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張錫周·62) 시인의 트위터 자기 소개란에는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쓰여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두 단어라고 이야기한다. 장 시인의 하루는 매일 걷고, 읽고, 쓰고,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사색으로 채워진다. 산문집 은 그런 그의 일상에 온유한 자극을 준 책이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매
부동산은 시니어들에게 늘 골칫거리다. 자녀들이 출가하고 나면 둘만 덩그러니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평생을 피땀 흘려 마련한 재산인데 주택연금으로 은행에 넘겨주자니 아이들에게 죄 짓는 기분이 억누른다. 방을 세놔도 되지만, 낯선 사람과 한집에서 산다는 것이 영 부담스럽다. 이런 고민을 갖는 시니어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에 멋진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윤석화의 .
1998년 첫 공연 이후 17년간 이어진 공연이라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윤석화라는 연극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하지 못하게 된 후 젊은 성악가들을 위해 연 심화 과정의 특별 수업이다. 인생의 전부였던 목소리를 잃고 사랑도 잃은
우리 집에서 버스 세 정거장 아래에 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새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운동하러 갈 때 배낭을 메고 나가서 오는 길에 시장도 보고 올 수 있어 좋다.
아파트 뒤편으로 몇 년 전 새로 산책로가 생겼는데 우리 동네는 청계천 복원처럼 서울의 예전 개천을 정비하여 깨끗한 하천으로 바꾸는 사업이 끝나 참으로 깔
●미술품 구입하기
문체부는 1995년을 ‘미술의 해’로 정하고, 미술 관계 문화 단체를 통해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을 전개했다. 국민의 보편적 경제 능력은 향상되었는데 문화의 수준은 거기 못 미쳐서, 우선 여러 장르의 미술품 중 그림을 사다 걸자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그 후 해마다 5월이면 이 행사를 민간화랑 주도로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한 도예가를 만나기가 그렇게 힘든 일이던가. 왜 꼭 그 예인(藝人)을 만나고자 했던가? 돌아보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 아릿함이 밀려온다. 청광 윤광조(晴光 尹光照· 1946~ ) 도예의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싶은 열망에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으로, 경북 안강의 자옥산 자락으로 몇 차례 도요지를 찾아갔으나 바람 같은 흔적을 놓치고 매번 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의 ‘그리움’)
늦가을 철 지난 동해 바닷가를 서성댑니다.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태풍으로 인해, 엄밀히 말하면 주로 일본과 대만 등을 덮치는 태풍의 여파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달려드는 파도를
김장철이 다가온다. 배추와 무가 싱그럽게 쑥쑥 키를 키운다. 아침저녁의 손이 시릴듯한 날씨에 서서히 깊은 맛이 들어간다. 이웃 할머니가 가꾸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밭의 무도 땅 기운을 받고 어제와 눈에 띄게 다르다. 지난봄 야외 사진 촬영을 나갔다가 들녘 밭에서 발견했던 또 다른 모습의 무를 사진으로 담았던 기억이 난다. 서두의 사진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
인생 2막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분이 강사로서 활동하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많아서 이를 강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의 그 자체가 더욱 고상해 보이고 돈도 벌 수 있어서가 아닐까? 모든 일이 그러하듯 강사의 길도 순조롭지만 않다.
필자는 2012년에 조선일보 자회사였던 조선에듀와 시니어전문 비즈니스
직장과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맞벌이 주부는 슈퍼우먼이 아닌 한 힘이 든다. 게다가 명절날 시댁 가서 이런저런 일을 거들고 집에 오면 녹초가 다 되니 무슨 핑계 거리라도 만들어 시댁에 안 가거나 음식 장만에 열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만도 하다. 일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만 자라 시집 온 대부분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