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돌려드리지 못한 엄마의 사랑
- “여기가 수원인가? 어디니?” “엄마, 이천이야.” 휠체어에 앉아 바람과 소통하고 계시던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으로 모셔가라는 서울 S병원의 통보를 받고, 막내는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어머니를 이천 D병원으로 모셔갔다. 밖에서 마지막 식사로 평소 좋아하시던 우리밀국수를 드셨다. 엄마는 세상과의 이별을 그렇게 시작하셨다. 자식들이 오는 날이면 푸짐히 음식을 준비하셔서는 자식들 트렁크에 가득 채워 보내시곤 했던 엄마, 겨울철이면 손수 지으신 채소로 집집마다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셨던 엄마는 어느 날 병이라는 악마 앞에 무너져 침대 위에 누워버리시고 말았다. 힘드니까 농사 그만 짓고 편히 쉬시라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면서 “난 너희들 챙겨주는 재미로 산다. 농사를 안 지으면 무슨 재미가 있나?” 하시던 울 엄마. 울 엄마만큼은 안 아프시고 건강하실 거라 믿었는데 더 말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고 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현실은 가르쳐주고 있었다. “엄마! 운전면허증 따면 내가 차 사드릴게.” 운전을 하시고 싶어 하시던 엄마의 말씀에 여동생은 한글도 잘 모르시고 농사만 지으시던 엄마가 설마 면허증을 따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 약속을 했다. 하시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아버진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주셨고 엄마는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 ‘설마 엄마가 필기를 통과하실 수 있을까?’ 자식들은 엄마의 인지가 한 장을 채워 넘기는 것을 보고 애처로운 마음에, 최선을 다하셨으니 이제 그만하시고 관광이나 다니시며 즐겁게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하시던 엄마는 인지 한 장 반을 붙이신 어느 날 합격했다는 전화를 주셨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쏟아졌던 감격의 눈물. 68세가 되어 받으신 면허증을 우리 가족은 크게 확대해서 코팅을 한 뒤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조상의 영광을 알려야 한다며 한바탕 눈물파티를 했다. 그리고 동생의 축하 선물로 자동차 시승식을 하시는 엄마를 감격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후 엄마는 이건 아무개 친구가 병원에 데려가줬더니 준 선물이구, 이건 울 곗날 친구들 태우고 바람 쐬게 해줬더니 준거라며 콩에 들기름에 과자에 선물이 가득하셨다. 동생이 “엄마! 친구분들 모시고 다니다 사고 나면 큰일 나. 그니까 다른 사람 태우고 다니지 마” 하니 불호령을 내리셨다. “아파하는데 어찌 보고만 있냐.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셨다. 삶의 팍팍함에 지치고 힘들다가도 엄마가 해내신 노력의 결실을 생각하며 ‘나도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를 되새기며 나를 희망의 마술 속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그렇게 우리 자식들의 롤 모델이셨는데 엄마가 큰 병 앞에 갑자기 쓰러져버리셨다. 씽씽 달리던 시골 할머니의 자가용도 그렇게 멈춰버렸다. 그리고 누우신 뒤에는 오히려 자식들 마음 기둥이 흔들리실까봐 안타까워하셨다. 누워 계시는 내내 필자는 무력함으로 엄마를 바라만 봐야 했고, 엄마는 서서히 삶을 정리하며 가파른 호흡을 기계에 의지하시다가 미국 출장 간 큰아들을 보시고서야 눈을 감으셨다. 늘 사랑과 열정을 우리에게 심어주신 엄마. 아직 돌려드리지 못한 사랑이 너무나 많은데 울 엄마는 어느 날 우리 곁을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셨다. “엄마!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2017-05-18 09:23
-
- 민들레 반 선생님
-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렇게 급속한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수명연장의 측면도 있지만 출산율 감소도 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고령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침체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그동안 건축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니어들에게 주거문제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시니어들 중에는 70대 어르신도 있다. 요즘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교육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시간 많고 배움의 열정이 있는 시니어들에게 아주 적절한 실질적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움직이고 전공과 다른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평생 일했던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시니어들은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즐겁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34년 개띠이시니 올해 만으로 83세가 되셨다. 미술을 전공하셨지만 생계문제로 평생 나염공장에서 도안 일을 하셨다. 주로 여성옷의 다양한 문양 디자인을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미 문양이 많았다. 큰 도화지에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장미꽃을 가지런히 반복해서 그리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공장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작업실 벽에는 아버지께서 그리신 꽃문양 그림이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미대를 지망하려 하자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때는 원망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염 공장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 되었지만 아버지는 칠십대 초반까지 일을 하셨다. 그만큼 나염 계통에서는 도안사로서 유명하셨고 다행히 시력도 좋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칠십대 중반에 퇴직하시고 나서는 실버택배 일을 하셨다. 소득은 많지 않지만 매일 만보이상 걷게 되므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셔서 반대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폭우로 계단에서 미끄러지셨고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셨다. 그 후 동네 노인 복지관에서 일본어, 수채화, 동양화, 서예 등을 배우신다고 하셨다. 서양화를 전공하셨으니 기본이 잘되어있어서 수채화 반 선생님 밑에서 조교 활동을 하셨다. 그러다가 수채화 선생님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선생님 공모를 하게 되었다. 그 때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추천하였고 아버지는 조교에서 선생님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 때 아버지 연세가 80이셨다. 노인복지관의 취미 반은 어떤 분위기일까 늘 궁금했었다. 특히 아버지가 가르치시는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림 그리는 열기가 대단하다. 대부분 할머니 학생이다. 선생님 아들이 왔다고 박수도 쳐 주시고 커피도 타 주시고 토마토도 썰어주신다. 벽에는 학생들이 그린 작품을 빽빽하게 붙여두었다. 저건 내 그림이다, 저건 누구 그림이다 하면서 자랑을 하신다. 반 이름이 그냥 수채화 반이라고 해서 ‘민들레 반’으로 이름을 지어드렸더니 다들 좋아하셨다. 필자가 도화지에다가 민들레 그림을 그리고 민들레 반 학생들의 건강기원 글을 캘리그라피로 써 드렸다. 그림을 그리는 필자 주위로 할머니 학생들이 몰려들어 “부전자전 이네” 하신다. 필자의 그림도 벽에 걸렸다. 참 오랜만에 수채화 붓을 들어보았다. 민들레 반 학생들을 보면서 고령사회를 사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더 멋진 삶을 살고 계신다. 여학생들이 삶의 에너지 지수를 엄청 올려줄 것이다. 민들레 반 분위기를 어머니가 보시면 상당히 질투심이 생기실 것으로 우려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아니, 그 많은 할머니들한테 뭔 점심까지 다 사주고 그러냐!”
- 2017-05-16 14:47
-
- 고령사회, 더욱 조심해야 할 불조심
- 최근 한밤중에 우리 아파트 뒤편 동네에 화재가 났다.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는데 베란다 밖으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확성기가 요란해서 무슨 일인가 내다보았더니 바로 우리 집 건너편 숲 너머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구불거리고 좁아서 평소에도 차 두 대가 만나면 한쪽이 비켜줘야 하는 곳이었다. 드라마에 심취해 있어서 몰랐는데 그 좁은 길에 어느새 출동한 대여섯 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다. 새까만 밤길에 빨갛고 파란 경광등이 선명했다. 우리 집까지 번져오지는 않겠지만 바로 코앞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니 섬뜩하기도 했고 무서웠다. 그래도 필자는 그 와중에도 기자 정신을 발휘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동네는 예전엔 무허가 집이 즐비했던 산동네였다. 이제는 무허가 집이라 해도 말끔하게 단장하고 옆 텃밭을 가꾸는 등 목가적이고 아늑한 풍경이어서 가끔은 일부러 산책하러 가기도 했다. 아직 옛 정취가 남아 있어 담장마다 넝쿨 꽃을 늘어뜨리고 집 앞을 꽃 화분으로 장식한 소박한 집들이 보기에 정겨운 곳이다. 이렇게 깨끗하고 소박한 마을이지만,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못살던 시절을 표현할 때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언젠가 인기 드라마를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나왔는데 바로 이 동네였다. 덩달아 우리 아파트도 한 컷 찍히기도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주인공의 가난한 시절을 찍기 위해 이 동네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못사는 동네를 촬영할 때 이곳을 찾는다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그런데 유난히 이 동네는 불이 자주 난다. 웽웽 사이렌 소리가 울려 내다보면 연기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번 불은 재빠른 소방차의 대응으로 금세 불길이 잡혔다.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말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몇십 년 보아오던 무성한 숲의 나무들이 불타는 광경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불조심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오늘의 화재도 누군가의 실수로 일어났을 것이다. 불이란 사소한 데서도 일어날 수 있으니 각자가 평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른 최근 고령사회로 접어들어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니어는 젊은 사람보다 기억력과 행동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불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깜빡 잊는 바람에 큰일로 번질 수 있는 일이 많아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며칠 전에는 우리 아파트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8층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가스 불에 올려놓은 냄비를 잊고 마당에 나와 친구분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아랫집에서 연기가 올라와 위층에 사는 사람이 관리실과 소방서에 연락해 출동했는데 정작 마당에서 놀고 계시던 할머니는 까맣게 몰랐단다. 다행히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실내엔 연기가 가득했고 타는 냄새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많은 분이 할머니에게 조심하시라는 이야기를 했고 할머니도 미안한 마음에 무척 놀라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생판 남의 일만은 아니다. 필자도 가끔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타는 냄새가 날 때쯤 겨우 알아차렸던 일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아파트는 각 집마다 외출 시 가스와 전열기구 점검하라는 빨간색 경고 스티커를 배부했다. 필자는 스티커를 현관문 안쪽에 붙여놓고 나갈 때마다 한 번씩 더 점검을 한다. 나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닌 이런 사고가 노인이 늘어가는 세상에서는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서로가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불조심!!이다.
- 2017-05-16 10:08
-
- 영화로 배우는 노년의 지혜 2
- 할머니가 주재하신 식사 모임 감독; 조지 틸만 주니어 주연; 바네사 윌리엄스, 이르마 피 홀 제작연도; 1997년 상영시간; 115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영화로 가 빠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심점이 된 삼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시킨다는 할머니의 교훈은 진부할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딸들은 직업과 사랑, 자아실현을 위해 고분군투하고 손자에 의해 가정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성이 맡아왔던 화해, 안정의 역할을 손녀가 아닌 손자에게 맡겼음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성장해가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사진이 죽 나열된 후 소년 아마드(브랜드 하몬드)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할머니 조(이르마 P. 홀)는 미시시피에서 시카고로 이주해온 후 도박사였던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날리자 홀로 집안을 일으켜 세워 온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할머니가 40년째 주재해온 일요일 저녁식사 모임은 세 딸과 그들의 남편, 아이들이 모두 참석해야 하는 가문의 전통이다. 할머니는 여자가 참고 개척해나가면 집안은 잘 유지되며 인스턴트 대신 손수 만든 음식이 인간의 영혼을 살찌운다고 설교한다. 장녀 테리(바네사 윌리암스)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변호사이며 남편 마일즈(마이클 비치) 역시 변호사여서 이들 가정은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다. 테리는 성취욕과 자기주장이 강하며 변호사 일에 만족하고 있는 데 반해, 마일즈는 변호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미로 즐겨온 음악가로 전업하고 싶어 한다. 아기가 없는 이들 가정은 이래저래 충돌이 잦다. 차녀 맥신(비비카 A. 폭스)은 전업주부로 이해심 많고 자상하며 노동자 계층인 남편 케니(제프리 D. 샘스)도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가장이다. 맥신 부부는 아마드 외에 딸 하나를 더 두었고, 맥신이 또 임신한 상태. 이들 부부의 문제라면 케니가 테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테리는 맥신에게 시비를 걸어 가끔 다툰다. 미용사인 막내 딸 버드(니아 롱)는 램(메키 파이퍼)과 사랑에 빠져 임신부터 했는데, 램이 전과자여서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다. 버드는 옛 애인에게 도움을 청해 램을 취직시키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램이 자존심을 건드렸다며 행패를 부린다. 램의 꼬락서니를 보다 못한 장녀 테리는 깡패 삼촌에게 램을 두들겨 패달라고 부탁하고, 램은 총으로 맞서다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이 때문에 테리와 버드는 으르렁거리게 된다. 할머니의 가치관은 시대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당연한 것이고, 음식을 통한 영혼 고양에 대한 설교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 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차녀 맥신, 그리고 그녀의 아들 아마드로 이어지는 할머니의 가치관 잇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어서, 일견 시대착오적이며 안일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맥신의 생각이나 행동은 여성만의 인내 운운하는 선이라기보다 보편적 선, 중용 정신, 전통 존중 등이므로 편협하게 볼 것이 아니다. 각박한 현대사회, 가족 이기주의, 흑인 사회의 모순을 염두에 둔 인물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가장 끌리는 여성상은 장녀 테리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묘사는 성취욕 강한 여성에 대한 묘사가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그려지는 습성이 있어, 여성의 성취욕에 대한 몰이해와 한계를 드러냈다. 원만하고 너그러운 성격과 일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지닌 여성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여성들에 대해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작가의 인물 분석이나 구현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테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 등 집안 대소사에 들어가는 돈 문제에 댛새서는 테리에게 의존하는 가족들이 테리의 이 같은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테리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는 이들이 “돈이면 다냐”라는 식으로 대드는 것은 경제력 없는 사람들의 비틀린 심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머리를 써야 하고 시간에 쫓기는 테리는 맥신처럼 집안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 대신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을 내놓는 것이다. 돈에 관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테리의 남편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테리의 남편은 성공과 돈을 위해 뛰는 테리를 인간미 없는 아내로 본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망을 잘 이해해주는 테리의 사촌 훼이스(지나 라베라)와 관계를 맺는다. 이모할머니의 딸인 훼이스는 성인 비디오 배우로 집안의 골칫덩어리인데, 갑자기 나타나 온 가족을 불안하게 한다. 음악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반대를 하는 테리의 현실적인 태도와 즉흥적으로 아무 일이나 저지르는 훼이스의 유혹.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와 인간관계, 그리고 흑인 문제까지 얹어 아기자기하게 묘사하는 는 마지막까지 돈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0년째 방구석에 들어앉아 TV만 보던 할머니의 남동생 피트로 인해 찾게 된 돈이 이 가정의 분열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혼을 살찌울 음식도 돈이 있어 가능한 것 아닌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영화 제목 는 ‘영혼의 음식’이라는 직역보다는 미국 남부지방의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통 음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1960년대 중반부터 ‘soul’은 아프로 아메리칸 문화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였는데, ‘soul music’이 대표적이다. 에는 보이즈 투 맨의 ‘A Song for Mama’를 비롯해 ‘소울’ 가득 담긴 노래들, 재료의 풍미를 살린 푸짐한 흑인 가정 음식 등 들을 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 2017-05-11 14:34
-
- 철 이른 격포해수욕장
- 누에박물관을 돌아본 후 격포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로 갔다. 바로 옆에는 채석강이 있다. 층층이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는 여전했다. 4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곳이다. 풍경은 여전한데 그리운 아버지는 옆에 없어 가슴이 아려왔다. 그 당시 아버지는 지금의 필자 나이보다도 어렸다. 필자가 어느새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훨씬 넘어 손주들을 둔 할머니가 되어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과 함께 격세지감이 들었다. 바닷가는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수평선이 눈부시게 푸르고 깨끗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구분 지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직 피서철이 아니어서 바닷가는 한적했다. 빨간색의 비치파라솔을 펴니 파란 바다와 넓은 모래사장에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매우 더운 날씨였지만 비치파라솔 아래 그늘은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참으로 쾌적했다. 아이들은 필수품인 모래장난 도구로 융단처럼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대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필자도 덩달아 행복했다. 오늘은 며느리와 아기들을 외가에 내려주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오전 10시쯤 호텔 체크아웃을 한 후 아쿠아 월드로 가기로 했다. 물놀이만큼 신나는 놀이도 드물어서 어른, 아이 모두 들뜬 기분이 되었다. 실수로 호텔 방에서 커피 컵 하나를 깨뜨려 5000원을 추가로 내야 했다. 아쿠아 월드엔 연휴를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자녀와 함께 온 젊은 가장이 많았다. 우리 아들과 같은 다정다감한 젊은 아빠들이 많이 보여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필자도 물을 좋아해 수영장이 즐거웠다. 수영장 안에서는 필수로 수영 모자를 착용해야 하는데 수영 모자가 머리를 찰싹 눌러 웬만큼 두상이 예쁘지 않으면 어울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영 모자 쓰는 게 불편했는데 요즘엔 야구 모자로 대신해도 되어 훨씬 편해졌다. 아쿠아 월드는 실내와 옥외 수영장이 연결되어 있었고 아기들을 위한 작은 풀과 폭포, 여러 가지 슬라이드 놀이기구도 있었다. 필자가 가장 즐겼던 건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살 마사지였다. 여기저기 마구 두드리는 물줄기가 마치 안마를 받는 것처럼 시원하고 좋았다. 또한 아이들이 즐기는 슬라이드도 즐겼다. 곡선의 통로를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 무섭고 불안했지만 신나게 미끄러지는 게 즐거워 눈치도 보지 않고 자꾸만 줄을 섰다. 아들은 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신다며 웃었다. 서너 시간 놀다가 이곳의 유명 특산품 젓갈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며느리의 친정이 있는 계룡으로 가야 했으므로 젓갈로 유명한 강진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진에 가까워져 오니 동네가 온통 젓갈 판매장으로 가득했다. 아직은 젓갈 철이 아니어선지 동네는 한산했다. 한 젓갈 판매장에 들어가 사돈께 드릴 젓갈 세 종류와 필자가 좋아하는 낙지젓을 골랐다. 짭짤한 맛이 좋아 시식을 자꾸만 했더니 입안이 얼얼했다. 판매점 주인에게 동네가 조용하다고 하니 김장철에는 활기를 띤다고 한다. 계룡에 도착하니 사돈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녁을 함께한 뒤 며느리, 손주들과 바이바이를 했다. 외할아버지 차에 탄 손녀가 큰 소리로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외쳐서 가슴이 뭉클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들은 외가에서 며칠 즐거울 것이다. 연휴 중간이라 그런지 길도 막히지 않아 아들과 필자는 휴게소마다 서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커피도 마시며 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2박 3일의 꿈같은 휴가여행을 마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고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듯하다. 여행이란 이렇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준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벌써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연휴 여행에 엄마를 초대한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2017-05-11 11:17
-
- 손녀와 유채꽃
- 유채꽃은 제주도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부안의 유채꽃밭도 아주 볼 만했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눈부신 풍경을 이루었다. 몇 년 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는 팻말이 있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곳 부안 유채꽃밭은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필자도 꽃이 된 양 마음껏 셔터를 눌러 멋진 유채꽃밭 사진을 얻었다. 유채꽃 만발한 부안 마실길인 수성당은 재미있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수성당은 딸 여덟 명을 낳아 일곱 명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고 풍어와 무사고를 빌었다고 한다. 또 수성당 주변에서 선사시대 이래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이 발견돼 죽막동 제사 유적지임이 확인된 곳이라 한다. 유채꽃밭 속에서 손자, 손녀와 그네도 타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은 부안에서 유명한 누에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라며 고른 방문지다. 온종일 피곤했을 텐데 아이들은 잠을 안 자고 뛰어다닌다. 억지로 끌어안고 누웠더니 필자가 먼저 꿈나라로 갔던 모양이다. 아침에 손녀가 가만히 귀에 대고 “할머니~” 하고 불러 잠이 깼다. 콘도였으면 아침 정도는 간단히 해먹었겠는데 호텔이라 아래층 식당으로 갔다. 넓고 깨끗한 한식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누에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누에 형상을 한 귀여운 캐릭터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해서 손자 손녀는 신이 났다. 누에로 비단 실을 만들므로 실크로드와 부안의 선잠 농가에 관한 설명이 있었는데 실크로드(비단길) 라는 이름의 어원은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팬’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에서 주요 교역품이 비단인 것에 착안 그의 저서 ‘차이나’에 ‘자이덴 슈트라쎄’ 라고 명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면서 1910년 독일의 동양학자 ‘알버트 헤르만’이 교역로가 중국에서 시리아까지 간다고 주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동서의 교역로를 비단길과 초원길, 바닷길,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부안은 참뽕 프로젝트로 세계제일의 누에 메카를 꿈꾸며 입는 실크에서 먹는 기능성 실크로 녹색성장의 힘찬 도약을 하고 있다. 부안 참뽕 오디를 이용하여 뽕 아이스크림, 뽕 오디 과자, 오디 케이크, 뽕 술, 뽕 바지락죽 등 많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잠령제’ 라는 행사도 있는데 해마다 봄누에 치기를 앞두고 순조로운 누에치기를 빌며 인간이 기능성 식품생산을 위해 큰누에를 급랭 건조하는 죄를 천지신명께 고하고 잠령들의 안녕과 양잠 농가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의식이라 한다. 누에에 속죄하는 사람의 마음이 선하게 느껴졌다. 체험관에서는 실제 누에를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누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니 캐릭터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5살 손녀는 징그럽다고 싫다지만 두 살짜리 손자는 단풍잎 같은 손으로 누에를 살짝 만져보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작은 누에에서 멋진 비단 실이 나온다는 게 정말 신비스럽다. 농약을 하지 않고 키운다는 참뽕나무 터널도 지나보고 참뽕 잎도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부안의 참뽕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보았다.
- 2017-05-11 11:14
-
- 책상 위에 오뚜기
- 그때도 지금처럼 아직 쌀쌀한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었습니다. 필자는 엄마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엄마 손은 따뜻했고 필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영등포구에 자리 잡고 있는 우신초등학교. 당시엔 우신국민학교라 했죠. 그때 이미 5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은 100년이 훌쩍 넘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필자의 작은 눈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넓었지만 학생 수도 엄청나게 많아 그 큰 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신입생만 한 반에 70명 정도씩 20개 반 정도나 됐으니 대략 1400명은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입생 아이들은 모두 엄마나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왔으니 그야말로 학교운동장은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고요. 선생님이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외쳐도 운동장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등에 새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스케치북과 색연필 또는 색색의 크레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벼운 비닐가방이었지만 체구가 작은 아이들에겐 그나마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가방은 크고 덜렁거렸습니다. 학생들의 오른쪽 가슴엔 명찰이 그리고 왼쪽 가슴엔 손수건이 달려 있었습니다. 손수건은 멋진 장식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코를 닦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하고 영양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를 흘렸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푸른색을 띤 콧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잘 입지 못하고 밖에서만 뛰어놀아 늘 감기에 걸려 있었고 그래서 콧물을 그리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한 여 선생님을 따라 우리는 노래와 춤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춤동작과 노래를 모두 잘 따라했습니다. 이때 배운 노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군요. 지금도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이 노래를 배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검은 눈을 쏙 내어 뒤뚱거리며 배만 불쑥 내민 꼴 우습구나야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노래가 끝나도 우린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실이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우린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 한쪽 구석에 사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서 담임선생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내일은 몇 시까지 이제는 엄마 손 잡지 말고 혼자서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입학한 후 한 2주일 정도를 계속 아침 10시까지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매일 춤과 노래를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춤과 노래를 배우는 일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턱없이 부족했던 교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반, 오후반도 부족해서 오후 늦은 시간에도 반을 편성했거든요. 그리고 어떤 학급은 80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우글거리기도 했습니다. 책상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세대를 일컬어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합니다. 아마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를 걱정하는 것도 이처럼 엄청난 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부잣집 아이들은 중국집으로 가서 자장면을 먹기도 했는데 필자는 가난해서 그냥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집에 돌아와서 엄마는 자장면을 못 사줘 서운했는지 필자 눈치를 보더니 밖에서 꽁치 한 마리를 사다가 구어 점심을 차려주셨습니다. 나는 꽁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고기나 생선이 귀한 시절이었으니 꽁치 한 마리 구우면 가시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필자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마치 필자가 막내인 양 어리광과 떼를 써서라도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하는 아주 이기적인 꼬마였습니다. 형들이나 동생이 보면 얼마나 미웠을까요. 지금도 생각나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면서도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왜 가방을 벗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아마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이 멋있고 자랑스러워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살 많은 형들이 필자를 보더니 놀렸습니다. 1학년 꼴뚜기 말라빠진 꼴뚜기… 흔히 1학년 신입생들에게 놀리는 노래이지요. 괜스레 화가 났습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이름을 부르고 뛰어놀던 사이였는데 이제 그들은 2학년 선배가 되고 필자는 1학년 꼴뚜기가 되었으니 은근히 부아가 났던 것이지요. 놀리지 말라며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어울려 놀았으니까요. 봄이 올 때마다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봄 햇살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입학식 날,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도 아련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 2017-05-11 11:03
-
- 무의미한 삶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암과 같은 질환 환자의 말기는 무척이나 힘겹다. 진통제가 투여되어도 고통은 잘 가시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고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빌고 싶어도 말을 꺼내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리고 환자 입장에선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힘든 상황이 몇 달 혹은 몇 년 지속될 수 있다. 올 8월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이 시행된다. 그리고 이 법의 중심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한 장의 서류가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은 흔히 ‘김할머니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의 촉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2008년 세브란스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김할머니의 가족이 병원 측에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병원 측은 연명의료 중단을 거절했고, 결국 1년여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법원은 연명의료(인공호흡기 사용) 중단을 허용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후에도 김할머니는 200여 일을 자가호흡으로 생존했다. 이 사건은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사례로 기록되면서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문제와 의료기관이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연명치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의문 등이다. 이런 연명의료 거부에 관한 법률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많은 편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아직 관련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엔딩노트 등을 통해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종류와 여명에 대한 고지 여부, 연명의료와 존엄사에 대한 의견 또는 장기기증, 의학용 시신기부를 위한 등록 유무를 작성해 가족에게 알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김할머니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환자의 자기결정권 문제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난해 2월 제정됐고, 올해 8월 4일부터 정식으로 시행된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을 위한 관리 체계나 이행과 관련한 법률의 일부 조항은 2018년 2월 4일에 시행될 예정이다. 사실상 연명의료 거부는 내년에나 가능한 셈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요약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로 인해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말기 환자가 임종 과정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할 수 있고, 담당 의료진은 환자의 의견과 환자 상태 등을 고려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연명의료는 김할머니 사건에서 핵심이 됐던 인공호흡기뿐만 아니라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의미한다.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나 물, 산소, 영양분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연명의료 거절 방법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규정한 환자의 연명의료 거절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환자가 본인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의료기관)에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한 말기 환자가 담당의사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요청하면, 의사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나 호스피스 이용 여부 등을 논의한 내용을 포함해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물론 환자의 서명이나 담당의사의 서명은 필수다. 말기 환자는 아니지만 본인의 신념에 따라 사전에 미리 연명의료에 대한 중단 의사를 정해놓고 싶을 때 등장하는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이나 단체에서도 등록이 가능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는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결정과 호스피스 이용 여부, 작성 일시와 의향서의 보관 방법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아직 법 시행 전이지만 일부 사단법인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양식을 공급하고, 작성된 의향서를 보관하거나, 의향서 기록에 관한 카드를 제작해주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비영리기관의 형태를 띠지만 일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소액의 기부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현재 운영되는 사단법인이 연명의료결정법의 본격 시행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등록기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또 등록기관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해도 이들이 현재 제공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법에서 정해놓은 규정과 다르거나 시행 전 개정 등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주의해야 한다.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논란 중 이 법 시행에 대해서는 아직 의료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상 환자가 사실상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환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외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들의 권리는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법에서 정한 임종 과정이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등의 표현이 모호해 이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에게만 적용하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면 오히려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환자의 고통을 늘려 원래의 법 취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의 구조상 환자가 본인의 연명의료 거부를 분명히 밝히더라도 최종 집행에 관한 결정권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원활한 제도의 시행을 위한 여러 가지 보완 노력은 정부 부처와 의료계를 통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본격적인 시행이 이루어지는 내년 2월에는 시행령이나 시행 규칙에 따라 현재의 예상과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연명의료결정법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확실한 윤곽은 제도의 시행 시기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2017-05-11 09:34
-
- 고령 운전자를 도와주자
- 고령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굼뜨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려 사고대처에 신속하지 못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차량은 물 흐르듯 흐름을 타야하는데 노인 특유의 망설임으로 자신이 직접 사고를 내지는 않지만 우물쭈물하며 갈까 말까 주춤주춤 하다가 뒤 따라오는 차량의 사고를 유발시킨다는 보도도 있다. 사고 통계를 봐도 고령자가 확실히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 더구나 수명100세 시대니 고령자가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고 행정당국에서도 제도적 방지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옳다. 고령자들이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좋다. 일본은 나이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대중 교통비를 지원하면서 스스로 운전을 그만두게 하는 간접적 유인책을 쓴다.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면허갱신기간을 짧게 하고 시력이나 사지 운동능력을 검사하여 부적합한 경우 운전면허를 갱신해 주지 않는 강제적 방법을 택한다. 너무 쉬운 행정편의 주의적 발상이다. 이런 방법은 전기가 부족하면 전기요금을 올려서 간단히 해결하려는 방법과 같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부자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가난한 서민은 에어컨이 있어도 켜지 못하고 부채를 들도록 강요하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전기를 꺼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택한다. 사고의 위험을 알면서도 고령자가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심시숙고 할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 98세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102세의 할아버지가 소개 되었다. 사회자가 그 나이에 왜 운전면허를 취득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고령의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하고 아내 대신 장터에 가서 생활필수품도 구입하고 은행 업무도 보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하는 셀프부양의 시대다. 자식이나 이웃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세상인 점을 이해하면 고령자가 자동차를 운전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이제 더 이상 기계장비가 아니고 전자장비다. 차선이탈 경고시스템도 있고 전방충돌 경고시스템도 개발되어있다. 사가지대 경고는 물론 주차보조시스템도 있다. 사람은 실수를 해도 기계는 실수란 없다. 돈을 더 주면 각종안전장치를 자동차에 추가 할 수 있다. 멀지 않아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도 도로에 등장 할 것으로 이미 예고되어있다. 고령자의 자동차는 필요 안전장치를 달도록 의무화해야한다. 추가 비용의 일부를 국가든 자동차 회사든 어느 쪽에서 부담해 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후진국처럼 강제로 못하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원하면 하도록 해주고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선진국이다. 미국의 빈번한 총기사고를 보고 우리나라처럼 총기소지를 불법화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총기소지를 불법화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총기를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이들의 자유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총기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가 총기사용을 엄격하게 제어하기 때문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 의한 총기사고는 거의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힘이다. 지금의 고령화세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를 이만큼 잘 사는 나라로 발전시킨 공이 있는 세대다. 그들이 젊은 시절에 국가에 낸 세금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건물에 세를 산다고 볼 수도 있다. 노년이 행복하여야 인생이 행복하다. 고령자에게 지하철 무임승차를 가능하게 하여 움직이도록 유도하여 고령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국민의료보험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임플란트 시술에 의료보험을 적용해 주거나 무료 예방접종 등 지원정책이 무수히 많다. 고령 운전자에 대해 지원을 못해 줄 명분은 희박하다. 소요비용 또한 별 것 아니다.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긍정적인 검토를 희망한다. *동년기자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2017-05-08 16:01
-
- 가정의 달, 효도를 다시 생각하자
-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효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인식 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효도를 하여야 하고,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선 시니어들은 고민이 깊어간다. 즐거워야 할 가정의 달에 설ㆍ추석 명절 스트레스처럼 ‘가정의 달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효도를 받는 입장에서는 이처럼 전통적인 혈연ㆍ정서적 의미의 효도를 바라고 있다. 필자는 쌍둥이 손주와 외손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귀에 붙는다. 옛날 할아버지ㆍ할머니께서 손자들에게 내리 사랑하셨던 것처럼 손주가 있는 자체가 축복이다. 뺨을 비비고 껴안아주면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다. 효도를 하는 입장인 자녀 세대는 용돈, 비상시 목돈 등 부양료 지급 등을 우선순위로 꼽아 경제ㆍ물질적 지원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지금의 세태다. 지금은 맞벌이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숨 가쁜 직장생활과 고달픈 육아 등으로 부모가 원하는 효도의 실천이 쉽지 않다. 시니어 세대처럼 전업주부는 꿈꾸기 어려운 옛 이야기가 되었다. 오히려 시니어는 손주들을 돌보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도맡아야 주어야 한다. 이것이 정서적 교감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자녀 세대가 효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을 단순히 물질만능주의로 해석해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효도의 개념도 변하고 있음을 속히 인식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필요할 때 미리 알아서 티 나지 않게 보살펴주는 지혜를 익혀야 한다. 내가 필요하다고 부르거나 찾아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들은 시니어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그 후에는 부모 봉양을 나 몰라라 해서 결국 효도계약서까지 쓰는 게 세간의 화제였다. 효도의 정도에 따라 자식을 차별하여 상속분쟁ㆍ폭탄이 터져 풍비박산한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 갈등이 계속 늘어나자 국회에서는 불효자방지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아무리 법으로 효도와 부양 의무를 규정하더라도 효도의 총량을 수치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부모와 자식이 평상시 대화를 통해 인식의 차를 좁혀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 2017-05-08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