까 나는 이 집 입구에 도착해서 탄성을 내질렀다. 오! 근사한걸! 집 뒤편으로 좍 병풍을 친 산경이 기차게 삼삼해서였다. 아울러 그의 거처가 아름다워서였다. 마당 너른 집에 들어앉은 자못 큼직하고 미끈한
2층집이니 말이다. 수려한 산봉들이 우아한 코러스를 공연하는 터전이니 땅값부터 겁나게 나가겠는걸! 난 속물답게 그리 여기며 은근히 부러웠더랬다. 하지만 그게 아니구나. 김 목사는 이 집에 세 들어 산다. 우리를 자주 속 터지게 하는 ‘쩐’이라는 거, 그 요상한 물건을 그는 거의 지니질 않고 살아온 사람이다.
“종잣돈이라도 마련한 뒤 귀농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에 한동안 귀농을 망설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존경하는 스승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앉아 있을 텐가? 떠나라, 유목민처럼 서슴없이 떠나라!’ 그래 그냥 따랐지요.”
“맨손으로 내려왔다는?”
“별로 손에 쥔 게 없었어요. 목회를 했던 교회에서 준 퇴직금 2000만 원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제가 이 마을에 들어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주민들과 돈독한 인연을 맺게 됐으니까. 이 집 주인도 그중 한 분이에요. 저의 대안적 삶에 관한 포부를 듣고 집을 임대해줬을 뿐만 아니라 개축까지 거들어줬거든요.”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북 카페를 운영하시는군요. 이 집 쥔 양반은 토기를 굽나보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토기장이’란 성경의 토기장이 이야기에서 따왔어요. 아내와 딸이 북 카페를 운영합니다. 저는 농사에 주력하고.”
“목회는?”
“카페 공간을 예배당으로 여기지만, 간혹 신도가 찾아오지만, 여길 와서 제가 목사라는 걸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땀 흘려 정직한 농사를 짓는 일, 농약으로 오염된 땅을 살리는 일, 이웃들과 어울려 품앗이를 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래하는 삶, 그 무엇보다 자연이 주는 영성으로 사는 일 자체가 이미 목회라 여기며 삽니다.”
자연의 영성 안에서 살기
목회라는 건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내려놨다는 얘기라기보다는 한결 진정한 목회자의 실천적 삶으로 접어들었다는 얘기일 테지. 그가 외로운 떠돌이로 산 바가 없었겠으나, 귀농으로 드디어 조용한 포구에 정박했다는 투의 안심과 자부심이 비친다. 그런 그에게 산골이란, 자연이란, 농사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이상적 조건일 게다. 도시의 빌딩 숲속에선 이상 구현이 어려운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야야, 어디서건 네가 너의 임자로 살면 참인 것이야! 불가에 전해지는 뉴스가 그렇다. 도시에서 그는 무엇에 식상했을까?
“사는 장소가 도시이냐 시골이냐는 물론 중요하지 않지요. 어떻게 사느냐에 문제가 있을 뿐이니. 그런데 도시에서는 마음을 돌보며 살기 어렵지 않던가요? 나를 돌아볼 짬조차 없질 않던가요?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한 발이라도 앞설 수 있지 않던가요? 산골에 산다는 건 자연의 영성 안에 사는 건데요, 가령 흙을 만지고 있으면 사람이 단순해집니다. 놓쳤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도시에선 얻을 수 없었던 힘이 생겨요.”
“농사란 여전히 못 믿을 직업으로 간주되고 있어요. 나오는 것 없이 골병만 든다고들 하죠. 김 목사님 농사는 무난할까?”
“애초 이 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전혀 몰랐는데요. 와서 보니 저와 같은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분들이 이미 살고 있더라고요. 시인 서정홍 선생님을 비롯해 유기농을 하는 ‘열매지기 공동체’의 아홉 농가 사람들, 이분들의 도움과 가르침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구상하고 추구했던 공동체적 삶 속으로 빠르게 섞여 들어간 거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농사 규모는 얼마나 되죠?”
“초기엔 200평이었으나 현재는 1200평으로 늘었어요. 마을 분들이 빌려준 밭이에요. 여기에다 아들과 함께 감자, 고구마, 수수, 생강, 양파, 콩 등의 작물을 재배합니다. 아직 이렇다 할 수익은 없지만, 기계를 쓰지 않고 오직 몸을 써 일하기에 조금 고되지만, 그러나 만족합니다.”
“땀 흘려 노력을 했을 텐데 아직 수입이 발생하질 않다니, 이걸 어쩌나?”
“자급자족은 할 수 있으니 문제될 게 없지요. 소출이 적더라도 우선은 땅을 살려놓고 보자는 게 유기농의 정신입니다. 문제는 요즘의 심각한 기후변화에 있어요. 노련한 토박이 농부들조차 대책을 찾지 못해 고심합니다.”
만물만상이 변하는 건 이치이지만 21세기의 날씨 변동은 왜 이 모양인가. 괴상한 게 기후뿐이랴. 나 하나, 내 가족 하나만 잘살면 장땡이라는 식으로 일쑤 남을 짓밟기를 장기자랑하듯 해대는 이 시대의 이기적 세태는 또 얼마나 수상한가. 모름지기 학교 교육부터 창의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소리가 왁자하지만 정작 바뀌는 게 없으니 썰렁한 농담이다. 일찍이 이런 파행에 불신을 느낀 탓일 테지. 김 목사는 자식 셋 모두를 공교육에 맡기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양육했다.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아이들 말이다. 폼나는 학력을 걸치지 않고선 흑싸리 껍데기 등외품 취급을 당할 세상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릴 땐 많이 불안했다 하대요. 불안과 마주앉아 자기 고민들을 많이 했다고. 근데 그게 필요한 고민이었다는 걸 알았다는 겁니다. 고민과 함께 내적 성장을 한 것 같아요. 학교나 학원에서 찾기 어려운 답을 스스로 배워 찾아냈다고 봅니다. 야생의 어떤 감성으로 나답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나 할까.”
“성적 경쟁의 격투장인 학교에서 심히 시달리며 세상의 명암을 알아가는 건 딱히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고난을 겪고서야 근본이 강해지는 법인데.”
“공교육은 개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기다움을 용납하지 않는 거죠. 제 아이들은 너무도 잘 자랐어요. 각자 자기 색깔이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어요. 모두 경제적 자립을 했고요. 일테면, 막내인 아들은 올해 스물두 살인데 어엿한 청년 농부입니다. 지적 욕구가 강해 책을 무섭도록 읽어대요. 저희 북 카페가 운영하는 ‘담쟁이 인문학교’에서 물리학이나 죽음을 주제로 한 강의도 하는 아이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어쩌면 위험한 모험일 수 있는 홈스쿨링으로 자녀를 야무지게 키우고, 물적 토대 없는 용감한 귀농에 자족하고, 눈앞의 현실만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환상적일 수 있는 ‘자연의 영성’이라는 걸 가슴에 담고 사는 조용한 삶. 줏대와 슬기가 아니고선 꾸려내기 어려울 경관이다. 땅에 쏟는 떳떳한 노동과 자연을 향한 겸손한 순응 역시 맑은 생활의 원천이자 길일 테지.
“현실적인 감각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합니다. 산 속에서 뭘 먹고 사느냐, 신도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겠느냐고. 하지만 저는 만족하며 삽니다. 특히나 귀농으로 맺어진 좋은 인연, ‘열매지기 공동체’ 사람들을 만난 건 정말 만족스러워요. 커다란 행운이에요.”
“많은 공동체가 종단엔 실패를 하더군요. 그 가치는 아름답지만, 원초적 이기주의자인 인간이라는 종을 공동의 틀 안에 모아 함께 움직인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필요한 일이죠. 같은 길을 가되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공동체라면 문제가 없을 거라 봅니다. 저는 귀농 후 자연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열매지기 공동체’를 통해서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마음자리를 늘 돌아보는 눈이 생겼어요. 예전 같으면 용납 못했을 일도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이는데, 이게 마음이 좀 넓어진 덕분이겠죠.”
“모두들 물귀신 같은 물신에 덜미를 잡혀 사는 세상이에요. 소박한 소유로 자족하는 김 목사님에겐, 가령 노후 불안 같은 건 없을까?”
“아무런 대책이 없으나 불안도 없어요. 늙어 병들면 그냥 죽으면 되지 않겠어요? 최소한의 물적 조건은 필요하겠지만, 그 필요라는 건 먹고 입고 잠잘 수 있는 정도라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이미 저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이 돈 들어가지 않게 짜여 있어서 더더구나 문제될 게 없지요. 게다가 시골에선 굶어죽기가 아주 어렵습니다.(웃음) 온 산야에 먹을 것 지천이고, 경로당에서 뭔가를 챙겨주고 하니까.”
이루면 더 이루고 싶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욕망이다. 이미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고 싶어 하고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관성이다. 이런 삶에서, 그는 벗어나고 싶은 게다.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척하는 시늉이 아니라 안팎이 두루 한결같은 실천이자 실력이라면, 그건 내공이겠지.
“자연 속에서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어도 됩니다. 자연 속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답게 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더욱 소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힘을 빼고, 의도를 가지지 않고, 누구를 설득할 것도 없이, 그저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자 해요. 죽음이 찾아오면 인디언처럼 산에 들어가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이겠죠. 자연이 그렇잖아요? 있다가 없어지는 거.”
있다가 없어지는 것. 누구나 그 평범한 진리 하나를 몸에 붙이고 산다면 과히 걸릴 게 없겠지. 물신도 귀신도 사신(死神)도 두려울 것 없을 게다.
김형태 목사가 주는 귀농준비 Tip
•귀농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정붙이고 살 수 있다.
•은퇴자 귀농의 실패 확률은 매우 높다. 농사로 몸 건강을 망칠 수 있어서다. 도시와는 다른 시골 풍습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에도 낭패를 볼 수 있다.
•귀농 초기엔 찍소리 안 하고 지내는 게 좋다. 원주민들과 융화하기 위해서는.
•땅으로 재테크하지 말자. 귀농인들 때문에 시골 땅값이 근거 없이 오르는 사례가 많다. 그럴 경우 대안적 삶을 원해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해외 선진국의 요양시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선진국 요양시설은 한마디로 ‘인간중심케어(Person Centered Care)’를 지향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인간중심케어란, 개별화된 서비스 제공을 기본 원칙으로 입소자의 심리적 욕구에 대한 배려를 하고 독립성, 자율성, 자존감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인식과 실천을 말한다. 인간중심케어를 기본 축으로 두고 이뤄지는 요양원의 특징은 무엇일까?
2026년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국민 5명 중 1명이 만 65세 이상 노인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아프고 불편해도 평소에 살던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노인은 많지 않다.
돌봄에 대한 불안은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생활수준의 보편적 상승 추세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거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 요양시설 입소자들은 더 나은 인격적 대우를 원했지만 필연적으로 삶의 질 경시와 서비스 질의 저하를 겪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중심케어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이 대안적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유로운 삶의 추구, 에덴 대안 모델
인간중심케어 개념이 적용된 대표적인 모델로는 ‘에덴 대안’ 모델과 ‘그린하우스’ 모델을 들 수 있다. 에덴 대안 모델은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외로움, 무료함, 무기력함을 없애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간적인 주거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식물이나 동물을 자유롭게 기르고 가족과 교류를 자유롭게 하여 입소자들의 집과 같은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 요양시설 입소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상호작용, 직원에게 케어 관련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중심케어를 강조하며 거주 노인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집중한다.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노인과 직원들의 관계성을 높여 상호관계 방식의 관리를 꾀하는 에덴 대안 모델은 자연스러운 개선과 발전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에덴 대안 모델을 적용한 요양원의 경우 욕창이 57% 감소하고, 직원 결근이 48% 감소했으며 침상에만 체류하는 거주자들이 25% 정도 감소했다. 또한 행동 억제도 18% 감소했다.
보다 전문적인 관리, 그린하우스 모델
그린하우스 모델은 요양시설을 최대한 가정집처럼 조성하고 10인 이하의 노인들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강조한다. 집과 같은 환경을 위해 병원을 상기하게 하는 간호사실, 투약 카트 등의 요소들을 최대한 지양한다. 일상생활 보조인력은 프로페셔널리즘 고취를 위해 일정한 트레이닝을 거친 ‘샤바즈’로 불리는 직원들이다.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과 업무에 대한 책임을 교육받게 된다. 그린하우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직원 비율, 가정과 같은 환경, 요양시설의 소규모 사이즈, 사전 직원교육 등 4가지 영역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린하우스 홈에 거주하는 입소자들은 삶의 질이 향상되고 진료의 질이 향상되었으며 가족 및 직원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입소자들과 직원이 소수라서 서비스가 집중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로 보여진다.
개인과 공동의 절묘한 밸런스, 유니트 케어
일본도 1994년 고령사회에 돌입하면서 장기요양보장제도 등의 노인보건복지정책 및 서비스의 정비 하에 노인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고 특히 시설 생활자 중심의 노인장기요양보호시설 서비스 제공에 비중을 두고 있다. 유니트 케어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으로서 인간중심케어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2006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와 중시가 생활 속에서 크게 작용하고 집단적인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유니트 케어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성향이 느껴진다. 일본의 유니트 케어는 유니트당 10인 이하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1960~70년대의 소규모 케어에서 시작해 1990년대에 개실화를 거쳐 현재는 개호보험법 도입과 함께 제도화한 상태다.
유니트 케어를 기반으로 한 시설의 건축적 특성은 개인적 공간과 공공적 공간의 융합에 있다. 서비스의 특징은 식사를 원하는 시간에 하고 목욕도 일반 욕실과 특수 욕실을 구분해 사용 가능하며 배설에 대한 케어도 완전한 개별화가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또 개인 침실을 통해 케어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받기 때문에 자립성과 프라이버시 확보가 가능하고 면회 시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 시설에서의 생활도 규제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움이 보장되고 개인 침실을 본인 희망에 따라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맞춤형 선택이 가능한 베넷세 스타일 케어
마치 회전 초밥 같다고나 할까. 일본의 요양시설 중 맞춤형 선택이 가능한 독특한 케이스도 있다. 일본의 베넷세 그룹 계열사인 베넷세 스타일 케어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의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홈 스타일을 갖추었다. 요양원, 그룹 홈 등 원하는 거주 형태와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7개의 시리즈 중 자신에게 알맞은 집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적 인간중심케어 기반의 KB요양시설 모델 개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출발한 KB골든라이프케어는 해외 선진 사례들을 벤치마킹하여 인간중심케어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의 자회사로 설립된 KB골든라이프케어는 우리나라 요양산업의 발전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다. 인간중심케어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 처음엔 직원(요양보호사)들의 마음을 얻고, 그다음은 가족(보호자)의 마음을 얻고, 마지막에는 입소자(환자)의 마음까지 얻어야 인간중심케어 모델이 완성된다. 따뜻한 감성과 냉철한 판단으로 만들어나가는 KB골든라이프케어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앞서 소개한 선진형 모델들을 기반으로 입소자 중심의 최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KB요양시설 모델을 개발했다. 인간중심케어의 특징은 그동안 살았던 삶의 연장을 추구한다는 것과 ‘집’ 개념의 적극적인 차용이다. 그래서 KB골든라이프케어는 ‘요양원은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깨고 언제든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가족들이 부담 없이 찾아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 지역사회와 동화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러 선진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노인요양시설이 주거시설 인근의 편의시설로 자리 잡으면 어르신들과 가족, 지역사회가 소통하는 도심형 요양시설을 구축할 수 있다.
KB요양시설 모델은 모두의 집이 다르듯, 8개 유닛별로 각 집의 콘셉트에 차이를 두어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평소에 쓰던 가구를 들여와 내 집처럼 익숙한 환경으로 꾸밀 수도 있다. ‘시설’이라는 명칭의 낯선 느낌이 아니라 집의 연장선으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또한 식사와 생활에 본인의 기호대로 폭을 넓히는 서비스를 구상하면서 하루 일과, 기호 등을 선택하는 선택칠판, 반 뷔페식 식사, 커튼과 이불 선택 등 기존 요양원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KB요양시설 모델은 3월 오픈 예정인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에서 처음으로 적용된다. 결국 콩 심은 자리에서 콩이 난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인간중심케어에 충실하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지속 가능한 시설이 될 것이다. 내 집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터전을 일구는 KB요양시설 모델이 명실상부 국내 요양산업의 착한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