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44년 2월 16일 태어났다. 당시는 각박한 삶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명이 바로 문밖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일제가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민간의 식량이 부족할 대로 부족했기 때문에 산모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애를 낳았는데 자라지 못하여 큰 쥐만 하더라”는 말을 곧잘 했다. 좋은 점이라면 출산
가난은 나의 스승
지난 세월에 살아온 길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한편으로는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전쟁 직후 태어나 1960년대 중고등학교에 다녔고,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다. 이후 80~90년대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태어나 가장 급속한 발전으로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불사약을 구해오라며 서복에게 동남동녀3천명을 거느리고 가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실제로 제주도와 오키나와에는 서복이 다녀간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영생, 늙지 않고자 하는 영생을 대표하는 일화로 자주 인용된다. 이런 욕망에 시달리는 이들은 진시황뿐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봉규 시사평론가
중년이 돼서도 예쁜 여자나 ‘쭉쭉빵빵’한 몸매의 여인들을 보면 눈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품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눈요기만 한다. 수컷 본능이다. 암컷들은 수컷에 비해 소극적이기 때문에 멋진 남성을 대놓고 쳐다보지 못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눈요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드라마
밥만 해 먹는 여자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폐업 하고나서 꼭, 10년! 집에서 밥만 해먹고 사회활동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밥만 해 먹으면서 가정 살림만 한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심하게 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활동을 해야만 훌륭하고 대단하게 여겨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집에만 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했다. 부진한 경제성장률과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 둔화를 우려해 선제로 금리 인하 카드를 빼 들었다고 언론에서 발표했다. 금리를 인하하면 뭉칫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경기가 되살아나고, 돈들이 공장을 돌리고 데 사용되며, 가계는 소비를 늘려 돈이 제대로 돌아 ‘돈맥 경화’가 해소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시니어는 재산 물림에 대한 걱정이 크다. 눈만 뜨면 부자간, 형제간 재산 싸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자식에게 몽땅 넘겼다가 훅 날리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주고 나면 괄시받고, 안 주면 제 명대로 못 산다”고 말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슬기로운 방안을 살펴본다.
유능한 후계자 양성하기
상당 규모 사업을 하는 동
소녀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대구시 삼덕동이었다. 그곳 삼덕동의 중앙초등학교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와서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로 전학하던 그때가 소녀에게는 서울 사람의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삼덕동 소녀의 집에는 동네에서 제일 큰 마당이 있었고 여름에는 그 마당 한가득 형형색색의 이름 모를 꽃이 피고 졌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덕분에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건너기 싫은 강이다. '고령자'가 싫어서 59세에서 나이 먹기를 멈추고 젊은 오빠인 양 10년을 살았다. 삶길 어언 70년! 살길 30년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
학생 시절에 읽은 어느 유명 여류작가의 ‘29세 10년’이라는 글귀가 실감 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