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어버이날에 빠지면 섭섭한 것이 카네이션이다. 왼쪽 가슴에 붉은색 꽃이 꽂아지면 마치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꽃이 카네이션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왜 수많은 꽃들 중에 카네이션일까? 무슨 유래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카네이션의 꽃말은 그 색깔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분홍색은 ‘열렬한 사랑’, 노란색은 ‘당신을 경멸한다’, 빨강색은 ‘건강을 비는 사랑 또는 존경’, 적백색은 ‘사랑의 거절’, 흰색은 ‘순애’를 뜻한다. 그래서 어버이날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이 ‘빨강색’인 것이다. 흰 카네이션은 ‘슬픈 마음’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추모의 분위기에서 헌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네이션이 어버이날을 상징하게 된 유래는 미국의 한 소녀 때문이었다. 약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은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살던 안나 자비스(Anna Javis)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안나는 어머니 무덤 주위에 어머니가 살아생전 좋아하던 꽃인 카네이션을 심었다.
안나의 어머니는 26년간 마을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며 부모 없는 마을 어린이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폈다.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사랑하라”
안나의 어머니가 항상 아이들에게 가르친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안나는 카네이션 한 송이를 영전에 바치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이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뜻을 기리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카네이션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어버이날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다 1914년 5월의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Mother’s day)로 정했고 세계적으로 관습화 됐다. 이 후 살아있는 부모님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을 돌아가신 부모님은 자신의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선교사에 의해 이 풍습이 전파됐다. 1956년 국무회의를 거쳐 이승만 대통령이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1973년 어버이날로 변경되면서 ‘카네이션’ 행사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부모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로 현금이 뽑혔다고 한다. 물론 현금도 어버이날 부모님의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할 요소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른쪽 주머니에는 현금을, 왼쪽 가슴에는 숭고한 뜻을 담은 카네이션을 넣어 드려보자. 입가에 미소가 아닌 얼굴 모든 주름을 볼 수 있을 정도의 함박웃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사람이 사는 마당에 정보가 필요한 법이라 정확한 정보가 운세를 연다.
84년생 : 언쟁을 삼가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우려야 어려운 일을 안 당한다.
72년생 : 좋은 정보를 접하니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금전 운도 좋아진다.
60년생 : 남의 일로 구설수에 오르게되니 나서지 않음이 좋으리라.
48년생 : 애를 먹이든 문서가 매기가 있으니 이득이 약해도 결정하라.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통상적인 일이라도 눈을 멀리하면 틀어지는 것이니 게을리 하지 마라.
85년생 :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운세이나 게으름을 피우면 뒤에 애를 먹는다.
73년생 : 직장 사업장에서 이상한 일이 괴롭히니 맡은 일을 다시 점검하라.
61년생 :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움직이면 얻을 것은 얻어지고 일이 해결된다.
49년생 : 뜻밖의 횡재수가 없으면 술밥간에 좋은 대접이 있으리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심혈을 기울인 일은 지금 당장 빛나지 않아도 뒷날 보석처럼 되리라.
86년생 : 아무리 꾀를 써봐도 얻어지지 않으니 고대하지 말고 훗날을 기약하라.
74년생 : 답답한 일을 확 풀어주는 운세가 오니 망설이지 말고 처리하라.
62년생 : 성의를 담은 일이 허사가 될 운세이니 조심하고 미련을 갖지 마라.
50년생 : 고집으로 일을 고단하게 만들게되니 아집을 버리면 순리대로 처리된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아무리 이익을 위한 일이라도 선악을 가려서 추진해야 무리가 없다.
87년생 : 쓸데없는 걱정으로 힘만 드는 운세라 공연한 일에 나서지 않음이 좋다.
75년생 : 모함과 함정이 도사리니 말을 삼가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 것이다.
63년생 : 정신이 혼미해져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운이라 약속은 다음에 하라.
51년생 : 문서와 인장의 적절한 움직임으로 중도에서 이익을 취하는 수가 있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은 열리는 것이라 기다림이 상수이다.
76년생 : 좋은 인연이 새로 타나나는 운이나 아니면 좋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64년생 : 금전 운이 좋아 들어오는 것은 많으나 일이 꼬여 마음을 답답게 한다.
52년생 : 일사천리로 내딛든 일이 중도에서 막히니 대인관계를 다시 점검하라.
40년생 : 만사가 지체되나 때가 맞지 않음이라 생각하고 기다림이 좋으리라.
◇ 뱀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것을 만들 듯이 이런 마음이면 무엇이든 해낸다.
77년생 : 금전 운이 좋아 횡재 수는 있으나 윗사람의 미움을 받는 일이 있다.
65년생 : 부하를 보호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려움에서 일어나고 재수도 받는다.
53년생 : 횡재 수는 아니나 금전의 움직임은 크니 조심스럽게 투자해보자.
41년생 : 집중력이 떨어져 일의 막힘을 읽지 못해 애를 먹으니 타에 의뢰하라.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강물이 넘치나 떠 담을 그릇이 없으면 속만 타지 헛일이 아니겠는가.
78년생 : 무슨 일이든 준비가 소홀하면 힘이 드는 법이라 오늘은 준비를 잘하라.
66년생 : 다잡은 토끼를 놓치는 격이라 금전 운도 애정 운도 힘만 드는구나.
54년생 : 매일 좋을 수는 없는 것이라 오늘은 운수가 막힘이니 바라지 마라.
42년생 : 물심 양면에 만족한 운세이니 잘만 생각하면 많은 즐거움이 생기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하
무슨 일이든 활기가 문제라 활력으로 분위기를 살려 나감이 좋으리라.
79년생 : 선배의 좋은 권고로 새로운 일이 생기나 연인과의 갈등은 힘만 든다.
67년생 : 잔소리 같은 말도 잘만 들으면 투자에 이익이 클 것이라 귀담아 듣자.
55년생 : 몸에 이상이 발생할 수라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큰 고생을 한다.
43년생 : 마음이 허술해져 사기 당하는 일을 조심하고 돈 내놓을 일은 미루어라.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순간적인 발상이 평생을 여는 초석이 되니 작은 시간도 허비하지 마라.
80년생 : 미루든 일을 처리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금전 운도 열린다.
68년생 : 이상한 꾀임에 빠져 일이 힘들고 손 재를 당하는 운이니 조심하라.
56년생 : 가물치 판돈은 통속에 있는 법이라 투자한 것이 크게되는 운세이다.
44년생 : 횡재수가 아니면 먼 곳에서 자손의 좋은 소식이 오리라.
◇ 닭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한결 같은 마음가짐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81년생 : 힘든 일로 용돈이 만드니 좋은 곳에 써야 재수가 끊기지 않으리라.
69년생 : 비바람도 잠시라 걱정도 잠깐 지나가는 것이니 참고 견디면 해결된다.
57년생 : 물건을 잘못사서 애먹을 운이니 필요는 하나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
45년생 : 나쁜 기운의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니 현혹됨이 없어야 한다.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말의 능력은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마력이 있음이니 표현을 잘해보자.
82년생 : 말도 안 해보고 혼자 단정하는 것은 기회를 잃음이니 한번 열어 보라.
70년생 : 어렵게 생각하면 할수록 힘이 드니 생각대로 처리하면 재수가 열린다.
58년생 : 작은 일에도 소홀함이 없이 신중을 기한다면 오후에 큰 이득을 얻는다.
46년생 : 물에 빠진 놈 건져내니 보따리 내놔라 는 운이니 나서지 않음이 좋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쓸데없는 열등감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 것이니 마음을 크게 열라.
83년생 : 내가 마음을 열면 다가오는 사람도 많고 구하는 것도 잘 들어온다.
71년생 : 좋은 기운의 상승세라 희망하는 일이 열리고 금전 운도 확 풀린다.
59년생 : 빗나가든 일이 길을 다시 잡으니 일에 활기가 가해지고 서서히 열린다.
47년생 : 마음속에 꼭 잡고 안간힘을 써든 것을 놓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리라.
양영애 인제대학교 교수가 말하는 치매 예방과 치료 전략의 완성
양영애 인제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작년 2013년에 열린 제8회 전자·IT의 날 대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는 지난 28년 동안 고령자와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용구, 고령친화용품, 장애인 보장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것과 복지 IT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최근의 활동에 대한 인정이었다. 한국고령화친화건강정책학회 회장이자 고령자치매작업치료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고령화와 치매에 대한 과학적 대안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양 교수는 자신이 바라보는 치매 문제 해법을 위한 전략적 시선을 ‘작업치료’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었다.작업치료사의 진정한 역할과 치매 치료를 위한 다양한 요소의 결합과 종합적 방안을 추구하는 양 교수의 설명을 들어본다.
“치매 환자는 시설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선은 예방이 중요하고, 치매가 진행되기 시작했다면 중증의 예방이 중요하죠. 모든 걸 예방 중심 개념으로 바꿔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양영애 인제대학교 교수는 본인의 어머니도 현재 요양시설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양 교수가 말하는 목소리에 보다 신뢰감을 더하게 만드는 요인인 건 확실했다. 내 가족이 바로 그 당사자라는 것, 그것보다 더 치매 문제에 대해 절실하게 다가가야 할 설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치매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집중력 기억력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환자로 하여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끔 도와줘야 해요. 그리고 치매환자들의 감정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표정이 되고 무대화가 되는 걸 막아야 해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치매 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다
양 교수는 해외 치매 선진국에서 갖춰 놓고 있는 다양한 대처들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다고 지적했다.
“치매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많습니다. 우선 치매 환자가 있다면 집을 ‘치매 환자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째서 시설이 아니라 집일까? 이것은 치매를 예방 차원에서 바라보는 양 교수의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치매 예방은 시설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있는 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순차적이고 자연스러운 치매 대책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치매 환자가 집안에 있게 될 경우 처하게 될 위험한 상황은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위험하게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자동잠금장치가 필요할 것이고 넘어지거나 쓰러질 경우 상처를 입는 걸 막을 낙상 관리 등이 필요하다. 양 교수는 그러한 안전장치들을 외국에서는 부착 장치 등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치매 환자를 위해 집을 통째로 뜯어 고치는 것은 당연히 많은 비용과 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치매 환자를 위한 ‘설치형’ 장비들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치매 환자 사고 예방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를 바쁘게 만들어라
“치매 환자 관리는 생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치매 환자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하게 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거죠. 한마디로 먹여주는 게 아니라 먹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양 교수의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던 내용이 일상생활 훈련의 중요함이었다. 양 교수가 독일과 일본을 가서 치매 환자가 있는 기관을 가봤더니, 좋고 고급의 기술을 갖춘 기관일수록 환자가 바빴다고 한다. 환자 자신이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이다. 환자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를 줄이고 병세 개선에도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환자를 그저 누워만 놓을 뿐이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기관은 외형상으론 잘 되어 있는데 질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좋은 기관은 좋은데 안 좋은 기관은 너무 떨어집니다. 이 갭을 줄여서 좀 더 좋은 시스템을 보편화하는 게 좋아요. 서비스가 보다 확대되려면 인력도 보강되어야 하죠.”
양 교수는 요양보호사에게 무작위로 권한을 주는 것이 문제라고 쓴소리를 했다. 요양보호사에게 모든 걸 맡긴다고 하면, 평가는 누가 하는지에 대해 되묻는 말이었다. 전문 인력의 현장 부재는 왜곡된 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양 교수는 그래서 항상 전문 인력을 현장에 끌어들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좋은 교육, 좋은 환경, 일상생활 지도 등등이 시급하다는 게 그녀의 진단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
“일본에서 본 건데 환자들이 페트병에 물을 넣은 걸로 근육 훈련을 하더군요. 독일을 갔더니 오재미로 운동하고 있었어요. 이처럼 마지막까지 감각을 조절하는 법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균형이나 평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죠. 또한 수첩이나 달력을 이용해 인지능력을 보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현장에서도 인지훈련이 이뤄지고는 있는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다는 거죠.”
양 교수는 치매 환자들의 대인관계와 사회성 훈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치매 노인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건 치매 치료 분야에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양 교수는 정상인 노인과 치매 노인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부류를 같은 장소에 두게 되면 양쪽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며 치매 환자의 사회성을 추구하자면 지역밀착형 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시설과 기관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신속한 환경 개조예요. 환자의 동선을 예측하여 안전을 보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렇게 되려면 보호자가 환자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므로 보호자 교육도 필요해지는 겁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준비되어야 치매 환자의 사고를 방지하는 게 가능합니다.”
밥 먹이고 잠만 재우는 건 환자 관리가 아니다
양 교수는 외국의 우수 시설을 가면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 체크해서 환자 대처를 한다고 밝혔다. 밥만 먹이고 잠만 재우는 게 요양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람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관이나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세세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옷 입는 법에서부터 목욕하는 것까지 모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해외 치매 선진국에선 안 하는 것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함부로 행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양 교수는 우리나라 요양 시설 현실을 보면 기저귀가 비용이 비싸다고 하여 자주 안 갈아주고 덧대는 걸 이용하여 더러워진 기저귀를 계속 입게 한다고 한다. 위생상으로나 시설 관리 차원에서나 다소 충격적이었던 이 설명 부분에서, 그녀는 외국의 대안적 사례를 예로 들었다. 양 교수는 기저귀 자체를 되도록 쓰지 않는 편이 좋다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그 배변 부분을 환자로 하여금 직접 화장실을 사용하게끔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한 번 그녀가 강조하는 생활적 측면의 지원 및 훈련에 대한 강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치매 환자를 위한 준비는 우리의 미래
지금까지 설명된 양 교수의 치매 환자에 대한 대처법은 하나의 이론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바로 ‘작업치료’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치매에 대한 통합 전략이었다. 작업치료는 목적 있는 활동과 치료 중재를 통해 환자의 회복을 돕고 환자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최대화하여 독립적 일상 생활과 사회 적응력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정의다. 이를 위해 운동 영역을 키우는 소근육활동으로서의 손가락 운동, 집중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지, 배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화장실 구조의 재구성, 인지재활을 위한 다양한 평가지 마련 등등 종합적인 치매 컨설팅 개념으로서 작업치료가 준비되고 있었다. 다만 컴퓨터 인지재활에 대해선 환자의 기록을 데이터화하여 보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너무 외국 것을 많이 가져와서 아직 확실하게 신뢰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치매 환자를 위한 준비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미래는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잘 구축해 놓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다소 거침없지만 논리적인 정책 구상에 조예가 깊은 양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 '복지용구' 활용 부분과 지역밀착형 치매케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치매특별등급 확대로 인해 요양보호사 교육이 한창인 요즘 방문재활의 전문가가 절실함을 깨닫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손해보는 일이 많으니 주의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이니 혼자만의 속단은 화를 부르니 의견 수렴을 하기 바란다.
84년생 :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기나 이겨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72년생 : 남의 주머니를 믿으면 더욱더 힘들어지니 잘 견디어 내야 된다.
60년생 : 어디서 차용하더라도 이 일은 해결해야 뒷일에 문제가 없다.
48년생 : 자식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힘든 일이 해결된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호사다마라 좋은 일에는 반드시 방해가 따르니 감수하고 진행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진행이 빠르고 얻음도 클 것이나 방해가 있으니 차근히 진행함이 길 할 것이다. 자중하여 행하라.
85년생 : 새로운 아이디어 샘처럼 떠오를 때니 좋은 곳에 쓰도록 하라.
73년생 : 길가다 보석을 줍는 격이니 출입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61년생 : 계약 건은 힘들고 재수는 좋으니 다른 쪽을 알아봄이 길하다.
49년생 : 명예는 오르나 재수에는 흠이 많아 구하지 않음이 마음이 편하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주는 곰이 돈은 엉뚱한 사람이 다가져가니 힘만 드는구나. 동분서주하여 일을 도모해 이익은 타인에게 돌아가니 허망히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라.
86년생 : 할 일 없이 서성대면 시간만 낭비되니 가던 길이나 열심히 가라.
74년생 : 귀인이 따로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니 놓치지 마라.
62년생 : 근본을 한 번 돌아보면 무엇이 막혔는지 알 수 있어 열어가리라.
50년생 : 지금은 답답하나 인내하면 길이 보일 것이니 기다림이 상책이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망망 대해를 떠도는 배도 길이 있는데 사람의 갈 길이 없겠는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굳건히 맡은 바를 행하라. 길함이 유할 것이니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두운 구름만이 머물게 된다.
87년생 : 좋은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세운 것만 못하다.
75년생 : 새로운 구상 나침반이 필요한 때이니 계획을 잘 세우면 길이 보인다.
63년생 : 재수가 생기다 마니 답답할 것이나 오후에는 조금 풀리니 기다 리라.
51년생 : 점심 약속이 틀어지니 기분이 안 좋으나 더 좋은 일이 생긴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손오공이 날아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잔 꾀를 부려 어려움에서 모면하고자 하나 모두 발각되어 일신에 신용이 실추되니 망동은 삼가하고 중도의 길을 걸으라.
76년생 : 가슴을 활짝 열어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64년생 : 마음에 있는 소리도 안 하면 상대가 모르니 속 시원히 해 보라.
52년생 : 상대를 칭찬하고 세워주면 술밥간에 먹을 것이 생긴다.
40년생 : 나를 내세우지 말고 일을 도모하면 얻는 것이 크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려다 망설여 그만둔 일이 새로이 떠오르니 적당한 시기를 찾음이라.미루어 왔던 일이 실마리를 찾으니 길함이 있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진하라. 득이 있을 것이다.
77년생 :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 재수가 오다가도 돌아가니 편한 마음을 갖자.
65년생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라.
53년생 : 대궐 출입의 꿈을 꾸어 감투 쓸 일이 생기니 사양하지 마라.
41년생 : 나에게 좋은 일거리를 만들어주니 힘이 절로 나는구나.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사방을 돌아봐도 꽉 막혀 있어 불안하나 하늘이 도우니 힘을 얻는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도 뜻하지 않게 실마리를 찾아 해결을 하게 될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길함이 있음을 잊지 말라.
78년생 : 구관이 명관이라 버리고 돌아선 곳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가라.
66년생 : 안 된다고 실망 마라 바른 일이라면 하늘은 도움을 줄 것이다.
54년생 :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42년생 : 오랜 친구들과 한해를 보내는 기분으로 주석을 만들면 즐거우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청탁을 받을 때가 좋은 것이다 거절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라. 일신이 높은자리에 유하니 여러사람들이 몰려 들어 부탁의 소리가 분분하다 자못 기분을 상할 일이 발생하니 처신을 잘하라.
79년생 : 언짢은 심부름도 하고 나면 훗날 나에게 득이 된다.
67년생 : 일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처리하면 꼬일 일이 없어 모든 게 밝아진다.
55년생 : 옥에 티가 있어 나를 몰라주니 기분이 상하나 옥은 옥이다.
43년생 : 나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겸손히 대하면 새로운 등용의 문이 열린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심기 일전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쓸 때가 되었으니 망동만 삼가라.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나는 의지가 필요할 시기이니 실의에 자책하지말라. 운기란 돌고 도는 것이니 구름이 걷히면 밝은 빛을 보게 됨과 같다.
80년생 : 자책은 그만두고 일어서라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
68년생 : 심혈을 기울인 일이 허탕이나 탈기 말고 다시 도전하면 알아준다.
56년생 : 아직도 길은 많으니 좌절하지 말고 동쪽을 찾아보면 길이 있으리라.
44년생 : 체통은 뒤로하고 코미디를 하더라도 아랫사람의 인정받으면 좋으리라.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배속은 비었는데 주막은 멀어 그래도 주먹밥이 허기를 면해준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라 운기가 길하니 순순히 해결할 것이며 지체하다 때를 놓치기 쉬울 것이다. 매진하라.
82년생 : 괴로움에서 벗어나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일단 두드려 보라.
70년생 : 집착한 만큼 일의 성과도 크니 공을 드려야 소득이 커진다.
58년생 :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워 만사가 눈에 안 들어오니 조심해야 한다.
46년생 :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 시키나 재주는 부릴 줄 아니 잘 다스 리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누구에게나 끼는 있다. 전문적인 끼는 좋은 예술을 창조하는 법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때가 이른다. 하지만 나만의 재능인냥 자만하지 말라. 경거망동은 운기를 불길하게 하니 자중함이 길하다.
83년생 : 한가지 재주로 일어서 보자 오늘 하루가 즐거워진다.
71년생 : 나의 기량을 알아주도록 보여줌이 모든 일에 생기를 넣는다.
59년생 : 돼지꿈을 꾸었으니 복권은 이럴 때 한 번 사보는 것이다. 금전 운 길.
47년생 : 찾아가서 해결을 봐야지 기다리면 일을 그르친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봄이다. 봄은 ‘볼 게 많아서’ 봄이라고 한다. 여기서 봄맞이 맛보기 퀴즈 하나 내겠다.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은 어디일까?’ 정답은 바로 북한산이다. 기네스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산은 수도권 어디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교통환경과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연평균 탐방객이 865만명(2009년 기준)에 이르고 있다.
북한산은 기록적인 탐방객에 힘입어 인기는 압도적인 반면, 북한산성 및 북한산 내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왔던 것이 현실이다. 현재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남한산성과 한양도성과 유사한 규모와 성격을 갖춘 관방유적임에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북한산성(사적 제162호)에 대한 세계유산적 가치와 문화유산적 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 ‘산 속 도성(都城)’…삼국시대부터 정치ㆍ군사적 요충지
북한산 문화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북한산성은 숙종 37년(1711년)에 대대적인 축성공사를 거친 산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유사시를 대비해 마련한 ‘산 속 도성(都城)’이다. 북한산의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보현봉, 문수봉, 나월봉, 증취봉, 의상봉, 원효봉 등을 연결해 쌓은 산성으로 규모는 길이 12.7km이며 내부 면적은 여의도의 2배 이상인 6.2㎢(약 188만 평)에 달한다. 행정구역상 성 내부 전체와 성벽의 절반 이상이 경기도 고양시에 속한다.
성벽에는 주 출입시설로 대문 6곳, 보조출입시설로 암문 8곳, 수문 2곳,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 143곳 등이 있었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주둔 부대가 머무는 군영 3곳,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 8곳, 승군이 주둔하던 승영사찰 13곳, 군사지휘소인 장대 3곳 등이 있었다.
성벽은 지형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면서 쌓았는데 계곡부는 온전히 높이 쌓았고 지형이 가파른 곳은1/2 혹은 1/4만 쌓거나 아예 여장만 올린 곳도 있으며 봉우리 부분은 성벽을 쌓지 않았다.
성곽시설 중에 시구문이 있는 점, 여장을 한 개의 화강암으로 만든 점, 포루를 설치하지 않은 점,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이중성으로 축성한 점 등은 다른 산성과 구별되는 북한산성만의 특징이다.
특히, 북한산성은 18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반영된 독특한 방어시설로 조선시대에 도성과 방어용 산성을 갖춘 전통적인 도성방어체계의 완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예로 축성 이후 원형을 유지하고 축성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 등이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 북한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인 ‘북지모’ 출범
이 같이 다양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는 북한산성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은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 북한산성 교육정보센터에서 북한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인 ‘북지모’ 출범식을 개최했다.
‘북지모’는 북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지난 1년여 넘게 300여 명의 회원을 모집, 지난 2월 28일 예비 모임을 갖고 이날 단체명과 회칙을 확정해 정식 출범했다. 이날 북한산 백운대를 4천번 등정한 하정우 어르신과의 특별한 시간도 마련됐다.
‘북지모’는 흔한 등산 모임들과는 달리 북한산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북한산성 등 북한산 내 100여 곳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아름답게 가꾸는 일들을 해 나갈 예정이다.
북지모는 올해부터 ▲북한산성 내 문화유산 학습 및 탐방 ▲인문학 아카데미 운영 ▲‘북한산성 사람들’과의 대화 등의 활동을 적극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4월 모임에서는 ‘북한산성내 각자를 따라서’라는 탐방 주제로 수구명 각자, 칠유암·비석거리·괘궁암·금위영·대동문 각자 등을 찾아보는 현장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북지모는 북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참여신청은 블로그(http://blog.naver.com/buksamo) 또는 전화(031-968-5325~9)로 문의하면 된다.
김성태 북한산성문화사업팀장은 “경기도, 고양시, 경기문화재단은 북한산성을 가꾸고 알리기 위해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을 신설하고 북한산성의 조사, 연구, 정비, 복원, 활용 등의 사업을 추진해왔다”며 “이번 북지모 출범은 그야말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산성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귀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북한산 백운대 4천번 등정한 두산(斗山) 하정우(82) 어르신 “북한산은 정겨운 말벗이자 부모님의 품속 같은 곳”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Hours Rule)’으로 설명되는 어르신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1만 시간은 쏟아부어야 한다는 이론으로 성공한 이들은 모두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3시간 이상 10년을 투자하며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북한산의 정상 백운대(白雲臺·836.5m)를 무려 4000번 등정한 두산(斗山) 하정우(82, 일산) 어르신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산에서 산, 산 같은 사람’이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어르신은 1953년 고시행정과(제4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해 20대 후반에 군수를 지냈다. 30대엔 부산직할시국장, 민주공화당 정책위전문위원, 무임소장관실 관리관을, 40대엔 국회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50대엔 한국증권거래소 수석부사장, 아세아투자자문(주)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요즘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이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인생살이엔 나름의 굴곡과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
어르신은 서른 아홉살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른 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국내 150개 산을 등정하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말레이시아 키나마루 등 세계 각지로 트레킹을 다녔다. 올해로 등산경력만 43년. 15년 전부터는 북한산 매력에 푹빠져 백운대만 4천번을 등정했다.
“나 보고 사람들이 ‘취미도 별나다’라고 하지만 북한산은 무기력한 삶을 활기 넘치게 바꿔 준 가장 정겨운 발벗이자, 참 스승이며 영혼의 쉼터입니다. 내 힘의 원천이자 건강을 지켜주는 주치의이기도 하고 포근한 부모님의 품만같고 시골의 옛동산같은 곳입니다.”
어르신은 요즘도 일주일에 3~4일은 새벽마다 북한산에 오른다. 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등산실력을 자랑하며 백운대까지 1시간 30분에서 4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한다.
“그냥 산이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을 찾아 신중하게 산을 오르다 보면 성취와 자신감을 얻게 돼 타성에 빠지지 않고 삶이 무의미한 일상으로 전락하지 않게 됐죠.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 다 산 덕분입니다. 산이 곧 신앙입니다.”
하정우 어르신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산에 오르면서, 산을 닮고 싶다 했다.
“나는 산이 좋고 산을 닮고 싶다. 언제고 말 없고 베풀기만 하고 꾸밈과 욕심이 없고 포용해 주고 높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넉넉하고 우뚝한 그 덕성을 한없이 기리면서 산의 한 조각이 되고 산의 모든 것을 닮고 싶다.”
어르신은 그간의 등산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북한산성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데 일조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글ㆍ사진|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어느덧 40년. 명창 김영임씨가 국악에 몸담은 세월이다. 20년 전부터는 효(孝)를 주제로 한 공연을 펼치며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그동안 자그마치 100만여 관객이 그의 소리를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울고, 덧없는 인생역정이 떠올라 울고, 자식들이 헤쳐가야 할 인생 험로가 근심스러워 운다. 관객 모두가 자식이자, 부모이기에 더욱 깊이 공감한다. 그렇게 한껏 눈물을 쏟아내면 용솟음치는 카타르시스와 그 뒤로 잔잔히 우러나오는 애뜻함이 있다. 그래서 김영임의 소리는 효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한 예술인이 20년 가까이 한 주제로 콘서트를 했다면 이젠 눈 감고도 레퍼토리를 술술 외울 정도로 익숙해졌을 터.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위기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경계하듯 김영임씨는 그날그날의 공연이 마지막인 것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놓는다.
“무대에 설 때마다 오시는 분들에게 감동이나 관객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드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거든요. 젊을 때에는 부족해도 예쁘게 봐주셨지만,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더 좋은 소리를 내야 하고 관록이 드러나야 하죠.”
오는 5월10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효 대공연-소리’에서 깊은 감동을 선사하게 될 그녀를 만났다.
-국악인으로 40년을 사셨다. 효 공연은 초연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관객들의 흐름도 보일텐데요.
우리 소리라고 하면 연세가 많은 분만 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우리 공연은 어린아이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이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어요. 효 이야기를 담은 우리 소리와 연극이 함께 어우러진 공연이에요.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고, 부모는 자식을 기르면서 헤쳐온 길을 돌아보게 되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마음가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수원시는 효의 고장이잖아요. 5월이면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달이고. 공연의 컨셉과 가장 잘 맞는 거죠. 우리가 항상 부모님에게 잘 해야겠지만, 늘상 마음 뿐인게 우리의 걱정이잖아요. 공연이 가정의 달인 5월에 열리는 만큼 여러분들에게 오랫동안 우리 소리를 지켜온 김영임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딸이자 며느리, 어머니, 또는 아들, 사위, 아버지의 삶을 거쳐가게 되는데 공연을 통해 효에 대한 생각과 ‘김영임이란 사람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구나’하는 감동을 주고 싶어요.
-수많은 공연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 텐데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주일 동안 14회의 공연을 소화했던 적이 있어요. 하루에 2회씩 연달아 무대에 올랐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거든요. 그렇게 마라톤 공연을 해도 다시 무대에 설 힘이 나는 이유는 제게 선물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죠. 공연마다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광경이 한 장면씩은 꼭 있어요.
한번은 어머니를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이불을 싸서 휠체어를 태워서 오시는 며느리나 딸이 있었어요. 경희대학교 명예의전당에서는 3일간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날에는 비가 엄청나게 왔어요. 더욱이 그곳은 주차장에서 공연장을 오려면 언덕을 올라와야 해서 객석이 많이 빌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수많은 자식들이 어머니를 들쳐업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옆에서는 며느리나 딸들이 우산을 받치고요. 그날도 객석 5천석을 가득 매웠어요. 그런 광경을 보면 제가 먼저 무대 뒤에서 감동을 받죠.
-해외 공연요청도 많이 다니시죠?
네. 198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죠. 카네기홀은 모든 아티스트가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잖아요. 그곳의 3천석을 다 매웠는데, 레드카펫에 리무진에서 한복을 입고 내리는데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공연이 스케일이 크다보니 외국에서 개인적으로 섭외가 많이 들어와요. 지금은 LA,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영국 로얄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 적도 있는데,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니까 파란 눈의 단원들이 바이올린 활대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해줬어요. 무채색 계열의 오케스트라 의상과 화려한 색감의 한복이 보여주는 대비는 소름끼치도록 멋있었어요.
-남편 이상해씨도 함께 무대에 오르고 계시는데, 파트너로서의 남편 이야기도 해주시죠.
콘서트 내용은 가족 이야기거든요. 사실 효 공연을 시작하게 된 것도 남편의 아이디어였어요. 남편이 연예인이다보니 관객들이 먼저 원하죠. 제 남편도 어르신들을 위해 무대에 서야겠다고 결심해 한 무대의 주인공이 됐어요. 처음엔 서먹하고 창피했지만 이제는 익숙하죠. 가끔은 나보다 이상해씨가 더 박수를 많이 받아요. 잊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주는 올드팬에게 항상 감사하죠.
최근에는 대중에게 그간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에 무료 공연을 하고 있어요. 형편 탓에 공연장에 올 수 없는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해요. 제게 이런 일을 하도록 한 것도 남편이에요. ‘재능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돈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공연을 해드릴 수 있지 않느냐’하는 동기부여를 계속 주거든요. 저도 이제는 환갑인 만큼 앞으로는 재능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국악인의 길을 가게 된 강렬한 계기가 있을텐데요?
어릴 적부터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 좋아했던 가수가 은방울자매, 이미자 등이었죠. 집안에 국악을 즐겨듣는 사람이 없어서 민요는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러다 언니와 함께 여성국악극단의 공연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고 국악에 빠져들었죠. 하지만 부모님은 ‘쟤가 커서 뭐가 되려고…’하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옛날엔 공부 웬만큼 해서 좋은 남편 만나서 결혼하는 걸 바람직하게 여기는게 어른들의 생각이었거든요.
오빠가 미국에 있었는데, 노래 못하게 미국으로 보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어요. 결국은 큰언니가 수원으로 시집을 가면서 저를 데리고 갔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까 시집 보내려고 문화센터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꽃꽂이도 가르쳐줬거든요. 그런데 그게 하나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노래만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집에서 노래만은 안 되고, 무용을 가르치는 걸로 결론을 냈지만, 무용을 하면서 경기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가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19세 때였죠. 제가 무용은 14세부터 했는데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창부타령, 한강수타령 등의 노래가 나오는데 몸에서 소름이 끼치는 거예요. 그때 경기민요 명창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로 바꾸게 된 거예요.
노래를 하기까진 수원에 계시던 큰스님이 큰 역할을 하셨죠. 언니네 집에 붙들려가서 가위로 머리카락이 다 잘릴 지경이었는데, 마침 언니가 불교신자였어요. 큰 스님이 집에 오셨을 때 언니가 ‘동생을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더니 그 스님이 말하길 ‘동생은 보살님 마음대로 하는 동생이 아니다. 동생이 하고싶은 대로 놔둬야 한다’고 얘기해 준거죠. 그때 언니가 저를 놔준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제가 있게 됐죠.
-한때 가수로서, 연기자로서 활동할 기회도 많았는데 왜 굳이 국악을 고집해오셨나요?
실제 드라마를 했었고, 광고도 출연했어요. 한때에는 가요를 하라는 제의도 있었죠. ‘동백아가씨’를 작곡한 고(故) 백영호 선생님이 ‘제2의 이미자로 키워주겠다’는 제의를 해서 음반을 낸 적도 있지만, 결국 내가 갈 길은 ‘소리’였어요. 소리를 하면 온 몸에 전율이 오고, 잠을 자도 환청이 들리고, 24시간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일상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문하생들을 보면 ‘너희는 왜 수업이 끝나고 책을 덮으면 거기서 끝나니?’란 말을 자주 해요. 화장실을 가든, 설거지를 하든, 차를 타고 어디를 가든 노래가 입에서 맴돌아도 노래가 될까말까 한데…. 이건 전공자에게 하는 얘기거든요. 아마추어라면 노래 한자락 배우고 나면 끝이지만, 이 노래로 인해 우리 국악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들은 달라야 하잖아요.
-김영임씨의 국악은 옛것이 아닌 현대적인 느낌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이라면 반드시 쪽지고 개량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대에서만 완벽하게 보여주고, 찢어진 청바지 입는 것도 좋아해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것도 좋아해요. 다만 노래방에 가는 건 싫어해요. 막힌 공간에서는 노래가 잘 안되거든요.
-개인적 취향의 문제군요.
네. 저는 국악도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 수 있는 양면성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는 소양도 키워야 해요. 때로는 무대 분위기에 맞게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옷도 입을 줄 알아야 해요. 그게 똑같지가 않거든요. 제가 나이 60세여도 꼭 비녀를 찌르고 개량한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저는 청바지도 좋아하고, 래깅스도 입어요. 다만 무대에서는 쪽머리를 짓더라도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어요. 40년간 사극만 한 전문적인 선생을 모셔와서 완벽하게 기름 발라서 머리를 하죠. 화장도 전문가에게 맡기고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야 프로페셔널한 공연을 할 수 있죠.
-국악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일들이 선행돼야겠지만 스타도 많이 발굴돼야 한다는 것 같아요.
우선 어린 국악인을 키우는게 시급하단 생각이 들어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돈과 관계없이 어린 학생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교육시키는 사업이거든요. 또 제가 올해 상반기부터 국악예고를 출강나가고 있어요. 자청해서 나가는 건데 대학교는 8년 정도 출강하다가, 어린이 저학년이 중요하단 생각이라 지금 국악예고도 나가고 있어요. 시흥에 있는 국악예술고등학교. 국립이라서 국립전통예술 고등학교예요. 후진양성을 위해 길을 많이 열어놓고 싶어요.
경기일보 박성훈 기자 pshoon@kyeonggi.com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커다란 공연장이 기타 하나와 담담한 목소리에 숙연해졌다. 두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심사위원. 지난 해 M.net ‘슈퍼스타K 시즌5’(이하 슈스케5)의 한 참가자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른 주인공은 김대성 스테파노(60)다. 슈스케5 출연 당시 시니어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당찬 포부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비록 ‘톱 10’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감동의 무대는 시니어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를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이제는 오디션에 참가자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말이다. 기타 하나로 관객들을 사로잡던 방송에서의 모습은 여전했다. 한 회사의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기타와 목소리 하나로 관객들을 홀렸다. 사실 슈스케5 오디션 당시만 해도 이렇게 까지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패기로 가득한 젊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했다.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탄 후 많은 이들로부터 부름을 받았지만 슈스케5가 끝난 이후 약 두어달 정도 우울증에 시달렸다. 음악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시기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실에서의 무기력함이 그 원인이었다.
“아마 남성 갱년기와 같이 왔던 것 같아요. ‘노래를 얼만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음악이다. 이제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그다.
“생각을 가다듬었어요. 돈에 연연하지 말기로.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는 싱어송 라이터가 되자’라고 생각하고 활동을 시작하자 점점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몸이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끊임없는 공부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슈스케5를 통해 부족하다고 느꼈던 발성과 기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이다.
# 음악에 미쳤던 젊은 날
트로트 가수 출신의 어머니. 스테파노의 어머니도 그가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스테파노가 중학생 시절 그의 어머니는 기타 강사를 데려와 기타를 가르칠 정도로 그가 음악가가 되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정말 그렇게 음악을 가르치는 어머니들이 흔치 않았는데 어머니도 정말 대단하시죠. 지금은 그런 어머니가 정말 감사합니다.”
중학교는 기타와 함께 고등학교는 밴드에서 그리고 심지어 군대는 군악대에서 음악을 했다. 그는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해 “음악에 미쳤던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고 표현했다.
그가 입이 닳도록 말하며 하고 싶어 하는 ‘힘이 되는 음악, 힐링이 되는 음악’은 젊은 시절 길거리 버스킹(길거리공연)을 하면서 느낀 보람 때문이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5년 동안 종로와 영등포 등지를 다니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공연을 통해 백혈병 어린이 돕기, 농아인 보청기 달아주기 운동을 하는 등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음악을 지향해왔다. 그는 음악의 매력을 치유라고 얘기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과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음악의 매력이죠. 저도 아침에 일어나서 노래 연습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니까요. 듣는 사람도 똑같겠죠. 그래서 힐링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 김광석의 선물
김대성 스테파노가 슈스케5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한 젊은 가수 때문이었다. 그가 도전의 불씨에 부채질을 한 가수는 바로 ‘슈퍼스타K 시즌 4’의 우승자 로이킴(22)이다. 포크 음악으로 음악프로그램을 석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 구석에서 남아있던 젊은 날이 꿈이 꿈틀거렸다고 한다.
막상 오디션 신청을 하고 오디션 장소에 다가서자 불안함이 엄습했다. ‘스펙 좋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백발이 성성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내 그런 불안함은 사라졌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입을 떼자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 사이에 나이 많은 사람은 저 뿐이더라고요. 그냥 돌아가려던 찰나에 제 차례가 와서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1차 통과하고 2차와 3차에서 피디와 작가들 그리고 관객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나만의 스토리가 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사위원 이하늘과 관객들을 울렸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사실 오디션 과정에서 비중을 크게 둔 노래는 아니었다. 2차 오디션이 끝나고 3차 무대 오디션 직전, 3차에서 부를 노래를 선정하기 위해 피디들과 작가들 앞에 섰다. 총 다섯 곡의 노래를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이 때 피디와 작가들이 숨죽인 때가 있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를 때였다. 스테파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외에 5곡 정도를 준비했어요. 그 곡들 중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데 피디와 작가들이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그 때 ‘3차 오디션에서 이 곡을 불러야겠구나’라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곡이 이제는 그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 대표곡이 됐다. 이제는 아침 노래 연습을 할 때 이 노래를 부르며 회상에 잠긴다는 그. 어찌 보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김광석이 그에게 주는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 예순, 그 전성기의 시작점에서
젊은 시절 딥퍼플(Deep Purple)과 레드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헤비메탈 락에 빠져있었던 스테파노. 그를 포크의 세계로 빠지게 한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사별한 아내와의 이야기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남녀로맨스’ 카테고리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딥퍼플과 레드제플린에 미쳤었던 청년은 밥 말리, 레오나르드 코헨, 로이킴에 빠져있는 중년으로 변했다. 자유로운 현재의 삶이 지난 30년간의 회사 생활보다 훨씬 좋다는 그다. 아침이면 노래연습을 하고, 기타를 들고 작곡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이제 영락없는 아티스트다. 한 달에 1곡정도 온라인에 선보일 예정이라는 스테파노는 지금부터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음악에서 나이 개념을 없애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덧붙이면서.
예순의 나이에 가수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도전을 통해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용기를 낸 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퇴직한 후 용기를 냈어요. 음악에 다시 도전하기로. 그리고 꿈을 높게 잡았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주눅 들지 말자. 그리고 도전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부터가 제 전성기입니다. 음악이 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한 센터를 짓는다는 제 목표가 이뤄질 때 까지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새로운 일거리가 다가오니 기회를 놓치지 마라. 하루가 바삐 돌아가니 차근히 일의 마무리를 잘지음이 길할 것이다. 의외의 기쁨이 있으니 일신이 영귀해진다.
84년생 : 상을 받을만한 기분 좋은 일이 있다.
72년생 : 한 상 차려 받으니 기운이 난다.
60년생 : 동쪽으로 가면 친구가 기다린다.
48년생 : 억울한 일을 당하는 날이니 조심하라.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귀인을 만나도 아닌것 같으니 잘 잡아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도움을 받게될 것이나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괜시리 어수선해 질 우려가 있으니 잘 선택함이 길 할 것이다.
85년생 : 도움은 있으나 고생하는 하루다.
73년생 : 꾀임이 없으면 몸이 상한다.
61년생 : 재운이오니 친구를 찾아라.
49년생 : 지나간 일이 명예 되어 찾아온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문서를 소중히 하면 이득이 있으리라. 각종 이권이나, 윗사람으로 부터 의뢰 받은 일들이 이득이 될 수 있는 괘이니 성심을 다해 마무리를 잘 지으라.
86년생 : 윗사람이나 선생님께 친창 듣는 일이 있다.
74년생 : 시비 구설을 몸을 다치거나 억울한 일 당함이다.
62년생 : 바람쐬는 일이 몸과 마음을 상쾌히 만든다.
50년생 : 옛일을 돌아보면 마음에 이득이 있으리라.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신경 쓸 일은 많으나 도움은 받는다. 여러가지 일로 다사다난해 질 수 있으나 귀인의 도움으로 의외의 길함이 있다. 일이 안된다고 자책말라.
87년생 : 정직했던 것을 알아주는 날이다.
75년생 : 애정문제로 다툼이 있으나 얻는다.
63년생 : 마음이 갈대라 잘 잡아야 이루리라.
51년생 : 정당한 일이라면 이길 수도 얻을 수도 있다.
◇ 용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금전이 오가나 잘못하면 터진다. 재운이 길하니 들어오는 것이 많다 그러나,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망동하게 되면 실물수가 따르니 조심하라.
76년생 : 도움은 있으나 돈 나가는 일이 된다.
64년생 : 다툼을 말라 관재가 두렵다.
52년생 : 체력 관리를 잘 해야한다.
40년생 :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나타내면 건강에 해롭다.
◇ 뱀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모든일 잘 풀리나 성실히 책임지는 마음을 갖자.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처음과 끝을 잘 처리하라. 운기가 길하니 이룸이 클 것이며 이익 또한 많을 것이다.
77년생 : 속 빈 강정이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65년생 : 중심만 잘 잡으면 소득이 올라간다.
53년생 : 정신 집중하라 손재수가 보인다.
41년생 : 도움을 받을 생각 말고 도움을 주라.
◇ 말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운이 열리니 정당한 마음으로 받을 준비를 하자. 어려웠던 일들이 있다면 서서히 풀려 나가니 자중하는 자세로 행하라. 타의 질투와 방해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
78년생 : 구설수만 피하면 오후에 좋은 일이 있다.
66년생 : 경쟁이 치열하니 생각을 바꾸어라.
54년생 : 모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42년생 : 부부간에 갈등을 해소해야 먹을 것이 생긴다.
◇ 양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길을 잃은 기러기가 날개가 꺾인다. 운기가 불길하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길함은 곧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
79년생 : 애정 문제는 갈등만 생기고 주머니는 빈다.
67년생 : 정신을 놓으면 생돈이 흐른다. 귀인의 도움은 있다.
55년생 : 엉뚱한 구설 수만 피하면 명예가 오른다.
43년생 : 말머리를 부인에게 자식이 좋은 소식 보낸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어려움을 당한 만큼 얻는 것도 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니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또 다른 시련에도 잘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라.
80년생 : 애정도 두텁고 금전 운도 길하다.
68년생 : 관재 구설을 조심하면 경쟁에 이긴다.
56년생 : 잡히지 않는 것은 버리는 것이 좋다.
44년생 : 밖에서 찾을 이득을 안으로 돌리자.
◇ 닭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면 꼬인 일이 풀린다. 인간구설이 발동하니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기의 영향이 좌우할 것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할 것이니 복이 그안에 유한다.
81년생 : 아지랑이 피어나듯 사랑이 핀다.
69년생 : 힘차게 밀고 나가면 안 열릴 것이 없도다.
57년생 : 새로운 마차가 나타나니 여행을 하면 길하다.
45년생 : 건강을 무리할 일이 생기니 조심하자.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깃발이 펄럭이나 내 것이 아니로구나. 아직은 길함이 멀리 잇으니 망동은 삼가하고 은인자중함이 길할 것이다.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니 때를 기다리라.
82년생 : 일이 생기니 먹을 것도 생긴다.
70년생 : 설득을 잘하면 남의 일도 열어준다.
58년생 : 몸이 곤하니 욕심을 내지 말자.
46년생 : 문서 일은 잘되나 도장은 조심해야된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과감한 행동을 보일 때 이다. 길함이 문전에 이르니 모든일의 성사가 빨리 나타난다. 자신을 가지고 행할 것이니 때를 놓치지 말라.
83년생 : 말 조심만 하면 기분 좋은 하루다.
71년생 : 꿈자리가 좋으니 횡재수가 보인다.
59년생 : 만리를 가더라도 한 걸음부터 움직인다.
47년생 : 움직이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정성기(鄭城基)
안암동 고갯길을 오를 때
젊은 여학생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밝은 얼굴에서
지난날의 꿈이 다시 살아난다
검게 물들인 군복이 전부였던 우리네들
무엇이 봄의 색이지
무엇이 봄의 향인지
무엇이 봄의 맛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사월이면 개구리 튀듯 거리로 나가
이 세상 모든 짐을 진 구도자로
자기를 던졌지만
봄날에 떨어진 꽃잎이 되었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발디의 사계에
잊혀진 그때를
저 담장 위에 피어난 하얀 목련을 보며
젊은날을 파스텔화로 그린다
어디선가 날 부르는 그때 그 목소리에
흘러가는 안암천을 바라보며
아무도 없는 세월의 지나감 속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머리를 만진다
스머프학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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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운영하시는 ‘스머프학고제’
http://blog.naver.com/adcsk/40208254339?copen=1&focusingCommentNo=11314729
정성기님은 연세 90세가 넘으신 어머님을 봉양하고 계신 분으로, 오래도록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며 어머니 입맛에 맞게 손수 여러 가지 요리를 개발해 드리고 있는 효성이 지극한 아드님이십니다.
2007년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분이 매일매일 올리는 요리가 화제에 올라 많은 블로거들이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과 서평도 많이 싣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네이버 지식iN의 파워지식인으로 선정되신 분입니다.
친정엄마께서 이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친정엄마 모시고 구례산동 산수유마을에 갔던 날, 친정엄마께서 너럭바위에 앉아 백일장 대회 나온 소녀처럼 쓰셨던 그 글이 궁금하여 읽어보고 싶다며 졸라댔더니 이렇게 보내오신 것입니다.
친정엄마께서는 산수유 노란 꽃너울 속에서 느끼신 봄의 감흥을 잔잔하고 따뜻한 글로 풀어내셨습니다. 풋풋한 봄편지 내용이 마냥 좋아 당신의 고운 글을 이렇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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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의 날씨는 변덕쟁이 할멈 같다.
아침저녁엔 영하의 날씨로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눈꽃이 만발하고, 남녘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이 손짓하니 사람들이 갈팡질팡한다.
썰매 장으로, 꽃 마중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여기도저기도 끼지 못하는 방콕대학생이던 난, 심기가 따분하던 참에 서울에서 셋째 딸이 아침 일찍 내려와 봄 마중을 가자고 했다.
딸 내외는 어미가 지난 가을 다리와 허리를 수술하고 겨우내 방에서만 지낸 것이 안쓰러워 시간을 내었다며 사양하는 나를 부추겨 데리고 나섰다.
구례 산동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1시간 좀 넘게 걸렸다.
일찍 나섰기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햇살이 퍼지지 않아서 꽃들이 잠을 덜 깬 듯 이슬에 젖어 있었다.
다음주말에 산동면에선 산수유 꽃 축제를 연다고 길 아래편엔 뾰족 천막들이 즐비했다.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꽃도 지금이 한창 만개라니 잘 맞춰 온 것 같았다.
반곡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냇가로 내려가는 꽃담 길을 걸었다.
반곡 마을을 끼고 흐르는 서시천 가운데는 100m 정도 되는 넓고 긴 반석이 아래쪽 위쪽에 널려있었다.
나는 반석을 보자 반하여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건너 너럭바위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야아, 참 좋다!" 소녀처럼 탄성을 질렀다.
기분이 좋아 감탄을 하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 놓고 소리를 질렀다.
연노란 꽃구름을 병풍처럼 둘러놓고 바위 양 옆으로 졸졸졸, 쏴아쏴아, 철철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의 연주를 들으니 자연의 풍광에 도취되어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 신선으로 변해 있노라니 창조주의 솜씨와 사랑에 찬 배려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철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주시어 세상사에 찌들고 지친 상한 갈대 같은 영혼들을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래쪽 반석을 보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작가들, 동호인들이 무리지어 온 분들의 알록달록한 의상들이 노란 산수유 꽃과 어우러져 더 고운 풍경을 이루었다.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가려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나는 ‘내 눈과 가슴에 담아가야지!' 메모를 하느라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건너편 언덕에서 딸이 “엄마 너무 멋있어요.”하며 몇 컷을 찍어대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일어나서 맑은 물에 손을 대고 싶어 비탈진 바위를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물에 빠질 뻔했으니 치신머리없는 노인네를 어찌할꼬!
놀란 사위는 신발을 벗어들고 건너와 부축하여 손을 꼭 잡고 하위마을 꽃길을 다니며 감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들이 밀려와 주차장을 채웠다.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은 연인들, 아기들과 온 가족들, 부모를 모시고 온 분들이 꽃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노란 산수유 꽃만큼이나 예뻤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딸도 이리저리 다니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산수유꽃의 내력은 잘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마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마을이 수난을 당하여 빈 집이 많아지자 빈터 여기저기에 심은 것이 지금은 군락을 이루어, 산수유 하면 구례 산동이 으뜸이란다.
상위마을로 접어들면 집집마다 울타리나 언덕배기에 오래된 나무가 많다.
꽃송이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꽃잎 5개가 돋보기를 써야 보일정도로 작다.
밤알만한 꽃대 하나에 여러 꽃송이가 달려 있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산수유 찬양론을 나대로 상상해 보았다.
산수유 꽃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사다. 이는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것이요.
산수유나무는 언덕이나 평지의 척박함도 가리지 않고 무리지어 살면서도 다투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며 종족을 보존해가는 배려심 많고 사랑 많은 나무다.
낱낱이 보면 보잘 것 없는 꽃이지만 한 꼬투리에 몇 송이가 모여 있는 것은 협동심을 나타냄이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고상한 자태는 요란스레 뽐내고 자랑하고자 날뛰는 요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을 풍기며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품성에 반해 벌들이 찾아오지 않는가.
작은 꽃 한 송이에 많은 열매를 맺었다가도 서로 튼실한 송이에 양보하는 미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날 모든 것을 다 자기가 가지고 우쭐대고 싶어 안달하는 세상에 심성 고운 어머니처럼 자식을 달래며 타이르는 듯 꽃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긴긴 겨우내 방콕대학생 노릇에 지친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노란 산수유 꽃들에 반하고, 서시천 너럭바위에 반하며, 물소리에 반하고, 노고단자락의 황홀한 풍광에 반했으니 소녀로 착각할 만하다.
거기에 산수유 꽃들이 주는 교훈을 가슴에 담뿍 담고 돌아왔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이렇게 즐거운 봄맞이를 하게 해 준 막내딸과 사위가 정말 고마웠다.
◆글쓴이 (79세)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마당재길 14-26 (남노송동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