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승 감독이 만들고 형사 역에 마동석, 아줌마 역에 장영남이라는 여배우가 나온다. 이 영화로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젼’ 섹션 여자배우상, 2013년 어바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무명 감독에 무명 배우를 써서 9차례의 촬영 스케줄에 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었다니 흥행 마케팅을 제대로 못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장 여러 번 읽은 책
여러 가지 이유에서 책을 읽는다. 어렸을 때 친구가 없어 책을 친구로 삼게 되었다. 여러 책을 읽고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여긴다. 욕심이 많아 많은 책을 읽으려 하다 보니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별로 없다. 예외로 지그지글라의 『정상에서 만납시다』는 31번 읽은 적도 있긴 하다. 삶의 회의로 번민하던 20살 전후에 성경을 만
청소년기는 필자의 영혼이 가장 순수하던 시절이었다. 그보다 어린 시절은 철이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힘들게 거센 파도와 싸워야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처자식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또 뛰었다. 이제 흰 머리 희끗희끗한 이순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맑은 영혼의
“팔다리는 물론 얼굴에까지 뜨듯한 오줌이 그대로 튀어요. 얼굴은 똥, 오줌 범벅이 돼도 ‘똥은 흙, 오줌은 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때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때거든요.” 7개월 동안 돼지의 생활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박찬원(朴贊元·72) 사진작가가 겪은 일이다. 그는 돼지만 사진을 찍어서 ‘사진작가는 미친놈이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돼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뼈와 진을 녹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무료한 일상과 건강을 잃어버린 신체 때문에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러다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책은 빌리고 안 갖다줘도 범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을 여러사람이
쉽게 빌리고 쉽게 사고 애착이 없는 분들도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빌려줘도 꼭 받아서 찾아오는 편이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백과사전,종이신문 조간석간신문을
정독을 하는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계속 책을 모아두고 이동할 때 어린시절 썼던
일기장도 수
대형 책꽂이를 3개를 놓고 혼자 사용하는데도 늘 책꽂이가 모자란다. 책을 좋아해서 잘 사들이기도 하지만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번이나 골라서 버리려고 했으나 이 책도 중요하고, 저 책도 꼭 필요하고 해서 한 권도 못 버리고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한번은 이삿짐센터 직원이 책이 많다고 필자 보고 박사냐고 묻기도 했다. 참으로 민망하고
영화감독 꿈꾸던 소녀 음악PD가 되다
인터뷰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작은 체구에 단단한 관록을 풍기면서 함박웃음으로 맞이해 준 ㈜콘코르디아(CONCORDIA)의 대표 겸 음악 프로듀서 곤도 유키코(近藤由紀子, 67)는 이시카와현(石川縣) 나나오시(七尾市) 출신.
육군비행학교를 나와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 때 동남
드물디드문 ‘90대 철학 교수’이자 글로써 1960~197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즘 활발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 100세를 바라보며 만든 책 (덴스토리 펴냄)를 출간한 김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펼쳐놨다. 결
우린 가끔 영화를 본다. 서둘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집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는다. 조조영화는 거의 반값이다. 한 사람 표값이면 둘이 볼 수있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이리저리 쇼핑도 하고 여유를 즐긴다. 평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TV 채널 돌려가며 좀 보다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된다. 아내와 제대로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