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자 시니어들의 모임이 있었다. 입고 나온 옷이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들 잔잔한 격자무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웃었다. 그렇다. 남자 시니어들의 패션은 잔잔한 격자무늬가 많다. 거기다 침침한 무채색이다. 어딘지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행도 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패션이 “나는 시니어라오~” 하는
올해 새로 책을 세권 냈다. 댄스스포츠 관련 책이다. 필자가 강의하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댄스스포츠’ 시리즈이다. 댄스스포츠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몸으로 보여주는 부문 말고도 할 얘기가 많다. 댄스가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인데다 댄스스포츠는 생활
“다시, 다시, 다시!” “그러니까 연습하는 거야. 해남아, 해남아. 연주하다가 틀리잖아? 그럼 다시 해야지 고쳐져. 그냥 지나가면 안 돼!”
학예회(?)를 일주일 앞둔 아현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연습실은 시끌벅적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하모니카 소리와 노래 소리, 키득키득 웃는 소리, 와글와글 수다 떠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이들 행동과 말투 그리고 동심
인간은 언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온 것일까요? 나라는 존재는 상대가 없으면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개념인지도 모릅니다. 그 상대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함으로써 나의 독자성, 개별성을 알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시조에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지은지 몰라 무명씨 작으로 돼 있습니다. “내라 내라 하니, 내라
한동안 뜸했는데 오늘 또 마주칠 게 뭐람. 그는 잡상인들의 목청을 흉내 내어 소리친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집니다.”라고. 일순 지하철 객실 안에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크리스천인 나도 애써 창밖을 보며 민망한 시간을 견딘다. 도대체 저 사람은 자신의 외침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하긴 믿지 않는
누구에게나 성은 자연스러운 화두여야 한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개방됐다 해도, 시니어의 성은 여전히 어두운 음지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음지의 닫힌 세계에서 오가는 오해와 선입견들에 쌓여 외로움만 커져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 무엇이 이토록 자유로워야 할 인간의 성을
아름다운 섬 제주. 최근 이곳은 플리마켓(Flea Market), 즉 벼룩시장의 성지가 된 듯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장(場)이 ‘섰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비누, 방향제, 액세서리 등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는 10월호에 이어 농산물과 사람들의 웃음이 함께하는 도시장터를 제주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투박해 보이지만 주
따뜻한 햇살이 드리워진 마룻바닥 위. 밝은 색 레오타드를 입은 선이 곱고 등선이 아름다운 여성들이 발레 바(bar)에 손을 살포시 얹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쁠리에’, ‘앙오’, ‘아띠뜌드’, ‘아라베스끄’, ‘샤쎄’. 간질이는 듯한 발레 용어가 주문처럼 흐르면, 숨을 내쉬고 동작하는 이들의 이마와 등 위로 굵은 땀방울이 쏟아져 내린다. 발레교습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는 ‘하이쿠(俳句)의 시성’으로 유명한 일본의 시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17자(5·7·5)로 세상과 인간을 노래하는 하이쿠를 바쇼는 언어유희에서 예술 차원으로 끌어올려 완성했습니다.
그는 삶의 자세에 대해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온다면. 누구든 한 번쯤 꿈꿔 본 일이 아닐까. 더군다나 그 책들이 서점에 비치되고, 사람들이 책에 나온 내 얼굴을 알아 본다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되었든, 전문분야의 저서가 되었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출간이 가능하다. 그 방법을