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황야’를 누벼 먹이를 물어 나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새벽 침상에서 와다닥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가는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직장에선 너구리 같은 상사와 노새처럼 영악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 종일토록 끙끙댄다. 퇴근길에 주점을 들러 소주병 두어 개를 쓰러뜨리며 피로를 씻어보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고 깨어난 이튿날 새벽이면,
“부동산이 전자제품이라도 됩니까? 돈이 얼마인데… 어떤 바보가 부동산을 전자상거래로 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예전에 참 많이 들은 말이다. 부동산은 전자상거래가 불가능하고 또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부동산은 고가의 재화라는 점, 거래 규모와 중요성을 따져볼 때 개별 물건의 현장 확인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거래의 안정성,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삶의 아픔은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들을 잘 참아 낼 때 드디어 환한 한줄기의 행복이 살며시 찾아온다.
어느 날엔가 초췌해진 친구가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기막힘을 털어놓는다. 어제 바로 교도소에서 나왔다고 했다. 필자는 눈을 크게 뜨고 어이가 없어 그냥 듣기만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속 한 문장이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을 길들였던 것처럼, 한홍섭(韓弘燮·71) 회장은 자신의 마음속 소행성 ‘쁘띠프랑스’를 길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돈’이 아닌 ‘꿈’ 덕분에 지금의 작은 프랑스 마을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청평호반 언덕
며칠 전 세 명의 60대 남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막걸리를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100세 시대로 화제가 넘어갔다.
“지겨운 배우자와 100세를 함께 사는 것은 고통이야.”
“100세까지 살려면 세 번은 배우자를 바꿔야 살 만하지.”
“그것도 모자란다.”
“난 먹을 것 충분히 주고 혼자 떠나고 싶어. 나를 찾아서.”
“그래서 졸혼(卒婚)이
가끔 영화라는 물건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종합예술의 ‘끝판왕’이며 표현되지 못하는 게 무엇일까 할 정도로 종횡무진인 데다가 최신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이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영역까지 다 들추어낸다. 게다가 영화적 상상력이 과학 발전을 앞장서 이끌어 갈 정도이니 족히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영역 대부분이
10년 전에 미국을 처음 여행했던 친구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지난번에는 서부였으니 이번에는 동부를 가고 싶은데 가는 김에 마침 아들 집에 와 있는 필자를 만나러 뉴욕도 잠시 방문하면 좋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그러나 뉴욕 집은 필자 집이 아니고 아들 집이라서 의논을 해야 했다. 아들은 한국에서 오시는 어머니의 친구 분이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빙빙 돌거나 혹은 주인을 무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한다. 물론 반려견의 경우 강아지가 이를 갈 때 하는 행동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스트레스 때문에 보이는 이상행동일 가능성이 많다. 마음의 병이 지나치면 큰 병이 된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행동을 세심하게 살펴보
남부기술교육원 옻칠나전학과에서 만난 이수매(李秀梅·63)씨는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옻칠나전 수업에 푹 빠져 있는 수강생이다. 그녀가 옻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박물관에서 옛 문화재들을 보며 매력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요리강사를 꽤 오래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쉬었거든요. 그러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에 전시장 속 칠기에 눈길이 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